테니스 대회를 보러 여행 중인 사람 글을 보니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문구가 하나 보인다.
"아 웃겨. ㅇㅇㅇㅇㅇ가 나보고 ㅁㅁㅁㅁ 라고 하네?😆‘’
테니스 대회에 직접 가서 선수들 연습 코트에 가면 경기장에 비해서 꽤나 가까이서 선수와 접촉할 기회가 생긴다. 그러다가 선수들이 얼굴이 익은 팬을 보면 말을 건네게 되는데..
운동 선수든, 가수였든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팬이 그걸 전달할 때 특이하게도 많은 사람이 그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거나 이걸로 끝낸다. "진짜 웃겨"
예전에 연예인과 일할 기회가 있었던 친구도 그 사람과 어떤 개인적 일화가 생기면 그 내용을 나에게 톡을 보내곤 했었다. 그리고는 이걸로 시작했었다. "아 웃겨. ㅁㅁㅁ이 오늘 나한테..."
이 기시감. 이 "아 웃겨" 는 대체 뭘까.
그런데 사실 내용은 재밌진 않고 그냥 평범하던데...🤔
'아 웃겨, 이게 무슨 일이야?'가 생략된 분명 행복의 표현이면서 먼 발치서, 화면 속에서 바라보던 유명인과 사이에 나만의 일화가 생겼다는 간질간질함, 뿌듯함이 담겨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겠지만 현장에 있어 보면 니들은 모르는, 얘가 나를 특별히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오는데 이걸 대놓고 쓸 순 없고 나만 간직하고 싶지만 그래도 남들도 알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오바떨고 싶진 않지만 살짝 웃긴 상황인 듯 전달하는 거야. 나에게 어째 이런 일이...'의 뉘앙스가 이 세 글자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 이 '아 웃겨' 다음에 서술되는 행동은 일반인이 했으면 아무 것도 아닌 건데 '그 사람'이 해서 특별해진 것들이다. 아마 그 순간을 떠올리며 타이핑하고 있는 그 시점에도 입꼬리는 히죽히죽 올라가고 있었을 것만 같은...
그러면서 어떤 관계든, 거기에 불을 지피는 건 "유일무이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일화, 나에게만 보여주는 무언가, '니들은 몰라'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행동. 여기서부터 예전과 같아질 수 없다.
종교라는 것도 절대자와 나 사이에 1:1 상호작용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속이 된다. 양측이 하는 말을 내 머리속에서 둘다 지어내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상대방이 하고 있는 거라는 "믿음". 그 분이 날 위해 이걸 하셨어라는 "믿음".
어떤 테니스팬은 좋아하는 선수를 가까이서 보게 됐을 때 그 선수가 말한 특정 단어가 있는데, 몇 년이 지나도 그 단어에 집착하는 걸 봤다. 그 단어가 너와 나의 1:1 접촉의 상징처럼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 80억 :1 일방적이었던 관계에서 1:1 추억이 만들어졌던 그 순간.
벌써 수십년전... 일명 '1세대 아이돌' 콘서트를 쫓아다니던 친구에게 들은 얘기.
수많은 관객이 운집한 콘서트 장에서 특정 방향으로 가수가 고개를 돌리자 "xx가 나를 봤다" 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 주위는 서로 머리채 잡고 싸움이 났다던가... 그런 얘기. 그때부터 '만인의 연인' 연예인과의 관계라고 해도, 팬들이 슬쩍슬쩍 '나와 그는 1:1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 팬심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또한 스타라는 게 달리 스타가 아니라 "아... 저 사람 묘하게 날 의식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도 됐고(=종교). 심지어 동물원에 판다를 보러 가도 "🐼나랑 눈 마주쳤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스타성의 핵심이다.
그러다가 그 "유일무이함"이 무너지면 관계가 끝난다는 것. 아이돌 팬들은 가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걸 선망하는 줄 알았는데, 열애설이 나면 큰 충격을 받고 떨어져나가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나만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충격, 더 이상 내가 키운 '내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배신감. 모든 "열렬한 관계"는 1:1이라는 믿음과 상상 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테니스 대회 보러 다니는 사람 여행기를 보다가 갑자기 3년 전에 본 드라마 내용까지 생각이 뻗치기 시작했다. 三十而已 - 겨우 서른.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드라마는 결국 흔한(?) 불륜극으로 흘러가는데
나도 이 드라마를 지지부진 천천히 보다가 불륜에 불이 붙고 언제 들키나가 궁금해지자 막판엔 밤을 세워 보게 되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많은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는지 결국 이해하게 됨. 🤣 이거 끊지를 못하겠네?
불륜을 알아차린 부인은 그 날에도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며 아픔을 토해내고 친구 집으로 와서 울다 지쳐 잠에 들지만(38회), 정신적으로 더 크게 무너진 것은 ...
남편이 나에게만 알려준 줄 알았던 그 모든 꿈과 희망을 내연녀에게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40회)
"니가 내 남편과 먹었던 그 수많은 식사, 그리고 방 월세... 그거 우리 공동 재산에서 나온 거야. 너 그거 갚아야 돼. 그런데 내가 봐준다. 내가 낸 셈 칠게."
남편이 헤어지자고 했는데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자식에게까지 접근하는 어린 내연녀를 떨구기 위해 😡 3자 대면하게 된 자리에서 부인은 모든 걸 꾹 참고 큰소리를 친다. 그런데...
그럼 이 문신은 얼마로 계산할 건데요??
불꽃놀이 디자이너인 남편.
오직 너를 위한 유일무이한 ("중국어로는 独一无二 독일무이"로군) 꿈의 디자인이라고 말했던 푸른 불꽃🌊,
내가 하는 모든 디자인은 너에게 바친다고 했던 남편.
하지만 이 말까지 다른 여자에게도 했..???
내연녀를 떼어내는 일을 직접 해야했던 이 여인은 유일유이 獨一有二를 알게 되는 이때 완전히 무너짐.
"모든 게 나, 우리 가족을 위한 건 줄만 알았어"
"제정신으론 못 버티겠어"
그리고 몇 회 후 이혼 엔딩.
사실 이 드라마 볼 때는 별생각이 없었고 3자 대면 일화를 대체 왜 만들었는지조차 이해를 못 했는데, 오늘 "유명인"과의 일화 하나, 던진 말 한 마디의 유일무이함을 소중히 하는 팬의 단어를 곱씹다가 뭔가 더 깨닫게 됐다.
이 아내에겐 "너와 나만의 꿈"을 다른 여자와도 공유했다는 것이 가장 큰 상처가 됐다는 것.
처음부터 아내가 꽤 단호하긴 했지만 이로써 어떤 여지도 없이 이 부부가 끝나게 됐음을 알려준다.
불꽃처럼 아름답다가 불꽃처럼 어느새 사라지는 모든 관계들...
많은 관계가 '진짜 웃겨.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지?' 이렇게 시작한다.
내게 한 행동만 떠올려도 '아 웃겨'가 자동 완성되고.
하지만 10년이 20년이 지나도 "진짜 웃겨. 오늘 이 사람이..." 하고 남들에게 말하고 싶어 못 견디겠는 우리만의 일화가 있는 관계... 가능하긴 한가???
대부분 "웃기고 있네. 오늘 이 인간이..."로 변하니까.
모든 관계가 처음 1:1 임을 확인하고 '아 웃겨' 할 때처럼 몽글몽글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못 해서 저~ 위에 옷 입은 채로 욕조 들어가서 술병 들고 울고 있는 드라마 장면이 나오는 거겠지.
그리고,
20년 30년을 '진짜 웃겨'로 살면 너무 ;조증;이라 오히려 안 좋다고 할 수도... 😏
무의식적으로 쓰게 되는데, 어떤 일화를 전할 때 " 이 사람이..." 와 "이 인간이..." 의 차이가 있다는 게 재밌다. 영어로 번역하면 같은 단어로 번역될 텐데... 외국인들은 이 뉘앙스를잘 구별할 수 있을까?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