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errey, Mexico 몬떼레이




멕시코 제3의 도시로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 몬테레이.
미국 국경에서 가까워 미국화가 되어 있으며, 기아자동차 공장이 건설 중이기 때문에 한국까지 직항로를 개설한다는 소문도 있는 산업도시.
하지만 내가 직접 시내를 돌아본 느낌은 어디서나 산을 볼 수 있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문화도시였다.


몬테레이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국경도시는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이고, 미국내 4위권 공항인 달라스-포트워스(DFW)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멕시코 시티에서는 두 시간보다 좀 덜 걸리는 비행거리.

밤 11시에 도착해, 주황색 불빛이 보석과도 같이 드넓게 뿌려진 도시를 보면서 착륙했지만(멕시코 도시들의 면적은 실로 엄청나다) 사실 어둠 속에서 이 도시의 인상을 알기는 어려웠다. 다만, ibis호텔 셔틀을 30분째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고, 먼저 말을 건네고 공짜로 ibis까지 태워다 준 Holiday inn/Crowne plaza 소속 셔틀 기사분의 친절에 기분이 좋아졌다.
멕시코에 여행 간다고 하면 무조건 조심해라, 조심해라, 조심해라 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약간은 긴장했다. 하지만 좋은 분들만 만나면서 무사히 3박 4일의 몬테레이 여행을 마쳤다. 또한 몬테레이는 공항에서 시내로 접근하는 방법이 택시 밖에 없다시피 해서 그렇지, 시내에는 지하철(Metrorrey)이 있어서 관광객의 이동이 쉬운 도시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San Pedro라는 남쪽 지역인데, 멕시코 최고의 부촌이라는 그곳까지는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예전 7호선 개통되기 전 서울 청담동과도 비슷한 이미지? 몬테레이에 사는 친구가 '몬테레이의 청담동'이라며 그쪽에 한 번 데려가긴 했는데, 어두워진 뒤 다녀와서 별 감흥은 없었다. 아무튼 밤의 그곳 분위기를 봐서는, 몬테레이는 놀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각 역을 상징하는 로고가 있는 것이 독특한 몬테레이의 지하철, 지상 구간도 있다. 시내 버스를 한 번 타는 요금은 12페소(약 880원)인데 비해,
지하철 한 번 타는 데는 어딜 가든지 4.5페소(약 330원)으로 저렴하다. 4번 탈 수 있는 티켓을 구입하면 16페소(약 1175원)로 더 저렴해지기에, 4회 이용이 가능한 티켓을 샀다. 지하철역 입구의 기계에 동전을 넣고 구입할 수 있다.

더 안전하고, 더 편하고, 더 빠르다고 써 있다. 심지어 더 싸기까지 한 지하철. 시내버스도 한 번 타봤는데 운전이 거칠었다.
우리나라 지하철과 다른 점은 탈 때만 이 표를 기계에 넣으면 된다는 점. 개찰구에 넣었다가 이 표가 다시 튀어나오면(4회용 재사용 패스이므로) 가지고 타면 된다. 지하철을 내려서 역 밖으로 나올 때는 turnstile을 밀고 그냥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4회권을 샀으니, 이 표를 가지고 다니다가 이런 방식으로 3번 더 탈 수 있다. 환승도 할 수 있다던데 환승을 시도해보려던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시내에 못 나가, 지하철 1호선은 못 타본 게 아쉽다. 2월의 몬테레이는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더운 날도 있지만 비가 오면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춥기도 했다. 비가 오면 이 곳은 배수 시설이 별로라서 길에 발목까지 물이 넘친다. 




난 과감히 맨발에 '쓰레빠'를 신고 길을 나섰는데, 길 한 번 건너려면 계속 물 속에 발을 풍덩풍덩 담가야 하는 상황에서 내 선택은 탁월했다고 봤는데, 현지 분들은 내가 추워보였는지 계속 내 발만 쳐다보더라는....

내가 지하철 2호선을 탑승한 곳은 몬테레이 북쪽의 아나우악(Anahuac)역. 지상구간이다.
 
색감이 뛰어난 멕시코의 지하철. 우리나라에선 잘 쓰지 않는 원색으로 역을 꾸미는데 어쩜 이리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지 신기.
몬테레이에 거주하는 한인분 중에도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고 하면, "어머, 괜찮아요?" "성추행 있다던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고 갈 때 자리를 양보 받거나, 남학생들이 오히려 몸이 닿지 않게 물러나려고 하는 느낌을 받으며(나, 불가촉천민?) 안전하게 여행했다. 물론 이 이틀 간의 경험으로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이다. 어디에서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2호선의 남쪽 종점이자 시내 중심과 바로 통해있는 헤네랄 I. 사라고사역에 도착. 역시 강렬한 색깔. 출구로 나가는 벽 전체 모두가 온통 꽃분홍(?) 인 것이 이색적. 사실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나가서, 여러 출구 앞에서 당황했지만 그냥 왠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길 이름이 붙은 출구 아무데로나 나가서 마끄로쁠라사(Macroplaza)를 향해 길을 건넜다.




역 밖으로 나가고 나서 곧 찍은 사진들. 평일 수요일 오후인 것 치고도 한적한 시내. 이 광장 주변에는 공연장이나 공공 도서관도 있었다.
천천히 광장을 걷다 보니 저 건너편에 Palacio de Gobierno(Palace of Government)가 보이기 시작.


Aqui Contamos tu Historia, 여기에 당신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곳.


 
무료 관람 가능. 원래 역사박물관에 먼저 가서 40페소(약 3천원)을 주고 입장권을 구입하면 스티커를 하나 옷에 붙이라고 하는데, 그 스티커로 이 곳까지 포함해서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쩌다 Palacio de Gobierno에 먼저 가게 되어서 이 곳에서 그냥 자체 입장 스티커를 하나 받았다.




스페인에는 안 가봤지만, 괜히 스페인풍(?)의 건물 느낌.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았다. 내부의 안내인들을 모두 친절하게 갈 곳을 알려주었고, 대부분이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지 궁금해했다. 대답은 늘 "Un poquito." 게이트 넘버 작은 숫자도 못 알아들었으면서 뭘 쪼금 한다고.
이곳을 나와서 길을 좀 더 걸어 역사 박물관 도착. 20주년을 맞이한 역사 박물관과 좀 더 현대적인 MUNE(MUseo del NorEste, 북동지역 박물관)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몬테레이가 멕시코 북동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MUNE라는 이름을 붙인 듯.
역사 박물관은 뭐 역사 박물관, 멕시코 고대 유물의 전시.
나는 사실 박물관에는 눈이 뜨이지 못 했고, 아직까지는 옛 유럽 회화 미술관에서만 기분 좋은 사람인지라 역사 박물관은 대충 둘러봄.
그래도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조용히 둘러보기에는 너무 좋았던 역사박물관.
MUNE는 좀 더 현대적인 느낌으로 멕시코 북동쪽 지역의 발전 과정을 설명해놓은 곳.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교육 장소인 듯 했다.

메히꼬~ 에서 온 까를로스가 떼낄라를 마시면서 솜브레로 쓰고 춤추고 마약하는(?) 모습만 상상하는 사람이라면
멕시코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받았을 곳, 잘 정리된 이 곳 박물관들.

 
위에 서 있는 붉은 기둥은 Faro Del Comercio 라고 하는 몬테레이의 랜드마크. 무역의 등대? 쯤 되는 이름. 산업의 역군??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에서 팝콘이나 팔찌를 사면서 천천히 걸어내려와 지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MARCO(Museo de ARte COntemporaneo de monterrey)에 입장. 수요일은 무료. 여기도 스티커 하나를 주고 붙이고 다니라고 함. 역시 원색들의 대비가 아름다운 곳.


뉴욕 MOMA와도 비슷한 현대 미술관이라는 이곳에서 나를 잡아끈 것은 오히려 기타 연주회.
길거리 공연에 절대 혹하지 않는데, 노랑 분홍 파랑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넓은 공간에서 울리는 기타 연주가 이상하게 내 맘을 붙잡아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혼자 앉아있는데, 갑자기 귀엽게 생긴 멕시코 청년이 다가와 자신은 MARCO의 발전을 위해 조사하는 사람이라며 빠르고 정확한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곳의 어떤 점이 가장 좋냐? 현대 미술에 관심 있냐? 이 미술관의 최고 장점은 뭘까?
내 영어 실력이 밀린다. 그는 이 MARCO에 상당히 자주 오는데 이렇게 연주 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난 운이 좋았네. 이 청년은, 미국과 멕시코를 동시 방문한 이번 여행 기간 중 나에게 가장 긴 시간 동안 영어로 말할 기회를 제공하곤 총총히 사라졌다. 오히려 미국에선 영어 길게 말할 일이 없던데...ㅋㅋ.


도시 한가운데 널찍한 휴식 공간과 남다른 문화 예술 공간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멕시코의 도시,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수상하고, 작년의 알폰소 쿠아론에 이어 멕시코 출신의 감독상 2연패, 역시 멕시코 출신 엠마누엘 루베스키가 이 감독들과 함께 촬영상 2년 연속 수상을 달성한 게 그냥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시각적 문화 유산이 특별히 빼어난 곳이고, 몇몇 현대 음악들도 내가 상당히 좋아해서 CD까지 구입한 것들이 몇 개 있다.

멕시코..하면 위험해, 조심해, 모두에게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나는 사실 처음부터 편견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본 뒤에는 더더욱 그 문화, 역사, 예술의 탁월함에 눈길이 갈 듯 하다.
물론 나 역시 수박 겉할기로 이 도시를 짧은 시간 스쳐지나간 여행자에 불과할 것이다.
어느 도시에나 우아한 곳과 어두운 곳이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한 조각만을 내 추억 속에 남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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