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챔피언 job interview :)

윔블던 챔피언 job interview :)



나는 면접에 상당히 약한 편이다.
나를 잘 포장해서 내 이미지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열정과 성의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과도하게 솔직하게 답하는 것도 오히려 단점.

(오래 전에 4인 면접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입사했는데 복사만 시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내 앞의 두 명이 연속으로 "복사를 하다가도 그 종이를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다들 하기에, '나는 솔직함으로 승부해야지' 하고는 "예전에도 의외로 복사만 많이 하는 직장에 있어봤는데 이제는 하기 싫다."라고 대답했음. 당연히 탈락)

내가 면접에 약하다 보니, '대체 몇 분에서 몇십 분으로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 그렇게 고되게 심층 면접으로 뽑아놔도 회사에는 ㄸㄹo만 널렸는데..'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2015 윔블던에서는 재미있는 영상을 남기기 위해 "윔블던 챔피언" 자리를 두고 가상 Job interviews를 진행했다.
본인의 이름이나 직업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챔피언에 합당한지, 본인의 약점이 무엇인지 등등...실제로 취직 면접과 비슷한 질문을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 몇 분 사이에 선수들 성격이 다 보인다. 
윔블던 챔피언이 뽑는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지만, 실제로 job interview라면 뽑고 싶은 사람, 뽑으면 안 될 사람이 나뉜다.
물론 여기엔 영어가 모국어인 선수와 모국어가 아닌 선수 간 표현력 차이라는 어쩔 수 없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열정' 하나는 실제로 스며나오는 것 같다.

가장 감탄한 사람은 서리나 윌리엄스.
영어가 모국어라 원래 수십 분도 떠들 수 있는 사람이니, 사실 비영어권 선수에 비해 비교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긴 하다. 대기록를 향해 가는, 현재 그 누구보다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수이지만 거드름 피우지 않고 이 상황극에 완전히 몰입해, 정말 이 직업을 원하는 사람처럼 얼마나 열심히 대답을 하는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 남앞에서 자기를 낮추며 구직 인터뷰하는 경험이 없었을 것 같은데, 영화를 많이 봤는지 구직 인터뷰의 모범 답안을 성의있게, 길게 대답한다. 
역시 진정한 챔피언이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색전증이었나... 힘든 병을 앓으며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 병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와 여자 테니스계를 무시무시하게 지배하는 그녀의 힘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데에서 나오는 거구나, 하고 느낌. 
약간 당황스러운 사람은 마리아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미모만으로도 이룰 것은 다 이루고... 테니스 랭킹이 내려가도 소득은 언제나 1위이고.
그냥 놀고 먹어도 아쉬울 게 없는 그녀가 악바리처럼 근성으로 버티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해내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서는 '아공....테니스대회 홍보팀에서 이런 것좀 안 했으면, 왜 이런 걸 맨날 카메라 앞에서 시키는지..' 이런 태도가 스며나온다.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 서기는 했지만 대답도 대충대충 성의 없다. 질문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무성의. 무엇보다 질문자를 자기 아래로 보는 태도.
질문하는 사람을 존중했으면 그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않았겠지.
구직자가 면접에 임하는 태도가 1분 만에라도 다 스며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뽑고 싶은 사람과 뽑기 싫은 사람이 쉽게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왜 인터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는지도 알 만했다.

'열정과 야망'이 가장 크게 스며나오는 사람으로는 라오니치를 뽑고 싶고, 조코비치의 경우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외국어에 재능이 있어서 여러 언어를 상당히  잘 구사하는 사람인데, 이 인터뷰는 너무 진지하게 임해서 별로 재미없었다. 페더러의 인터뷰는 그의 푸근한 인성이 배어나오는 게 좋았다.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요?"
"음.....나, 늙었죠." 
페더러는 자신에 대한 3가지 키워드는 easy-going, fun, good to be around 라고 소개.


영어 실력이 그래도 좋아진 줄 알았던 나달은, 인터뷰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3가지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함;;;
자신을 앤드루 머리라고 진지하게 소개하신 이 분은, 자신의 3가지 키워드를 이렇게 들었음.


http://www.wimbledon.com/

 


댓글 2
  • l-----a
    머리의 저런 종류의 자학인터뷰,,, 인상이 깊어서인지 생각보다 자주 본 듯 한데
    지루한 플레이를 보다가도, 참 싫어하기 힘든 점인 듯 해요 ㅎㅎㅎ
    내 안의 루저 본능을 일깨운다고나 할까, 동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공감대라고나 할까.
    별 말이 다 떠오르네요^^
    서리나는 언제나 모범생입니다^^
    2015/07/10 15:45
     
  • nothingmatters
    ㅎㅎ 다 공감이 가네요. 앤디는 앤디식의 유머가 있죠. 혹시 영상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거 3단어 말하고도 자랑스러워서(?) 사알짝 뒤에 웃잖아요 ㅋㅋㅋ 스스로 즐기는 듯. 작년에 투어 파이널즈에서 페더러한테 0-6, 1-6으로 깨지고 탈락했다가 나중에 결승전에서 페더러 부상 기권 탓으로, 이벤트 경기 하러 대신 불려나와서는"제가 그때 너무 괴롭혀서 페더러가 이렇게 됐나요?"했던 게 앤디 식 유머의 백미인 듯 해요 ㅋㅋ
    2015/07/1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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