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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찾기 길찾기



6년 전 런던에 갔을 때,
체류 마지막날 무슨 이유였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귀국 항공권 날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현지 심카드를 넣은, 영국 번호를 가진 폰이 있었지만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전화로 비행기표 연장을 하기에는 뭔가 자신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일본항공(당시 이용했던) 런던 지사 주소를 찾아, 일요일 오후에 무턱대고 찾아나섰다.

하지만 내가 런던 생활상을 너무 몰랐던 거지.
나름 시내 중심부였지만 일요일 오후, 진짜 쥐새끼(?) 한 마리 없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일본항공 지사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문 연 카페조차 한 군데도 없었다. 구식 노키아폰과 와이파이만 가능한 아이패드를 가진 나는, 아무도 없는 거리 한복판에 우두커니 남겨지게 되었다.

이를 어쩐다...



다행히 쥐새끼 대신에 비둘기 친구들은 있었다.


그동안 카페를 다니면서 와이파이를 연결했기에, 문 닫은 카페 근처로 가 보았다. 영업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다행으로 와이파이는 연결할 수 있었다. 거기서 프랑스에 사는 친구와 메신저로 급히 연락이 되어 갑자기 프랑스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고, 일본항공 지사에 전화해 겨우겨우 항공권을 연장했다. 일본 억양이 강한 그 직원과는... 우리끼리 잘 통하는 아시아인만의 감성 영어로 통화했다. 


텅 빈 일요일 런던의 길바닥에 앉아서 문 닫은 카페의 와이파이를 얻어쓰며 항공권 연장을 했던 경험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지만, 그 위치가 어딘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위 사진 속 tossed 간판에 힌트를 얻어, 지도를 검색해보니, 내가 앉았던 그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ㅎㅎㅎ
프레따멍제에서 흘러나오는 와이파이로 프랑스에 있는 친구와 메신저를 하던 그곳! 저 둥근 받침 구조를 보니 딱 생각났다. 저기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태로 가다가는 자유로운 해외 여행이 언제쯤 가능해질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다시 한 번, 길바닥에 앉아 문닫은 카페에서흘러나오는 와이파이를 받아쓰던 자유로운 여행을 꿈꿔본다.






I converted to...




Sid Waterman: "I was born into the Hebrew persuasion, but when I got older I converted to narcissism'"


우디 앨런의 영화 Scoop(2006) 중에서 우디 앨런이 직접 연기하며 하는 대사.
난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나도 저 대사와 비슷한 것 같다.



원래도 종교적이지는 않았지만, 나이 들며 점점 더 종교에 회의가 오는....
어쩌면 현재 내 종교도 narcissism인지도.









추가로, 런던 배경으로 찍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아닌데 그냥 영화를 보다가 스칼렛 조핸슨이 두어 번 마시는 콜라잔에 눈길이 갔다.
두 번 모두 얇고 긴 컵.






언젠가 런던 근처의 호텔에 갔을 때 웰컴 드링크로 뭐 마시겠냐고 해서 콜라를 부탁했는데
그때 마신 얇고 긴 컵의 그 느낌이 남아있어서 ㅎㅎ 영화 장면을 보다가 영국인들은 저렇게 얇고 긴 유리컵을 선호하는 건가...잠시 생각했다.

이상, 런던 한 번 가본 사람의 성급한 일반화.🤗







Regent street, 2014년






무슨 일인지 차량 통행을 막아놓아서, 차도로 걸어다녔는데 
그때 잠시 찍었던 영상을 오늘 제대로 보니

" Traffic free 
Sundays
in July"

"Summer 
streets"

라고 현수막에 써있다.


그런데 내가 저기 갔던 날은 6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6:50경이었는데...😶




런던, 여기가 어디?



8-9년 전
영화 'Breaking and Entering'을 보다가 캡처해놓은 남자주인공 Will의 대사. 
'if' 구문의 문법 공부(?)에도 좋은 용례 같기도 하고ㅋㅋ.
실제로 나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 영화의 배경은 런던이었는데
이 캡처 장면만 보면 런던의 랜드마크가 나와있지는 않아서
도대체 어느 지역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런던 시민이라면 저 모든 건물이 눈에 익겠지만
타국인의 눈에는 유명한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그저 템즈강 변두리 어딘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패드에 저장된 오래된 사진들을 넘겨보다가
내가 영화 속 이 위치와 거의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하지만 정확히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이 사진의 앞뒤에 찍힌 다른 사진들과 비교해서 위치를 짐작하는 정도.






이 사진을 찍은 시간과 당시 나의 동선을 비교해보니
이곳은 런던의 한가운데였다. ㅎㅎ
나의 짐작이 완전 빗나감.


사진 맨 우측에 잘려서 보이지 않는 건물은 웨스터민스터궁이고
내가 이 사진을 찍은 위치는 웨스터민스터 브리지였다.
사진 속에 보이는 다리는 램버스 브리지이고.

영화 속 장면의 경우는 골든 주빌리 브리지에서 웨스터민스터 브리지쪽을 보면서 찍은 장면인 듯 하다.


런던의 중심 중의 중심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변두리일 거라고 생각하다니 ㅎㅎㅎ
서울 동작대교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가양대교 근처인가?'라고 생각한 셈.



Croydon, 2014년









성수기 런던의 비싼 호텔 가격 때문에
시내 호스텔에서 여러 명과 방을 함께 쓰다가
혼자 지낼 저렴한 방을 찾아 런던 남부 지역의 Croydon으로 이동.

이슬람/서남아시아계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인 듯 했는데
어딘가를 다녀오다가 버스에서 잘못 내려서 한 번 고생한 것 빼고는
이곳에서의 기억은 다 좋았던 것 같다.

난생 처음 갔던 런던 시내 호스텔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있어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지만,
막상 여기 와서 혼자 누울 방이 생기니 그게 더 좋았고
새삼 더 여행길이 신났던 것 같다.


사실 여행은
계획할 때의 설렘이 더 클 뿐, 정작 도착해서는 무덤덤할 때가 많아서
여행 당시의 즐거움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그래도 가끔 
Croydon에 처음 찾아가던 2014년 7월 1일, 이상하게 그날로 돌아가보고 싶을 때가 있다.













the Shard



힘 안들이고 홍보 - the shard






2014년 여름 런던에 갔을 때, 유난히 눈에 띄던 건물.
이름이 the Shard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
2013년에 완공된 유럽연합 내에서는 최고층 건물이라고 하는데, 작년에 가봤던 이 주변은 그냥 휑한 편. 난 덜 지어진 건물인 줄 알았음.
그 높이보다, "누가 이런 평양 류경호텔 스타일 건물을 런던에 지어놨어?" 이러고는 친구와 킬킬 대며 지나간 것만 기억에 남았다.
      
상대적으로 고층건물이 적은 유럽 도시이기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the shard.
윔블던 테니스장에서도 삐죽이 솟은 삼각형이 보임.
      


15km정도 떨어진 리치몬드 파크에서도 보이는 건물.
이 건물에 Shangri-la 호텔이 들어와있는 줄은 몰랐는데, 유명 배우의 열애설로 자연스레 호텔 홍보가 되었네.
김연아의 열애설 사진 때도 사진 속 그녀가 항상 들고 다녔던 도시락 가방이 잘 팔렸다고 하던데 ㅎㅎ

이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떨어지는 부수 효과가 있으니, 다들 그렇게들 유명인사한테 협찬을 하려고 하는 건가봐.
Shangri-la는 the shard의 34층부터 52층까지 쓴다고 하니, 낮은 층 방을 배정받아도 웬만한 서울 호텔 최고층 방보다 더 높은 곳일 듯.


      



괜히 고생해서 london-eye 이런 데 올라가볼 필요도 없이, 자기 방에서 즐기는 전망.  
부럽....







     

내 걸음걸이



내 걸음걸이는 상당히 이상하다.
멀리서 봐도 남들이 나를 알아볼 만큼, 팔자걸음인 것은 팔자걸음인 것이고...
(나를 miss.8이라고 부르는 애도 있었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가야하는 사무실 앞에 검정색 유리벽이 있었다. 항상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내 모습이 그 검정색 유리에 반사되어 비치곤 했는데
내가 봐도 내 발의 움직임은 신기했다.
발이 옆으로 돌아간다고나 할까나...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내 걸음의 모양새가 어떤지 알기가 어렵고
그냥 내 멋대로 걸어다니기 때문에
걸음걸이를 고치기가 어렵다.
얼마나 이상한지도 잘 모르고...

어느 공원에서 태블릿으로 영상을 찍고 나서
들고가려고 손을 내렸는데 녹화 버튼이 잘못 눌렸다. 그래서 짧은 영상이 찍혔다.









이 영상 보면
내가 걸을 때 발이 옆으로 돌아서 앞으로 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연히 찍힌 거라, 마지막 부분 아주 빠른 순간에 휙 지나간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 걷게 되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예쁜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걸어도 멀리서 보면 다들 '저 여자 왜 저래?'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ㅎㅎㅎ




후회



나는 윔블던을 보러 런던에 갔지만
당시에 사실 더 큰 이벤트는 2014 월드컵이었다.

네덜란드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는데
내가 묵었던 숙소 주변에 펍(네덜란드 펍?!?)은 특별히 국기 장식도 해놓고 축구 중계를 시청할 손님 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기가 임박할 때마다 들썩이는 길거리 펍의 분위기가 너무 부럽긴 했지만,
나는 가난한 1인 여행객이었고, 혼자 거기 들어가 섞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신 저렴하게 다국적 응원을 즐길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당시에 닷새 정도 퐁당퐁당 호스텔에 묵었는데
1층 로비에는 TV를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경기 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곳은 응원방으로 바뀌어서 골이 터질 때마다 거기서 함성 소리가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왜 난 거기 섞일 용기가 없었을까.
사실 30여 년을 살고도 호스텔을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긴 했다.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 로비의 휴게 공간에서 누군가 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축구 중계가 있는 날, 왁자지껄한 로비를 괜시리 더 빨리 지나쳐서 내 방으로 올라오곤 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이 무서워서??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또 언제 월드컵이 진행되는 시기에 유럽에 체류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더 늙기 전에...좋은 기회였는데...

호스텔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과도 잘 섞여서 떠들썩하게 노는 사람들 부럽네.





윔블던 관람 시에 최적의 숙소 - Premier Inn Putney bridge



숙박 경험이 없는 숙소에 대한 글은 처음 써본다.ㅎㅎ
그래도 정보가 되기도 하고, 언젠가는 가겠지 하는 희망이 되기도 해서....






세 시간 정도 줄 서면 그라운드 패스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의기양양 혼자 갔던 윔블던 day 7.
사람은 정말 정말 많았고, 줄은 정말 정말 길었고
비 때문에 경기 지연까지 겹쳐서, 5시간을 줄 선 끝에 겨우 끝나가는 경기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윔블던 둘째 주가 시작하는 첫 날이었는데,
대회 초반일수록 그라운드 패스로도 볼 수 있는 좋은 경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무지 많다.
대회 후반으로 가면 많은 선수들이 탈락해서 돌아가고, 볼만한 경기는 대부분 사전 구매한 입장권이 필요하기 때문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줄어든다.


허리가 이렇게 "끊어지게"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체험했다.
영국에 다녀오고 나서야 '진작 말하지 그랬냐, 입장 패스를 구해줄 수 있었는데"라고 뒷북을 치는 지인이 두어 명 있었지만 손쉬운 패스를 얻지 않고, 그렇게 허리 끊어지게 기다려본 경험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저 길바닥에서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5시간 동안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신기했고, 길거리에 무질서한 쓰레기 하나 보지 못했던 진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체력상 한 번 해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경험.


윔블던을 보러간다고 하면 런던 튜브 녹색 디스트릭트 라인 윔블던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southfields' 역에서 내려서 가는 것이 더 수월하다. 하지만 그 거리도 무시 못 할 거리이고, 5시간 죽치고 기다렸다가 경기 보고 돌아오던 첫 날은 사우스필즈역까지 가는 길을 걷다가 주저 앉고 싶었을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런던에 유학 중이던 친구의 조언으로 디스트릭트 라인 'Earl's court'역 주변에 숙소를 얻었더니, 튜브로는 15분 만에 사우스필즈역에  도착하긴 했지만 나중엔 그것마저 멀게 느껴졌다.


윔블던을 지나 얼스코트로 향하는 디스트릭트 라인을 타고 가다가 사우스필즈에서 런던 중심부 쪽으로 가는 두번째 정류장인 퍼트니 브리지역에 정차했을 때 호텔이 하나 보였다.
'와, 저 호텔 윔블던 가기 편하겠다.'






담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Premier Inn이다. 구글 지도에 의하면 역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



지하철 역에서도 가깝고 저 숙소라면 엄청 편하겠다 싶었다.
지금 조사해보니 튜브뿐만 아니라, 버스로 윔블던에 접근하기에도 최적의 장소.
호텔 나와서 1분 거리도 되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Clapham Junction 행 39번 버스를 타면 20분 내에 윔블던 파크 줄 서는 곳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다. (정류장 이름 woodspring road stop B) 사우스필즈역에서 내려서 윔블던 파크까지 걷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이미 입장권을 소지하고 있어서 줄 서서 그라운드 패스를 살 필요가 없다면 Church road에서 내리면 된다.


돌아올 때도 윔블턴 테니스장에서 나와서 사우스필즈역 방향으로 걷다가 중간에 Bathgate road(E)라는 이름의 정류장에서 퍼트니 브리지행 39번 버스를 타면 숙소 바로 앞에서 내려준다. 정말 관람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프리미어 인 윔블던 남부 지점이 하나 있지만 윔블던 테니스 코트가 가까운 것은 아니다. 또한 너무 윔블던 근처에 숙박을 하게 되면 런던 중심부와는 멀어진다.
퍼트니 브리지 지점이 윔블던 근처보다 더 좋은 이유는, 런던 시내 접근이 훨씬 쉽고(zone 2이기는 하지만) 주위는 부촌이라 안전한 편이고 템즈 강변의 수려한 경관도 누릴 수 있어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Fulham FC의 craven cottage 구장도 근처에 있다.

방도 넓은 편이라고 하고, 예약 가격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체적인 숙박객의 평도 아주 좋다.

오직 윔블던 관람을 위해 런던에 방문하면서, 그래도 런던 시내 관광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Premier inn putney bridge가 최적의 장소! 물론 그래서 윔블던 기간에는 예약하기 아주 어렵다 ㅎㅎ

언젠가는 한 번.... :)




2014, London의 첫 인상.




최악의 traffic으로 악명높은 공항이라지만, Heathrow 공항이 좋은 이유는 착륙 전에 런던 시내를 '말그대로 bird's eye view'로 볼 수 있어서다.


뉴욕, 도쿄, 파리 등등 가봤지만 세계 대도시 중에서도 유독 런던에서는
그 착륙 방향 때문인지 고개를 들면 비행 중인 항공기가 언제나 몇 대씩 보인다. 게다가 항공기들의 그 엄청난 밀집 때문에 착륙 시간이 밀려서 런던 상공을 몇 차례나 빙빙 돌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탄 비행기가 뱅뱅 돌던 항로가 나타나던 기내 모니터 화면과 런던 시내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 아무도 나의 행동에 관심이 없을 탠데, 왜 기내에서 사진 찍으면 촌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겐 첫 방문 유럽 도시여서 그랬는지, 동화같다고 느껴지던 그 런던 풍경을 하늘에서 보다가 비가 흩뿌리는 히스로 공항에 착륙. 비행기 안에서 '음, 여기서 다 봤으니 시간이 안 되면 런던 여행 못 하더라도 괜찮겠군.'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윔블던 관람을 위해 급하게 계획한 런던행이었는데, 금요일 도착과 토요일 도착 중에 망설이다가 그렇게 토요일 오후에 런던에 도착.
나중에 알았는데, 그 비 때문에 센터코트를 제외한 윔블던 테니스 경기는 모두 중단되었다고 한다. 금요일 도착했으면 토요일에 윔블던에 갔을 테고, 비만 맞고 경기는 못 보고 왔겠구나 싶어, 나중에 토요일에 도착하길 잘 했다고 위안했다. ㅎㅎ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는 영국 입국 심사는 수월하게 통과. 너 왜 왔니? 윔블던 보러. 너 표 있어? 아니 그라운드 패스 살 거야. 끝.
그래도 심사관을 만나기 전까지 한 시간 넘게 줄 선 뒤에야 공항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날씨는 개었고
씨티은행에서 돈 뽑으러 피카딜리 서커스에 왔다가
고개를 돌린 순간, 아 여기가 정말 런던이구나. 하고 찍은 런던의 첫 사진.


나중에 정보 조사를 통해 알았다.
저 동상은 Duke of York의 뒷모습이고
하늘에서도 보았던, 유니언잭이 휘날리는 저 탑은 Victoria tower, 웨스트민스터궁의 일부이다.


다른 각도





6월,
윔블던이 다가오니
또 런던에 가고 싶넹 :)


역시 영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

 


2년 전 여름 유럽 여행의 수확은 이런저런 게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
근래 몇 년간 동남아 여행 다닐 때 생각보다 영어를 원하는 대로 말하지 못해서, 내가 영어를 굉장히 못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영국에서는 내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호텔 프론트 데스크 직원한테, 그리고 윔블던에서 줄 서다가 만난 캐나다 사람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니?" 대신에 "너 영국에 사니?"라는 질문을 들은 건 신기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영어는 나에겐 언제까지나 외국어라는 것을 일깨웠던 사건이 있었으니...








런던 남부에서 하루 머무른 뒤, 런던 남부를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지하철역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내가 '여행자'의 상징같은 배낭을 매고, 두리번거리면서 이 교통수단에 올라탔을 때부터 나를 예의주시하던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자리에 앉고 싶었던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자리가 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동시에 그 할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과 함께, '이 트램은 이 역까지만 운행하는 트램이며, 너는 일단 여기서 내려서 다음 트램을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셨다. 심지어, 지나가던 어떤 회사원 같은 사람도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

알고 보니, 아까부터 방송에서 쉴새없이 흘러나오던 말들은 바로 이것에 대한 안내였다.  이 할아버지께 괜히 '저 그렇게 영어 못 알아듣지 않아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못 알아들은 것이 사실인데 뭐.
"나 영어 웬만큼 해"라는 자존심이 여지없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토익 L/C를 만점 받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의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게 바로 영어였다. 모국어는 온 신경을 다 쏟지 않아도 다 들린다. 하지만 영어는 어디까지나 나에겐 외국어였다.






런던을 떠난지도 한참 시간이 흐른 오늘, 주의 집중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듣기 뿐만 아니라 읽기도 안 되는 외국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런던 도착 다음날 아침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려고 하니, 위에 쿠폰이 눈에 들어왔다. 6장만 모으면 무료 음료~~? 런던에 일주일 이상 있을 거니까, 머무르는 동안 무료 음료 한 잔 받아마실 수 있겠군.

하지만 의의로 맥모닝의 맥머핀 메뉴는 너무 느끼했으며, 매일매일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 메뉴를 샌드위치로 바꾸면서 쿠폰을 6장이나 모으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내가 떠나기 전, 런던에서 공부중인 대학 동기에 이 쿠폰을 너다섯 장쯤 모아서 건네주고 왔었다. 
갑자기 이 쿠폰이 생각나서 대학 동기에게 음료 받아마셨냐고 물어보니, 쿠폰을 모으는 게 아니라 스티커를 모으는 거라서 내 쿠폰은 소용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뜨아아...
지금 와서 이 사진을 다시 뜯어보니 정확히 스티커를 모으라고 써 있었다. 저 종이를 뜯어서 모으는 게 아니라, 저 종이를 뜯으면 그게 로열티카드가 되어 거기에 스티커를 받아서 붙여야 하는 거였다. 이 역시 한글로 써 있었으면 몰랐을 리가 없는 사실인데 역시 영어는 외국어였다. 난 회화보다는 '읽기'를 잘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주의를 기울여 읽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외국어인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나에게 좀 더 겸손해지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래도 어느 날엔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어떤 외국어가 자연스레 접수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Dover

 
 
Jane Eyre 를 오랜 만에 다시 읽다 보니, Mr.로체스터가 제인에게 구혼을 한 뒤
파리,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니스, 비엔나를 같이 여행하자고 권유하는 말이 나온다.

잠깐  '아니 그 시절에 어떻게 영국에서 유럽 본토를 쉽게 다녔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21세기에 사는 나도 영국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갔었다.
'아, 19세기에도 할 수 있었겠구나.'







 
 
당시 바캉스 시즌의 대혼잡 때문에 장장 11시간 반이 소요된 고생길 여행이 됐지만
(런던 -> 파리 이동인데, 인천공항에서 파리로 날아가는 것과 같은 시간 소요)
결국은 추억과 경험이 되었다.









영국에서 배를 타고 유럽 본토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
사실 대륙으로 건너가는 시간 중에 바다 위에서 배가 운행하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1시간 15분 정도.
땅에서 대기했던 시간 때문에 내 여행이 길어진 것일 뿐.
 
 
 
 
"I need not sell my soul to buy bliss. I have an inward treasure, born with me, which can keep me alive if all extraneous delights should be withheld; or offered only at a price I cannot afford to give."
 
- Jane Eyre Vol 2, Chapter 4


Exibition road, London





Exibition road, London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들.
시간 여유가 없어서 이 사진 속 Victoria & Albert museum을 들어가보진 못 했다.
사실 이 시간은 개장 전인 아침이기도 했고.




윔블던 챔피언 job interview :)

윔블던 챔피언 job interview :)



나는 면접에 상당히 약한 편이다.
나를 잘 포장해서 내 이미지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열정과 성의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과도하게 솔직하게 답하는 것도 오히려 단점.

(오래 전에 4인 면접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입사했는데 복사만 시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내 앞의 두 명이 연속으로 "복사를 하다가도 그 종이를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다들 하기에, '나는 솔직함으로 승부해야지' 하고는 "예전에도 의외로 복사만 많이 하는 직장에 있어봤는데 이제는 하기 싫다."라고 대답했음. 당연히 탈락)

내가 면접에 약하다 보니, '대체 몇 분에서 몇십 분으로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 그렇게 고되게 심층 면접으로 뽑아놔도 회사에는 ㄸㄹo만 널렸는데..'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2015 윔블던에서는 재미있는 영상을 남기기 위해 "윔블던 챔피언" 자리를 두고 가상 Job interviews를 진행했다.
본인의 이름이나 직업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챔피언에 합당한지, 본인의 약점이 무엇인지 등등...실제로 취직 면접과 비슷한 질문을 선수들에게 자연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 몇 분 사이에 선수들 성격이 다 보인다. 
윔블던 챔피언이 뽑는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지만, 실제로 job interview라면 뽑고 싶은 사람, 뽑으면 안 될 사람이 나뉜다.
물론 여기엔 영어가 모국어인 선수와 모국어가 아닌 선수 간 표현력 차이라는 어쩔 수 없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열정' 하나는 실제로 스며나오는 것 같다.

가장 감탄한 사람은 서리나 윌리엄스.
영어가 모국어라 원래 수십 분도 떠들 수 있는 사람이니, 사실 비영어권 선수에 비해 비교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긴 하다. 대기록를 향해 가는, 현재 그 누구보다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수이지만 거드름 피우지 않고 이 상황극에 완전히 몰입해, 정말 이 직업을 원하는 사람처럼 얼마나 열심히 대답을 하는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 남앞에서 자기를 낮추며 구직 인터뷰하는 경험이 없었을 것 같은데, 영화를 많이 봤는지 구직 인터뷰의 모범 답안을 성의있게, 길게 대답한다. 
역시 진정한 챔피언이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색전증이었나... 힘든 병을 앓으며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 병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와 여자 테니스계를 무시무시하게 지배하는 그녀의 힘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데에서 나오는 거구나, 하고 느낌. 
약간 당황스러운 사람은 마리아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미모만으로도 이룰 것은 다 이루고... 테니스 랭킹이 내려가도 소득은 언제나 1위이고.
그냥 놀고 먹어도 아쉬울 게 없는 그녀가 악바리처럼 근성으로 버티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해내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서는 '아공....테니스대회 홍보팀에서 이런 것좀 안 했으면, 왜 이런 걸 맨날 카메라 앞에서 시키는지..' 이런 태도가 스며나온다.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 서기는 했지만 대답도 대충대충 성의 없다. 질문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무성의. 무엇보다 질문자를 자기 아래로 보는 태도.
질문하는 사람을 존중했으면 그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않았겠지.
구직자가 면접에 임하는 태도가 1분 만에라도 다 스며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뽑고 싶은 사람과 뽑기 싫은 사람이 쉽게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왜 인터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는지도 알 만했다.

'열정과 야망'이 가장 크게 스며나오는 사람으로는 라오니치를 뽑고 싶고, 조코비치의 경우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외국어에 재능이 있어서 여러 언어를 상당히  잘 구사하는 사람인데, 이 인터뷰는 너무 진지하게 임해서 별로 재미없었다. 페더러의 인터뷰는 그의 푸근한 인성이 배어나오는 게 좋았다.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요?"
"음.....나, 늙었죠." 
페더러는 자신에 대한 3가지 키워드는 easy-going, fun, good to be around 라고 소개.


영어 실력이 그래도 좋아진 줄 알았던 나달은, 인터뷰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3가지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함;;;
자신을 앤드루 머리라고 진지하게 소개하신 이 분은, 자신의 3가지 키워드를 이렇게 들었음.


http://www.wimbledon.com/

 


댓글 2
  • l-----a
    머리의 저런 종류의 자학인터뷰,,, 인상이 깊어서인지 생각보다 자주 본 듯 한데
    지루한 플레이를 보다가도, 참 싫어하기 힘든 점인 듯 해요 ㅎㅎㅎ
    내 안의 루저 본능을 일깨운다고나 할까, 동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공감대라고나 할까.
    별 말이 다 떠오르네요^^
    서리나는 언제나 모범생입니다^^
    2015/07/10 15:45
     
  • nothingmatters
    ㅎㅎ 다 공감이 가네요. 앤디는 앤디식의 유머가 있죠. 혹시 영상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거 3단어 말하고도 자랑스러워서(?) 사알짝 뒤에 웃잖아요 ㅋㅋㅋ 스스로 즐기는 듯. 작년에 투어 파이널즈에서 페더러한테 0-6, 1-6으로 깨지고 탈락했다가 나중에 결승전에서 페더러 부상 기권 탓으로, 이벤트 경기 하러 대신 불려나와서는"제가 그때 너무 괴롭혀서 페더러가 이렇게 됐나요?"했던 게 앤디 식 유머의 백미인 듯 해요 ㅋㅋ
    2015/07/10 19:50
     

리치몬드 파크에서의 나홀로 허세


런던 근처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는 리치몬드 파크. 지도를 보면 거의 Heathrow공항만한 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런던 거주자 및 여행자 각각에게서 추천을 받았는데, 실제로도 좋은 곳이었다. 물론 번잡한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7월 초. 리치몬드 근처 브렌트퍼드에 숙소를 잡고, 숙소에서 나와 65번 버스를 탔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여기쯤이면 리치몬드 파크랑 가장 가깝겠지?" 하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가 내리고자 하는 지점을 지나쳐 버스가 출발해버렸다. 소심한 나는 세워달라고 말도 못 하고, 그대로 한 정거장을 더 갔다. 이럴 때면 왜그리 유난히도 정류장 간 거리가 긴지 모르겠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씩씩하게 혼자 고풍스런 영국 주택가를 걸었다. 정말 인적이 드물고 적막. 그래도 '이런 동네를 걷다니...한 정거장 더 오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나에게 '리치몬드'는
영화 the hours에서 '심약해진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곳' 이라는 정보만 내 뇌 속에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리치몬드를 엄청 떠나고 싶어했었다.

주택가를 걷다보니, 실제로 왠지 the hours 영화와 어울리는 동네 같았다. 인적이 드문 동네를 혼자 걸으면서 내 아이패드에 몇 곡 들어있지 않은 음악 중 하나인 the hours OST를 켰다. 난 보통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원래는 이어폰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 다행히 이번 여행에 가지고 온 이어폰은 유용했다. 버스를 타고 지나쳐온 언덕을 걸어올라 마침내 리치몬드 파크 입구 도착.

 


통행자 수보다는 통행하는 차 수가 더 많은 곳.
계속 the hours ost를 들으면서 공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어 깊이 들어가지는 못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런던의 스카이라인.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있을까...상상하지 못 했다.
남들 대학생 때 다 해보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지는 못 했지만
남들 애 키우느라 정신 없는 나이에, 훌쩍 떠나서 런던 근처 한가한 공원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
사슴이 뛰어노는 곳에는 유난히 멈춰선 사람이 많았다. 다들 사진 찍느라고.
나중에 공원을 나오다가 "사슴은 예측 불가능한 동물이니 조심하시오"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순한 동물이 아니었구나.

공원 가운데 뜬금없이 벤치가 하나 쓸쓸하게 놓여져 있어서 그곳에 몇 분동안 별 생각없이 앉아있었다.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 안 났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 갑자기 가족들에게 무지 미안했던 것은 생각난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가족들이지만....난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살고 있다가 그냥 도망치듯 와서 이 나이에 엄마 돈을 빌려 여행이나 하고 있었다.
그냥 모든 게 무지 미안해졌다.

이제 가야겠다.
갑자기 일어서는 바람에, 내가 나름 한국에서 만들어갔던 방석(?)을 그 벤치 위에 놓고 왔다.
윔블던 관람을 위해 만들었던 방석이었는데, 방석 자체는 원래 버려야했던 비닐 등으로 만들어 안 아까웠지만 그 안에 윔블던 기념품점에서 받은 플라스틱백을 넣어놓은 게 생각났다. 윔블던 특유의 녹색과 보라의 조화가 좋아서 일부러 받아온 것이었는데....좀 아쉽네.

리치몬드 파크와 리치몬드 역은 가까이 위치한 건 아니다.
그래도 구글 지도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리치몬드역까지 무작정 걷기로 했다.

리치몬드 파크 주변은,
한국에선 한 번 지나가면 우와~ 하고 뒤돌아볼만한, 한국에선 비맞을까 눈맞을까 두려워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있을만한 고급 자동차들이 그냥 집앞에 아무렇지 않게 세워져 있는 고급주택가였다. 건물들도 다 예쁘고 한적해서 소위 '외국 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살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서울에 익숙해진 나는 일주일만에 심심해지겠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
직장에선 중견 사원으로, 가정에선 대부분 두 아이의 엄마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 시점에
모든 것을 놓고 한가하게 보냈던 하루.
이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이것이 언제 다시 가능할까.


이번 여행에서...
여행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은 여행지의 풍경이나 여행에서 만나는 특이한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돈 쓰는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즉, '돈 버는 고달픔'에서 벗어난다는 것.
여행지 - 그곳이 좋은 게 아니라 "그곳에서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좋은 것.
여행지의 아름다움은 별 상관이 없다.
결국은 쇼핑할 때 느끼는 즐거움과 더 상관이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7대 절경' 앞 매표소에 표 팔고 있는 아가씨는 서울에서 지하철 한 번 타보는 게 소원일 수 있다.
그저 나의 매일매일의 의무감에서 벗어나는 곳이 바로 최고의 관광지.
굽실거리지 않을 자유. 책임감에 시달리지 않을 자유.
그냥 그것을 찾아서 멀리 떠나는 것.

여행을 떠나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평등하다. 내가 그 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진심에 없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의 환심을 사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돈 쓰는 즐거움' 이게 여행의 본질이었다.

남의 돈을 빌려 여행을 떠난 나는 내내 불편했다.
그런데도 떳떳하게 내가 번 돈으로 휴가를 떠나기 위해 1년에 360일을 희생할 용기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깨달았다.
이렇게 자유롭게 도피하기 위해서도 돈이 얼마나 필요했던지...

대체 어떻게 돈 벌고 살아야할까.

파리까지 11시간 반, 비행기가 아닌 유로라인 여행기






런던에 도착한 둘째날.
시내로 가던 빅토리아행 C1 버스 안에서 "다음 정차는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이라는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창밖을 보니 다들 어디 이민이라도 가려는지, 보따리 장사라도 하려는지, 산더미만한 짐을 지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무슨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기는 버스 터미널'임을 티내려고 일부러 과하게 설정한 엑스트라들처럼 모두 그렇게 짐이 많았다. 그래서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은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로부터 8일 뒤, 나도 그 사람들 무리에 끼게 되었다. 그들만큼 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절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
실현이 되든, 안 되든 '유럽 여행은 한 번에 한 나라씩만 천천히'가 목표인 나에게
다들 '거기까지 간 김에 더 돌아보고 와라'며 난리.

그런 말 무시하고 런던 일정만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던 차에 모종의 계기가 생기고, 파리 근처에 사는 친구도 흔쾌히 응해주어 그녀의 집에 가기로 결심.
당시에 내게 영국 파운드화가 한국돈 가치로 약 17만원 정도 남아 있었는데
비행기표 연장 수수료 5만원, 파리까지 가는 버스비 12만원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영국 돈 남겨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없고, 파리에서는 숙박비 없이 여행 경비 정도만 들테니 반가운 친구를 만나고 가자는 생각이었던 것.

영국에 놀러왔다가 몇달을 그냥 눌러앉아 살았던 경험이 있던 한 친구가 추천해준 megabus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시간대가 너무 늦어 Heathrow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www.nationalexpress.com을 검색(또는 http://www.eurolines.com/en/). 런던 시내를 지나가는 길에 몇 번 보았던 이 버스를 내가 타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광고하는 대로 "파리까지 최저가 24파운드!"(편도)에 예약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만은 실제로 클릭하다보면 이것저것이 붙으면서 최종 70.4파운드에 유로라인 버스 왕복편을 예약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카드 수수료까지 포함한 최종 승인가를 보니 12만 4천 850원. 8시간 동안 버스를 탄다고 해도 뭐 이 정도에 왕복이면 싼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서 출발하니, 외곽 공항까지 갈 필요도 없고.

여행 계획을 짤 때, 런던의 마지막 밤 숙소를 가장 처음 예약하며 꽤나 신경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 버스 여정 정신없이 예약하고,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티켓 출력에 고생하고, 빅토리아 스테이션에서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느라 잠도 자는둥 마는둥 하고 숙소를 나와야 했다. 이때부터 배낭여행객끼리 소통 통로가 따로 있어서 서로 숙소를 교환하고 이런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날이야 말로 그냥 싸구려 유스호스텔에서 자도 문제가 없던 날이었는데... 갑작스런 파리 여행을 예측을 못해, 숙소비를 꽤나 지출했다.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런던 숙소를 나와 빅토리아행 C1 버스를 기다렸다. 이 버스는 2층버스가 아니었는데, 내가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기 전에 작은 버스가 하나 지나간 것으로 보아, 이 C1 버스를 한 대 놓친 것 같았다. 운행 간격이 길어서 C1 버스를 기다리며 약간 조급해졌다. 

'그냥 지하철을 탈 걸 그랬나? 아냐, 이미 너무 많이 기다렸어. 지금 지하철로 다시 가면 죽도 밥도 안돼. 비행기도 아니고 버스니까 8시 전에만 도착하면 타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가 결국 C1버스가 왔고,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7:40am경에 도착했다. 파리행 유로라인 버스의 체크인 장소는 터미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여기서 한 번 여권을 보여줄 뿐 출국심사는 없고, 프랑스에 도착해도 입국 심사는 없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아저씨가 보딩 패스를 내줄 때 (나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빨리~ 빨리~" 라는 한국말을 들었다. 내가 너무 유유자적 도착했나 보다. 사실 버스를 타고 보니, 뭐 7:55am에 도착해도 8시 출발 버스를 타는 데는 별 문제는 없어보였지만.

보딩패스를 받고도 '엥? 다 똑같이 생긴 버스 중에 뭘 타라는 말인감?' 하고 있는 나에게 '니 표에 써 있는 P가 저 버스 앞에도 써 있다.' 라고 직원이 가르쳐줌.ㅎㅎ 그러고 보니 버스 앞에 P라는 큰 글자가 붙어있었다.



버스 앞에는 기사 아저씨가 서 계셨는데, "여기 버스 좌석 아무 데나 앉는 건가요?"라고 물어보니 알아듣지 못 할 대답을 하신다. '프랑스 사람인가봐'라고 생각.

자리는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으나 대충 널찍하고 편하고 중간에 화장실도 있다. 버스에 가장 늦게 탄 편인 내 자리 두 칸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화장실과 가까워서였을 수도 있을 듯.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그렇진 않았다. 버스는 거의 정각에 출발. 런던 시내를 빠져나가 끝없는 평지를 달렸다. 가도가도 계속 되는 거의 똑같은 장면.




영화에서 보던 영국의 초원이로군. 가끔 양들이 풀 뜯는 것도 본 것 같다.
런던에서 버스 예약 과정을 도와준 대학 동기가 유로라인 버스는 버스를 배에 싣고 도버 해협을 건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탄 이 버스는 2시간을 달려 Euro Tunnel의 어떤 toll gate? 국경 심사대??의 긴 줄 앞에 도착했다. '오, 배로 안 가고 유로터널 직접 통과하나 보다. 일찍 가겠는데?'
그러나 이 긴 줄을 통과하는 것은 상당히 오래 걸렸고, 1시간 이상이 그냥 지나갔다. 그래도 "35분 뒤면 프랑스"라는 표지판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소비한 이 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이 버스는 "Exit"로 곧장 빠져나갔다. 엥? 이게 뭐여?
그 뒤로 몇 분간 이 버스는 "To London"이라는 이정표가 이끄는 대로 길을 달렸다. 으아? 나 런던으로 다시 가는 거야?
내가 제대로 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의 앉은 키가 커졌다. 저마다 목을 빼고 대체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던 중, 겨우 익숙한 지명이 나왔다. "Dover"



런던을 출발한지 4시간 넘어서야 겨우 배가 보이는 항구 앞에 버스는 줄을 서게 되었다.
이 버스 여행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은 버스가 대기 줄에 자리를 제대로 잡자마자 버스를 버리고 어디론가 튀어나갔다. 근처의 카페나 쉴 곳으로 가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 남은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버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출입국 심사를 하러 나간다든가 그런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같은 홀로  초보자는, 내가 이 버스를 떠나면 다시 버스를 못 찾을까봐 소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 소심한 자리 지킴이 2시간이 넘어갈 줄은 몰랐다ㅠ.ㅠ 무료 와이파이 제공을 약속했던 런던 마지막 숙소에서 하필이면 그날따라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이 버스의 여정에 대해 검색해볼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던 나는 얼마나 시간이 지체된 것인지를 몰랐다.

나는 그때 이 버스가 금방 바다를 건너가면 파리까지는 얼마 안 걸리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유로라인 버스가 도착하는 파리 Gallieni역에서 16;45분에 만나기로 되어있었던 친구에게 "나 도버에 도착했어, 버스 타고 바다를 건넌다, 이따봐" 라는 문자를 날렸다. 친구도 배로 도버해협을 건너는 건 굉장한 경험이라며 곧 보자는 답이 왔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내가 '지금 도버야'라며 문자를 보내고 있었던 시간은 사실상 이미 프랑스쪽 깔레 항구쪽에 접근해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12시경부터 항구에서 대기한 이 버스는 오후 1:50이 되어서야 배에 오르게 되었고, 와글와글 사람들이 커다란 배의 객실로 모두 옮겨간 후 2:15pm이 되어서야 도버 항구를 떠났다.


내가 타 본 배 중 가장 큰 배였던 이 배.
배 안에 면세점도 있고, 푸드코트도 있고, 여러 방향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배 안에 환전소도 있었고, 수수료가 없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환율도 좋아보였고... 나는 우리나라 은행처럼 내가 준 돈의 가치만큼은 환전해주는 줄 알고, 순진하게 파리 시내 환전소에 20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35,000원)를 들이밀었다가 좋지 않은 환율과 함께 수수료 다 떼고 20파운드가 20.05유로(약 27,000원)가 되어 나오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배 안에 게시된 환율표로는 적어도 23유로는 받을 수 있었을 듯 ㅠ.ㅠ 
 




시간에 쫓기지만 앉았다면 정말 좋은 여행이 되었을 것 같은데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2시간 앞으로 임박했는데도 바다 위에 떠있었던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로밍을 하지 않고, 옛날에 쓰던 노키아 폰에 영국의 SIM card를 끼워서 선불 요금 영국 번호로 파리의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잔액이 너무 조금 남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계속 "나 지금 일정이 뒤처진 것 같아. 너 그렇게 일찍 나 마중나올 필요없어."라고 문자를 보내고 있었지만, 친구의 답이 없어 더 초조했다.
수학여행단을 태운 이 배는 학생들의 설렘으로 시끌시끌했고, 나의 초조한 마음과 함께 이 훌륭한 풍경의 배 여행을 제대로 못 즐겨서 지금까지도 아쉽다.
 

마침내 건너편 프랑스쪽 항구가 보이기 시작하니, 이 소심한 초보 여행자는 또 내 버스를 못 탈까 노심초사하며 버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앞에서 대기했다.
에효...만약에 다음에 또 하면 대범하게(?) 더 잘할 수 있으려나...

배가 도버해협을 건너는 시간은 1시간 15분 정도. 3시 반이 되어서야 프랑스 Calais 항구에 도착. 하지만 버스와 모든 자동차들에 사람들이 타고 싣고 내리고 하는 시간이 엄청 걸린다.
친구와 4시 45분에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은 이미 물건너 갔다. 항구에 와서 '이제 여기부터 프랑스이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이미 4시 반이었다.

Calais에서 Paris까지는 평소에도 3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거리. 게다가 이곳은 이제 바캉스 시즌 시작. 나중에서야 이 버스에도 대강의 예상시간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4시면 이미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어야할 시간인데 그 시간에 칼레항구에 있었으니....쩝
프랑스에 접근하니 문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다행히 영국의 모바일도 프랑스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 받는 통화도 돈을 내야 하고, 약간 요금이 더 올라가긴 했지만.
일찍 나와서 나를 기다린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이제 유럽생활 4년 이상을 넘긴 친구는 유럽에선 흔한 일이라며 아들 유모차를 끌고 4시간을 기다려줬다.ㅠㅠ 런던을 떠날 때 좋았던 날씨는 프랑스로 접어들면서 흐려졌고, 파리 근처로 오면서 비가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나 늦었는데, 이 버스는 중간에 어딘가 멈춰 쉬기까지 한다.
기사 아저씨: " cinco minutos! cinco minutos!" (5분만! 5분만!)
엥? 스페인어?
그제서야 버스 내부를 보니, 출구에 sortie(프랑스어)도 아닌 SALIDA, 스페인어가 써있는 게 보였다.

런던과 파리 간 운행하는 버스에 스페인 기사님?? 나는 이 스페인 아저씨가 휴가철 이 구간에 급히 파견되어 유로터널에 가서 줄섰다가, 도버항구로 갔다가 우왕좌왕 4시간 늦어버리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의심일 뿐 전말은 아직도 모른다 ㅠ

다른 이들의 경험담을 보니, 버스를 운반하는 기차에 실려 터널을 통과하는 경로도 있기는 있던데, 확실한 경로 하나를 택했어야 하는데 두 곳을 모두 왔다갔다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추측.

아무튼,
친구가 아무리 '나는 괜찮으니 너는 너의 여행을 즐겨라'라는 문자를 보내와도 너무 미안해서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아서 사진도 안 찍고 영상 하나만 남겼다. 프랑스쪽에 건너와서도 거의 똑같이 생긴 들판을 계속 달려갔다. 영국과의 차이점은 들판을 달리다보면 교회가 중심인 마을이 하나 나오고, 또 들판을 달리다가 보면 다시 작은 교회가 하나 보이고 이런 식이었다는 거?




들판을 달리다가 파리에 가까워 오니 조금씩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ACCOR 호텔 계열인 ibis나 mercure가 한 건물을 두 호텔로 사이좋게 나눠쓰고 있는 건 본 적 있는데 어딘가를 지나치다 보니, 거의 모든 accor 브랜드의 간판을 다 달고 있는 신기한 건물이 보여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는데 금방 지나쳐갔다.
파리는 처음이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달려가는데,
오후 8시 반을 넘겨서 친구의 전화가 왔다. "지금 도착한 버스 아니니?"
"아냐 ㅠㅠ 아직 달리고 있어. 넘 미안해."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어딘가 실내로 쑥 들어가더니 사람들이 짐을 챙겨 내리기 시작했다. 진짜 도착한 것이었다.

두리번 거리는데 유모차 뒤에서 웃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파리시간으로 오전 9시에 런던을 출발해 오후 8시 35분 도착.
꼬박 11시간 반이 소요된 파리행 버스.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간 것과 동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흠흠.

처음에 영국 들판 달리고, 푸른 바다를 볼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는데.
이른 오후에 도착해서 파리를 조금이나마 둘러보려고 하던 계획은 좌절. 그냥 나에게는 다음날 하루의 파리 여행만이 남았다.




어쨌든, 유로라인 버스는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런던으로 돌아가기에 시간이 확실히 보장되는 교통수단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어 나는 눈물을 머금고 유로스타(기차)를 예매해야했다.
하루 전 요금으로 예약하니, 뭐 이건... 4인 가족이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썼다는 금액을 나 혼자서 내고 2시간 반짜리 유로스타를 타게 되었다.ㅠㅠ

게다가 한 번 사용을 개시한 유로라인 버스 왕복표의 남은 복귀편은, 타지 않더라도 환불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아 6만원에 가까운 런던 복귀 버스 요금도 그대로 날렸다. 이때도 누군가 이 버스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배낭여행객끼리 어떻게 거래라도 하고 싶었는데 불가능했다. 다른 분들의 경험담을 보면 영국 -> 프랑스로 갈 때도 여권을 다 걷어갔다...이런 이야기도 있었는데 나의 경우는 출입국 심사가 없었기 때문에 표를 양도해도 된다고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국 돌아갈 때는 영국 입국 심사가 좀 더 까다로울테니, 내 이름이 써져있는 표의 양도는 불가능했겠지, 아마.

여러 가지를 배운 파리 여행.
11시간 반을 달려가 더 값진 경험이었다고 위로 중.
대부분 한국여행객들은 이 유로라인 버스를 야간 이동에 이용하시는 것 같고, 야간에는 문제 없이 8시간 정도 걸리는 듯 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이렇게 돈이 깨질 줄 알았으면 차라리 호탕하게 (저가항공도 아니고) 에어프랑스나 브리티시 에어라인 표를 질렀어도 비슷한 요금과 함께 마일리지라도 남았을 거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고,
그냥 다음날 파리에서 한밤중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런던에 새벽에 도착했더라도, 9am - 6pm 동안만 방을 제공하는 호텔도 있어서 유로스타보다는 더 저렴한 요금으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호텔에서 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언제나 인생의 +와 -의 합은 결국엔 0이라는 내 믿음.
어이없이 돈을 많이 쓴 거 같아도,
분명히 어디선가 보상이 있으리라 믿는다.
파리에서 4시간이나 나를 기다려주고
마지막 떠나는 나에게 김밥을 싸줘, 유로스타에서 김밥 먹는 체험을 하게 해준 친구에게 정말 너무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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