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




어떤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 길냥이를 우연히 데려와서 키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 묘연이 있나봐요.' '묘연이 있는 것이니, 잘 키워보세요.' 같은 댓글이 달린다.

나 역시 사람 사이의 연이 아닌 고양이와의 연이니, '묘연'일거라 쉽게 생각했는데. 단어를 찾아보니 인연에서 '인'은 사람 人을 쓰지 않는다.
因緣이더라.


한 달 전 결혼식을 해서 이제 우리 가족이 된 '올케'(아직 어색한 명칭이지만)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웠었다. 내 남동생이 처음 그녀를 소개할 때 한 말이"누나와 공통점도 있어. 얘도 고양이 키워."라고 했었다.

올케가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 다녀오고, 독립해서 새 집에 입주하고...한 달 넘게 떨어져있다가 친정에 가보니 그 고양이가 옆에서 부비적대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고양이식 반가움....나도 안다.


2010년에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집에서 약 열흘 간 신세질 때, 알고 지냈던(?) 고양이가 있다. 2009년 11월말까지 11개월간 고양이와 함께 살았을 때 나는 절대 고양이를 침대에 들여놓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처음에는 그 일본 고양이와 거리를 유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식의 그 좁은 아파트에 살다보니, 열흘이 막바지로 향할 때쯤 그 고양이는 나와 등을 맞대고 자는 사이가 되었다.


고양이는 오랜 만에 만난 주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도쿄에 살던 친구는 당시에 수의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친구였고, 어릴 때부터 부단히 많은 생물을 키워왔다. 그 친구도 한국 집에 방문할 때면 혹시나...기대를 품지만 고양이는 개 정도의 기억력은 없다고 한다.


2013년 10월, 3년 만에 제주도에서 그 일본 태생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그 고양이는 유난히 부비적대며 내 주위를 왔다갔다 했다. 나는 그 고양이가 날 반가워한다는 느낌이 왔다. 고양이가 '어라? 너 살아있었냐?' 하며 주위를 뱅뱅 도는 느낌. 하지만 내 친구는 부정. 기억하는 게 아닐 거라고 단칼에 말했지만, 나에겐 왠지 모를 느낌이 있었다.



고양이의 반가움 표시....이것들을 생각하니
단 한 마리 나의 고양이,"탐"군이 생각난다.


인생을 별로 되돌려보고 싶지 않지만
딱 한 순간...
2009년 9월, 2주간 서울에서 휴가를 마치고 스리랑카로 돌아갔을 때 혼자 집에서 기다렸던 우리 고양이가 나를 어떻게 반겼는지...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만나고 싶다.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난다. 내 친구가 가끔 가서 밥을 주고 가곤 했다지만, 그걸로는 만족을 못 했는지 쥐를 잡아먹고 난리를 쳐놓았던 우리 식'탐'이. 서울에 있는 동안 꿈에도 나왔던 탐.


2주 만의 상봉 순간은 기억 안나고. 며칠 뒤 엄마와 언니가 스리랑카에 도착해서 침실에서 셋이 다 같이 자려고 하는데 유난히 계속 야옹거리던 생각은 난다.

"왜 저렇게 자꾸 울어?"
"니가 오래 자리 비워서 반가워서 그런가 보다."

제자 집에 고양이를 맡겨두고 귀국했는데, 제자는 더 이상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미안하다.
다시 2009년 9월 그 순간으로 돌아가 꼬옥 안아주고 싶다.

이제 행방이 묘연한 나의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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