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 Millennium Hilton Seoul




가을의 절정은 살짝 지나갔지만
단풍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남산을 향해 열려있는 힐튼 서울.
다행히 예상보다도 더 위치가 좋은 방을 배정받아서 실컷 가을 산을 보고 왔다.
다른 층에는 스위트룸이 있는 바로 그 위치의 룸이니, 호텔을 대표하는 전망을 가진 방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스위트라 해도 코트야드 판교처럼 일부 스위트를 삭막한 옆건물 창문만 봐야하는 자리에 그냥 배치하는 호텔도 있긴 하다)

내 돈 주고 하는 걸로는 힐튼 계열 첫 방문인데도 방문 목적에 걸맞는 방에 머무르게 되어 호감도가 올라감. 방 배정 운이 호텔 인상을 결정한다는 걸 다시 느낌.

자주 지나다니던 남산 근처였지만, 침대에 누워도 한 눈 가득 남산이 들어오는 1박을 보내고 나니 새삼 호텔에 숙박하는 일은 "다른 공간/시간을 빌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사로 지나치던 곳이라도 새로운 각도, 새로운 높이에서 그 도시를 만나게 되는.
또한 호텔 급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이런 것도 준비해놨어" 하는 것과 만나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힐튼 서울의 가장 큰 무기는 남산 그 자체인 듯.





코로나로 인해, 특급 호텔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1983년에 세워진 힐튼 서울도 드디어 매각이 결정되었다. 서울역 방향 뒷편 정원 등 사실상 놀고 있는 땅이 많아서 개발업자라면 다른 야심이 생길 자리이기에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을 것이라고 한다 - "부지만 보면 허용 용적률 600% 중 350%만 써서 호텔을 지었기 때문에 철거하고 600%를 다 채우면 엄청난 이익이 생긴다는 셈법이지요." - 힐튼 서울을 설계한 김종성 건축가의 인터뷰 중에서.

그래서 더 이상 이런 각도로는 남산 단풍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엄마를 꼬셔서 같이 다녀왔다. "인생은 짧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오늘을 살자!" 같은, 활력이 있어보이면서도 동시에 인생 포기한 듯한 말과 함께.😜

하지만 내년 연말까지는 영업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언젠가 다른 계절에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하다. 
 
아주 오랜만에 수영장/대형 홀/4개 이상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제대로 된 5성 호텔에 왔는데, 방도 기본 34m²여서 비교적 공간이 넉넉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오래 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2015년에 리노베이션된 설비가 아주 나쁘지는 않다. (리노베이션 시기는 방 위치나 층에 따라 다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창밖만 보아도 휴양의 느낌.



사진보다 실제로는 산이 더 가까이 보임 😲



침대도 편안해서, 조식을 먹고 와서 다시 사르르 잠들었는데 눈 떠보니 두 시간여가 지난 11시. 그대로 체크아웃 준비를 해야했다. 자주 쉬러 오고 싶지만 힐튼 서울의 가장 큰 단점은 세금과 서비스 차지가 두 번++ 붙어서 가격대가 좀 올라간다는 것이다. 💸 한국의 힐튼 계열 중에서는 이곳과 힐튼 경주만 그렇다.

단풍철 +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부 서울 호텔로 눈을 돌린 탓에 만실에 가까운 엄청난 인파 속에, 대체적으로는 직원들의 세련된 친절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종종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직원도 만날 수 있었다. 




호텔의 오래된 세월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보통 화장실이지만 잘 관리되어있고, 수건이 다른 호텔에 비해 망가짐(?!)이 적고 깨끗하고 하얀 편인 것이 인상적. 내 방에 사용한지 얼마 안 된 수건만 우연히 배치되었을 수도 있지만, 외국계 체인 호텔인데도 끝부분이 너덜너덜하고 회색빛이 된 수건😣을 계속 사용하는 곳도 의외로 있어서 놀랐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힐튼 서울은 오래된 수건은 미련없이 버리나 보다.

호텔 화장실 특유의 집같은 아늑함보다는, 회사에 있는 공중화장실 느낌나는 색감과 재질 선택이 단점이긴 하다. 미국 욕실처럼 욕조 외에는 물빠짐이 없게 되어 있으므로 물바다 안 만들기 위해서는 샤워할 때 커튼을 욕조 안에 넣고 샤워하는 것이 좋다. 





새벽의 서울.
역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풍경.
이 하늘색이 아름다워, 한국 시간 새벽 5시쯤 되어야 그날의 핵심 경기가 시작하는 US open 시기에 다시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하늘을 보면서 경기 관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남산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그만큼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도보로는 약간 접근이 어려운 단점이 있고
지어진 지 오래 된 호텔이라 지하주차장을 완비하지 못해, 본인 차를 이용한다고 해도 별도 건물에 있는 주차장 이동이 애매하다고 한다.  

내가 머무른 방은 코너룸이라 전망/개방감이 매우 좋았지만 바로 위층이 스위트인 게 단점이었다. 안그래도 우리집에서도 이웃이 가끔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녀 또각또각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호텔까지 와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 놀랐다. 🤯 나중에 스위트룸 사진을 보니, 스위트룸은 입구쪽이 카페트가 아닌 타일? 돌바닥이었는데...그래서 위층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드나들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것으로 짐작이 갔다. 흠....

층간소음을 포함해서 생각보다 방음도 엉망. 
어느집 불효(?)아기가 몇 분간 계속 울어대서 모처럼 호텔에 쉬러왔을 그의 엄마 아빠를 애타게 하고 있었다. 갓난아기같은 아주 어린 아기가 우는 소리였다. 밤새 내내 울까봐 매우 걱정했지만 다행히 자정을 전후해 몇 분쯤 울더니 더이상 아기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외에도 간헐적으로 여기저기 웃고 떠드는 다른 방의 소리가 들려서 이 호텔이 지닌 가치가 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더이상 방음 보강 리노베이션을 할 일도 없고, 이젠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지는 호텔이 되겠지.



내년말까지 영업한다면...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제 진짜 마지막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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