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톈진에 갔을 때 못해서 아쉬웠던 것.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고속철 타고 이동하기.
오래 전 톈진에 잠시 살았을 때는 기차를 타고 두 시간 걸려서 베이징에 갔었던 듯 한데, 고속철을 타면 33분 만에 베이징에 도착하고 가격은 54.5위엔으로 만원이 안 되는 요금이다. 그냥 마실 다녀오듯 다녀올 수 있었던 베이징.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꼭 한 번 이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션전 시내 중심 -> 홍콩 이동이 14분 밖에 안 걸린다고 해서 더 끌렸다. 가격은 68위엔 (약 ₩12000). 중국 국경에서 지하철로 홍콩섬까지 가면 ₩8500 정도지만 시간은 70분 가까이 걸린다. 고속철을 타면 금액 차에 비해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14분'이라는 숫자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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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에 중국 신분증이 확인된 중국인들은 간편하게 앱에서 예매를 하고 티켓 없이 신분증 스캔으로 탑승하지만, 외국인은 그렇게 하기엔 약간의 장벽이 있어서 대부분 수수료가 추가되는 trip.com같은 데서 구입한다. 중국 철도 영어 버전 사이트( https://www.12306.cn/en/index.html )에서는 외국인도 여권 번호 등록하고 외국 카드로 기차표 구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은 기차역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다음날 타고 갈 고속철 승차장 위치도 미리 알아둘 겸, 전날에 직접 福田역에 가서 발권을 했다. 다행히 福田역은 서울역과 비슷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었고, 한정된 기차만 오고 가기 때문에 규모가 굉장히 큰 역은 아니었다. 다른 관광지에 다녀오는 길에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하니 매표소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직원은 아무도 없고 텅 비어 있다.
🫠😔
호텔에 돌아갈 시간을 할애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요즘 다들 앱을 쓰니 창구 발권이 필요없어 일찍 퇴근한 건가? 하지만 아직 기차편이 운행을 하는데??
그래도 이동 동선 봐두려고 주위를 얼쩡거리는 사이 직원이 어디선가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종이에 날짜와 시간, 기차 편명 등등을 적어서 여권과 함께 내미니 직원이 내 정보를 하나하나 입력한다. 중국은 기차탈 때 "실명"이 매우 중요함.
내 정보가 입력되는 화면 창이 밖으로도 크게 노출되어 있어서 외부 사람에게 다 보임. 😬
그 전날에 福田지하철역 창구에서 한국 카드앱의 유니온페이 큐알코드로 교통카드를 문제없이 구입했기 때문에 같은 앱 화면을 자신있게 내밀었더니 직원이 난색을 표시한다. '그게 대체 뭐야?' 매우 짜증나는 표정. 내가 처음 표를 살 때는 인적이 드물고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내 뒤에 줄 선 사람들이 하는 중국어가 들렸다. "와 이제 외국인들도 qr pay가지고 있네?" 이 정도로 이해함. 직원이 내 여권 정보를 입력하는 큰 화면이 밖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남들도 내 정보 다 보고 있음;;;;
기차역 정도면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하더니 현금 지불은 가능했다. 중국에 들어와서 현금 처음 써봄.
동전 거스름돈도 받았다. 동전 거스름돈이 생겨 왠지 기뻤다?!? 중국에서 현금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중국인들이 현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현금을 받기야 하지만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보통의 중국 상인들에게 거스름돈이 없어서 돌려받을 돈이 없어서인데, 10위엔 등 작은 단위 지폐와 동전이 있다면 나중에 현금을 딱 맞춰서 내기에 좋다.
직원이 종이 영수증 같은 것을 준 뒤에, 예전에 남들 블로그에서 많이 봤던 작은 종이표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거 필요해?" 그런 제스처. 내가 끄덕끄덕 하니까 한 장 출력해 줌. 하지만 중국 기차는 신분증으로 탑승하기 때문에 이 표는 사실상 필요가 없다. 아직도 인쇄라도 해주는 게 신기. 기념품인가?
번역기를 돌려보니 환불을 하려고 할 때만 쓸 수 있다고 써 있다.
푸톈福田기차역은 지하철 푸톈역과 연결되어 있고 3호선, 2/8호선, 11호선이 통과한다. 으악...그런데 미리 답사 차 걸어보니 왜 그렇게 멀던지. 호텔까지 약간 우회하지만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2호선을 타고 돌아가기로 했는데 2호선 승강장까지 걸어서 10분 걸림. 생각해 보니 사실 서울역도 그렇긴 하지. 이름도 같은 "서울역"이지만 기차역에서 내려서 지하철 타려면 꽤 걸어야 함.
다음날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고 나옴. 어제 답사를 해본 결과 많이 걸어야 하는 2호선은 포기하고 "푸톈역"이 없는 1호선을 타고 중간에 내려서 푸톈기차역 근처에 내려주는 버스로 갈아타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버스 시간을 조회해보니 간격이 너무 길다.
여유를 충분히 두고 기차표를 끊었기에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고, 33도 땡볕 아래에서 버스를 10분 기다려야 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 안 되겠다. 지도에서 권하는 대로 그냥 1호선 쇼핑파크역에서 내려야겠다.
역에서 내려보니, 1호선 쇼핑파크(购物公园)역은 푸톈역이라는 이름만 없을 뿐 푸톈기차역과 연결되어 있다. 지하도에서 계속 길 안내 표시가 있다. 1호선 쇼핑파크 A5 출구 쪽에서 푸톈기차역은 이름만 "푸톈역"인 2/3호선 역보다 사실상 거리가 더 가깝다. 11호선 푸톈역만 푸톈기차역과 좀 가까운 편.
저 표시를 보고 따라가면 됨.
겨우겨우 고속철역에 도착. 중국인들은 신분증 스캔하고 척척 들어가지만 외국인은 직원이 직접 여권 처리를 해줘야 해서 줄이 다르다. 짐 검사를 한 번 거치게 되는데 중국 지하철에선 음료수를 들고 타는 걸 따로 검사 받아야 하는데, 여기는 오히려 물병에 큰 관심은 없어 보였다.
중국->홍콩 고속철 이동 시에 도착 역에서 출입국 심사가 모두 이루어진다. 내 여정 같은 경우는 일단 션전에서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들어간 뒤, 홍콩 땅에서 중국 출국 심사를 하고 더 걸어가서 홍콩 입국 심사를 받는 식이다.
아까 짐 검사를 받기 전에 여권을 한 번 스캔한 것은 '역'에 입장했다는 의미일 뿐 기차를 타러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 고속철 탑승장은 출발 시간 15분 전부터만 개찰구를 통과해 내려갈 수 있고, 개찰구 통과 전에 널따란 대기 공간이 있다. 돈 내고 쓸 수 있는 안마의자.ㅎㅎ
열차 출발 시간 15분 전이 되면 개찰구가 열린다. 사람들이 갑자기 그 앞에 몰려들고 줄을 서기 시작하기 때문에 눈치껏 알 수 있다. 역시 외국인은 사람이 따로 여권을 처리해줘야 통과할 수 있는데 이 줄이 오히려 짧기 때문에 편한 점도 있다.
내부는 참 깔끔한 고속철. 여태 사진에서 봐온 다른 중국 고속철과 실내 디자인이 조금 다른데, 내부에 홍콩 MTR에서 보던 것과 같은 로고가 있는 걸로 봐서는 홍콩과의 협업이라서 그런가??
내가 이거 타보겠다고 이 고생을...여권 검사만 몇 번을 하는 거야?
표에 적힌 시간보다 2분 먼저 출발했는데 예정 시간보다 2분 늦게 홍콩에 도착함. 결과적으로는 홍콩까지 18분 걸림.
중국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홍콩 땅으로 들어온 뒤, 홍콩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홍콩 중심부까지 50분 가까이 걸리지만 단지 지루함이 있을 뿐 그게 더 과정이 단순하다.
고속철은 하차 후 다시 고난의 시작. 출국심사 줄을 서야 한다. 중국 도시에선 지하철을 탈 때도 공항마냥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바퀴 달린 가방을 검색대에 올려놓고 내려놓고 ... 그게 귀찮을 것 같아서 홍콩 호텔에 가방을 두고 션전으로 건너왔다. 계속 되는 줄서기를 하자니 숄더백을 멘 어깨가 뻐근해졌고 바퀴 달린 가방이 자꾸 생각났다. 그냥 중국에도 끌고 왔을 걸.😕
홍콩에서 중국으로 갈 때는 홍콩 땅에서 중국 입국 심사까지 마친 뒤에 기차에 탑승하게 된다. 이때 출입국 심사가 시간을 상당히 잡아먹는 데다가 그 시간에 인원이 얼마나 몰릴지 전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공항 가는 기분으로 일찍 가서 대기해야 하니,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만 짧다 뿐이지 '고속철'의 이득이 사실상 사라진다. 게다가 이미그레이션에 사람이 몰리면 기차를 놓치는 일까지 생긴다. (특히 외국인 심사 줄이 길다고 한다)
홍콩 서구룡역에 고속철이 도착하고 중국 출국 심사가 끝나기까지 20분 추가 소요됐고, 홍콩 입국 심사가 끝나기까지 5분 추가로 필요했다. 계속 짐을 들고 서 있었기에 기진맥진 했지만 "이젠 홍콩이다!" 했는데 또 앞에 무슨 개찰구가 있다. ;;;;;; 그냥 좀 내보내 줘. 한국 ktx가 그리워짐.
뭔지 몰라서 내가 위에 사진을 올려 둔 표에 있는 큐알코드를 대보니 그게 아님. 여권을 다시 꺼내어서 스캔 해보니 통과.
휴... 중국 기차 탑승은 신분증이 너무 중요함. 탑승 전부터 하차 후까지 꼭 꺼내기 편한 곳에 여권을 넣어서 들고 다니는 게 편하다. 나는 홍콩 입국 심사 후 이제 필요성이 없어진 줄 알고 가방 깊이 넣었다가 다시 꺼내느라 짜증이 올라옴.
중국과 연결된 고속철 출도착을 위해 2018년에 문을 연 서구룡역은 너무 멋진 건물이었지만 지도 앱에 정보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2020년 초 코로나와 함께 중국 국경을 닫으면서 폐쇄되어 3년이나 이용자가 전무했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걸까. 나중에 검색을 하다가 나처럼 고생한 분 후기를 보고 나만 이렇게 속은(?) 게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받음. 홍콩에 사시는 듯한 그분 후기를 안 읽었다면 나만 판단을 잘못해서 바보같이 헤맸나..하고 자괴감에 빠졌을 듯 하다.
나는 내가 홍콩에 돌아와서 묵게 될 코즈웨이베이 호텔에 짐 가방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중국으로 출발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호텔로 찾아가기만 하면 됐는데... 고속철 서구룡역에서 오스틴역으로 가서 코즈웨이베이역으로 가려하니 동선이 엄청 비효율적인 것 같아 보였다. Austin에서 Hung hom으로 가서 東鐵線을 타면 코즈웨이베이를 눈앞에 두고 애드머럴티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구나. 게다가 두 번 환승에 지하철 세 번...
그래서 서구룡역에서 도보 5분이라는 지도 안내를 믿고 구룡역으로 가서 東通線을 타고 홍콩섬 센트럴 쪽으로 한 번에 가기로 함. 홍콩역->센트럴역 사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2개 노선 타는 게 낫지, 지하철 3개 노선을 갈아탈 때마다 기다리는 것도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큰 실수였다. 지도 앱이 실제로 걸어봤을 리 없으니 단순히 건물 간 거리로만 도보 시간을 제시한 것 같은데 서구룡역->구룡역은 도보 5분으로 될 거리가 아니었다. ;;;;; citymapper 앱이 지하철역 "출구"에서 목적지까지의 도보 시간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코즈웨이베이역 같은 경우는 승강장 하차 후 A출구까지 걷는 데에도 5분이 걸린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알려주던 앱이었기에 너무 믿었다. 😭
고속철 서구룡역에서 지하철 구룡역으로 가는 방향 안내 표지판은 계속 붙어 있지만 이건 그냥 옷만 입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 산책 가는 사람들 정도? 를 위한 안내일 뿐, 짐이 많은 입출국자는 10여분간 오르락 내리락 🦮개고생을 해야 함. 흑흑. 서구룡 기차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무조건 '오스틴'역만 이용하세요.
션전 -> 홍콩 이동 시간을 고속철로 줄여보려다, 홍콩 -> 션전 이동했을 때보다 고생 끝에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저 '이제는 고속철을 이용해봤다' 라는 경험만 생겼다. 중국 본토 <-> 홍콩 구간을 시간 절약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기차를 원활히 타기 위한 대기 시간이 엄청 길다.
하지만 고달픈 이동 시간 가운데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을 만큼, 새로 개발된 서구룡역 주변은 건물도 멋지고 풍경이 멋졌다. 언젠가 서구룡쪽에 가벼운 맘으로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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