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쩌다가 이런 오묘한 숙소에!?!?
오전에 갑자기 "어쨌든 암스테르담으로 가자"고 맘을 바꿔 갑자기 짐 싸서 Villejuif의 호텔에서 뛰쳐나온 나...
그러나 4시간 뒤 결과는 다시 파리의 또다른 위성도시 정띠이Gentilly의 호스텔 캐빈룸이었다. 😁
뭐하다 이렇게 됐는지 이 날의 생각 흐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유럽에 온 김에 "못 가봤던 유럽 국가도 방문할 겸 + 인천행 마일리지 항공권 자리도 매일매일 널널하고 + 중국으로 가더라도 중국행 항공권도 더 저렴한" 암스테르담으로 일단 출발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잘 안 풀림.
그날 머물렀던 빌르쥐프 호텔이 오를리 공항에서 꽤 가까웠는데, 나는 저가 항공사가 오를리 공항에 많이 취항하는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옵션이 많지도 않았고, 짐 부치는 비용을 포함하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암스테르담행 기차표 역시 출발 임박해서 구입하는 것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여서 차라리 샤를드골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기차보다 더 저렴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대안이 7시간 정도 걸리는 flixbus였는데, '짐을 버스 아래칸에 실으면 도난 가능성이 있다' '파리의 flixbus 출발지인 Bercy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다' 등등 소문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조금 "쫄은" 상태였다.
오전에 갑자기 맘을 바꿔 호기롭게 Bercy를 향해 길을 나서긴 했으나... 시내버스에서 잘못 내리기도 했고 길도 어딘지 몰라 당황하면서 결국 Bercy 버스 승차장 위치 확인만 한 채, 또다시 '익숙한 파리' 1박 더+로 결정이 났다. 😌 내가 유럽 국가 간 이동을 버스 타고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가벼운 배낭 하나 짊어진 여행이어서 짐 걱정은 안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짐칸에 실었다가 내 가방 없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옆자리 좌석까지 구입해서 거기다가 가방을 놔?' '7시간 넘게 버스 타고 가는데 이상한 사람 앉으면 어떡해? 옆자리 비우는 옵션 선택?' 뭐 이런 자질구레한 생각을 하면서 우물쭈물 가다가 버스 표 구입 시기를 놓쳤다.
내가 놓친 버스보다 더 늦은 시간 표를 사면 암스테르담 도착 시간도 늦은 밤이 되니 불안할 것 같아서 포기. 사실 이 모든 일이 - 짐 분실, 진상 옆자리 - 비행기를 타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 비행기 탈 때는 이런 걱정 안 하면서 왜 버스 탈 때는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지...🤔 물론 유럽에서 기차 타고 이동하던 사람들의 '가방 통째 도난' 이런 경험담들이 이 걱정을 부채질하긴 했다.
다행히 버스 승차장 옆에 생각보다 조용하고 예뻤던 Bercy 공원이 있어서, 거기 벤치에 앉아서 오늘의 숙소 - jo&joe를 booking.com에서 예약함. 젊은 기운이 뿜뿜하는 도미토리 룸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Jo&Joe 역시 accor에 속해있기 때문에 몇년 전부터 위치는 알고 있었다. 저렴하게 잠만 잘 생각으로 파리 첫날 공항 도착 후 가는 숙소로 몇 번 고려하기도 했었음. 파리에 2곳이 있고 비엔나(2021년 9월 오픈), 로마(2023년 11월 오픈)에도 있다.
귀국 항공권이 없는 채로 & 6박만 미리 예약해 놓고 파리로 출국하려다가, 출국 몇 시간 전에 일단 '주거 안전 보장(?)용'으로 accor 앱을 열어 7일째 되는 날 숙박을 jo&joe에 취소 가능 요금으로 예약해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행 시작 뒤 '그냥 6박 후에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던 데다가 계속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jo&Joe 취소 가능 시한이 다가오자, 이 예약을 유지했다가 나중에 이 예약에 발목 잡혀 다른 계획을 못할까봐 그냥 취소해버렸다.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지만 너무 피곤하니 장거리 이동은 하지 말고 일단 하루 쉬자'라는 결정이 나면서 7일째에는 Villejuif의 호텔로 갔다. 다음날 Villejuif에서 기력을 회복하고 '일단 암스테르담으로!' 하며 호기롭게 길을 나섰는데 갑자기 소심해져 일이 꼬이면서 그냥 파리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파리 8일차의 숙소로 jo&joe가 다시 당첨이 됐다. (Jo&joe Gentilly지점은 accor 포인트 적립이나 회원 혜택에 참여하지 않아서, 혜택이 더 많은 booking.com 예약으로 바꿈) 첫날 숙소였던 eklo 재방문도 고려했었지만 6인실 내부에 같이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오히려 사용 제약이 많았던 기억 때문에, 작은 방을 반으로 갈라서 쓰는 - 그래도 내 개인 공간이 좀 더 보장되는 'cabin room' 이라는 형태가 있는 jo&joe로 최종 결정. 물론 이 호스텔엔 다른 호스텔과 동일한 도미토리룸도 있지만, 좀 더 편하게 쉬고 싶었다.
Bercy 쪽에서 Gentilly로 가는 길에, 여러 교통 수단이 교차하는 나름의 교통 요지로 늘 이름만 들었던 Denfert-Rochereau역(파리 14구)에 내려서 근처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파리 교통 앱에서 어딘가로 가려고 목적지를 넣으면 꼭 어디든 한 번은 환승역으로 걸려 나오던 익숙한 지명이었는데, 실제로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 식당 직원은 모두 동양인이긴 했지만 그들끼리 나누는 언어는 광동어인 걸로 짐작했다. 스시와 꼬치 구이 세트를 골랐는데 메뉴 사진에는 없었던 뜨거운 미소 수프와 🍚밥까지 나와서 쌀쌀한 날씨에 꽤나 만족했던 식사였다. 이 역에서 RER B선을 타면 jo&joe 근처 Gentilly역에는 3분 만에 도착한다.
Jo&joe 역시 그동안 내가 머무른 파리 숙소들과 비슷하게 건물 바로 앞으로 파리 시 경계선인 순환도로가 지나간다. 이런 숙소만 벌써 몇 번째야. 서울 여행 온 외국인이 숙소는 늘 판교 일산 광명 수원 등을 떠도는 모양새. 😊 길을 건너면 대학 국제 기숙사들이 있는 파리 14구, 그리고 여기는 내가 숙박하는 14번째 accor 소속 브랜드. 1️⃣4️⃣
Gentilly 역에서는 호스텔까지 도보로 3분 정도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 걷는 동안 장대비가 내려서 우산이 있어도 운동화 안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사나흘간 내리 비가 왔지만 이 정도 온 적은 없었는데... 🌧 열대 지방 스콜마냥 파리의 비도 늘 지나가는 비던데, 역 안에서 좀 더 기다려 볼 걸 그랬나봐.
Booking.com에서 예약하면 체크인할 때 도시세는 따로 호텔에서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첫날 머물렀던 eklo처럼 호스텔 기준 도시세 €2.6 외에도 jo&joe는 resort fee €0.4 부과 😑 합계€3 지불. 아니 리조트 피는 무슨....🤪 그나마 다른 파리 호텔들의 뚱~한 직원들과는 다르게 여기는 직원들이 대부분 밝고 적극적이라 용서함.
jo&joe의 'Cabin'은 큰 방 안에 나무로 벽을 세운 아주 작은 방을 몇 개 만들고 다시 그 캐빈을 윗 침대 - 아랫 침대 사람이 ㄴ/ㄱ 반으로 갈라서 쓰는 형태이다. 체크인 해준 직원이 본인이라면 위쪽 침대를 선호하지만 보통 숙박객은 아래 침대를 선호한다고 했다. 오르내리기 귀찮을 것 같아서 나도 아래쪽을 선택했다. 2019년 4월 초 오픈해서 만 5년이 된 건물이라 아직 많이 낡지는 않았다. 청소 상태는 그냥 큰 쓰레기만 제거한 정도 수준으로 보이지만, 호스텔에 큰 기대를 하면 안 됨. 아래 사진은 위쪽 침대를 쓰는 캐빈 모습이 잘 보이는 accor 공식 앱 사진. 사진에선 개방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문을 닫아 외부와 차단이 가능한 아주 좁은 5m²공간이다.
키 카드로 큰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키 카드로 열어야 하는 나만의 캐빈 문이 있는 구조이고, 서로 얼굴 볼 일도 없긴 하지만 윗 침대를 쓰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고 뒤척임도 느껴져서 도미토리 침대에 비해 딱히 큰 장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 혼자 보는 전신 거울이 있고, 내맘대로 내 짐을 살짝 펼쳐둬도 되는 공간도 있다. 물론 큰 가방 펼치는 건 불가. 침대...라기보다는 내가 직접 시트를 펼쳐 덮어야 하는 매트리스가 있는데 이게 도미토리 침대에 비해 상당히 커서, '1인으로 예약하고 두 명 들어와서 자도 아무도 모르겠네'라는 생각도 했다.😝 이 호스텔에선 수건은 기본 제공하지 않고, 돈을 내고 대여해서 써야 한다고 함. 나는 내가 가져간 내 것을 썼다.
난 정규 체크인 시간인 3시보다 아주 조금 일찍 들어와서 조용히 아래 칸에 누워있었는데, 잠시 뒤 한 미국 남자가 들어왔다. (영어 억양 때문에 미국인으로 짐작) 그는 본인도 일찍 체크인했으니 방 전체에 아직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큰 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 여기가 cell 같다고 했었던가, 아무튼 신기한 구조를 설명하면서 '내가 지금 이런 방에 있어' 라며 보여 주면서 한참 동안 영상 통화를 하는 듯 했다.😳 뭐 덕분에 나도 덜 심심했다. 서로 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인데, 저 사람은 아래 칸에 있는 나에게 통화 내용이 다 들렸다는 걸 알면 조금 머쓱할 순 있겠다.
로비 층에는 종종 공연이 열린다는 넓은 공용 공간이 있으며, 꼭대기 층엔 주방과 루프탑 공간이 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도 아주 깨끗하진 않지만 재미있는 그림들과 함께 여러 칸이 준비되어 있다. 화장실/욕실이 남녀 구분되어 있는데, 내가 있는 층에서 여자를 마주친 적이 거의 없어서 샤워실/화장실을 혼자 쓰는 기분으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썼다. 예전에 한 호스텔에서 내가 샤워하러 들어갈 땐 아무도 없어서 한참 기분좋게 샤워하다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도끼눈을😠 하고 줄 서 있는 서너 명과 눈을 마주쳐 당황했던 경험과는 반대. 여긴 늘 아무도 없네!?!
건물 전체가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아기자기 꾸며져 있고, 공용 공간이나 안마당/뒤뜰의 설계에 주력해 뭔가 "외향성" 인간들의 천국처럼 만들어져 있다. 😎 그래도 난 매우 조용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주말에는 1층에서 공연/파티 등으로 시끄러웠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내가 숙박한 날은 금요일이었지만 5층 내 방은 조용. 오자마자 시끄럽게 통화하던 위층 미국인(?)도 밤에 조금 뒤척이긴 했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나가버려 더 조용해짐. 어차피 정규 체크아웃 시간이 10시로 빠른 편이라 나도 곧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체크아웃이 11시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호스텔 후기를 보면 종종 단체로 놀러온 혈기왕성 유럽 청년들의 쌩난리로 힘겨워 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는데, 나는 2014년에 평생 처음 가본 호스텔인 런던 호스텔에서만 그 야단법석을 경험해 봤고 (새벽에 저멀리 복도 어딘가에서 한 아저씨가 성난 목소리로 "지금 몇신줄 아냐?" 소리 지르는 것도 들었음🥱) 다행히 그 뒤로는 늘 쥐죽은 듯 고요한 호스텔 방에만 머무르게 됐다. 뭔가 코로나 이전/이후 차이일 것 같기도 하고.
파리 체류가 하루 추가되면서 그동안 시간이 안 맞아 못 만났던 친구도 이날 만나 수다 떨며 저녁도 먹고, 친구가 유용한 간식 거리도 사줬다. 이를 어떻게 갚을지만 고민일 뿐.
얼렁뚱땅 더해진 파리의 하루, 우유부단함으로 인한 시간 낭비, 돈 낭비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 그동안 안 가봤던 파리의 동쪽 지역 Bercy에도 가보고 여러 콘서트와 파리올림픽 농구 경기 등이 열리는 accor Arena 위치도 파악.
- 못 만나고 귀국할 뻔 했던 친구 만남.
- 빵•과자류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서 프랑스에 와도 별로 맛을 못 보고 가는데, 친구가 사준 덕택에 정통 꺄늘레 맛을 알게 됨. 이날 친구 못 만났으면 난 여전히 안 먹고 살았을 듯
'마꺄홍'은 프랑스에서도 비쌌지만, 이 꺄늘레는 작은 거 하나 몇백원 - 큰 거 1000원 정도.
- 여태 가 본 곳 중에 가장 특이한 느낌의 호스텔 1박. 여기를 경험하고 나니, 나중에 로마나 비엔나에 갈 일이 생겨도 믿고 예약할 수 있는 (유럽 치고) 저렴하고 좋은 숙소 브랜드를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파리에서 비를 맞아가며 하루를 더 버틴(?) 덕분에 다음다음날 암스테르담 반나절 여행한 날에는 새파란 하늘을 보게 됨🌞 내가 이날 급하게 뛰쳐 나와 문제 없이 그대로 암스테르담으로 갔다면 그 다음날은 날씨가 흐린 날이어서 내 머리 속엔 암스테르담이 회색 도시로 기억될 뻔 했다.
대신, 축축한 날씨였는데 생각보다 캐빈 룸이 매우 건조했는지 다음날 간질간질 칼칼한 목을🗣 얻게 되는데....
* 장점
- 외향성인 사람에게 최적의 숙소, 1층에서 콘서트나 파티가 열리기도 하며 공용 공간이 잘 준비되어 있다.
- 시내 외곽에 있어서 나비고 1주일권 등이 아니라면 교통비 추가 가능성이 있으나 RER B역에서 꽤 가깝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 나쁘지 않다.
* 단점
- 체크아웃 시간이 10시로 이른 편.
- 2019년 오픈해서 서서히 낡아가고 있으나 시설 유지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닌 듯함.
- 캐빈룸 형태는 한여름에 이용하기에는 꽤 답답하고 더울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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