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2삽질.



'포인트/마일리지가 이끄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포인트 또는 마일리지가 사용 가능한 곳으로 목적지가 정해지는 것.
호텔 포인트를 쓰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고? 
누군가는 이해를 못하겠지만, 사실 내가 그 '누군가'들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음. 
하는 사람은 한다.

7월 27일에 만료되는 Marriott 포인트가 있는데, 서울에서는 요만큼의 포인트를 쓸 곳이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서울 호텔 숙박료가 너무 올라버림. 특히 여름 휴가 성수기가 가까워 오면서 서울/근교엔 자투리 포인트로는 무료 숙박이 가능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톈진으로 눈을 돌리니 같은 포인트로 2박이 가능하네?? 👀 마침 비행기표 가격도 제주 왕복 정도라서, 내 행선지는 4개월 만에 "다시" 톈진으로 정해졌다. 안 가본 새로운 중국 도시를 가보고픈 생각이 강했지만...다른 도시는 아무리 숙박비 저렴한 중국이라 해도, 유효 기간 임박한 얼마 안 되는 내 포인트로는 '서울 여행을 위해 동두천에 자리 잡는 느낌'의 숙박만 가능했다. 열심히 찾아보다가 포기, 너무 시내에서 먼 곳이 많았다.

호텔 규모와 쾌적하게 머물 수 있는 방 수준, 교통 편의성 등을 고려했을 때 포인트를 털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톈진이었음. 이 호텔은 kintex같은 대규모 국립종합전시장 옆에 붙어있는데, 행사가 없는 날은 수요가 전혀 없어서 포인트 대폭 할인으로 방을 채우는 것으로 짐작했다. 



天津 "国家会展中心" 전시 면적은 킨텍스의 4배 규모라고 한다.


킨텍스와 여기가 다른 점은 주위가 허허벌판임. 텐진이 나에게 가장 익숙한 도시라서, 호텔이 좀 외진 곳에 있더라도 밖에 나가기 귀찮으면 관광을 포기해도 되는 도시라는 것도 선택에 한몫함.

톈진 노보텔에서 나와서 1호선 잉커우다오역까지 didi를 탔다. 원래 난 택시를 싫어하는 데다가, 이번에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외진 동네가 목적지라서 모르는 운전기사와 택시 타고 가다가 인적이 드물어지면 '나 팔려가는 거 아닌가?' ㅋㅋ 잡념으로 더 무서울 것 같아서 1호선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기로 함. 톈진 1호선은 가장 옛날에 지어져서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역이 많다. 그래서 커다란 쇼핑몰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반드시 에스컬레이터가 있을 것 같은, 서울 명동역과도 비슷한 잉커우다오역에 가서 1호선을 탔다.


1호선이 시내 중심을 벗어나자 지상 구간도 나와서 덜 심심했다. 그랬다가 다시 지하구간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36분 만에 "国家会展中心" National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er역에 내렸다. 40분 걸린다더니 생각보다 시내 중심에서 시간 덜 걸리네? 1호선 남쪽 방향 종점에서 세 번째 역이라 열차 내 인원이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 역에 나만 내림. 

거대한 전시장을 커버하기 위함인지 매우 넓은 지하철역이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다시피 하고, 혼자서 지도를 보고 외운 대로 C출구, C 출구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니 내려오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가 차단되어 있어서 '어라?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나갈 때는 여기로 오면 안 되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방 들고 낑낑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잖아?





그러나
뭔가 심하게 잘못된 것을 느낌.
호텔이 저렇게 멀리 보일 리가 없는데...C 출구 도보 6분이라고 했어.
내가 선 자리 찍고 다시 호텔까지 거리 검색해 보니 도보 20분!?!?! 이게 아닌데???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데, 이건 그 반대다. 사진으로는 6분 만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처럼 건물이 커 보이지만 33도를 넘나드는 여름 날씨에 허허벌판에 선 나에게 저 호텔은, 훨씬 멀고 자그맣게 보였다.


인적도 드문 곳에서 정신이 아득해짐. 이게 무슨 일?
그러다가 실수를 알아차림.
이 호텔은 国家会展中心 국립 컨벤션 센터 옆에 붙어 있는 호텔이야...이 생각만 계속 하고 오다가 그 이름이 붙어 있는 역에서 내려버린 것이었다. 실제로는 그 다음역인 国瑞路 궈루이루에서 내려야 한다 





차로 2분 거리를 택시 부르긴 그렇고, 땡볕에 짐을 끌고 1.3km를 걸을 수는 없으니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야했다. 이게 무슨 삽질이람. 이럴 때면 차라리 혼자 여행하는 게 다행으로 여겨진다. 친구나 가족이랑 같이 오면 이때부터 싸우기 시작하는 거지. "니가 여기서 내려야 된다며!!" 
정말 이상했다. 이 호텔 예약했을 때부터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궈루이루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후이잔중신역에서 내렸지?? 👾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C출구로 나왔을 때 하행 에스컬레이터 막아놓은 것을 봤었는데 '호텔이 저렇게 멀다구?' 하면서 호텔 쪽으로 좀 더 걸어간 뒤에 B출구로 내려가니 거기는 하행 에스컬레이터 운행 중이었다. 짐을 내가 들고 계단을 내려가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다행, 안 그랬으면 또 내 바보짓을 원망하며 두 배로 투덜댔겠지.😝





다시 지하철 한 정거장 더 타고 와서 国瑞路역 C출구로 나오니 딱 보이는 호텔. 그래 이거 였어.
실제로 도보 5-6분 거리지만, 대로변이라 엄청나게 긴 횡단 보도를 건너야 하고, 사람이 아무 없는 길을 땡볕에 혼자서 걸으니 더 적막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바로 국가회전중심国家会展中心.
엄청 큰 전시장을 몇개씩 지어놓었지만, 한여름엔 행사가 아무 것도 없어서 썰렁했다. 

힘들게 도착했지만 사실 호텔은 엄청 마음에 들었음.
숨겨놓고 싶을 정도 ㅎㅎㅎ
나는 시내에서 지하철 타고 40여분 걸려서 왔지만 공항에서 택시 타고 오면 꽤 가까운 편이다. 이것도 좀 일산 kintex 위치랑 비슷하네.
정말 어디 가도 찾기 힘든 ... marriott 6천 포인트에 무료 숙박이 가능한 곳인데 시설 너무 좋고 널찍널찍하고 의외로 내 방에서 보이는 풍경도 평화로워 보였다.
나중에 언젠가 또 다시 도피(?)오고 싶을 정도로.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고 나갈 때는 택시 불러서 나갔다. ㅎㅎ 한 번 겪고 나니 
5분이라 해도 땡볕에 짐 끌고 혼자서 인적 드문 대로를 걷고 싶지 않았음. 

체크아웃할 때 리셉션 데스크를 보니 아래쪽까지 신경 쓴 게 보였는데, 체크인 했을 때는 이렇게 공들인 예쁜 디자인을 본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니... 내가 그때 정말 혼이 빠져 있었구나 싶다.


수평 수직 안 맞는 사진 싫어하는데 측면에서 찍었더니, 찍을 때나 보정을 할 때나 수평 수직 맞출 수가 없...




두번째 실수 아닌 실수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이 정도 외진 호텔이면 숙박객을 위한 서비스를 더 해줄 것 같아서 
내가 시내 식당에서 싸온 음식을 데워달라고 했다. 정확히는 혹시 전자레인지 있냐고 물어봄. 

직원은 내 음식을 어디론가로 가져갔고,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더니 나중에 방 번호와 내 이름을 적어 달라는 종이를 내밀었다. 영어와 중국어로 써진 종이였는데... 내용은 대충 내가 이 호텔의 기기를 사용하니 책임이 어쩌구 저쩌구 ...인 것 같았다. 
다 읽을 시간은 없어서 일단 이름을 써서 직원에게 줬다.

그 뒤로 아무 일 없었고 음식도 잘 데워서 돌려 받았지만
이런 서류를 다룰 때는 나도 분명히 사진을 찍어 두거나 해서 증거를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폰을 2개 가지고 다녀서 그때 테이블 위에 폰을 2개 다 올려놓고 있었는데, 폰 2개 있으면 뭐해🤷‍♀️ 사진도 안 찍어 두고, 번역기도 안 돌려보고... 무슨 내용인지 100% 파악도 못한 종이에 이름 적어서 넘기는데.
정말 팔려가면 어쩌려고? 😇


1일 2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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