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영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

 


2년 전 여름 유럽 여행의 수확은 이런저런 게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
근래 몇 년간 동남아 여행 다닐 때 생각보다 영어를 원하는 대로 말하지 못해서, 내가 영어를 굉장히 못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영국에서는 내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호텔 프론트 데스크 직원한테, 그리고 윔블던에서 줄 서다가 만난 캐나다 사람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니?" 대신에 "너 영국에 사니?"라는 질문을 들은 건 신기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영어는 나에겐 언제까지나 외국어라는 것을 일깨웠던 사건이 있었으니...








런던 남부에서 하루 머무른 뒤, 런던 남부를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지하철역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내가 '여행자'의 상징같은 배낭을 매고, 두리번거리면서 이 교통수단에 올라탔을 때부터 나를 예의주시하던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자리에 앉고 싶었던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자리가 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동시에 그 할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과 함께, '이 트램은 이 역까지만 운행하는 트램이며, 너는 일단 여기서 내려서 다음 트램을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셨다. 심지어, 지나가던 어떤 회사원 같은 사람도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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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아까부터 방송에서 쉴새없이 흘러나오던 말들은 바로 이것에 대한 안내였다.  이 할아버지께 괜히 '저 그렇게 영어 못 알아듣지 않아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못 알아들은 것이 사실인데 뭐.
"나 영어 웬만큼 해"라는 자존심이 여지없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토익 L/C를 만점 받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의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게 바로 영어였다. 모국어는 온 신경을 다 쏟지 않아도 다 들린다. 하지만 영어는 어디까지나 나에겐 외국어였다.






런던을 떠난지도 한참 시간이 흐른 오늘, 주의 집중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듣기 뿐만 아니라 읽기도 안 되는 외국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런던 도착 다음날 아침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려고 하니, 위에 쿠폰이 눈에 들어왔다. 6장만 모으면 무료 음료~~? 런던에 일주일 이상 있을 거니까, 머무르는 동안 무료 음료 한 잔 받아마실 수 있겠군.

하지만 의의로 맥모닝의 맥머핀 메뉴는 너무 느끼했으며, 매일매일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 메뉴를 샌드위치로 바꾸면서 쿠폰을 6장이나 모으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내가 떠나기 전, 런던에서 공부중인 대학 동기에 이 쿠폰을 너다섯 장쯤 모아서 건네주고 왔었다. 
갑자기 이 쿠폰이 생각나서 대학 동기에게 음료 받아마셨냐고 물어보니, 쿠폰을 모으는 게 아니라 스티커를 모으는 거라서 내 쿠폰은 소용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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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아...
지금 와서 이 사진을 다시 뜯어보니 정확히 스티커를 모으라고 써 있었다. 저 종이를 뜯어서 모으는 게 아니라, 저 종이를 뜯으면 그게 로열티카드가 되어 거기에 스티커를 받아서 붙여야 하는 거였다. 이 역시 한글로 써 있었으면 몰랐을 리가 없는 사실인데 역시 영어는 외국어였다. 난 회화보다는 '읽기'를 잘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주의를 기울여 읽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외국어인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나에게 좀 더 겸손해지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래도 어느 날엔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어떤 외국어가 자연스레 접수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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