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5 03:04
2012년 9월에 이론에서 벗어난 "실기"를 경험하기 위해 태국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운좋게 그 테니스 대회 전체를 관장하는 supervisor's office에 배치 받아서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오피스에서 9일간 신나게 테니스 경기만 관람하다 왔다.
한국이었다면 커피 한 잔, 복사 한 장, 자기 손으로 안 할 정도의 급은 되는 아저씨들이었지만 테니스계 supervisor들과 심판들은 대부분 유럽 사람이다 보니 남이 그 일을 해주는 것을 불편해했다. 너무 심심해서, 아니면 너무 일을 안 하는 거 같아서 커피 만들기 싫어하는 나조차 "커피를 줄까?" 하거나 복사를 도와주려할 지경이었는데.. 그러면 다들 손사레를 치곤했다. 니 일이나 하라며...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런데 솔직히 경기 끝나면 스코어 적으러 아래층 내려가는 것 외엔 '내 일'이 없었다. ㅎㅎ 그래서 맨날 경기나 보다가 왔지 뭐.
이 사무실에는 수퍼바이저 mr.S와 영국인 레프리, 이탈리아인, 아일랜드인, 이집트인, 미국인, 프랑스인 체어 엄파이어가 있었다. 다들 유머 감각이 넘치고 뜬금없이 노래 부르고, 농담하고...티비 중계에서 보던 근엄한 심판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예선 경기만 주로 심판을 보던 태국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한국 테니스 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아시안들끼리만 통하는 감성과 'asianglish'가 있어서인지 즐겁게 친분을 다질 수 있었다.
체어 엄파이어와 대회 수퍼바이저를 겸할 수 있고 그랜드 슬램 대회 결승전까지도 심판을 볼 수 있는 gold badge를 가진 심판은 전세계에 25명 정도라고 하는데, 이 태국 대회에만 그 골드 배지 심판 5명이 왔다.
이들은 전세계에 (테니스 대회는 1년에 11개월 동안 대양주,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등을 차례로 돌면서 매주 세계각지에서 열린다) 본인이 계약된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도시의 공항에 도착하면 주최측이 픽업을 나와서 특급호텔로 데려간다. 그리고 11시쯤 테니스 코트에 와서 하루에 두 게임 정도의 심판을 보고 나머지 저녁 시간을 즐긴다. 올해 은퇴한 베테랑 골드 배지 심판이 1년에 25주 정도만 심판을 본다고 3년 전에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그 정도만 일해도 가계(?)가 유지될 정도로 보수 수준도 괜찮은가 보다.
매주 거처가 바뀌는 직업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거의 최상급의 직업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돈 주고 비행기를 타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매주 세계 여러 도시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항공사 마일리지 프로그램 등급도 무지 높다. 다들 가방에 거의 항공사의 최상급 티어 태그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ㅎㅎ
암튼, 서론이 길었는데...
수퍼바이저, 심판들...다들 매주 여러 문화권의 새로운 사람을 마주쳐서인지, 다들 너무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런데, 난 학교에서 배운 영어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영어 교육도 받아보지 않았고, 타인과 능수능란하게 영어로 오래 대화하는 환경에 놓여본 적 없었기 때문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 짓고 있다는 동양인의 본분에 충실할 따름이었다. (--;) 외국인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농담따먹기 스킬이 필수 조건 중의 하나임을 알았다. 자봉들만 심심한 게 아니라, 경기 사이사이에는 심판들도 심심하기 때문에 자봉들이 그들과 놀아주는 것도 일이었다.
반경 500m(?)내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조그만 동양인이 안쓰러웠는지, 아일랜드 심판 아저씨는 지나갈 때마다 꼭 한마디라도 걸어주었다. 그 아저씨와는 그나마 대화가 잘 됐다. 그리고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유럽의 주요 언어는 모두 구사하는 것 같은 수퍼바이저 mr.S 와도 막판에는 약간이나마 친해져서 이름을 부를 정도는 됐다. 테니스대회는 보통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벌어지는데, 그전 일주일전부터 이미 방콕에 도착해있었던 나는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목요일에 하루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서 만난 레프리 할아버지는 '서양 사람들'의 인사 특성인 ...믿지 못할 "We missed you"라는 말을 하면서 반갑게 맞아줄 정도로 마지막에 갈수록 다들 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중에도 유난히 힘든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N이었다. 뭔가 불만이 있는지 늘 퉁명스러웠고, 서로 굿모닝~ 인사조차 하기 어색했다. 도저히 말을 걸 '건덕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점심 먹고 오길래, 용기를 내어 "Had a great lunch?" 했더니, "Not great, it's OK lunch." 라고 대답했다. '으이그...그냥 인삿말인데 그냥 좋았다고 하면 되는 거지, 꼭 토를 달아야 하나?'
대회 시작 전부터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친해진 태국인 스태프가 나에게 심판들 하나씩 전해주라며 심판 비상연락망을 주고 갔다. 수퍼바이저 외에는 그 연락망이 솔직히 별 필요가 없다는 걸 나조차도 알겠던데, 그래도 다들 고맙다며 그 종이쪼가리를 기쁘게 받았다. 그런데 N은 그 종이를 받고나서 툭 던져버리는게 내 뒤에서 느껴졌다. '아이고...이 아저씨 이제 포기. 친해지려는 노력 이제 그만해야지' 기본적으로는 농담하기 너무 좋아하고 웃긴 사람이었는데 (심지어는 뒷담화나 가십도 좋아하는) 나와는 나머지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다.
마지막 일요일 결승날, 비행기표 시간 상 어쩔 수 없어서 결승전을 끝까지 보지 못 하고 테니스장을 떠나야했다. "E, C, 나 지금 가...고마웠어..." 다들 즐겁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정말 상사로 모시고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일주일 내내 데면데면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인데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어서 컴퓨터를 보고 앉아있던 N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어서 mr.N...이라고 조용히 불렀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른 이들은 악수만 하고 끝났는데, 그는 의외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hug를 했다. "토너먼트 기간 동안 애썼어" 뭐 그런 말과 함께. 의외였다. 그냥 인사치레라고 해도.
친하게 지냈던 태국인 자봉 jan언니와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테니스 경기장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잘 끝났다는 안도감이나, 서울이라는 현실로 돌아가기 싫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70%정도는 요상하게도 N 때문에 눈물이 났다. 내가 마음을 더 열면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and..노력을 안 하니 당최 늘지 않는 회화 실력에 대한 자책...이런 것 때문이었다.
사실 대회 기간 내내 영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환경에 떨어지니 원하는 말이 입에서 안 나왔고...점점 적응할 줄 알았더니...설상가상 한국을 떠나고 열흘 쯤 뒤부터는 시제가 망가졌다. 머리 속에선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입에서는 모든 동사가 과거형으로 나오는 신기한 현상이.... 마지막날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면서 직원이 "너 이제 어디로 갈 거니?"라고 물었을 때 "I went to the airport"라고 답이 튀어나오는 식. 😱 제일 멋져보였던 c 아저씨가 너 퍼스트 네임이 뭐니? 라고 물어봤을 때 Hwang! 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짓도 ㅋㅋㅋ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내 소심함에 대한 스트레스, 게다가 매일 가야 하는 사무실에 왠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사람이 그동안 나를 아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닐 것 같은 느낌의 작별인사를 하자, 아마 뭔가가 탁 터졌던 거 같다.
결승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을텐데, 내가 혼자 눈이 시큰해져서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관심없었겠지 ㅎㅎ 외국인은 내 문법 따위 신경도 안 쓸텐데, 틀린 영어를 할까봐 소심하게 웃고만 있었던 나를 자책하면서...
----
또 하루, 테니스 관련해서 자괴감에 엄청 우울했던 날....
테니스 대회 취재해서 보도 자료 만드는 일을 잠시 했었는데, 2015년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아래 두 선수를 만날 일이 있었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또렷하게 찍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굴러다니던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복식 경기가 끝나고 두 선수와 인터뷰(??)를 약간 하고,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카메라 조작에 서툴렀던 나는 카메라가 갑자기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서 당황했다. 세 장을 찍어 봤는데 사진이 다 이랬다. 철제 펜스만 아주 잘 나옴.
전혀 카메라 조작을 할 줄 모르고 멀리서 찰칵찰칵 찍을 줄만 알았던 나는, 갑자기 가까운 피사체를 찍어서 그런지 초점이 맞지 않게 된 카메라 때문에 너무 당황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카메라를 조정해보겠다는 말도 못하고, 경험이 너무 없어서인지 이렇게만 사진을 찍고 우물쭈물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경기 중에 이미 찍어둔 사진으로 보도 자료는 나갔다.
이러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동안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던지.... 제대로 조정할 줄도 모르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 일이나, 그러면서도 배울 생각도 안 하고 몇 달을 버틴 거 때문에.
이 나이가 되도록 전문적으로 능숙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 때문에.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해준 글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