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proof T.T



오래 된 랩탑의 키보드에 물을 쏟아서 결국 문제가 생겼다.
너무 오래 된 재품이라, 새로 샀으면 샀지,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지금은 아이패드로 작성 중) 
맨윗줄, 소위 qwerty 자판에서 앞 4개의 기능을 잃었고 중간의 T, Y는 괜찮고 그 오른쪽옆 자판 4개도 입력이 안 된다.
26개 알파벳 중 8개만 잃었지만 대부분의 단어를 칠 수가 없다.
맨 윗줄에 E U I O, 모음이 몰려있어 단어 완성이 안 되기 때문.
어제 밤 잠시 중간줄 맨 왼쪽 A 자판도 입력이 안 되었는데 그러면 거의 모든 모음이 입력 안 되는 거라서, 키보드로서의 기능을 잃을 뻔. 지금은 그나마 A라도 눌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한글도 자음의 대부분 ㅂㅈㄷㄱ 와 ㅕㅑㅐㅔ가 안 되어서 문장을 구성할 수 없다.
그래도 컴퓨터에 가상 키보드라는 기능도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대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왜 부주의하게 물을 쏟아서 안그래도 늙어가는 이 랩탑과의 이별을 더 앞당기게 되었는지...안타깝네.
키보드 부분이 방수인 제품은 .... 이젠 있겠지?


지금 내 랩탑 키보드로 모든 요일을 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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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e





감상이 아니라 '체험'이 되는 몇몇 영화들이 있다.
그 체험의 종류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던 작품들이 '체험'으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Mar adentro, P.S. I love you, 인사이드아웃,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같은 영화들.


그중 누군가의 기일과 겹쳐, 그날밤 영화 보다가 너무 울어서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까지도 콧속 (머리 속?)에서 특유의 울고 난 뒤 코가 막혀 맹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던 영화, P.S. I love you.
다른 세 영화는 탁월한 명작이라 원래 눈물콧물 짜내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P.S. I love you는 개인 경험과 겹치면서 영화 초중반부터 질질 짜며 보게 만든 것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 '날'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울지 않으면서 봤을지도 모른다. 뭐야? 너무 뻔하잖아? 하면서...




(thumbnail이 뭐 이래.... ㅎㅎ 제라드 버틀러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임)



OST도 좋아서 당시 mp3와 친하지 않았던 나였는데도 몇 곡 구입하기까지 했었다.
위의 youtube에서 나오는 Love you 'till the end는 이 영화를 대표하는 노래인데, 사실 이 노래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너무 슬프게 부르는 버전이 있어서 그게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특히, "oh, why don't you just take me where I've never been before~" 라는 가사는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저 가사가 그냥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와닿는다.
위 가사는 사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해석해보니, 딱히 '장소'로 데려가 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난 그냥 literally 나를 끌어줄 뭔가에 이끌려, 진짜 새로운 동네에 가보고 싶네.









당황스럽게 막을 내린 2014 ATP 테니스 시즌.

2014년 11월 17일 적은 글.

이렇게 열심히 테니스 보고, 글 쓰고 하던 시절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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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투어 일정에서 첫 메이저 대회 - 호주 오픈 결승전 - 이 나달의 부상으로 입장료 아까운 경기가 되고 말았는데,
2014 한 해를 결산하는 나름 대형 대회 - 투어 파이널즈 결승전 - 마저 페더러의 기권으로 결승전이 아예 사라진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07년 정도부터 해외 테니스 중계를 보아왔는데, 매해 거의 그놈이 그놈인 결과로 끝났던 게 ATP 투어라면, 2014년이 가장 변화가 많았던 해인 듯.
평생에 걸쳐 기권이 거의 없는 페더러인데, 수많은 관중 앞에서 진통제 이야기까지 해가며 자신의 부상을 설명하고 기권을 해야 하는 기분은 어땠을지...


혼자서 2014년 대충 돌아보기.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다음에는 더 멋지게 실패하라는... 바브린카의 팔 문신.

몇 번의 실패로부터 결국 성공을 이끌어낸 호주 오픈 이후 거물급 인사가 된, 그러나 그 이후 성과는 생각보다 미미했던 스탠 바브린카.

Andrew Murray가 Andy라는 애칭을 공식적으로 쓰듯이 Stanislas도 Stan으로 쉽게 부르고 표기하도록 ATP에 요청해서, 롤랑 가로스부터 공식적으로 Stan이란 짧아진 이름으로 투어에 참가하고 있다.




나달 코치 토니 삼촌의 영어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쎈 억양을 써서,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토니 코치와 바브린카가 소통이 잘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토니 삼촌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는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를 훨씬 잘 하더라. 프랑스 방송국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 몇십 분씩 떠들 정도. 프랑스어가 더 익숙한 바브린카와는 아마 프랑스어로 대화할 듯.

더 이상 서로를 보며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이가 된 나달과 조코비치, 2014 프렌치 오픈의 결승전 상대.


2012년 결승전 사진


둘다 너무나 간절한 우승이었기 때문에 롤랑 가로스 시상식에서 결국은 둘 다 눈물을 보였다.
서로에게 너무나 큰 장벽.

나달은 이 대회 이후로 계속 컨디션 난조로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조코비치는...



새 옷 갈아입듯이 다시 태어났다.
윔블던 두 번째 우승과 함께 다시 World No.1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아쉬운 점도 몇몇 가지 있었겠지만 결국은 투어 파이널즈 우승까지 차지하며 201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내년 초까지의 전망도 가장 밝고.
2014년 호주오픈에서 바브린카에 패해 일찍 탈락한 것이 결국은 2015년 랭킹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만들어줄 듯 하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ATP 500대회도 우승해 본 적 없던 칠리치의 US open 우승. 조코비치를 5세트만에 꺾고 올라오느라 힘이 빠진 니시코리를 3세트에 비교적 쉽게 제압했다.
여태 대부분 5세트 혈전 뒤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진행되어 왔던 US open 시상식 시간을 해질녁으로 앞당겼다. 

칠리치는 US open 우승자들의 통과 의례인 미국 방송국 투어를 하며,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던져주었다.


"그까짓 메이저 이제 16번만 더 우승하면 페더러를 따라잡겠군."


흔치 않은 페더러의 기권으로 투어 파이널즈의 결승전이 사라져버린 대신에,
집에서 한가한 일요일 오후를 비디오 게임과 함께 보내고 있던 앤디 머리가 전화 한 통 받고, 순순히 이벤트 경기를 위해 O2 Arena로 나왔다.
테니스 원로들까지 이벤트 복식 매치에 합세하고.

ATP 남자 선수들의 훈훈한 매너인 듯. (뒤에서는 에이전트가 피튀기는 출전비 협상을 벌이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는 경쟁하는 관계이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같은 인터뷰도 심심치 않게 하는 WTA 여자 선수들과는 왠지 다른 ATP 선수들 분위기.ㅎㅎ


이렇게 또 한 시즌이 지나는구나.
개인적으로는 테니스와 가까워지기도, 어떤 면에서는 멀어지기도 했던 시즌.
그래도 내년엔...


글로 남겨놓지 않았다면 잊었을 이름들, 경험들 - 3



16 Nov.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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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훈련 과정 도중 여주에 있는 오순절 평화의 집에 봉사실습을 갔다.
지체장애아동 여러 명이 모여있는 곳.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이곳이 그나마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말은 한눈에 보고 믿을 수 있었다.

그날은 그 곳의 아동들이 건강검진차 X-ray를 찍으러 바깥 병원에 나가는 날이었다.

장애등급에 따라 나뉘어진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한 명씩 데리고 나와서 책임지고 버스로 이동하고 사진까지 찍은 다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하루 이런 봉사에 심한 회의가 들었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들을 감싸안고 내려간다는게, 나의 가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봉사.

내가 처음에 맡은 '대남'이라는 아이. 
안아주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내내 안고 있어야 했는데, 아마도 상체는 거의 나만하게 큰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상체가 유달리 말라서...) 나중에 팔에 근육통이 생겼을 정도로 무거운 대남이를 내려놓으면, 모든 손잡이가 달린 문을 열려고 뛰어가서 정말 불안불안했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 했던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음에 맡은 아이는 덩치가 더 컸다. 제대로 자랐으면 거의 나만했을 것 같은 미란이라는 아이. 

제대로 몸을 못 가눠서 처음에 봤을 때도 눕혀진 상태였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두 좌석을 차지하고 누운 상태로 내 무릎을 베고 갔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고 웃었다.
장난을 걸면 너무나 좋아라했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내가 내는 소리를 따라 내려 노력했다.
가식을 떨지 않기 위해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나즈막히 불러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따라하는 건지 미란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무슨 이유로 이 아이는 평생을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걸까. 

그뒤 미란이와 어린 아기들이 있는 방에 남게 되었다. 미란이는 이름을 불러주고 장난을 걸면 웃는데, 매일매일 봉사자들이 있는게 아닐 것이므로 대부분의 나날을 외롭게 있을 게 분명했다.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렇게 돌아갔으면 이날 하루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이날을 기억하게 만든 아이는 '초희'이다.

아마도 다운증후군이라 버려졌을 이 아기는 너무 작고 얌전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우유병이 들려지고 이 아기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너무나 얌전하게 우유를 잘 받아 마시던 이 아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순간 느꼈다. 아기에게는 꾸준히 눈을 맞춰줄 '모성'이 필요하구나...하고...
이렇게 꾸준히 눈을 맞춰주고, 일관성을 제공하고 애착을 제공할 상대가 없으니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매일매일 바뀌는 '엄마'는 이 아기에게 얼만큼의 안정감을 제공할까...

어디서 주워들은대로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안고 서서 방을 빙빙 돌아다녔다. 아기는 신기하게 트림을 했고 내가 계속 눈을 맞춰주니 아기가 드디어 웃는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휴..
이런 하루 봉사가 정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아기는 계속 눈맞춰줄 모성이 필요할텐데...
약간 회의적이었던 이 봉사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그날 하루를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어준 초희.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Not a But e




페이스북에 어떤 사진을 올릴까 말까 하다가 
비공개로 보류해 놓았다.


몇 시간 뒤 다시 보니, 공개로 안 하길 잘 했다.


Be....a...r??



☕️커피일까, 곰.... 🐻⁉️❕일까?
e만 4개 썼어야 하는데 🍺 a는 왜? ㅋㅋㅋㅋ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괜히 썼다가 철자 틀리는 사람 많이 본다. 
나도 거기에 동참했네 ㅋㅋㅋ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외국인의 한국어 실수가 떠오른다.

"내가 곧 갈대니까 기다려!"
(나 = 갈대?...😂)


글로 남겨놓지 않았으면 잊어버렸을 경험들....2





2003년 11월 10일 중국에서 적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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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국어선생님과 일명 "영어선생님"으로 통하는 나는 
王蘭庄이라는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인 부부는 우리에게 방 두 개를 내어 주고
초딩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들과 한 방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학원 원장선생님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선생님이랑 돈을 합쳐서 680元 짜리 선물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Isetan백화점의 종이백에 넣어서 그 선물을 거실에
던져 두었다.

Isetan 백화점은 일본계 백화점으로, 서울 생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어제 낮에 갑자기 쌀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그걸 대체 어찌 
해결할까...서러웠는데(--;;) 그 백화점에 가니
각 나라의 음식을 다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식 쌀국수보다 훨씬 한국사람 입맛에 맞고
맛있다.


어제 밤에 난방 기구를 수리하러 남편 분과 함께 오셨던 
주인 아주머니는 그 백화점 종이백을 보고 놀라시더니
우리에게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내가 알아들은 건 아니구..--;;)
그러면서 자기 남편은 한 달에 800元을 번다고 하셨다.


거의 중국 근로자의 한 달치 봉급에 육박하는 선물을 사 온
우리가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인구도 국력이라지만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일자리도 모자라고, 인건비도 너무 저평가되어 있고...
사람들 힘들어서 어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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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5년 전 당시엔, 그 중국인 가족이 우리가 세들어 사는 집의 "집주인"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 집주인보다 세들어 사는 '한국인'들이 더 잘 사는 사람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잘 산다고 알려진 한국인은 범죄 대상이 되기 쉬우니, 절대 외국어하는 티내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당부도 들었었고.

집주인이었지만, 우리에게 더 큰 공간을 내주고 비좁게 살면서 세를 받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주인 아줌마가 우리의 청소와 빨래, 반찬거리 등을 도와주시면서 추가로 얼마간의 돈을 더 받고 사셨다. (중국에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투자'의 개념으로 빚을 내서 집을 사셔서 우리의 월세로 이자를 충당하고 계셨던 것인지...)


내가 살던 시기의 중국에는 너무 쉽게 어렵게 사는 분을 마주칠 수 있었고, 길만 조금 걸어나가 반대편 동네에는 냉장 시설도 없이 그대로 생고기를 내놓고 파는 정육점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내가 이렇게 걱정 안 해줘도 이 가족들이 나보다 훨씬 더 부자로 잘 살고 있을 듯!







그림자 극장



집앞 나갔는데
독특한 분위기의 배경을 제공했던 석양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림자 극장에 배우 등장





극의 제목은 "일방통행"?


공간





지난 2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던 방.

'그래서 내가 안 보였구나.'


안 보이는 걸 보아달라고, 보았어야 했다고 투정부릴 수는 없구나.
슬픈 일이었지만, 그 뒤로 아픈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을 주었던 깨달음.



이런 시대




댄 브라운의 소설 [Lost symbol]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들을 보면 지금의 우리를 '신'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사실 신이 뭐 별 거냐?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


진짜로 그러할 것 같다.
수백년 전, 어떤 '왕'들의 사인은 그저 "맹장염"이었을 법도 하다.
수백년 전에는, 최고의 의사들에 둘러싸인 왕도 속수무책으로 복막까지 번진 맹장염을 고치지 못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신께 제사를 지내고 기원을 드리고 복통이 심한 왕의 쾌유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겠지.

현대에 오면 맹장염 (충수염)은 2박 3일 안에 퇴원을 종용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 된다.
(요즘 많이 하는 복강경 방식이 아니고, 나는 스리랑카에서 개복 수술로 맹장을 떼어냈는데도 자신의 완벽한 수술 실력을 자랑하고픈 의사가 하루 만에 내 입원실에 와서 자꾸 퇴원하길 권했었다. "You can do anything what you want from now" ㅎㅎㅎ)

예전에는 아무리 빌고 제물을 바쳐도 안 되던, 극심한 복통이 이틀 안에 사라지게 하는 그냥 '신'이 이제는 우리 곁에 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서서 "앞으로 251번 버스가 4분 23초 후에 이 정류장에 도착할 것이니라" 하면 아무도 안 믿었을 거다. '이 사람은 선지자인가?' 
하지만 요즘은 선지자가 아니어도 손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내가 탈 버스의 위치와 도착 시간을 알 수 있다. 내 눈앞에 없는 것의 위치도 알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됐다.



한때 은행의 순번대기표와 "딩동" 호출소리도 혁신적인 기술 발전이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차 안에서, 화장실 안에서
내가 갈 은행 지점에 현재 몇 명이 대기중인지도 확인할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대기번호표 미리 발행도 가능하다.


90년대로 돌아가서, 은행에 볼일 보러 가는 어머니께 
내가 집에서 "엄마, 지금 은행에 17명 대기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번호표를 발행해 드릴 테니 @@분 뒤에 가보면 딱 맞을 거예요" 한다면
니가 무슨 점쟁이냐, 신이냐?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옛날 사람들이 현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본다면 정말 신이 따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는 탐험가들이 목숨 걸고 몇달간 배로 건너던 대서양 바다 건너기도 이젠 몇 시간 안에 이동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도 얼굴 보며 매일매일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라니....진짜 예전에는 신이나 가능한 일 아니었나. 

기도는 필요없고, 충전이 필요할 뿐.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