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wn








맥주 한 잔 하고 싶넹.
지금 제일 부러운 사람은 자기 냉장고가 있고 거기에 눈치 안 보고 맥주캔 그득그득 채워놓은 사람.

애주가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비좁은 공간 하나 눈치 봐가며 차지하고 살아가는 처지라
내 냉장고는 꿈도 못 꾸겠네.


정작 넓디넓은 집에서 내 냉장고를 가지고 혼자 살던 시절에는
집에서 혼자 술마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할 수 없게 되니까 더 땡기나 보다.










[한겨레]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기술 발달의 역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최초의 도구라는 돌칼, 지식의 전수를 가능하게 한 문자, 산업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증기기관? 또는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컴퓨터? 정답이 없는 물음인데, 의외로 세탁기를 꼽는 이들도 꽤 많다.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67)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명쾌한 강연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드문 통계학자이기도 하다. 로슬링은 2010년 테드(TED·기술,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등을 주제로 하는 세계적인 강연회)에서 왜 세탁기가 최고의 발명품인지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가 4살 때 어머니와 할머니는 처음 세탁기를 집에 들여놓고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했다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빨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여성의 가사노동이었다. 세탁기는 여성을 빨래 노동에서 해방시켜 더 아이와 함께 보내고 책을 읽고 다른 일을 찾아 나갈 시간을 주었다. 이는 남녀의 역할과 사회구조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세상은 전과 달라졌다. 그래도 로슬링이 지적했듯이 여전히 인류의 20억명은 땔나무를 나르거나 물을 길어와 빨래를 해야 하는 빈곤선 아래 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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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빨래 노동에서 해방시켜 남녀 역할과 사회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세탁기.

우리 엄마는 이것에 반기를 들고
손빨래 ->  세탁기 -> 다시 손으로 헹굼 과정을 실천하시는 분이다.
다시 손으로 헹구는 과정은 생략되더라도, 물을 받아 손으로 초벌 빨래를 하는 과정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세탁기에 옷을 던져놓고 버튼을 누르면 그만인 '빨래'가 엄마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일과가 된다. 어깨 수술을 한 번 하신 후, 온가족이 손빨래를 그만 하시라고 말렸지만 듣지 않으신다. 우리 엄마에게 빨래는 하루 한나절을 잡아먹는 작업이다.

나는 내 빨래를 모아서 그냥 세탁기에 돌려버리는 편이지만
언니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빨랫감만 척 던지고 가버린다.
가끔 적게 나온 내 빨래를 엄마가 손빨래 하고 계신 와중에 슬며시 나도 추가하고 나오는 순간에는 엄청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엄마를 부려먹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딱 두 벌만 세탁기에 넣고 돌릴 수도 없고.

그런데 이게 얼마나 무의미한 양심의 가책인지.
아니, 그냥 세탁기에 넣고 모두 돌려버리면 되는 일인데 굳이 손빨래를 하시는 통에 내가 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건지...
다른 집처럼 그냥 세탁기에 집어넣었다가 일정량 이상 모이면 그냥 돌려버리는 시스템이면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도 되는데 말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이불 빨래가 있다.
우리 엄마는 이불 빨래는 상당히 큰 작업으로 보기 때문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한동안 불렸다가 발로 밟고 그걸 또 낑낑 대며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로 날라서 세탁기를 돌리고...)  6개월에 한번쯤 계절이 크게 바뀔 때만 이불 빨래는 하시지 않나 싶다. 세탁기를 신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한 달에 한 번 세탁기에 집어넣고 버튼 한 번만 눌러 버리면.... 한 달에 한 번 뽀송뽀송하게 기분좋게 이불 속에서 잠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세탁기를 못 믿겠다며 6개월씩 땀 묻은 이불을 끌어안고 자는 것보다 1개월에 1번 손쉬운 세탁기 세탁이 더 깨끗한 잠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요지 부동이시다. 나는 그냥 내 침대 커버 같은 것을 그냥 세탁기에 넣어버리고 그냥 돌려버린다.

몇 번을 다투고, 설득을 해봐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
엄마는 그저 손빨래가 기쁨이려니...하고 내버려두지만
반나절을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를 문지르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 맘이 편치가 않다.
게다가 설마 속으로 "양심도 없는 딸내미들..... 늙은 엄마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라고 생각하시면서 빨래를 박박 문지르고 계시는 것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는 고생인데..... ㅜ.ㅜ



나도 내 뜻을 고집하면서 괜히 남들에게 안 해도 되는 고민을 하게 만든 적이 없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 어떤 일본 수필의 첫 부분만 읽었는데.... 옛날 일본 전철인가 기차에 찬 바람이 그대로 스며들어오는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상대방이 추울까봐 배려한다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더니 애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그 자리에 그렇게 춥게 서 있으면 내 맘이 편할 것 같아요?"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도 얼마나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한다.
세대 차이도 있는 것이고...

에고 어렵다 어려워.
이래서 일정 나이가 되면 서로 안 맞으니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살아야 되는 거지.


아.... 이런 것좀 이제 그만 하자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매달 한국에서 송금하는 최모씨(54)는 24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소식이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세계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환율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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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를 다룬 기사 중 시작하는 부분.
최모씨(54)는 실존하지 않을 가능성 99.99%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핑계로 어떤 고민 과정도 없이 자동적으로 막 꾸며내서 쓰는 것이다.


# 평소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던 직장인 최모씨(32)는 최근 피곤함을 느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깜짝 놀랄 결과를 받았다.

 
나도 위의 문장을 아무 생각없이 1초만에 지어냈다.
 
관례인데 뭐...
그 정도야 뭐...
그 정도도 허용 안 하면 팍팍해서 어떻게 사냐.....
이런 사소한 날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문화가 한국에 팽배해있으며
사회 초년생 때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도
결국 누구나 빠져든다.

이것이 한국 사회 모든 문제의 시초 아닌가 싶다.



 

거울




남과 대화하다가 뜨악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그 대화 상대와 거리감이 좀 생기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티를 내지는 않는다.
그만큼 나와 대화할 때 남들도 나에게 질릴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들도 내 앞에서는 티를 안 내고.




나는 따박따박 사실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대수롭지 않게 쓴 댓글을, 내가 의도한 의미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굳이 고쳐주려는 후배를 보니,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었을 때마다 남들이 얼마나 싫었을지 새삼 느낄 수 있다.




난 사회 돌아가는 것에 불만이 많은데
만날 때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그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똑같이 쏟아내는 어린 친구를 보며
내가 이렇게 맨날 사회 탓을 하고 있을 때마다 어른들이 그 말을 어떤 기분으로 들었을지 이해한다.


미녀에는 관대한 듯 보이지만 못 생긴(?) 여자에는 가혹했던 사람을 보며
나 또한 저렇게 외모로만 사람을 평가한 적이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인간은,
남이 들었다는 그 남에 대한 칭찬은 안 믿고 싶어하고 (야, 그거 그냥 인사치레로 해준 말이야!)
자기가 들은 자기 칭찬은 믿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 나를 진짜 좋아하나봐)


곰곰 돌이켜보니
사람들은 거짓말을 참 잘 한다.
내가 "믿고 싶었던" 나에 대한 칭찬은 정말 가려들어야 겠다.




후회



나는 윔블던을 보러 런던에 갔지만
당시에 사실 더 큰 이벤트는 2014 월드컵이었다.

네덜란드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는데
내가 묵었던 숙소 주변에 펍(네덜란드 펍?!?)은 특별히 국기 장식도 해놓고 축구 중계를 시청할 손님 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기가 임박할 때마다 들썩이는 길거리 펍의 분위기가 너무 부럽긴 했지만,
나는 가난한 1인 여행객이었고, 혼자 거기 들어가 섞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신 저렴하게 다국적 응원을 즐길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당시에 닷새 정도 퐁당퐁당 호스텔에 묵었는데
1층 로비에는 TV를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경기 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곳은 응원방으로 바뀌어서 골이 터질 때마다 거기서 함성 소리가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왜 난 거기 섞일 용기가 없었을까.
사실 30여 년을 살고도 호스텔을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긴 했다.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 로비의 휴게 공간에서 누군가 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축구 중계가 있는 날, 왁자지껄한 로비를 괜시리 더 빨리 지나쳐서 내 방으로 올라오곤 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이 무서워서??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또 언제 월드컵이 진행되는 시기에 유럽에 체류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더 늙기 전에...좋은 기회였는데...

호스텔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과도 잘 섞여서 떠들썩하게 노는 사람들 부럽네.





르 스타일 브런치 - ibis styles Ambassador Seoul Myeongdong



6월 초,
오랜 만에 돈 벌어서 가족에게 한 턱 냈던 주말 브런치.








기본적으로는 간단한 뷔페식에 메인 요리를 하나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이 미국산 tenderloin steak는 할인 받아서 31,500원.
프렌치 토스트 같은 다른 메인 메뉴들은 2만원 대이다.


보통 어딜 가도 스테이크 가격이 그 정도는 하는데, 샐러드나 과일, 커피 등등 뷔페로 더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낭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난 쇠고기류 중에선 스테이크만 좋아한다. 얇은 샤브샤브 고기랑.


명동의 한 호텔 21층에 있는데, 밤에 훨씬 인기있는 루프탑 바와 함께 있다.
밤에는 가본 적 없지만. 




낮에는 요런 분위기.




할아버지의 (경제)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형제의 희생
...




몇 년 전에 "명문대 진학의 요소"라며 떠돌았던 말들이다.
지금은 또 문화가 바뀌어 다른 신종 유행어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저 중에 흥미로웠던 것이 "할아버지의 재력"인데, 처음 들었을 땐 그냥 피식했다.
워낙 아이도 적게 낳고,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해도 체력이 팔팔한 요즘, 손자 손녀들에게 관심을 쏟는 일은 당연한 거겠지.




요즘 와서 생각해보니
누구든, 자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굳이 경제력을 말하는 게 아닌.


보통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자기 위안을 배우며 결론을 내리게 된다. "우리 아빠 , 엄마도 사랑을 못 받고 자란 분인데, 우리에게 어떻게 해줄 줄 몰라서 우리를 이렇게 키웠어. 나만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향력은 결국 어떻게든 손자 손녀에게 전해진다는 뜻이다.
행복하게 자란 부모들이 행복한 자녀를 키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열등감 속에 자란 부모들은 또 자녀를 그런 인생 속으로 몰아넣는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자식 스스로가 열심히 했으면 된다는 말이 무색해지고
부모의 직업이 자녀의 직업이 되어가는 한국의 요즘 현실에서
'할아버지/할머니의 영향력'은 단지 수험생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주 운전(?)의 기억




나는 운전 면허가 없다.
여태 그다지 필요를 못 느꼈던 이유도 있지만
운전을 배우는 데 필요했던 필수 과정 -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 - 가 정말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하긴, 고등학교 때 수학을 엄청 못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과외를 받지 않았다. 누가 내 옆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엄청 거슬리고, 나로 하여금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 일이다. 난 정말이지,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정규 학교 교육 외에 뭔가를 돈을 내고 배워본 적이 없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스타일인데, 운전만은 도저히 자습으로 익힐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너무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는 음주 운전자를 보거나
연예인들이 단속에 걸려서 자숙한다며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대학원 입학 첫 학기.
학과의 모든 교수님과 모든 학생이 참석해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때 학과 대표를 맡고 있어서 무척 걱정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자리는 무사히 마쳐졌고, 교수님들은 떠나가고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다.


보통 십여 명 이상이 모이는 술자리는 들쑥날쑥.... 취하는 사람도 있고, 안 취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날 만큼은 과의 거의 모든 인원이 다 취했다. 마지막으로 간 노래방에서 학과의 가장 연장자이시던 "형님들"은 소찬휘의 tears 같은 노래를 부르며 망가지셨고, 유난히 소파가 많던 그 노래방 구조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소파 사이로 낙하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결국 그 "형님들" 중의 한 분은 노래방에서 화장실 갈 때 신으라고 제공하는 슬리퍼를 신고 만취한 채로 부천의 집까지 가시기도 했다.


집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는 0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노래방에서 나와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과에서 "유흥계의 총아"로 유명했던 남학생이 남은 흥을 주체하지 못 하고 혼자 삼성동의 나이트에 가겠다고 했다.

위에 기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밀폐된 공간에 모르는 사람과 있는 것) 택시 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나는, 정말 순진한 생각 100%로 삼성동까지만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당시에 살던 집이 그쪽 방향이었는데, 택시를 타는 구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집 방향이 비슷한 다른 남자애까지 한 명 더 태우고 그 만취한 차는 출발했다.
운전자는 "제발 좀 소리를 줄여라" 라는 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음악 소리를 최대로 올린 채 지그재그로 차선을 질주했다. 성수대교를 건너고는 새벽 1시에 언주로  한복판에 나를 내려놓고는 유유히 그들이 갈 길을 가버렸다.


강남 대로 한복판에서 다행히 나를 걱정해주시는 너무 친절한 택시 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내 집까지 왔다.




이 일은 정말 지나면 지날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일이다.
택시를 타기 싫다고 해서 만취한 친구 차를 그냥 얻어타다니, 나도 취하면 얼마나 이성이 마비되는지도 알았고, 사고가 안 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도 새삼 느꼈다. 그 차에 동승했다가 썰렁한 평일의 삼성동 나이트까지 같이 다녀왔다는 또다른 친구는 정신이 돌아온(?) 다음날 "우리 진짜 다 죽을 수도 있었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점이 없는 너무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딱 하나 장점을 생각해낼 수 있자면, 이 경험이 약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은 허무한 것일까





You got
what you want
Now you can hardly stand it, though
but now you know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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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무원, 최상위 연예인....
이런 사람들이 (아마도 뻔히 알면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죄를 짓고 사는 것을 보면서
'성공해보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의아하다.


난 저 정도 성취를 이루면, 정말 인생에 감사하면서 소소하게 조용히 살아갈 것 같은데
왜 그걸 못 견디고 일탈을 저지를까.


성공을 위해 내달리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결과가 주어지진 않는데....
인생의 정점에 서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자신이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알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왜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지 못 하는 걸까.





"You got
what you want
Now you can hardly stand it, though"



("wise up" 가사 중에서)




아마,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성공의 끝은 공허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다들 잘 이뤄놓고 나서는..... 너무 의미 없다, 공허하다, 별 거 아니었다고....들 해서
"성공"하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긴 하단 말야.




여름



몇 년 전에
매우 더운 여름날, 더위에 쩔쩔 매며 길을 걷다가 한 여고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하교 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이 그 더운 날씨에 모두 카디건을 걸치고 교문 밖으로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 에어컨 있구나. 학교가 춥구나.'




나의 고등학생 시절의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을 떠올렸다.
선풍기만으로는 너무 더워 연신 부채질을 했고
친구들은 물에 적신 수건을 목에 두르거나, 너무 더운 교복 치마 대신 체육복 반바지로 갈아입기도 했었다.
나는 학교 책상과 맞닿는 팔 부분에 뻘겋게 두드러기가 올라오곤 했었는데, 그땐 학교 책상이 더러워서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더워서 그랬던 것 같다. 오직 여름에만 있던 증상이었으니까.


교탁에서 수업하시던 남자 선생님들이 참다 못해 한 마디씩 하시곤 했었다.

"얘들아 더운 건 알겠는데, 제발 앉아서 교복 치마 펄럭이지는 마라. 안에 다 보인다."


너무 더워서 다들 생고생을 하며 여름을 나곤 했었는데...
카디건을 입고 한여름을 지내는 '요즘' 교복 소녀들을 보고, 엄청난 세대 차이를 느꼈다.

똑똑




20대 때부터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항상 '똑똑한' , '명석하고 현명한' 남자라고 가장 먼저 대답하곤 했다.
지금은 이상형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유형에 이것저것 더 갖다 붙었지만......
공감 능력 있는 사람, 돈 쓰는 우선 순위가 나와 같은 사람, 음식 낭비하지 않는 사람 등등.


경험이 많은 친구들은 대부분 '똑똑한 남자'라고 하면 말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차갑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도 그것을 이해하게 됐고, 그 기준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이 들어서도 나름 여러 외국어를 조금씩 구사하시고, 비행기 안에서도 새로운 공부를 하시던 이순재 할아버지를 보며 역시 두뇌의 명석함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사실 명석함보다는 'an eternal student of something' 이 이상형에 가깝다. 이 영어 표현은 소설 contant gardener에서 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이란 어쩌면 '경제성'에 가깝다.
똑똑한 사람들은 한 상황을 보고도 여러 가지를 눈치 챈다. 약간 둔한 사람들은 보고도 모르는 것을 놓고, 똑똑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수십 가지를 알아낸다. 거기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도 나오고 재빠른 상황 판단도 나온다. 남들보다 순식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특출난 아이들을 보여 주고 '솔루션' 같은 것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이같지 않고 되바라진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인데 오늘은 우연히 보게 되었다.


41개월, 만으로 3살을 넘긴 이 꼬마는 방정식을 척척 푼다. 척척 푸는 게 아니라 칠판과 책에 붙어서서 그것만 하고 있다. 나름 우등생이었던(??) 내가 만 12세 -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중고딩 시절 '수학 불능자'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ㅋㅋ ;;;이 아이는 정말 영특하다.


아이 아빠의 건강상 휴직으로 인해,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아이 엄마는 아이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에 대해서 더 걱정한다. 초등학교 진학하고 나면 그 아이는 뭘 더 이상 배우겠는가. 엄마는 아이가 늘 붙어사는 칠판에서 떨어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묻는다. " 대체 왜 그렇게 공부하려는 거야? " 방정식은 척척 풀지만 만 3세답게 아직 어눌하고 혀짧은 말로 아이가 대답한다.






돈 벌어야 되잖아. 나 XX 살 때 돈 있어야 되잖아.


넌 돈 벌 필요 없어. 엄마가 돈 벌게.


아니야. 내가 벌게. 엄마도 돈 벌려고 공부 하잖아. 엄마 공부하기 싫은데 하잖아. 내가 할게.






여태까지 본 영재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아이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과도 비슷한 아이였다.
누구도 말해준 적 없지만, 3살 짜리 이 아이가 관찰과 직관으로 알아낸 것이었다. 세상 사는 데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엄마는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엄마 하기 싫은데도 공부하고 있잖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체 이런 것을 파악해 낼 3살 아이가 있을까.


엄마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가슴 아파하며 일단 자녀에게 중심을 두기로 하고, 수험 준비는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이 영특한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지, 입시와 명문대에만 방점이 찍혀 있는 한국 교육에서 이 아이가 잘 살아남을지 걱정이다.






차가운 똑똑함이 아닌, 따스한 똑똑함....
이 아이는 어느 정도 남을 배려하는 따스함을 가질 싹이 보이기는 한데,
참 가지기 어려운 가치이긴 하다.







윔블던 관람 시에 최적의 숙소 - Premier Inn Putney bridge



숙박 경험이 없는 숙소에 대한 글은 처음 써본다.ㅎㅎ
그래도 정보가 되기도 하고, 언젠가는 가겠지 하는 희망이 되기도 해서....






세 시간 정도 줄 서면 그라운드 패스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의기양양 혼자 갔던 윔블던 day 7.
사람은 정말 정말 많았고, 줄은 정말 정말 길었고
비 때문에 경기 지연까지 겹쳐서, 5시간을 줄 선 끝에 겨우 끝나가는 경기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윔블던 둘째 주가 시작하는 첫 날이었는데,
대회 초반일수록 그라운드 패스로도 볼 수 있는 좋은 경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무지 많다.
대회 후반으로 가면 많은 선수들이 탈락해서 돌아가고, 볼만한 경기는 대부분 사전 구매한 입장권이 필요하기 때문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줄어든다.


허리가 이렇게 "끊어지게"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체험했다.
영국에 다녀오고 나서야 '진작 말하지 그랬냐, 입장 패스를 구해줄 수 있었는데"라고 뒷북을 치는 지인이 두어 명 있었지만 손쉬운 패스를 얻지 않고, 그렇게 허리 끊어지게 기다려본 경험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저 길바닥에서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5시간 동안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신기했고, 길거리에 무질서한 쓰레기 하나 보지 못했던 진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체력상 한 번 해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경험.


윔블던을 보러간다고 하면 런던 튜브 녹색 디스트릭트 라인 윔블던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southfields' 역에서 내려서 가는 것이 더 수월하다. 하지만 그 거리도 무시 못 할 거리이고, 5시간 죽치고 기다렸다가 경기 보고 돌아오던 첫 날은 사우스필즈역까지 가는 길을 걷다가 주저 앉고 싶었을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런던에 유학 중이던 친구의 조언으로 디스트릭트 라인 'Earl's court'역 주변에 숙소를 얻었더니, 튜브로는 15분 만에 사우스필즈역에  도착하긴 했지만 나중엔 그것마저 멀게 느껴졌다.


윔블던을 지나 얼스코트로 향하는 디스트릭트 라인을 타고 가다가 사우스필즈에서 런던 중심부 쪽으로 가는 두번째 정류장인 퍼트니 브리지역에 정차했을 때 호텔이 하나 보였다.
'와, 저 호텔 윔블던 가기 편하겠다.'






담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Premier Inn이다. 구글 지도에 의하면 역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



지하철 역에서도 가깝고 저 숙소라면 엄청 편하겠다 싶었다.
지금 조사해보니 튜브뿐만 아니라, 버스로 윔블던에 접근하기에도 최적의 장소.
호텔 나와서 1분 거리도 되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Clapham Junction 행 39번 버스를 타면 20분 내에 윔블던 파크 줄 서는 곳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다. (정류장 이름 woodspring road stop B) 사우스필즈역에서 내려서 윔블던 파크까지 걷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이미 입장권을 소지하고 있어서 줄 서서 그라운드 패스를 살 필요가 없다면 Church road에서 내리면 된다.


돌아올 때도 윔블턴 테니스장에서 나와서 사우스필즈역 방향으로 걷다가 중간에 Bathgate road(E)라는 이름의 정류장에서 퍼트니 브리지행 39번 버스를 타면 숙소 바로 앞에서 내려준다. 정말 관람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프리미어 인 윔블던 남부 지점이 하나 있지만 윔블던 테니스 코트가 가까운 것은 아니다. 또한 너무 윔블던 근처에 숙박을 하게 되면 런던 중심부와는 멀어진다.
퍼트니 브리지 지점이 윔블던 근처보다 더 좋은 이유는, 런던 시내 접근이 훨씬 쉽고(zone 2이기는 하지만) 주위는 부촌이라 안전한 편이고 템즈 강변의 수려한 경관도 누릴 수 있어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Fulham FC의 craven cottage 구장도 근처에 있다.

방도 넓은 편이라고 하고, 예약 가격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체적인 숙박객의 평도 아주 좋다.

오직 윔블던 관람을 위해 런던에 방문하면서, 그래도 런던 시내 관광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Premier inn putney bridge가 최적의 장소! 물론 그래서 윔블던 기간에는 예약하기 아주 어렵다 ㅎㅎ

언젠가는 한 번.... :)




미안해




아는 사람 중에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약간은 우울한 기운이 도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어떤 계기로
2년 정도는 참 밝아졌고 남 앞에도 잘 나서고, 적극적으로 활동했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그걸 눈치 못 챘다.
조금 더 힘을 얻게 도와주었으면 그 사람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을텐데...


자신이 노력해도 주위 사람은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그 사람은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몇 년 지나 돌이켜보니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변했었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좀 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도와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





2014, London의 첫 인상.




최악의 traffic으로 악명높은 공항이라지만, Heathrow 공항이 좋은 이유는 착륙 전에 런던 시내를 '말그대로 bird's eye view'로 볼 수 있어서다.


뉴욕, 도쿄, 파리 등등 가봤지만 세계 대도시 중에서도 유독 런던에서는
그 착륙 방향 때문인지 고개를 들면 비행 중인 항공기가 언제나 몇 대씩 보인다. 게다가 항공기들의 그 엄청난 밀집 때문에 착륙 시간이 밀려서 런던 상공을 몇 차례나 빙빙 돌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탄 비행기가 뱅뱅 돌던 항로가 나타나던 기내 모니터 화면과 런던 시내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 아무도 나의 행동에 관심이 없을 탠데, 왜 기내에서 사진 찍으면 촌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겐 첫 방문 유럽 도시여서 그랬는지, 동화같다고 느껴지던 그 런던 풍경을 하늘에서 보다가 비가 흩뿌리는 히스로 공항에 착륙. 비행기 안에서 '음, 여기서 다 봤으니 시간이 안 되면 런던 여행 못 하더라도 괜찮겠군.'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윔블던 관람을 위해 급하게 계획한 런던행이었는데, 금요일 도착과 토요일 도착 중에 망설이다가 그렇게 토요일 오후에 런던에 도착.
나중에 알았는데, 그 비 때문에 센터코트를 제외한 윔블던 테니스 경기는 모두 중단되었다고 한다. 금요일 도착했으면 토요일에 윔블던에 갔을 테고, 비만 맞고 경기는 못 보고 왔겠구나 싶어, 나중에 토요일에 도착하길 잘 했다고 위안했다. ㅎㅎ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는 영국 입국 심사는 수월하게 통과. 너 왜 왔니? 윔블던 보러. 너 표 있어? 아니 그라운드 패스 살 거야. 끝.
그래도 심사관을 만나기 전까지 한 시간 넘게 줄 선 뒤에야 공항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날씨는 개었고
씨티은행에서 돈 뽑으러 피카딜리 서커스에 왔다가
고개를 돌린 순간, 아 여기가 정말 런던이구나. 하고 찍은 런던의 첫 사진.


나중에 정보 조사를 통해 알았다.
저 동상은 Duke of York의 뒷모습이고
하늘에서도 보았던, 유니언잭이 휘날리는 저 탑은 Victoria tower, 웨스트민스터궁의 일부이다.


다른 각도





6월,
윔블던이 다가오니
또 런던에 가고 싶넹 :)


인천공항 '명가의 뜰'




한국에서 일하다가 출국하는 제자를 환송하고....
그냥 집에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비행기 탑승 게이트들이 주루룩 보이는 공항 식당으로 들어왔다.






턱없이 비싸게 받던 공항 식당들이었는데..
요즘은 어느 정도는 납득할만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요기는 그냥 분식집처럼 생각하면 안 됨 ;;;;

안내를 받아야만 착석을 할 수 있고.
혼자서 4인 좌석에서 먹기가 이상해서 바로 옆 창가의 2인 식탁으로 옮겼는데
말 안 하고 자리 옮겼다고 직원한테 혼남.;;;


눈에 보이는 자리로 그냥 옮기면 그만인 간이식당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곳.
정중하게 서비스 하는데, 제멋대로 행동해서 죄송.
bill만 들고 옮기면 되는 것이 아니고, 좌석 점유를 매장 계산 시스템에 철저히 표시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직원이 신경질내지 말고 차분히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냉면이 8,500원이라, 뭐 그냥 시내 물가와 비슷하다.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한데, 퀄리티는 그닥.
냉장되어 있던 면을 그냥 던져넣은 것인지, 면이 서로 뭉쳐서 안 풀린다.
그리고 나는 냉면 먹을 땐 아주 얇은 면을 더 좋아해서...





자식 여러 명 키우기




딸기꽃을 보고, 딸기를 키워보기 위해 화분을 샀는데 딸기가 생기는 꽃대가 다 사라진 뒤에도 잎줄기들은 잘 자란다.

4-5송이 정도 결실을 맺었던 작은 딸기들은
베란다에 내놓으니 새들이 순식간에 먹고 간다. 적당히 빨간 색일 때는 입도 안 대고
가장 예쁘게 빨갛게 된 날이면 여지없이 사라진다. 자연의 순리이려니....

 
   
문제는
시각적 효과가 있는 딸기들이 사라지니 자꾸 화분에 물주기를 잊게 된다.
의외로 생명력이 강해서 딸기 이파리들이 자꾸 새로 나오는데 초기에 물 주는 것을 잊어서 어린 이파리 줄기 하나가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오늘 다시 물을 주려고 보니
초기에 물 주는 것을 깜빡한 이파리들은 시들어버렸고, 나중에 시기가 잘 맞아 비도 맞으며 잘 자란 이파리들은 먼저 나왔던 그 이파리보다 더 크게 자라고 있었다.
자식을 여러 명 낳으면 이것처럼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애는 신경이 좀 더 쓰여서 물을 더 주고, 어떤 애는 알아서 잘 하는 거 같아서 물 주는 걸 잊고, 어떤 애는 쟤가 나의 대를 이을 애인 것 같아서 좀 다르게 물을 주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잠깐 바빠서 물 주는 것을 잊은 새에
그냥 시들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마음이 멍드는 아이들이 있다.


나중에 아차, 하고 다시 물을 주려고 해도
한 번 지나간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역시 영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

 


2년 전 여름 유럽 여행의 수확은 이런저런 게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
근래 몇 년간 동남아 여행 다닐 때 생각보다 영어를 원하는 대로 말하지 못해서, 내가 영어를 굉장히 못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영국에서는 내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호텔 프론트 데스크 직원한테, 그리고 윔블던에서 줄 서다가 만난 캐나다 사람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니?" 대신에 "너 영국에 사니?"라는 질문을 들은 건 신기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영어는 나에겐 언제까지나 외국어라는 것을 일깨웠던 사건이 있었으니...








런던 남부에서 하루 머무른 뒤, 런던 남부를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지하철역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내가 '여행자'의 상징같은 배낭을 매고, 두리번거리면서 이 교통수단에 올라탔을 때부터 나를 예의주시하던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자리에 앉고 싶었던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자리가 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동시에 그 할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과 함께, '이 트램은 이 역까지만 운행하는 트램이며, 너는 일단 여기서 내려서 다음 트램을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셨다. 심지어, 지나가던 어떤 회사원 같은 사람도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

알고 보니, 아까부터 방송에서 쉴새없이 흘러나오던 말들은 바로 이것에 대한 안내였다.  이 할아버지께 괜히 '저 그렇게 영어 못 알아듣지 않아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못 알아들은 것이 사실인데 뭐.
"나 영어 웬만큼 해"라는 자존심이 여지없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토익 L/C를 만점 받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의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게 바로 영어였다. 모국어는 온 신경을 다 쏟지 않아도 다 들린다. 하지만 영어는 어디까지나 나에겐 외국어였다.






런던을 떠난지도 한참 시간이 흐른 오늘, 주의 집중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듣기 뿐만 아니라 읽기도 안 되는 외국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런던 도착 다음날 아침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려고 하니, 위에 쿠폰이 눈에 들어왔다. 6장만 모으면 무료 음료~~? 런던에 일주일 이상 있을 거니까, 머무르는 동안 무료 음료 한 잔 받아마실 수 있겠군.

하지만 의의로 맥모닝의 맥머핀 메뉴는 너무 느끼했으며, 매일매일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 메뉴를 샌드위치로 바꾸면서 쿠폰을 6장이나 모으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내가 떠나기 전, 런던에서 공부중인 대학 동기에 이 쿠폰을 너다섯 장쯤 모아서 건네주고 왔었다. 
갑자기 이 쿠폰이 생각나서 대학 동기에게 음료 받아마셨냐고 물어보니, 쿠폰을 모으는 게 아니라 스티커를 모으는 거라서 내 쿠폰은 소용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뜨아아...
지금 와서 이 사진을 다시 뜯어보니 정확히 스티커를 모으라고 써 있었다. 저 종이를 뜯어서 모으는 게 아니라, 저 종이를 뜯으면 그게 로열티카드가 되어 거기에 스티커를 받아서 붙여야 하는 거였다. 이 역시 한글로 써 있었으면 몰랐을 리가 없는 사실인데 역시 영어는 외국어였다. 난 회화보다는 '읽기'를 잘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주의를 기울여 읽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외국어인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나에게 좀 더 겸손해지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래도 어느 날엔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어떤 외국어가 자연스레 접수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No.1









지금 확실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


벌써 6년전, 라파엘 나달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때, 준우승자로서 박수를 보내야 했던 노박 조코비치, 이번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물론 현재 4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조커(Djoker) 슬램' 달성자가 되면서, 본인이 주인공이 되었다.




내 인생에 내가 '주연'일 것 같지만
가끔 내가 '조연' 또는 그저 '엑스트라'였구나...하고 느낄 때도 있다.
한때 조연이었다가....주연을 꿈꾸다가.... 조용히 사라져가는 인생도 많은데,
인생을 역전시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조코비치는 앞으로 계속 역사를 써나가는 인생을 살 것이다.


전반부에 시련을 좀 겪더라도, 후반부에 잘 나가는 삶이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조코비치 인생은 행복으로 꽉 들어찬 인생인 듯.


서로 교차해가며 비실거리던 페더러와 나달이 동시에 비실거리고,
한때 꾸준함의 상징이었던 다비드 페레르나 토마시 베르디흐도 하락세가 완연하고
93년생 도미닉 팀이 드디어 7위로 top10에 입성하는 등
세대 교체가 슬슬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혼자만 교체되고 있지 않은 1 top 조코비치.


minipeople.ch에서

언제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나서 우는 것은 남자 선수이다.


2016 롤랑 가로스 남자복식에서 우승한 펠리시아노 로페스, 마르크 로페스 (형제 아님).
그랜드 슬램 대회 첫 우승이기에 둘다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 수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나란히 우는데....
나는 웃음이 났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이 나에게도 있나보다. 
여자 선수들은 생애 첫 우승을 해도 무덤덤한데, 남자 선수들은 정말 잘 운다.

특히 복식 전문 선수인 마르크 로페스.
2014년에 롤랑 가로스 복식 준우승 경력이 있고, 같은 해 US open에서도 브라이언 형제에게 패해 준우승한 경력이 있는 그는,
이번에 마침내 브라이언 형제를 꺾고 우승을 해서인지 '한풀이를 하는 듯한' 눈물을 보여준다.
이제는 한이 없겠지. 인생에 '그랜드 슬램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새기게 되었으니. 



¡Felicidades!



나달은 기권하고 일찍 집에 갔지만, 가르비녜 무구루사의 여자 단식 우승과 로페스'들'의 남자 복식 우승으로 
그래도 스페인은 여전히 롤랑 가로스와 인연을 이어가네.





뿌리





요즘 미국 드라마 '뿌리' Roots 2016 리메이크작을 보고 있다.
그들의 문화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아메리카로 끌려온 사람들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8부작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일단 4부작을 방영할 모양이다.
4부작이라고 해도 1부의 길이가 2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길다.


몇 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쿤타 킨테'의 등장 분량은 상당히 적다. 그런데 아주 아주 어린 시절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던 '뿌리'하면 왜 쿤타 킨테만 기억이 나는 걸까. 게다가 어릴 적, 그 이름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놀릴 때 사용되었던 것 같다. 피부가 상대적으로 검은 사람...등등.
인종과 외모에 대한 차별은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 어릴 적부터 뼈 속 깊이 배우면서 자라는 것 같다.
그리고 자주 대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낯설음은 누군가에게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고.


나는 작년에 아메리칸 항공을 타고 달라스에 두 번 다녀왔었다.
처음에 갔을 때, 공항에 도착할 때쯤 기장이 '여러분 왼쪽을 보시면 아름다운 달라스-포트워스 공항이 보입니다.' 하고 방송했었다. 멀리서 보면 원을 이루는 반원 모양 터미널이 5개, 즉 나란히 3개의 타원형이 줄지어 선 모양을 하고 있는 초거대 DFW 공항을 위에서 내려다 볼 기회는 흔치 않겠지.


영화 Up in the air 앞부분에 나오는 DFW 공항 모습



그래서 두번째 여행 때는 착륙할 때쯤 내가 그때까지 앉아서 가던 창가 자리를 바꾸어 엄마를 그 자리에 앉게 해드렸다. 엄마는 등을 확 돌려서 완전 창가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바깥 풍경을 보고 계셨다.


나중에 내가 물었다. "엄마, 왜 그렇게 창에 딱 붙어서 갔어?"
"옆에 앉은 흑인이 무서워서"
".......@.@."




아, 엄마와 나는 이렇게 세대 차이가 나는구나.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엄마와 자리를 바꾸기 전까지 12시간을 같이 옆자리에 앉아서 갔던 그 분은 한국에 군대 관련 회의 때문에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셨고, 비행 시간 내내 책을 읽으셨던 아주 온화한 분이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저 그분이 'African american' 이라는 것 때문에 공포를 느끼셨던 것이다. 요즘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 '아프리카에서 뛰어놀던 깜둥이' 이렇게 표현하시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묘한 공포는 그 시대에는 당연했던 거겠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후대에 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새삼 느낀다.


노예제도,
동성애자에게 화학적 약물을 주입하라는 판결을 내리던 일 (imitation game에서 봄),
남아 선호 - 남존여비 사상.....




내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도
시간이 흐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것은 무엇일까.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