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친구











스리랑카 생활 2년 동안 읽었던 책들.
긴긴 여가 시간을 채워주었지만....

몇몇 권은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비밀 ㅋㅋ








나달 예전에....그리고, 앞으로....




7년 전에 로저 페더러가 호주오픈 우승을 했을 때,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었다.




























2010년 1월 당시 만 23세밖에 안된 나달이 8강에서 무릎 부상으로 또 기권하면서
나달은 이제  '2주를 뛰어야 되는 그랜드 슬램 우승'은 앞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 뒤로 8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더 따내고, 커리어그랜드슬램을 이루어서 이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 되었지만^^)


18세 정도부터 이미 너무 잘 해서 상대적으로 너무 이른 쇠락이 찾아왔던 나달, 다들 큰 기대없이 이번 호주오픈을 맞이했을텐데....2017년 호주오픈 1회전 때 마치 2009년의 나달처럼 좌우로 뛰어다니며 모든 공을 받아내는 장면을 보고  '아, 2009년같다.'라고 잠시 생각했었다.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정말 2009년과 똑같은 상황 (5시간 준결승전을 뛴 뒤, 페더러보다 하루 덜 쉬고 결승에서 만나는)이 이루어져 신기했고 2009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2009년 로딕-페더러의 결승전을 지켜보던 그 기분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패배. 나달로서는 한다고 했는데 영리한 페더러를 넘어서지 못했다. (나달이 "최선을 다했는데" 라고는 못 쓰겠다. 예전과 똑같이 페더러의 백핸드 쪽으로만 공을 주는 공략법은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페더러는 결승전 당일 왼손잡이 자시카와 연습하면서 상대 선수를 대비했다.
(자시카는 주니어 us open 우승자인 19세 호주 선수로, 얘가 왜 불려나왔을까... 생각해보니 왼손 포핸드 선수^^)





생각해보면 호주 오픈 기간 중 나달 컨디션의 최정점은 8강전 라오니치와의 경기에서 왔다.





귀신같이 라인 안에 떨어지던 공들과 깔끔했던 경기 운영, 3세트 만에 끝내서 체력 비축도 하고....이 정도 컨디션을 결승전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했더라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게 좀 힘들다고 느껴지는 게 나달이다. 35세 페더러보다도 더.

대회 시작 약 일주일 뒤 8강전에서 컨디션의 정점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마스터즈 대회 정도에서는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주일 안에 우승자가 결정나는 )

물론 문제는 있다. 32강전 즈베레프의 경기와 같은 경우는 나달이 먼저 2세트를 뺏기고 5세트에 가서야 승리를 결정지었는데, 마스터즈 대회에서는 2세트를 먼저 뺏기면 경기가 끝나버린다는 거. 물론 이 5세트 승리는 나달의 정신력 보강에 큰 도움이 된 경기가 됐지만 3세트 대회였다면 그저 32강 탈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에 이미 내가 포기했던 (?) 나달의 그랜드 슬램 우승이 그 뒤로도 8번이나 더 이루어졌듯이, 지금 내가 또 그랜드 슬램 우승이 어려워보인다고 포기하더라도, 나달은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도 포기했었는데 나달이 스스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대회 두 개가 떠오른다.
2013년 롤랑 가로스에서 조코비치와의 4강전과 이번 호주오픈.

그 경기를 지켜보던 당시의 짜릿함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랜드 슬램 1라운드에서 탈락하던 나달을 보던 게 바로 작년인데, 결승 간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주었지만 ㅎㅎ.






다른 4강 선수들은 모두 빠르고 정확한 서브를 넣는데,
가장 정확도가 떨어지는 서브를 넣는 나달.
그런 서브로 결승까지 갔다는 게 기적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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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월 추가로 쓴 글
https://mori-masa.blogspot.com/2018/07/blog-post.html






다이나믹 듀오 - 코치 토니 나달과 라파

다이나믹 듀오 - 코치 토니 나달과 라파




라파엘 나달 자서전<RAFA>



스포츠 스타의 자서전은 널리 알려져 있는 잘못된 소문을 바로 잡는 데 상당히 좋은 도구이다. 아래를 보면 어디서나 당연히 그렇다고 거론되고 있는 라파 왼손의 비밀에 대해 나와 있다.

p. 30 – p.31
" 코트에서 토니 삼촌은 늘 나에게 더 좋은 일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생각하도록 독려했다. 상대 선수와의 경쟁에 더 유리한 왼손으로 테니스를 치도록 토니 삼촌이 시켰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기자가 지어낸 것이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매우 어릴 적에 테니스를 시작했고, 네트 건너편으로 공을 보낼 만큼 힘이 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포핸드로 칠 때나 백핸드로 칠 때나 라켓을 양손으로 잡고 쳤다. 어느 날 토니 삼촌이 “프로선수 중에 두 손으로 (포핸드를) 치는 선수는 없어. 우리가 그 첫 번째 사례가 될 순 없으니, 그 버릇을 바꾸어야만 해”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변화를 주기로 했는데,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치게 되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농구, 골프, 다트 던지기도 모두 오른손으로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난 축구에서는 왼발을 쓴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좀 더 세다.
사람들은 양손 백핸드를 사용하는 내가 왼손 포핸드로 경기하는 선수가 된 것이 이득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사실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보다 더 자유자재로 양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특히 크로스 코트 샷 등을 칠 때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점은 토니 삼촌이 '신의 한 수' 같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토니 삼촌이 뭔가 나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플레이를 하라고 시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토니 삼촌이 나를 엄하게 대했다는 것은 맞다. 우리 엄마는 내가 테니스 훈련이 끝나고 가끔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는 걸 기억한다. 엄마는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엄마한테 토니 삼촌이 나를 “마마보이”라고 부르곤 한다는 것을 얘기하니, 엄마는 힘들어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토니 삼촌에게는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랬다가는 일이 더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니 삼촌은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내가 7살에 시합에 나가기 시작하자 좀 더 엄해지셨다. 아주 무더웠던 어느날, 나는 시합에 물병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토니 삼촌이 가지고 오거나 하나 사줄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내가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왜 반항하지 않았냐고? 나는 테니스를 하는 게 너무 좋았고 승리를 하기 시작하자 더욱 더 테니스를 즐기게 된 데다가, 나는 순종적이고 유순한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다루기 쉬운 아이였다고 늘 말한다. 내가 테니스를 즐기지 않았다면 아마도 토니 삼촌의 그 엄격함을 견뎌내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를 신뢰하기에, 그가 언제나 나에게 최선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다.




2013년 1월 1일





내 일생에 단 한 번,
정동진에 새해 해돋이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날씨가 흐려서 
이게 전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이 너무 막혀서 12시간 정도 걸렸다 @.@
추억은 남았지만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 ㅋㅋ




이 코트를 입은 내 뒷모습은 나도 처음 보네...






Stan Wawrinka... V 사운드가 아니었네?!?








예전 atp 발음 가이드라인에 va-VINK-ah 라고 나와있기도 해서 그런지
그동안 한국에서는 당연한 듯 '바브린카'라고 쓰고 (사실 V와 ㅂ의 차이는 크지만, 와우린카, 와으링카는 쓰기 이상하기도 하고)
나도 그의 이름을 읽을 때는 V 소리를 첨가하곤 했는데....

2015년 윔블던 때 atp에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본인의 성 발음 정정해달라고.... 

2002년부터 프로 생활을 했는데 12년간 가만히 있다가
2014년 호주오픈 우승하고 그 다음 메이저 대회 롤랑가로스 때는 이름을 Stanislas에서 Stan으로 줄이더니,
2015년 롤랑가로스 우승하고는 그 다음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때는 성 발음 정정 요청ㅋㅋ.

메이저 트로피 하나씩 수집할 때마다 자기 이름을 확실히해서 유명세를 공고히하고 싶은 모양 :)

2016년 US 우승하고, 그 다음 메이저대회인 이번 호주오픈에서는 아무 일 없는 것 같으니
이제 만족하나보다ㅋㅋㅋ


























 

5월 휴일의 차이나타운


인천역 차이나타운 공화춘






이곳은 줄서기 경연의 장.
줄서서 치열하게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내가
가족들 때문에 한 시간 줄서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다.
신기한 것은
이 차이나타운 안에는 사진에 나온 대표적인 곳 외에도 중식당이 정말 많은데 어느 곳엘 가도 최소 30분 이상 대기줄이 있다.








맛은.....
굳이 1시간 기다려서 먹지 않아도 될 맛.
(정말 친구들에게는 줄이 길지 않을 경우에만 먹으라고 하고 싶다.)
인천역에서 가져온 중국인을 위한 안내책자에서 발견한 송월동 동화마을은,
그냥 보면 유치, 기괴(??)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 사진발이 좋다.
그냥 한 번 지나가 볼 만은 함.
차이나타운에서 가까운 도보 거리.

가끔은 이런 일도.... 2.

in cafe

오랜만에 카페에서 책을 읽기 위해
가까운 곳을 두고 인적이 드문 카페까지 일부러 더 걸어왔다.

교회 건너편에 있는 곳이라, 예배가 끝났는지 한 무리가 쏟아져 들어온다...으아...
웬 가족이 내 옆에 앉더니, 시끌시끌...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딸 두 명의 남자친구 두 명이 차례로 들어온다.
둘 다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인사시키는 자리...파리바게뜨에서??? 
아무튼, 예상치 못 하게 이 가족 딸내미들의 연애 스토리와 만난지 몇 일 되었는지를 다 듣고 있다. 안 들으려고 해도 다 들리는 이야기 ㅎㅎ 나름 재미있네...
 
책을 읽으려던 조용한 오후는....인터넷질 30: 책 읽기 30: 남의 가족 얘기 들어주기 30...으로 변화. 교회 앞이라 그런지 역시 엄마의 교회 출석 권유로 끝을 맺는구나 :)
 

댓글 2
  • *성팔씨*
    ㅋㅋㅋㅋ 연애스토리 드라마틱해?
    2013/01/20 19:17
     
  • nothingmatters
    그닥...엄마를 비롯해서 이들이 모두 카자흐스탄에 좀 체류한 경험이 있는 거 같은데, 그때 서로 좀 알고 지냈다고 했음. 한 커플은 69일 됐고 ㅎㅎ 한 커플의 남자는 아버지의 "쇼핑백"사업을 같이 하고 있댔음 ㅋㅋ

내가 잠시 살았다는 걸..













사진만 보면 엄청 평화롭게 보이는 王兰庄 花園.
13년 전 모습이니, 지금은 얼마나 변했을까.







데니스 이스토민 :)

나달, 머뤼, 조코비치 꼼짝 못하게 만드는 이스토민의 활약


우즈베키스탄 테니스 선수 데니스 이스토민.
 
니시코리-루옌순에 이어서 아시아계 국가 출신 선수 중에 3위권이며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ATP250 시리즈 2010년 뉴헤이븐, 2012년에 새너제이에서 결승전에 올라간 적이 있다.
2015년 들어서 드디어 투어 1회 우승을 기록하고, 윔블던과 US open 16강까지 간 경력이 있어
이형택 선수와 살짝 비슷한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러 다른 여러 영상들을 보다가 이 선수가 나달-머리-조코비치의 아성을 위협했던 장면들을 우연히 발견해 한 번 모아봤다^^
 
1. 2010년 US open 2라운드, 2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의 "인생샷"
내가 이스토민이라는 선수를 처음 알게 된 경기가 아닐까 싶은데, 1세트는 나달이 가져가고 2세트는 이스토민이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간 끝에 인생샷을 하나 남겼다. 유튜브에 두 가지 정도의 영상이 있는데, 하나의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시작 부분이 약간 특이하고 소리가 없는 아래 영상을 가져옴. http://youtu.be/IZoZtOobj3s
Nadal vs Istomin US Open 2010
YouTube
 
코트 바닥에 스키드 마크까지 남기고,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낸 이스토민 인생샷.
이 포인트로써 타이브레이크 스코어가 "이스토민 5-1 나달"이 되어서 나달도 별 수 없구나 싶었는데....
이스토민이 이 샷 하나에 모든 테니스 역량을 총동원한 나머지, 그의 득점은 거기서 끝나고 나달이 6포인트를 스트레이트로 따내 5-7로 타이브레이크가 끝나버렸다는 슬픈 전설이....
이스토민 타이브레이크 전체
 
 
 
 
2. 2013년 US open 16강전, 앤디 머리 "인생 굴욕샷 유도"
이 영상도 소리가 없음. 앤디 머리측에서 '금지 영상' 요청이라도 했는지 ㅋㅋ 이 장면 제대로 편집된 영상 찾기 힘들다.
http://youtu.be/AbvAMUywd3U
The worst shot of Murray s season Andy Murray vs Denis Istomin US Open 2013 R4)
YouTube
앤디 머리의 worst ever 대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스토민의 between the legs 샷.
앤디 머리의 푹 숙인 고개와 이스토민의 표정이 재미있는 포인트.
당시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장면. 그때 당시 이것에 대해 재밌게 써서 캡처해놓고 싶은 외국 기사가 하나 있었는데....다시 못 찾아서 아쉽다.
이젠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기억도 안남.
 
 
 
3. 2014년 호주오픈 3라운드, 조코비치를 상대로 한 이스토민 "인생 게임"
(# 여기서 말하는 '게임'은 테니스에서 4포인트를 따서 0-15-30-40->가져가는 한 게임을 말한다. 작년 US open 때 한 기자분이 테니스에서의 게임과 매치가 무엇인지 이해 못 해서 조코비치의 발언을 오역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어떤 기사에서 조코비치가 4강전에서 바브린카를 5세트 혈전 끝에 이기고 나서 "이 경기를 이긴 사람이 이 대회(US open)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었다. 조코비치는 기량도 뛰어나고 자신만만한 선수지만 인터뷰 내용은 신중한 편인데...이게 뭔 소리지? 해서 원문을 찾아보니 역시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조코비치가 바브린카랑 무한 듀스가 오고 가는 1 게임을 십여분간 했을 때 그 와중에 '이 game을 가져가는 사람이 이 match를 이기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오역은, 본인이 잘 모르는 여러 종목까지 커버해야되는 한국 스포츠 언론의 현실 때문이겠지.)
http://youtu.be/KO24q_xS8kw
The Perfect Game
Denis Istomin stuns the crowd with the perfect game as he holds serve at love on Novak Djokovic. It goes a little something like this: Ace, incredible runnin...

YouTube

------> 아, 이 영상이 제일 볼만한데, 저작권 때문인지 삭제됐네 ㅜㅜ
 
이 정도면 이스토민 생애 최고의 완벽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모든 게임을 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당연히 지금쯤은 BIG"5"가 형성되어 있을 듯.
게임 중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폴트라는 자비에 환호하고 상대방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조코비치 :)
 
 
 
 
- 이스토민은 나달과는 한국 나이로 동갑이고 조코비치보다는 형인, 이제 와서 갑자기 탑 플레이어가 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이긴 하지만
앞으로 그래도 경기를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선수임을 알려주는 장면들 :)

가끔은 이런 일도....





늘 사람 많고 시끄러워서
가기 꺼려지던 동네 빵집.

오늘도 목소리가 쨍한 여자 한 분이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휴....역시.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다 나가버렸다.

인생에서 두번째 ㅋㅋㅋ
한창인 시간대에 카페에 혼자 남는 일.






비_와 당신의 이야기



버스를 타고 뒷쪽 자리에 앉았다.
압구정, 청담쪽을 지나가던 길에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한 명 탔다.
그가 뒷쪽으로 걸어올 때까지 흘낏 보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인 차림새였다.
트렌치 코트와 손에 든 서류 가방. 그리 훤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내가 그의 옷차림새를 계속 쳐다본 것을 스스로 민망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계속 걸어와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단정히 빗은 그의 뒷머리에 둥지를 튼 왕비듬.
'으악...'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살짝살짝 흩어져 있는 눈송이들...
앞모습을 아무리 잘 꾸며도 뒷모습에서 모든 점수를 다 깎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 자리가 다 차서 자리를 옮길 데도 없었고, 계속 내 눈앞에 그 비X은 왔다갔다 했다. 나도 뭐 아주 깔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보고 있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솔직히 약간 역했다. 트렌치 코트 뒷덜미에 떡하니 박혀있는 "T I M E" 로고. (남동생이 이 얘기 듣더니, 이 브랜드 남성복도 살짝 고가라고 했다.)
비싼 옷도 소용이 없구나.


첨에는 너무 웃겨서 누구한테 사진찍어 보낼까 생각도 해봤다.
'아니야, 찰칵 소리가 날 거야. 이 남자 자기한테 관심있다고 착각할지도'
영업을 뛰시든지, 데이트를 가시든지, 이 상태로 가면 점수 엄청 깎일 텐데...살짝 얘기라도 해줘야 하나?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서 내리기 직전에 내 옷의 목 뒤 상표를 확 뒤집고 내렸던 얼굴 모를 사람 에피소드도 기억났다. 보다보다 얼마나 뒤집어주고 싶었으면 내리기 직전에 날 기습공격 하고 내리셨을까...난 그 사람 얼굴도 못 봤다.)
바로 30cm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안 보려고 혼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문자 메시지를 찍었다. 그런데 보낼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일상을 공유할 사람...
아, 나랑 웃음 코드가 비슷한 사람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새에 그 남자는 신사동에서 내렸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길.... 
한 달도 넘은 옛날 일인데...나중에야 혼자 이런 상상도 해봤다.



내가 그 사람 미래를 걱정해서 작은 쪽지를 쓴다.
그 남자가 내리기 직전에 살짝 쥐어준다.
그 남자가 '힛! 또 나 옷 잘 입는 건 알아가지고...'라고 생각하며 쪽지를 펴보면 거기엔 이런 내용이 써 있다.
'저기요,
당신의 뒷머리에 비듬이 너무 많습니다.
보기가 좀 안 좋았어요.
어디에 가시든, 정리 좀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하시는 일 망치실까 걱정 되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썼어요' 
이게 바로 비ㄷㅡㅁ과 당신의 이야기이다.


나와 남




가끔 옷가게를 타인과 같이 둘러볼 때
"이 옷 봐. 딱 니가 입는 스타일이다."라며 남이 나에게 건네주는 옷이 한 번도 맘에 든 적 없는 게 신기하다.
난 그런 옷을 입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사람들은 내 스타일이라고 한다.
역시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다른가보다.

내 맘에 맞게






S size가 재고가 없어서 M size를 주문했는데
확실히 나에게 크다.

누군가는 기숙사에서 빨래 건조기를 돌리다가 옷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 옷도 어쩌다가 옷이 줄어드는 경우 없을까? ㅋㅋ 

건조기 탓에 옷이 줄어들었다는 그 친구는, 거의 아기옷 수준으로 옷이 작아졌다고 했다.
괜히 옷 줄어드는 거 바라다가 아예 못 입게 될 수도 있으니....걍 바랄 걸 바라자.
모든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시간이 짧아서 더욱 힘들다


언니가 응모한 한국 영화 시사회에 엄마 이름으로 당첨되었는데, 언니에게 일이 생기면서 사실상 아무도 엄마랑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나는 한국 영화 보는 것을 그닥 안 좋아하고..... (내가 발연기를 감지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영화를 보는 것이 맘 편하다)

시사회 시간이 너무 늦어 70대의 엄마 친구분들은 그 시간에 외출을 안 하신다고 하고... 내가 엄마한테 엄마친구 한 명이라도 더 물어보라고 했는데 '아마 아무도 안 갈 거야'라면서 마음을 닫아 건 엄마는 미동도 없으시다. 이렇게 버티면 할 일 없는 딸인 내가 따라나서겠지.... 하는 마음이셨겠지.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마음이 안 내킨다. 게다가 극장도 집에서 좀 멀다. 시사회 표를 양도 못 하고 불참하면 다음에 불이익이 있다고 한다. 극장 근처에 사는 '사돈(심지어!)'에게까지 연락해 보았는데 약속이 있다고 한다.


친구랑 같이 가면, 이왕 거기까지 가는 김에 근처 백화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볼일을 좀 보고 '환승 할인'을 이용해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극장까지 가고 싶은데, 나이 드신 분들은 한사코 지하철 이용만을 고집하신다 ㅎㅎ 지하철은 무료니까. 

엄마를 극장까지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 백화점 볼일은 포기.



엄마와 같이 외출을 해보니, 역시 쉽지 않다.
생각과는 다르게, 나이 드신 분들은 조급하다. 늘 뭔가에 쫓기는 분들 같다. 나이가 들어 인생의 여유를 느긋하게 체득하는... 그런 일은 없나보다.

지하철 두 편이 다닥다닥 붙어서 오길래, 내가 이번 걸 보내고 다음 걸 타고 가면 널널하게 앉아서 가겠다고 했더니 그냥 꼭 이번 것을 타야겠다고 하신다. 퇴근 시간에 복작복작 극장 근처 역에 도착한 뒤, 극장에 접근하는 통로가 복잡한데 엄마는 길도 잘 모르시면서 우왕좌왕 성급하게 움직이고 아무 엘리베이터나 막 타려고 하신다. 

좀 더 차분하게 표지판을 보고 움직이면 되는데, 돌발 변수가 나올 때마다 너무 급하게 선택하고 움직이신다. 같이 외출하기가 어렵다.


이제 나도 늙고, 엄마도 늙고
함께 할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텐데, 뭔가를 같이 하기가 점점 어려운 존재가 되어간다. 함께 할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닌데, '노인 특유의 고집'이 늘어 같이 있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실 시사회에 따라나설 때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엄마와 시사회를 갈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에서 따라나선 거였다. 물론 이번주에도 Allied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한 편 같이 보기는 했지만, 그냥 극장 상영작 말고 시사회 말이다.


시간이 짧은데...
시간이 없는데...




음.
그래서 노인분들은 다들 조급하시구나.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
시간이 나를 안 기다려줄 것 같아서.



시간이 짧아서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함께 하려 노력해야겠지.
시간이 짧아서.





그렇구나




"i am heathcliff.
he's always, always in my mind."


소설 Wuthering Heights의 명문장.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진짜 좋아하는 존재를 만나면 그 대상과 자신의 정체성이 합쳐지는구나.
그리고 본인도 모르는 새에 그 존재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언제나 그것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


좋아하는 줄 몰랐더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머리 속에.










9년 전에 쓴 글.

으아...wireless잡힌다...


골목 밖으로 소가 걸어다니고..(뿔을 보면 무섭다)

창 옆에선 다람쥐가 울고..(다람쥐가 소리를 낸다는 거 첨 알았다)

그런 이 동네에 무선인터넷이 웬말인고...

어쨌든 잡히니까 지금 쓴다.
여태까지 중에 제일 속도 잘 나온다

아...이 글 제발 올라갔으면...


p.s.
내일이면 모든 훈련을 끝내고 정식 봉사단원이 된다.
그런데..아직 살 집을 못 구했다.

내게 집을 주세요ㅠ.ㅠ

그림의 떡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사서
사진 한 장 찍어놓고,
포장도 정성스럽게(??) 내가 직접 했는데
선물 줄 일이 사라져버렸다. 

깨지지 말라고 포장을 세 겹 정도 꽁꽁 해놓아서
지금 다시 열어보지도 못 하고 있다.

어디 되팔고 싶다 ㅎㅎ

남의 비리 덕분에 마음이 놓임?!





현재 한국 뉴스를 뒤흔들고 있는 집안에 속한 어떤 사람이
98년도 대학 입시 부정 입학에 대한 의심을 받았고, 졸업 성적 처리도 편법적이었음이 인정되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증거를 댈 수 없어 입학 무효 처리나 졸업 취소를 할 수 없다는 대학 측의 최종 입장이 나왔다.


그 당시에 또다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학교에 입학한 다른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인데....
아마 이 사람들이 대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 같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자신의 부정 입학에 대해 불안해했을 수도 있는데...
장모씨의 사례를 통해,
"아, 이제 나는 뭔가 꼬리를 잡혀도 영원히 입학 취소 될 일은 없겠구나"하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


국정 농단 파문 덕에, 마침내 발 뻗고 자는 의문의 수혜자가 생겼을 수도?!?!
















몬떼레이 멕시코 역사박물관










@ Museo de Historia Mexicana, Monterrey








옛날 사람들....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예전 한국 사람들.
그 끄트머리는 아직 60-70대 노인에게 남아있으며
그 자식 세대는 아직 고통받고 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딸들"이 쓴 글을 많이 읽어보았다.


단순히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딸은 시집 가면 남의 집 사람',  '혼사 치를 때는 딸 가진 게 죄인, 여자가 불리하다', '아들이 낳은 손주만 우리 새끼' .... 이런 취급을 받으며, 관심이든 재산이든 덜 받고 자란 딸들...

아들인 것이, 딸인 것이...그렇게 차별 대우의 근거였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은
그냥 딸을 덜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덜 챙겨준 것이고.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저 더 좋았던 것이다. 그 시대 부모들이 좋아하는 '대를 이었다' '도리를 다했다' 이것 말고도, 그저 아들을 더 사랑했던 것이 맞다.

'우리 나라 전통 문화가 그랬는데 어쩌겠니' '남들처럼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는 핑계.
그저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는 것은 본능이다.


그 시대 어머니들에게 최고의 성취는 아들은 낳은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냉랭했던 시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살림 한 번 안 도와주던 남편이 아들을 낳고 몸조리를 하는 동안 살림을 도와줬다....이거 상당히 큰 거다.
그래서 동시에 아들과 함께 긍정적 감정이 연합되고, 뿌듯한 존재가 된다.
나에게 이런 성취감을 가져다 준 존재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내 아들.

딸을 낳는 순간(특히 딸 출산이 두번째 이상일 때) 느꼈던 아득함과 죄송함, 시부모와 남편의 냉대.... 그것은 조용히 마음 속에 남아, 부지불식간에라도 딸을 밀어내게 된다. 이번 출산은 '실패'이고 다음에 다시 '성공'에 도전해야 한다는 부담....


본인이 여자라서, 딸이라서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은 딸을 덜 좋아하고, 덜 아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 차별을 행했던 부모조차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라는 생각에 갇혀 자신도 그럴 리 없다, 난 공평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저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고, 마음이 가고, 돈이 더 가는 게 맞다. 그게 자연스런 행위이다. 손가락이 똑같이 아픈데 '넌 씩씩해서 의지하고 믿었으니' 덜 챙겨주고 덜 감싸주는 건 없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돈을 쓰듯, 사랑이 식으면 데이트 비용을 아까워하듯,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쓴다.

부모도, 자식도,
마음 속 깊은 자기 자신을 몰랐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 하면 나도 고통스럽지만,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의 고통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관심이 없다.

'사랑'과 '돈'은 생존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렇게 중요한 '돈'을 수억대 술술 써도 안 아까운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다. 돈을 좀 써야 되는데, 뭔가 계산을 하게 되고 나에게 무엇이 돌아올지 손익을 계산하게 되고 내 자존심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덜 사랑하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것이 강아지이든, EXO이든, 괴상한 취미이든, 돈 쓰는 게 아깝지 않게 된다.

'늙으면 아들 집에서 살 거니까 아들네 집에 돈을 더 줬다'라고 변명한다. 이것 역시 "아들이 더 좋다"라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말년을 싫어하는 존재와 함께하고 싶을까.  마지막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존재와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안 좋아했던 것"
그저 안 좋아해서 딸은 대충 성년까지 키워놓으면 알아서 시집가겠지 하는 것.
아들은 더 좋아하니까 내가 책임지고 장가보내고 집 사주고 보살펴주고 내가 늙어서 돌아갈 곳이라고 믿는 것.
아직도 있다.


옛날 사람들.









Adam's apple







울대뼈가 좀 튀어나온 여자
:)


윗사진처럼 최신 폰카메라의 뽀샤시 효과를 뺀,
정직한 9년 전 사진에도....





음.... 남자인가? 






Fletcher's song in the club







https://youtu.be/UFG3jBq5ogA



영화 위플래시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곡.
원래 유명했던 재즈 곡일줄 알았는데....그건 아닌 듯 하고.
제목으로 짐작해보면 딱 영화 이 장면을 위해 작곡된 듯 하고, 그래서 이 1분 30초가 전곡이다.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