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8.




2007.10.29 10:43 

훈련소 8.


이제 5주 훈련의 반환점을 돌았다.
오늘은 봉사단 규정 시험을 봤다
이제 큰 일은 거의 끝났다.
 
사람들이 시험장을 나와서 책 펼치고 답 맞추고 그랬다.
ㅎㅎ 고등학교 때 같아.
다들 은근 열심히 한다.
 
밤11시 무조건 취침에 아침 6시 반이 점호인데,
지지부진한 스리랑카 연구 보고서를 맘잡고 완성하기 위해
일욜 새벽 4시에 한 번 일어나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있었다.
정말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 생각보다 해당 분야 경력이 화려하진 않지만
나처럼 한가롭게 살던 사람은 없었다.
 
다들 좀 더 느긋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2년이라는 긴 달리기인데...
 
오늘도 1.8.km를 오랜만에 완주했다.
약간 뿌듯했다.

아직 어렸는데, 어른이었다고 생각했을 때.



2003.10.29 11:46 

동화 과정.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다 똑같다.
어릴 때 그렇게도 듣기 싫었던 말을 애들한테 그대로 반복하는 나를
볼 때...6학년 짜리들을 앞에 놓고 "대학 특례 입학"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
짜증이 나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대학 3학년 때, 2학년 때 이미 들었던 수업을
친구 따라 잠깐 들어갔을 때 교수님이 작년과 똑같은 부분에서
똑같은 농담을 하시는 걸 보고 비웃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수업을 다섯 번 하면서 같은 농담을 다섯 번 하는
나를 발견한다.--;;


고딩 때 갑자기 확 뒤집어져서 애들 출석부로 후려 패는 선생들
이해가 안 갔었다.
하지만 어제는 4학년 애들이랑 수업하다가 남자 애들 몇이
나를 자극(?)하는 바람에 들고 있던 얇은 책으로 그 애들
머리를 내려치고(?) 말았다.


하고 나선 금방 후회가 되고, 밤이 되도록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 때 그 선생님들 이해가 갔다.
자제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순간적으로 끓어 올라
광분(?)하는 마당에....쩝


스물 다섯, 스물 여섯...
나도 다 똑같은 어른이 되어 간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주기적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만성적인 등 통증이 있는데, 사실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 통증을 잊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 영화나 공연 같은 걸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시 뻐근해짐을 느낀다. 

지난 4월에 제주도에 갔는데 온수풀이라 괜찮을 줄 알고 밤에 야외 수영을 했다가 감기에 걸렸다.
제주도에 다녀온 뒤.....그때 이미 중국 비자를 신청해놓고 비행기표를 구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출발했다. 여행 초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목이 약간 부어있었고 몸에 약한 감기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5박 6일을 지내면서 괜찮아졌고, 그저 그동안 먹은 무수한 감기약 때문에 물가 싼 중국에서 술을 제대로 못 마신 것만 아쉬운 상태가 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나은 줄 알았던 감기가 제대로 발병해 끙끙 앓았고, 생전 처음으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증상까지 겪었다.
돌이켜 보니, 중국에 있는 동안은 볼 것이 너무 많았고 하고픈 것이 많아서 아프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약으로도 누를 수 없는 강렬한 통증이 아닌 다음에야, 결국은 다른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통증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또한 두 곳의 통증을 동시에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 이것은 어떤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실재하는 일이구나...하고 배운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밀고 당기고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게임을 하던 중에 한 출연자가 머리채를 잡히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허벅지 부분을 깨물리고 있었는데, 그 출연자는 평소에 머리숱에 예민했던지라 머리에 신경 쓰느라고 자기 허벅지를 누가 깨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 

최근에 유난히 죽음을 접할 일이 많아서....인생의 마지막 단계가 떠올랐다.
대부분이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서, 앉아서, 보낼 수 밖에 없는 시간들.
내 통증을 잊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회색 병실에서, 그저 통증을 묵묵히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시간들.
주의를 다른 데 돌릴 수 있어야 고통이 줄어드는데, 주위에는 나만큼 아픈 사람들만 있는 곳.


그 단계에 가서는 무엇으로 통증을 이겨내고 고통을 잊을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 좀 나으려나?
주위를 살펴 보면, 나이가 많은 분 혹은 만성질환으로 오래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온 분이라 해도 결국은 예상을 못한 채로 본인의 마지막 병실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았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그 길.... 
이 입원이 내 인생 마지막 입원이겠구나... 하는 것을 모른 채, 계속 반복되던 입원의 하나겠거니 하다가 마지막 길을 가는.

고통을 그저 견디는 일 말고, 뭔가 주의를 돌려 줄 다른 것이 더 많은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병실에서 삶을 마감하는 일....이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듯.
내가 더 늙으면 또 어떤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인생을 가로질러...




2006.10.24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맘에 안들어 내가 (얄)미워했던 어떤 이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이런 얼음판이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인생에 대해 한탄하고 있을 떄
스케이트를 신고 유유히 얼음판을 벗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까,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미워했던 것.
난 그 사람들을 미워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웠어야 했다.

댓글2



  1. ㅅㅎ진
    글솜씨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어...
    2006.10.25 01:37 

  2. 내가 아무래도 인생을 더 알아갈 때는 회사 다닐 때보다는 집에 혼자 있을 때인 것 같아...하지만 정신(?)에 불을 지필 연료를 얻을지라도...육체에 불을 지필 연료..즉..돈 같은 거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게 문제...ㅋ
    2006.10.26 11:20 





갑자기 떠오른....




벌써 십여년 전 대학 동기 결혼식.

지금이야 내 대학 동기들, 후배들도 사회 생활 경력도 오래 되고 여기저기 가보고 산해진미도 많이 먹어봤겠지만.... 그때는 다들 고만고만하고 경험도 별로 없고 여전히 학생인 친구들도 있을 때였다.


동기 중에서 가장 용돈을 아낌없이 쓰던,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는' 대학 동기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답게' 서울 시내에서 신랑신부 입장 통로가 가장 길다고 알려진 대형 볼룸이 있는 호텔에서 결혼했다. 신랑신부 집 양측이 다 사업가라 그랬었던가...🤔 인맥이 두터운지 어르신들의 참석이 엄청 많아서 그 큰 홀을 다 채웠다. 대학 동기들은 호텔에 딸린 중식당, 일식당으로 밀려났다.

사실 말이 밀려난 거지, 일식당에서 1인에 10만원 안팎의 코스 요리를 제공받았으니... 그 재력에 감탄할 밖에.

서양(?)쪽 결혼식이야 하루를 꼬박 잡고 밤까지 춤추고 파티를 벌이지만, 한국식 결혼식은 그리 길게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에 약속을 하나 더 잡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다들 꽃단장 하고 나왔는데 집에 그냥 들어가기도 아까울 것이고..👸🏼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결혼식장에서 밀려나, 중식당에 갔다가 거기도 만석이라, 또 자리를 옮겨 일식당에 자리를 잡은 나의 무리들은 식사 시간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다.
일식이 코스로 나오고 있는 와중에, 결국은 한 명이 다음 약속이 있다며 일어섰다.

다음 코스 요리를 들고 들어오던 직원이 아쉬워 한다.

"어머, 벌써 가세요? 가실 때 가시더라도 참치 뱃살은 드시고 가셔야죠~~. 제일 맛있는 건데..."

직원들이 내려놓은 회 접시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서로 바쁘게 시선 교환을 하다가, 직원이 나간 뒤에야 말을 시작했다.


"근데, 이중에서 참치 뱃살이 어떤 거야?"
"뭘 알아야 먹지. 하하핳"


지금처럼 '맛집 탐방' , '먹방 자랑'이 일상이 아니고,
생일날 '베니건스' 'TGI Friday'나 가면 그게 최고 호사이던, 20대 시절 이야기. 🤗


만국 공통




예전에도 블로그에 그런 내용의 글을 한 번 썼지만,
한국과 스리랑카의 페이스북 사용자간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 사람들은 보통 일상의 본인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지만,
스리랑카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그림 파일, 사진 파일 (인생에 도움이 되는 문구나 유머 등을 써넣은) 을 공유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한다.

물론 나의 랑카 제자들도 본인 사진을 올리지만
정말 대부분의 시간은 아래와 같은 파일을 공유하는 데 쓴다.








싱할러 문자를 더듬더듬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에는 어려움이 많아서
(특히 스리랑카어는 구어와 문어에 차이가 크다. 구어만 배운 나는, 읽기가 더 어렵다....라는 핑계도 있다 ㅎㅎ) 
내 페이스북 화면에 보이는 수많은 저런 그림 파일들을 무시하고 넘어가곤 하는데....

위의 사진은 보자마자 뭔가 느낌이 왔다 ㅎㅎㅎ


ෆේස්බුක්이나 පොටො같은 단어는 쉽게 해석이 가능한데...그것은 영어 단어를 음차해서 적은 것들이가 때문.😝 
앞의 것은 페이스북, පොටො는 poto = 사진이다. 'ph'에 해당하는 문자도 새로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poto 라고 써져 있네.

ෆේස්බුක් එකේ මෙලෙස පොටො එකක් නොදා උවද ඔබට ගුවන් යානයකින් ගමන් කළ හැකි බ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해석해보니,  "그거 알아요? 이런 사진을 굳이 페이스북에 안 올려도, 당신은 항공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거" 라는 내용이다. 😆 공항 가면 이상하게도 저런 사진을 올리고 싶은 것은 정말 만국 공통인가보다.


원래 본인의 일상을 페이스북에 중계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페이스북 실종(?) 2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저런 항공권/공항 사진을 올리고 다시 실종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해외여행이란 건..... 정말이지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공지사항이다. :) 







세월이 흐르고 변하는 것




작년 얼떨결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제주 골프 대회.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서 고생도 안 했고 (제주도의 바람을 그대로 온몸으로 느끼며 추위에 덜덜 떠는 자리도 있었는데, 내가 맡은 자리는 하루 종일 해가 쨍쨍), 세계 1위를 찍는 선수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새 1년이 지나, 올해 또 그 시기가 왔다.
올해는 그냥 집에서 중계만 지켜보았다. 나는 골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그 골프 코스가 눈에 익게 되었다는 것만 신기했다. :)


대회 시작 전 자원 봉사자를 위한 파티(?)도 있는데, 작년에는 그 자리에 어니 엘스가 왔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세계 1위" 브룩스 켑카가 왔다고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봉들에게 멋진 인사말을 남겼는데.... 기사를 보면 CJ cup 관계자가 했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작년의 브룩스 켑카는 인터뷰 때 말을 조리있게 잘 하고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에 cj cup 우승을 통해 세계 1위에 등극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ㅎㅎ.
요즘 테니스계의 신성들, '망나니'들이 생각나면서.... 그래, 다들 때가 되면, 곳간이 차면, 점잖아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을 부여받은 엘리트 운동 선수들... 그들은 아무리 겸손해지려 해도 자기가 잘났다는 것, 남들보다 쉽게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고지가 저기인 것 같은데... 오르지 못하고 그 고지 언저리에 맴돌게 되면 다들 조바심도 나고 기행도 일삼고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정상에 한 번 오르고 나면...뭔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고, 뭔가에 대해 더 이상 안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새 지평이 열리는 듯 하다.


40대를 넘어선 나도... 그래서 이제는 그냥 20대 초반 테니스 신성들의 망나니짓이 그냥 귀엽고, 개성 표출인 것 같아 별로 밉지 않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도 어느새 대가가 되고, 애가 몇 딸린 아버지가 되면, 명언과 교훈을 날리는 점잖은 선수가 될 것이다. 사실 조코비치만 해도 만년 3위 시절에는 다른 선수 흉내를 잘 내고, 코믹한 광고를 찍는 가벼운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조코비치는 이미 살아있는 전설 중의 한 명.



그리고 또...
나이가 좀 더 들면 다른 자세를 갖게 된다는 걸 느낀 다른 사례.


30대 초반, 베트남 항공을 타고 한국으로 오다가... 거의 텅 빈 비행기에서 애를 둘 데리고 탄 나보다 열 살 어린 베트남 엄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 그 여자분의 입국 신고서 작성을 도와줬기 때문에 나이를 안다.) 

밤비행기에서 아기들이 울고 보채니까 그 아기엄마는 계속 내 눈치를 보았고.. 나는 그냥 괜찮다는 신호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소음에는 어느 정도 관대한 편이고, 냄새를 더 질색하는 사람이라....

그 당시에는 그 어린 엄마에게 눈치주지 않고, 입국 신고서 작성을 도와 준 것만 해도 내가 엄청 성숙한(?) 자세를 보인 거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하지만 좀 더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나는 어차피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아니고, 아기 엄마는 혼자서 아기 둘 데리고 고생중이니... 지금 같으면 그 아기 엄마 옆자리로 가서 같이 아기 봐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다. 나이 드니 오지랖도 더 넓어져서.😝 하지만 그 나이 때는 절대 그런 생각을 못 했다.


시간은 흘러 가고,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일이 많다.



 

기말고사



2009.10.19 05:52

캘러니야 대학교 기말고사!






나름 철저하게 관리되는 기말고사 시험 답안지.
결시자의 학번까지 꼼꼼히 적어서 이 봉투에 밀봉해서 제출한다.

강의에 등록을 해도 등록자의 학번과 이름을 전산화한 출석부조차 안 나눠주는 학교지만😒
대신 시험칠 때 만큼은 시험에 응시했다는 증거가 전산화되어 있어서, 그 출력물을 따로 걷어서 작은 봉투에 넣는다.







이렇게 밀봉된 봉투를 뜯어서 내가 채점하면 됨!

그러나 캘러니야 대학교는 절대평가(쳇!)
내가 원하는 성적을 내 학생에게 줄 수 없다.
한 문제 한 문제에 학생이 기록한 모든 성적을 꼼꼼히 적어서 제출해야 된다.
절대평가의 단점이 있으니...
65점을 받아도 무려.....
A- !!!

한국에선 65점이면 아주 못 한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A, B, C를 조정하기 위해, 점수 배점을 사후에 조금 고치곤 한다.
생각보다 D를 주기는 쉽지 않더라... (마음 아파서)




가르치던 시절



2008.10.16 15:17 

열등생은 어떻게....??



2학년 역사 수업이 끝나고 스님 학생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역사 수업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이 잘 따라왔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시조까지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리랑카어로 단어 뜻을 옮겨 적은 handout도 만들어갔다.)


솔직히 2학년 클래스에서 꼴찌임이 명백한 이 스님은 뭐라고 중얼중얼
한국어도 아닌, 싱할리즈도 아닌, 영어도 아닌 말들을 하였고,
결국 요지는"수업이 어렵다. 하나도 모르겠다"였다.
자신과 단짝이었던 스님 한 분이 한국어가 어려워 불교철학 쪽으로 전공을 변경했기 때문에
자신은 친구가 없다는 거였다.


보통 이 곳 학생들은 두서너 명이 붙어 앉아서, 자기들끼지 토의(?)를 통해 수업 내용을 좀 더 파악하는 식이다.
친구가 없는 자신은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는 건가?
진작 말할 것이지, 왜 학기 중반에 와서 handout 9장을 내려놓으면서 왠지 보충 수업을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지...
처음에는 솔직히 기가 막혔다.
사실 성인 시기 이후의 외국어 습득은 수업 시간에 한 시간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집에 가서 본인이 철저한 예-복습을 해야 가능한 것인데... 다른 노력을 안 하면서, 외국어를 남들만큼 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빤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2학년인데, 자기가 한국어가 안 되는 거지..... 내가 못 가르쳤다는 건가? 난 이번이 첫 학기인데?

(나도 대학 3학년 때  "영어발달사"라는, 학생들이 대부분 수업을 거의 못 따라가는 강의를 들은 적 있었지만, 교수를 찾아가서 '수업이 너무 어려우니 나만 추가로 더 가르쳐달라' 라고 주장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스스로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뿐....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반쯤 이해하고 중간/기말고사를 봤는데, 지레 포기한 학생이 생각보다 더 많아서 저조한 점수로 A-를 받는 (상대평가라서) 기적을 보기는 했다.)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스님. 다른 학생도 다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다 따라오는데..."
"??????????"

2학년인데도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스님...


하지만 결국 내 잘못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천천히, 충분하게 가르쳤어야 했나?

그렇다고 다 알아듣는 학생이 있는데 열등생을 중심으로 수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못 따라오는 학생이 있는데 버려두고 갈 수도 없고....
아유....
어떡해...
이번 학기는 정말 초난감이야...

옛글 옮기기




2007.10.16 17:16 


훈련소 3.

1.8km 완주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아직은 마지막에 조금 걷지만, 첫 날 2.2km달리고 머리가 터지는줄(?) 알았던 것에 비하면 꽤나 발전했다.
 
스리랑카 현지어 선생님만 늘 오시지 않는다.
다른 여러나라로 파견되는 단원들은 저마다 문장을 연습하고 다닌다.
우리는 그저 까, 가, 다, 따....이런 것 밖에 모른다.
스페인어나 러시아어, 프랑스어 배우는 단원들이 쫌 부럽다.
 
하지만 이젠 느긋해졌다.
현지에 가서 직접 부딪히지 뭐.
안되면 영어라도 하지 뭐.
(스리랑카 사람들은 영어를 많이 쓰고, hello, thank you 등에 해당하는 현지어는 거의 쓰지도 않는다고 한다)
 
밥 세끼 꼬박꼬박 먹고 있고,
하루에 양 팔뚝에 예방주사 두 방을 맞기도 하고
장티푸스 약도 먹었다.
 
다들 이런 일들을 거쳐갔구나...
 0
 
2

댓글2



  1. 아, 신기하고 찡하다-
    2007.10.16 22:28 

  2. 일주일째...드뎌 1.8km 완주!!!
    2007.10.17 10:56 



톈진 국제공항의 무료한 한때.




저렴한 방법으로 여행을 잘 하는 편이라, 없는 형편에(?) 그래도 1-2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녔다.
2015년에 굉장히 저렴한 항공권을 사서 1년에 두 번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는, 그 덕분으로 여행에 좋은 여건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의 골드 등급, 몇몇 호텔 체인의 상위 회원 등급 획득) 그 뒤 3년 반 이상 여행을 한 번도 못했다.  ㅠ.ㅠ 이미 사라진 AA gold, Hilton Diamond 등급 같은 건 아직까지도 아쉽다. 적은 돈으로도 여행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인데, 한 번도 제대로 못 써먹고 기한이 끝나버려서. 


15년 전에 살았던 중국이 갑자기 너무 그리워져, 지난 4월에 3년 반만에 해외행 비행기를 탔다.
조금은 걱정했지만 모든 여정이 잘 흘러간 톈진 여행의 마지막 날, 
인천으로의 귀국 비행편 온라인 체크인을 마치니, 이런 번역투의 메일이 왔다.


"현재 확인되었습니다. 귀하의 좌석 번호는 14A이며 탑승 시간은 12:55:00입니다. 귀하의 항공기 출발 시간은 13:40입니다. 최소한 출발 3시간 전에 공항 터미널에 도착해야 합니다. 해당하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행 서류를 승인 받고 탑승권을 돌려받으십시오. 항공편의 체크인 컷오프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여행이 거부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에어차이나]"



최근에 중국, 또는 해외 여행을 자주 했으면 이런 협박(?)에 절대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이 이메일의 내용에 대해 뭔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됐다. 게다가 여기는 "되는 것도 안 되고, 안 되는 것도 되는" 중국아닌가. 지하철 한 번 타려고 해도 가방을 x선 투시기에 통과시키고 몸 수색을 받아야만 하는, 그런 중국.

'최소한 3시간 전 공항 도착? 컷오프를 못 지키면 여행 거부? 🤔 진짠가?'


수많은 해외사이트를 막아놓았다는 중국 인터넷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중국에서도 네이버를 통해 뉴스는 볼 수 있었다. 이메일은 내가 졸업한 학교 메일 계정으로 받으니 확인이 가능했다. 대신 Daum은 열리지 않았다. 네이버 뉴스는 열리지만, 에어 차이나는 원래 이렇게 빡빡한가.... 하고 사람들의 경험담을 검색해보려 해도 네이버 '블로그'는 열리지 않아 하나도 검색해볼 수가 없었다. 구글은 물론 안 열리고. 
그래서 타인의 경험담을 확인을 못하니, 이 메일을 무시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비행기 시간표를 보고 "마지막날은 13:40 비행기니까.... 공항에는 12:00쯤 도착하는 걸로 하자" 라고 계획을 세워놓고 출발했던 나였지만, 마지막날 예상치 못한 에어 차이나의 메일 하나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여행을 해서 소심해졌나 보다. 비행기 안 태워줄까봐. 😝


결국 예상보다 일찍 호텔에서 10시를 넘겨 길을 나섬. 
마지막날 머물렀던 호텔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어차피 쇼핑몰 지하 식당가를 통과하게 되어있어서... '비행기 한두번 타보나... 성수기도 아니고 세 시간 전 도착이 말이 됨? 걍 여기서 뭔가를 먹고 갈까... '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냥 공항행 지하철을 탐.







공항에 도착하니 이건 뭐.... 
에어 차이나의 저런 협박성 메일은 사람이 바글바글한 베이징, 상하이 국제공항이나 또는 중국 국내선 이용 시 혼잡을 피하게 하기 위한 메일인 것 같았다.

톈진은 베이징에서 상당히 가까워 국제선 노선이 발달하지 않았다. 톈진도 인구 천만의 대도시라 수요가 충분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베이징으로 가면 되기 때문.
나도 15년 전에 톈진에 살 때 해외여행을 위해 베이징 서우두공항으로 차를 대절해 타고 갔었다.

심지어 최근에 베이징과 톈진의 중간쯤 되는 지역에 베이징 따싱국제공항이 세계 최대 규모로 새로 개항하였기 때문에 대형공항이 더 가까워져, 앞으로도 톈진 국제선 노선은 더 늘어날 일이 없다. 톈진 공항은 그래서 국내선 터미널이 규모가 더 크고 사람이 많다. 국제선 터미널은 썰렁하기 그지 없고 면세점도 문은 열려 있으나 장사가 되는지 마는지 알 길이 없다. 중간중간 조명을 꺼둬서 어두운 곳까지 있다.


어흑.
괜히 메일에 쫄아서 일찍오는 바람에 아무 것도 없는 공항에서 두 시간 이상 버텨야 되네....
설상가상 와이파이조차 연결이 안 된다. 
현지 전화번호로 연결하는 화면 밖에 안 뜬다. 시내에서는 어떻게든 연결이 됐었는데 여기서는 중국 전화번호 없이는 안 됨.
터미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왕복을 해봐도 별 건 없다.
 어휴.....


내가 비행기를 타게 될 게이트의 옆쪽 게이트(여기는 출발하는 비행기가 없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에어 차이나 앱은 허술해보여도 내가 타게 될 비행기가 지금 어디서 오고 있는지가 다 표시 된다. 
내가 12:55에 타게 될 비행기는 아침에 톈진에서 란저우라는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이다. 중국 땅덩이가 워낙 넓다보니 란저우 국내선 왕복에 소요되는 시간이, 톈진에서 인천 국제선 왕복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더 길다.ㅎㅎ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어서 다른 건 다 못해도 에어차이나 앱은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 그런데 란저우에서 오는 비행기의 착륙 시간이 임박한 건 알겠는데 국제선 승객을 12:55에 태우기엔 시간이 넘 촉박하다. 언제 국내선 터미널에 승객들 다 내리게 하고, 비행기 청소하고,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해서 새로 승객 태우지? 궁금했다.








사진 찍은 시간으로 봤을 때, 12:30분경,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비행기 등장.

이렇게 다음 비행이 임박한 비행기는 국내선-> 국제선 터미널 이동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착륙 뒤 곧바로 국제선 터미널, 다음 출발할 게이트로 오는 거였다.
국내선 승객들은 버스에 태워서 국내선 터미널로 보내면 되니까. 

여태까지 도착 항공기가 직접 게이트에 연결이 안 되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하는 경우는 
공항이 작아서, 게이트가 부족해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운항 스케줄이 빡빡한 경우에도 그러는 것이었다. 








곧 비행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옴.
공산주의 중국에서도, 역시 자본의 힘은 막강하구나.
항공기에서 먼저 내린, 아마도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인 듯한 사람들은 사진 속에 보이는 작은 미니버스로 안내받아 먼저 이동을 했다. 그 다음에 내리는 대부분의 승객들은 익숙한 그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
마지막으로 기장과 승무원들이 내리니, 그들도 남은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면 청소 과정이 시작되고, 국내선 운항을 마친 저 비행기는 이제 게이트의 탑승교와 연결이 되고, 새로이 국제선 승객을 태우는 것이다.


에어 차이나의 "시간 안 지키면 비행기 안 태워줘" 협박에 쫄아서,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를 태우게 되는지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
그리고 3-3 좌석 배열의 답답한 비행기였지만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서 편하게 왔다.








이런.....




약 1년 전쯤 쓴 글 중 일부.



"하지만 나는 싸이월드, 구글 블로그, 페이스북에 각각 다른 내용을 쓴다.
뭐 일상이 거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새 각각 다른 내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3년 전에 그렇게 낯설었던 구글 블로그가 이제 가장 편해져서

가장 마음 속 이야기는 여기에 쓰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절친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싸이월드는 그냥....미련이 남아서 예의처럼, 습관처럼, 끼적이는 내용들.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어쩌면 사회 생활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대부분이 스리랑카 학생들이라, 나는 거기서 '착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는 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혼자 좋아하고 살다가 한 방에 걷어차이고 이혼한 전남편 같고,
구글 블로그는 혼자 남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결국 내 옆을 지키게 된 새 남자친구,
페이스북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사귀는 친구 느낌이다.

아픔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북적북적 부대끼던 옛 시절을 못 잊어, 여전히 서로 예의차리고 안부 묻는 ex남편 싸이월드.

슬슬 정은 붙어 가지만, 친구가 너무 없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은 새 남자친구 구글 블로그.
남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숨겨놓고 싶기도 한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있으면 뭔가 자연스런 내 모습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식적인 내 모습 연출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international한 친구 페북이."






Ex남편 사망 😱
정이 다 떨어졌더라도, 이렇게 영영 소식이 끊기게 되면 결국 아쉬운 법인데...



이런 데 신경 쓸 인력이 없어서.... 지금은 10월인데 내용이 봄에 멈춘, 슬픈 싸이월드 정원




닿지 않는....




오래 전 이야기들의 종합.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말이 나온다' ,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라' 이런 말이 있다.
나도 단 한 번,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바로 말이 나왔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으니....


스리랑카 제자들이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오는데,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은 종종 만날 수 있지만
지방 대학으로 유학 간 학생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서울로 놀러왔을 때나, 아니면 결국 유학을 마치고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 가서 만나게 된다.

몇 년 전에도 전주에서 석사를 마치고 출국하는 제자를 배웅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갔다.
거기엔 그 제자와 같이 수원에서 언어 연수 과정을 마친, (정부 장학생들은 언어 연수 과정을 거쳐 학위를 받을 학교에 지원하곤 한다.) 중국 여학생도 배웅을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인원이 더 있을 때 할 말이 뭐가 있을까...그냥 공통점을 끄집어 낼 수 밖에.

"아, 중국인이시구나. 저도 중국에서 산 적 있어요."
"와, 그래요? 선생님, 중국 어땠어요?"
"더러워요"

😰😱😫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전에 내 입에서 '더러워요'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 말해놓고 깜짝 놀랐고, 사실 너무 무례한 일이었다. 서로 당황했지만 그냥 넘어갈 밖에...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에서 보낸 그 시절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더럽다"가 1번인가보다...하는 걸 새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 서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 갑자기 중국 살던 시절에 입고 다니던 "하얀 코트" 일화가 생각 나서.

당시 중국의 택시라든가 웬만한 승용차 안은 너무너무 더러웠다. 처음에는 택시 타고 그 지저분함에 크게 놀랐지만, 나중에는 차차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많이 깨끗해졌더라...

나는 같이 살던 국어 선생님과 월-토를 매일 학원으로 출근했는데, 매일매일 아침마다 택시 잡는 것도 힘든 일이니, 동네 차 한 대와 계약을 맺고 출퇴근에 도움을 받았다. 현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계약을 '차띵定'한다... 라고 불렀던 듯.

좀 더 아파트 안쪽에 사는 조선족 수학 선생님이 먼저 조수석에 타고 왔고, 나와 국어 선생님은 뒷자리에 탔다. 그 차는 목욕 수건 같은 재질을 카시트 삼아 덮고 다녔던 차였는데, 택시보다는 좀 나았지만 역시 뭐 그리 깨끗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차였다.




15년 만에 다시 가본, 매일 그 차를 기다리던 우리 아파트 앞.



어느 겨울, 결혼 이야기를 진척시키고 있던 수학 선생님은 남자 친구가 사준 하얀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행복의 절정기, 소중한 선물 😉. 조수석에 앉은 수학 선생님을 뒤에서 지켜보니 재미있었던 것은, 절대로 그 하얀 코트와 우리의 출근차 시트의 접촉을 "불허" 했다는 것이다. 자리에 앉을 때 코트의 엉덩이 부분이 차와 닿지 않도록 코트를 들어올려 허리 춤에 말아 쥐고 앉아서, 절대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채로 꼿꼿하게 앉아서 10분 거리 출퇴근 시간을 오고 갔다. 너무 소중한 하얀 코트라서 때타는 게 싫으셨을 터. 한편으로는 평생을 중국에서 살아오신 분인데도 차 더러운 건 싫어하시는 구나 싶었다.


그 겨울, 나도 중국에서 아이보리색 인조 스웨이드 재질 코트를 구입했는데 
나도 차를 타고 꼿꼿하게 앉아서 간 건 아니고😆, 단지 어디선가 오염이 될까봐 학원에 도착 뒤 옷걸이에 걸어두는 대신에 코트를 뒤집어서 돌돌 말아서 쇼핑백에 넣어 두었던 것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코트는 처음 살 때부터 큰 일을 겪었기에.

그 코트는 하얀 스웨이드처럼 보이는 (인조) 긴 코트로,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특징이 있다.ㅎㅎㅎ. 수년이 지나고 대학원 시절에 학교에 입고 갔더니 동기들이 모두 굉장히 비싼 코트라고 착각했을 정도.
약 10만원 정도의 가격이었고, 한국 물가로 치면 비싼 코트가 아니었으나 당시에는 웬만한 중국 노동자의 월급 뺨치는 가격이었다.




바로 이 코트



나는 중국에서 크게 돈을 쓰지 않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큰맘먹고 구입했는데, 중국의 백화점은 그 가게 자리에서 계산하지 않고 한 층마다 두어 곳 있는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하고 와야 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돈을 지불하고 그 옷가게로 가니, 점원이 쇼핑백에 넣어진 내 옷을 내밀었다. 나는 아무 의심없이 그 쇼핑백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 보니, 그 하얀 코트 앞쪽에 볼펜 줄이 죽 그어져 있었다. 세상에..,,누군가 실수로 한 것 같은데 내가 계산 하러 간 사이에 이걸 그냥 쇼핑백에 집어넣다니 😡 어휴 진짜... 이런 🀄️....

다음날 국어 선생님도 백화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지만....중국어가 안 되는 우리들은, 말싸움 내공이 후덜덜한 조선족 아주머니를 휴대폰으로 연결할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쇼핑백에서 그 볼펜으로 선이 그어진 코트를 꺼내어 보여주자 점원들이 두말없이 코트를 바꿔주었다. 조선족 아주머니 전화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범인"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거 니가 집에 가서 그은 거 아니냐?" 라는 질문도 없이 그 코트를 바꿔주었을까.


이런 일 때문에 아마 나도 그 흰색 코트 오염 방지에 유난을 떨었던 것 같다.ㅎㅎㅎ 필기도구가 사방에 널려있는 학원에서 어디선가 또 뭔가 묻을까봐, 옷걸이에 안 걸고 쇼핑백에 넣어서 보관해두는.


오래 전 "그 더러웠던" 중국의 일화들은 이제 추억이 되어... 언제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제는 그 "더럽던" 중국이 아니지만.



대신



아주 오래 전에 반년 정도 유치원 연령의 아이들 6-7명을 한 번에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미혼 친구들이 더 많을 때라, 육아의 고충 이런 건 전해듣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그 나이대 애들이 그렇게 통제가 어려운 줄 잘 몰랐다.

통제가 어려운 그 애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고생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90분 동안 이 애들을 데리고 고생하는 동안, 그 집 엄마들은 한숨 돌리는 거로구나. 내가 대신 고생해주는 것이구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문제가 있고,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만 생각하며, 자신의 세계에서는 자신만이 옳기에 누구나 다 타인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굳이 유아들이 아니더라도.

가족끼리도 별반 다르지 않고,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끼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회사가 필요한 거구나 싶다.
회사에 각자 나가 있는 동안, 회사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고...
가족끼리는 좀 쉬게 해주는 시간.


🤐


서로 기억 못했으나 결과는 좋았던 인연.





Marriott 계열 호텔에서는 분기마다 프로모션을 하는데,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어디서든 프로모션 기간인 3개월내 2박만 하면, category4의 호텔들 (보통 1박 최대 23-5만원 선의 호텔들)의 무료 숙박권을 주는 것이다. 

이 프로모션은 좋은 만큼 자주 하지는 않는다. 여행 계획이 있었을 경우엔 최상이지만 그 외에는 낚이기 딱 좋은 프로모션. 사실 가만히 있으면 0원도 안 쓰는 건데, '응? 이거 25만원 생기는 거잖아?' 하면서 25만원 or more를 쓰게 만드는...ㅋㅋ. 

그래도 2박할 호텔을 잘 선택하면 20만원 미만을 쓰고도 꽤 괜찮은 호텔 포함 총3박을 하게 되는 것이니, 막 소비의 정당화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여름 더위도 피할 겸, 그렇게 1박 숙박권을 얻어 훗날을 도모할 겸, 서울의 가장 싼 호텔에서 열흘 정도 시간 차를 두고 2박한 적이 있다. (이렇게 얻었던 숙박권은, category 4 안에서는 최대 효율을 내서 알차게 썼다 😊)


서울의 한 호텔에 첫 체크인하던 날,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이 왠지 낯이 익다.
보통은 혼자 생각만 할 뿐,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한 번 물어봤다. "전에 뵌 분 같아요... 어디서 뵈었더라...? 코트야드?"

"전 이 호텔 계열은 처음 근무해요"
그분은 묘하게 그다지 반가워하지는 않으면서 전 직장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아마 여기 오실 때마다 제가 체크인 해드려서 낯이 익는 걸 거예요" 라고 했다. 그분도 뭔가 나를 어디선가 봤다고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음....난 이 호텔 처음 오는데??'
이 직원의 단호한 믿음을 깨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냥 전에 어느 호텔 있었다고 말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안 알려줄까?' 같은 생각을 골똘히 하느라, 나는 말은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자주 오시니까 구조 다 아시죠? 체크아웃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4시까지 해드릴게요"

'오홋!' 사실 그 당시에는 레이트 체크아웃을 요구할 수 있는 회원 등급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최저 등급이라, 2시 정도까지가 최대였다. 그런데 직원이 '자주 오시는 분'🤔이라며 4시 체크아웃을 제공해줘서 고마웠다. 



호텔 방으로 올라가서 뒹굴뒹굴 잠이 안 오던 밤, 그 직원을 어디서 봤는지 갑자기 번쩍! 하고 생각이 났다.
반년 전 외국 선수단 통역을 위해 한 호텔에 2주 머물렀을 때, 그 호텔 직원이었다. 그때도 매우 친절하셨는데.... 
통역은 선수단과 호텔 사이 문제의 조율을 위해 프론트 데스크에 갈 일이 많았기 때문에, 2주간 자주 마주쳐서 뭔가 서로 애매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었다. '직장을 옮기셨구나... 내일 체크아웃할 때 계시면 아는 척 해봐야지.'

체크아웃할 때 그 직원은 없어서, 인사할 기회는 놓쳤지만
그래도 그 애매한 인연 덕분(?)에 레이트 체크아웃을 제공받아 푹 쉬다 와서 좋은 느낌이었다.
호텔에서 자동으로 날아오는 숙박 후기 양식에, 다른 칭찬들과 함께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4시 체크아웃을 제공해줘서 너무 좋았다" 라고 썼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된 호텔이라 평에 민감해서 그런지 "복사해서 붙여넣기"가 아닌, 지배인이 직접 쓴 답장이 왔다. 
호텔 숙박을 잘 즐기셨다니, 감사하다, 고객님께 레이트 체크아웃을 제공한 직원은 ooo직원이다. 회의 시간에 칭찬을 했다.....이런 내용이었다.


약 열흘 뒤, 그 호텔에 다시 방문했다. 물론 2박 프로모션의 낚싯대에 걸려들었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그 직원은 없고, 다른 직원이 체크인 과정을 도와줬는데.... 내가 숙박 후기에 쓴 상황을 그 직원이 모두 알고 있어서 좀 부담스러웠다. 😶 당연히 또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오후 4시 체크아웃을 보장해줬고....내가 전 후기에 이불이 눅눅하다고 썼는데, 그 직원이 내 방에 따라 올라와서 이불의 뽀송함을 같이 체크했다. 사실 이번에도 그렇게 뽀송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 직원을 얼른 내보내기 위해 '괜찮다'고 하고는 상황을 종료했다. 


아마 전에 나를 체크인해준 직원이 회의 시간에 정말로 칭찬을 많이 받았나보다. 이 직원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이 애쓰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면, 두 곳의 호텔에서 나를 위해 친절을 베풀어 준 그분에게 어느 정도 나름의 보답(?)을 한 셈?!?!


다음날, 그날은 일명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의 영화를 5천원에 볼 수 있는 날이었다.
호텔과 영화관이 가까웠기 때문에 5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해두었다.
웬만한 호텔 같았으면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5시 영화를 보기까지 시간이 붕 떴겠지만
나는 "애매한 인연" 😂이 매개가 되어, 매리어트 플래티넘 회원....이 정도가 아닌데도 4시에 체크아웃을 보장 받았으니 호텔에서 오후 늦게까지 쉬다가 4시에 나가려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호텔 룸 전화가 울렸다.


"고객님, 4시 체크아웃 괜찮으시겠어요? 혹시라도 더 있고 싶으시다면 더 늦게 체크아웃을 하게 도와드릴까요?"


👯 OMG رفیق سفر 😄


칭찬 레터 한 번만 더 썼다가는 영원히 호텔에서 못 나갈 수도 있었겠다. 체크아웃 무한 연장으로...ㅋㅋㅋ😝
물론 그날은,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에서 그 전화를 받아서 그냥 4시면 충분하다고 하고는 호텔을 떠났었는데, 대체 몇 시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지 한 번 더 오래 있어볼 걸 그랬나? :)

#좋은인연







The Late-st





엄마께서 9월 초에 포틀랜드 Powell books를 방문하게 되는데
서점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것보다는 그래도 책을 사는 게 나으니, 내 필요한 책을 골라주면 사오겠다고 하셨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한동안은 영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나지만
이젠 손에서 책을 놓은지 꽤 오래 되어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그래도 여행 출발하시기 며칠 전에 엄마께 
토니 모리슨의 The bluest eye를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대학 4학년 2학기에 토니 모리슨의 beloved를 가지고 반학기 동안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 얼핏 알게 된 the bluest eye 소개를 보고 언젠가는 한 번 읽고 싶었던 책.

그리고 얼마 전에 토니 모리슨이 사망해서, 미국 내에는 추모 분위기도 있을 테고.







엄마가 돌아오시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 책장을 열었다.
She died in 2019. 
엄청 최신판 책이로구나.


언제 작고했는지 기억이 희미해서 
검색을 해봤다.
토니 모리슨 1931년 2월 8일 - 2019년 8월 5일.

어?
작고한지 몇 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얼마 지나지 않았네?



엄마가 서점 방문하신 게 9월 10일인데
8월 5일에 사망한 작가가 "사망했다"라고 인쇄된 책을 사오시다니...정말 최최최신판이구나.


Beloved는 내용은 기억에 남았지만, 형식이 약간 독특해서 어렵게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The bluest eye는 생각보다는 잘 읽힌다.
그런데 예전 만큼의 집중력은 없어서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읽고 있다.
다 읽으려면 꽤나 걸릴 듯.





싸이월드



구시대의 유물(?) 싸이월드.
가끔 거기서 내 옛글을 보면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상상도 못할 당시의 감정들이 담겨 있어서 소중하다.


무슨 일인지 며칠째 접속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무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다.
인스터그램이 잠시만 불통이 되어도, 네이버나 다음의 '실검'에 오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서글프네. 한 시대의 끝.


내 구글 블로그의 시작은, 그 싸이월드의 내 옛글을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지금 그때 퍼온 몇몇 글의 사진들이 보이지 않는다.
서버의 정보가 완전 날아간 건 아니겠지? 


😯😥


2015년 10월초에 싸이월드 개편을 했었는데, 어떻게든 4년을 버티다가
어떠한 입장 표명이나 사과문도 없이, "도망"이라는 방법을 택했나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소셜 미디어의 말로... 슬프다.

가끔 TV에 말 걸고 싶을 때....



Exactly [igˈzak(t)lē]
나도 처음엔 그랬지만 보통 이 단어를 배우면 이그잭틀리라고 발음하게 된다.
하지만 영어를 좀 더 접하게 되면 영어권 출생자들은 '이그재클리'라고 주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C와 T를 연달아 발음하는 불편을 자연스레 피하기 위해 t가 탈락하는 거라고 들었는데...뭐 자세한 건 가물가물


 "c와 t를 연속해서 발음하는 게 왜 어려워? 나는 되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외국어를 배울 때 중요한 것은 외국어를 모국어식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연히 마주쳤는데 계속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사람을 만난다면 한국에선 "혹시 저를 아세요?"라고 물어보지만 영어권 화자는 많이들 - "Do I know you?" - 직역하면 내가 당신을 아나요? - 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어떤 영어 강사가 outlet을 한국에서 아울렛이라고 표기하는 걸 보면서 '영어에는 자음동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어처럼 아울렛이라니...!'하고 지적하는 것도 봤다.

예전에 '해피 투게더'를 보는데 한 가수가 나와서 맞장구를 치며, 하하 이그재클리~ 라고 말했다. 
그때 자막에는 "🙈이그재'클'리😳???" 라며 그녀의 발음이 틀렸다며 비웃는 내용이 나갔다. 그 가수가 외국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가진이 그냥 틀린 발음이라고 판단해버린 듯 했다. 분명히 멀리 안 가도 방송국 안에는 '이그재클리'라고도 많이 발음한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이 있을 법한데, 그냥 그런 자막이 그대로 나가서 정말 이상했다. 그 가수만 순식간에 영어 무식자로 파묻힘. 


한국에선 보통 록펠러센터, 록펠러 가문이라고 많이 하지만, Rockefeller는 라커펠러, 라크펠러에 가깝게 발음된다.

얼마전 '아는 형님'에 광희가 나와서 자신은 관광 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상황 시연을 하면서  "여기는 로크펠러 센터예요" 했다가, 어르신의 구수한 발음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야, 록펠러 아니니?" 
아마도 내 생각에 광희는 실제로 그런 가이드의 현지 발음을 듣고 기억해내 로크펠러에 가깝게 발음한 것 같은데, 촬영장에 같이 앉아 있는 작가나 pd마저 아무도 "저게 맞는 거예요"라고 해주질 못해서 졸지에 시골 영감 발음 취급을 받다가 큰웃음을 준 것으로 된 채 상황이 끝났다.


이럴 때면 가끔 TV에 나도 말 걸고 싶다.
요즘은 vod나 일명 "정주행채널" 이런 것도 많아서 24시간 옛 방송을 송출하고 있던데, 지금이라도 저런 사항을 다시 고쳐서 영어 공부 열심히 했던 출연자들에게 오히려 망신을 줬던 상황은 정정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류 열풍이 거세져서 한국어가 전세계에 보급된다면.... 아마 외국에서도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어 구개음화까지 공부한 어느 외국인이 "굳이"를 보고 '구지'라고 발음했는데, 한국어를 문자 그대로 읽는 법만 배운 대다수가 "야, 그거 /구디/ 아니니? 너 한국어 헛배웠구나. 한국어 ㄷ은 D와 발음이 비슷해" 이러면서 면박을 줄 수도 있는 상황 😋




내가 여기에....







가끔 기기 오류? 위치 오류?로 내가 있지 않은 곳에 내 현재 위치가 표시될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위치 차이는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게 보통인데...
2015년 4월, 제주도의 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정말 너무 동떨어진 위치가 계속 내 위치로 표시된 적이 있다.

🌍🏝 내가 대서양 섬에!!! 😎





내가 있는 위치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날씨를 알려주는 야후날씨 앱에도 나의 위치는 제주도가 아닌 라스 팔마스.
분위기 고즈넉하고 좋네.







나의 아이패드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나는 여기에 없는 상황 😜
비교적 상세한 위치.








평화롭군.
최저-최고 기온 차가 크지 않은 게 신기하네. 하루 종일 비슷한 기온??
언젠가 실제로 가볼 수 있을까....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