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의 중요성





2014.03.31 14:16 


아주 어릴 때 사촌언니가 선물한 삼색 줄이 꼬인 목걸이가 있었다.
얼마전, 그 중 분홍색 줄 목걸이가 터져서 방바닥에 그 구슬들이 굴러다닌 적이 있었다.
다 찾아서 꿴다고 뀄는데, 어디선가 저 분홍색 구슬들은 자꾸 나왔다.

이미 목걸이 줄을 다 꿰어 묶어놓은 터라, 새로 발견되어도 더 이상 둘 데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똑같은 크기의 검정색 구슬이 나왔다.


대체 어디서 온 건지 짐작할 수도 없었고, 오직 분홍색으로만 이루어진 그 목걸이 중에서 나왔을리도 없는 것이었지만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보관해뒀다.
그런데 오늘!
그 검정 구슬의 출처를 알았다.
그것은 '눈'이었다.


내가 스리랑카에서 샀던 열쇠고리인데...나는 가슴에 스리랑카 국기가 그려진 이 인형을 핸드폰에 매달고 다녔었다. (핸드폰보다 이 인형이 살짝 더 컸다)
스리랑카는 핸드폰 도난이 잦아서, 내가 가방을 열었을 때 핸드폰의 위치를 즉시 보이게 하고 안심하기 위해서 일부러 큰 인형을 달고 다녔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 검정 구슬을 보관해놓지 않았다면
이 친구는 눈동자를 잃고 살아갈 뻔 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인형 눈알 꿰기'를 시작해야겠다.







페더러와 베르디흐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2015.03.27 15:53 




테니스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물론 딱 한 선수를 좋아해서 테니스를 즐겨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제일 좋아하는 1명에, 좋아하는 선수군 여러 명, 주는 거 없이 왠지 얄미운 선수군 몇 명, 나머지 관심 없는 기타 등등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타이틀 차지에 방해꾼이 되는 선수들이 보통 이유없이 미워지기 마련인데,
이런 의미에서 페더러의 커리어 훼방꾼은 나달 외에도 베르디흐 아닐까?


이들의 첫 만남은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2라운드,
그랜드 슬램을 3회 우승하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페더러는 2라운드에서 만18세 베르디흐를 만나게 된다. 베르디흐는 그때까지 투어에서 거둔 승리는 5승에 불과했던 풋내기.




Federer vs Berdych Athens Olympics 2004
YouTube
나도 오늘 처음 보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영상. 둘다 머리를 묶고 나온 게 귀여움.
이 경기에서 나이 어린 베르디흐가 4-6, 7-5, 7-5 로 승리를 거둬. 이후로 페더러가 올림픽에 계속 도전해야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어쩌면 테니스팬은 베르디흐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지도??
2004년에 전성기를 열었던 페더러가 이 대회에서 단식 금메달을 땄었다면, 2008년에 복식 금메달 수확하고 2012년은 윔블던에서 올림픽을 하니까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출전하고
2016년은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식 금메달이 없는 페더러는 2016년까지는 반드시 출전할 것임을 늘 말해왔다.




페더러의 텃밭인 윔블던.
2003년에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2008년에 나달에게 우승 트로피를 한 번 내준 것 외에는 2009년까지 6회 우승을 기록하고 7년 연속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2010년, 이것을 막아선 게 바로 베르디흐. 8강전에서 6-4, 3-6, 6-1, 6-4 로 베르디흐가 승리했다.
지금이야 페더러가 윔블던 2회전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본 상태이지만, 당시 페더러의 윔블던 8강 탈락은 상당히 충격적.




2012년 US오픈에서는 또다시 페더러와 베르디흐가 8강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페더러는 2004년 첫 우승이후 이 대회에서 5회 연속 우승하였고, 6연속 결승 진출, 8년 연속 4강 이상 진출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다. 윔블던 다음으로 페더러의 승률이 높은 그랜드 슬램 대회가 US오픈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베르디흐가 7-6(1), 6-4, 3-6, 6-3로 승리, 페더러는 8년 만에 처음으로 US오픈 4강에 오르지 못 하게 되었다.



"형, 저 맘에 안 들죠?"

페더러 표정이 솔직해....
이 둘 사이의 상대전적은 페더러 13 ; 6 베르디흐로 전체적으로는 페더러가 앞선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페더러의 커리어를 막아서는 역할을 많이 한 (그러나 슬프게도 우승은 다른 이가 차지하는) 베르디흐.
가장 최근 2015 인디언 웰스 8강전에서는 페더러가 베르디흐를 6-4, 6-0으로 시원하게 압도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페더러와 베르디흐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왠지 드물 것 같다는 생각 :)






난감하네....




동네 고양이에게 먹을 거리를 주기 위해 나선 길.

하지만 동네를 돌아다녀도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에게 뭔가를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손에 먹을 걸 들지 않았을 때는 꼭 고양이를 마주치지만 이상하게도 먹을 걸 들고 나가면 고양이가 한 마리도 안 보이곤 했다.

작년에 우리 동네 건너편에 재개발이 시작되어 집을 다 비우고 이주가 시작됐는데, 어떤 빈집 한켠에 길고양이 쉼터와 급식소가 마련된 것을 봤다.

며칠 전에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좀 남았는데, 이제는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 급식소에 내려놓고 오면 되겠지....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급식소가 있던 대문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아직 제대로 공사 시작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고양이 몰려든다며 주민이 싫어해서 저 부분만 일부러 부순 건지... 쩝.



다음날 우리 동네에서 10분 이상 더 걸어가면 더 제대로 마련된 고양이 급식소가 있던 게 기억나서 거기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곳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붕을 만들어놓은 작은 공간에 건식 사료가 가득 들어있었고, 옆쪽에 작은 투명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나처럼 사료 외에 다른 음식도 주고 싶은 사람이 또 있었나봐. 여기에 먹을 거 넣어놔야지."하고 서서 그 통에 주르르 부었는데... 

헉! 그것은 고양이 물통이었다.
서서 내려다봐서 투명한 물이 제대로 안 보인 것이었다. 물 위에 음식이 동동 떴다;;;;;;

으헉! 이를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고양이들이 생선 이상으로 좋아하는 게 동물성 음식이란 걸 아는데...지들이 알아서 걷어먹지 않을까.

자리를 떠나 길을 가다가 결국 되돌아섰다.
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관리해오신 누군지 모를 분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서.

결국 손으로 하나하나 덩어리를 받아서 건저내며 물을 쏟아서 버렸다. 내가 음식을 담아갔던 봉지를 땅에 깔고 그 위에 얹어놓았다. 그 옆에는 누구든 물이 떨어지면 추가해서 주라는 의미인지 2리터 짜리 생수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새로 물을 부어놓고 일어섰다.

물을 쏟아내며 느낀 건데 물이 참 맑았다. 진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급식소인 듯.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음식만 주려고 애쓰지만, 사실 길고양이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나는 아무리 선의였다지만 거기에 음식을 쏟아부었으니;;;;


다행히 근처에 몇 번 들어가본 적 있는 익숙한 건물이 있어서 1층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을 수 있었다. 비밀번호 등으로 잡상인 출입을 막는 화장실도 많아서 걱정했지만 비번도 없고 깨끗했다.


🐈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동네 주민도 많다고 해서 재빨리 돼지 먹을 거리를 통에 쏟고 사라지려다, 그것들이 물통에 동동 뜨던 순간의 난감함은 잊을 수가 없다.






반 고흐의 편지



2007.05.24 10:58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그랬더라면




2009년말까지 스리랑카에 체류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 그 시기를 보냈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갔지만, 매일 갖고 다니기엔 거추장스러웠고 도난의 위험도 있었다. (실제로 휴대폰 1회 분실-> 절대 주인 안찾아줌, 동전 지갑 1회 도둑 맞음)

가끔 어떤 것들을 떠올릴 때
'아 만약 스마트폰이 있거나 화질이 좋은 폰카가 있었다면 그때 사진을 남겼을 텐데...'하고 아쉬운 것들이 있다.

오늘 갑자기 떠오른 건....
맹장수술 때문에 스리랑카 병원에 4박 5일 정도 입웠했었는데, 환자식으로 뭐가 나왔었는지 통 기억이 안 난다. 처음 며칠은 아파서 정신이 없었지만 나중 며칠 동안은 아마 카메라가 있었다면 사진 남길 여력은 있었을 텐데...아쉽다. 아주 맛이 없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나는 개복 수술을 했음에도...여태 들어왔던 것처럼 "식사는 가스 나오고부터 가능합니다." 이런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밤 수술 후 다음날 첫 아침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식사를 넣어줬다.

뭐 병원에서 암말 없으니 괜찮은 건가보다...하고 간단한 식사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가스는 나오지 않았다.

문병 온 친구들과 얘기하고 노는 사이에 남들은 모르게 사알짝 방귀가 나왔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묵지근한 복통이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아, 이래서 가스가 나오긴 나와야 하나봐."라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모든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몇몇 순간은 카메라가 있었더라면...하고 아쉽다.




랑카에서 쓰던 전화기 -> 어디에선가 분실하고 절대 찾지 못함 ㅠ 





동거 생물



열대지방에서 살 기회가 생기면
처음엔 깜짝 깜짝 놀래키는 동거 생물





그러나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얘들이 가장 귀여운 동거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한국보다 다 커서 징그러운 다른 생물체들에 비해서.



발가락(?) 귀엽죠?



지금 나 찍고 있는 거예욧?








미련의 정리 정리의 미련



순식간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데, 이 모든 집착이 무슨 소용이냐... 이런 맘도 있고

거의 매일 😢 발표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동선"을 보니, "확진자 자택 방문 소독 완료"라는 말도 보이고...

혹시나 해서 방을 좀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내 방에 소독하러 들어올 일이 있다면....끔찍하네 🙄. 
하도 끌어안고 사는 잡동사니들이 많아서.(부끄)
무슨 영화에 나오는 수집벽 환자 방처럼 보일 듯.


특히나 추억 때문에 못 버리고 있던 옷들을 좀 버리려고 하는데....
일명 "츄리닝" 바지 몇 벌도 정리 대상에 올랐다.
워낙 정(??)이 많아서 '아.... 입고 찍은 사진 한 장 없이 버려지는 건 슬픈 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슴푸레 이 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이 몇 장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2015년 샌프란시스코 호스텔.
ㅎㅎㅎ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닫이 문을 손으로 열고 들어가서 버튼 누르는 엘리베이터 사진을 남기려고 찍은 것인데, 나중에 보니 반대편 거울에 내가 찍혀있었다.

그래, 바지, 수고했어.
그래도 미국에도 같이 가 보고 이제 소임을 다해 버려지는구나.

안녕. 






영어 자부심



2015.03.18 17:13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를 거친 국가로, 많은 국민들이 영어를 잘 구사한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나이 많으신 어른 중에 일본어에 능한 분이 있는 것처럼, 스리랑카도 식민지 시대를 거친 나이 많으신 분이 오히려 더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고.


젊은 층 중에서도 대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우수한 학생의 경우에는 영어를 상당히 잘 구사한다. 고급 비즈니스 영어 사용층은 우리 나라와 영어 구사 수준이 비슷하겠지만 길거리에서 내가 그냥 마주칠 수 있는 사람, 택시 기사, 가게 주인들의 영어 실력은 한국보다 스리랑카가 더 낫다.


어떤 분들의 영어 자부심은 대단해서, 스리랑카 영어 발음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스리랑카인을 만났다는 친구도 있었다. 스리랑카 특유의 영어 발음(V는 W와 서로 철자를 바꿔 쓸 정도로 똑같다고 생각, V발음 따로 안 가르침(navy = 네위). Z 발음도 따로 안 가르치고 그냥 간단히 Z=S (zoo = 수))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도 사실 F, V, Z 발음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다른 나라 뭐라할 것은 없지만, 한국 영어가 최고라는 자부심은 한국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자신감.


본인의 영어가 완벽하다는 학생들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내가 문법을 고쳐주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아니, 내 말은 거의 듣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1.

 스리랑카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한국어캠프를 진행하고, 한국어과의 우등생들이 신문에 기고할 기사를 써왔다.
"many students were participated in this camp" 이런 식으로 문장이 되어있어서 이걸 수동태로 굳이 쓸 이유가 없으니 were를 빼도 되지 않냐고 했더니, 수긍을 못 하고 안 고치겠다고 함.


2. 

한국 학교에 지원서를 쓰던, 영어를 상당히 잘 하던 학생.
"Audience is been taken........"라고 써와서 is를 바꾸거나 been을 빼라고 했더니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 고치겠다고 버팀. 내가 그냥 포기.


3. 

몇년째 한국에 보내는 공식적인 추천서에 "이 학생은 한국어와 심리학를 전공하고 있다." 라는 내용이 "She is offering Korean language and psychology."이런 식으로 쓰여져 왔음. 영국이나 랑카의 어디선가는 이렇게 영어를 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한국에 보내 한국인 심사자가 읽게 될 서류이고 한국인으로선 듣도보도 못한 로컬(?)영어라서 내가 다 고쳐줬는데, 나중에 최종 제출 추천서를 보니 학생이 다시 she is offering으로 고쳐놓음. 🤐



음....내가 잘 몰랐던 문법 사항이라면 누가 좀 알려주세요.
내가 틀린 건가???
내가 한국어과 강사이긴 했지만, 나름 영문학 전공한 선생님인데, 눈 작고 얼굴 노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내 영어를 안 믿는 게 조금은 섭섭했음. ㅎㅎㅎ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어에 대해 틀린 것을 지적하면 두말없이 고치는데, 영어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큰 듯.


물론, 내가 문법을 몰랐던 사례도 있다.
학생이 휴대전화 잔액이 부족해 답이 늦었다면서 'I haven't money'라고 문자를 보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영국에서는 이렇게도 쓴다는 증언이....


2021년 추가.
위의 1번 사항의 경우는 십여 년 만에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스리랑카어에서 "참가하다"라는 동사 자체가 수동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영어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스리랑카식으로 생각해서 번역투로 문장을 썼기 때문이었다. 
스리랑카어에서 "참가하다"는 සහභාගී වෙනවා인데, 이 동사형 자체가 සහභාගී(참가) වෙනවා(되어지다) 로 구성됐다. 그래서 스리랑카인이 생각하는 '참가하다'는 be participated 였던 것이다.
스리랑카의 '하다' 동사인 කරනවා를 쓴 [සහභාගී(참가) කරනවා(하다)]라는 동사는 오히려 남을 '참가시키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participate라고만 쓰라고 했더니, 스리랑카식으로 머리속에서 번역한 영어를 받아들인 학생들이 그 의미가 아니라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모양;;;; 

결국 나의 스리랑카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때 학생들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이 단어를 그때 제대로 알았다면, "아무리 스리랑카어가 그렇게 되어있어도 영어는 영어식으로 써야지"하고 가르쳐줄 수 있었을 텐데...



잠깐이었지만....




2015.03.18 01:05 


지난 2월 미국 입국 심사대에서 있었던 일.
꽤나 딱딱한 10년 전 입국 심사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2월 9일 달라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편하게 마쳤다.
입국심사관들 참 부드러워졌군.
그리고 멕시코로 갔다가 2월 13일 다시 미국으로 입국하던 날, 오후 2시 언저리였는데 의외로 대기자가 거의 없었다.
전혀 줄을 서지 않고 구불구불 길을 돌아 입국심사관이 바로 보이는 맨앞자리까지 왔다.
그래도 내 앞사람의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해서, 아이패드를 꺼내서 와이파이를 잡아보려는 찰나에
벌써 입국심사관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다음 사람!"
앞에 서자마자, 그가 말을 건넸다.


"나 저멀리 보는데, 너한테서 빛이 나는 줄 알았어."

'어머, 입국심사관이 웬일이야? 농담을 다 하고....어머 이사람 왜이러셩?' 아, 맞다, 이 아이패드...'
잠깐 당치도 않은(ㅋㅋㅋ) 착각에 빠졌지만 순간적으로 사태 파악을 했다.
아이패드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얼굴에 그 빛이 반사되어 비친다는 것.
다행히 공주병에서 순식간에 헤어나와,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빛이잖아."라고 대답해줌.
그래도 좀 당황해서 "오른손 지문 찍어"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한동안 맹하게 있었음 ㅋㅋ

뭐 그런 거지. ㅎㅎ
2011년 11월에 찍힌 이런 자료 사진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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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1. 시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국 심사관이 저런 멘트도 날리네요 ㅋㅋㅋ웃겨요
    2015.06.14 15:58 

    • 네, 살짝 착각할 뻔도 했다는;;;; ㅎㅎㅎ , 달라스 공항 쪽이 입국 심사 통과가 굉장히 편한 쪽에 속하는 듯 해요. 그 외에 3도시 미국 공항 입국 심사 통과해봤는데, 달라스가 제일 심사관들이 친절한... :)
  2. 시드니
    저도 갑자기 달라스 가고 싶네요, 아이패드 들고 ㅋㅋㅋㅋㅋㅋ









nrt



2009.03.18 16:23 




2006년 3월 20일 오후.
3월 19일 아침에 jfk공항에서 헤어진 순영이와 나는 비행기가
연착하지 않는다면 나리타 공항 terminal 1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탈 서울행 비행기는 terminal 2에서 출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도쿄에 예정 시각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두리번 두리번 순영이가 탈 서울행 비행기의 탑승구 번호를 찾으며 terminal 1을 헤매기 시작했다.


계속 고개를 쳐들고 탑승구 번호판을 읽으며 걷던 어느 순간,
발에 뭔가가 턱 하고 걸리면서 넘어질 뻔 했다. 무빙 워크였다.
본의 아니게(?) 올라선 무빙워크에서 넘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계속 걸었지만
아무리 걸어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장이 났나?'


무빙워크 입구에서 넘어질 뻔 한 것을 쪽팔리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진정 창피하게 느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옆 무빙워크에 탄 사람들이 곧 알게 해주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옆칸(?) 무빙 워크 사람들과는 마주보고 서로 지나쳐가야 정상)
그랬다. 나는 무빙워크에 역방향으로 올라탄 것이었다.
설상가상, 나와 같은 무빙워크에 탄 사람이 건너편에서 걸어온다.



무지 당황해서 상황 판단이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빨랐다면
뒤로 돌아서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타고 가서 내려섰으면 될 일이지만,
나는 쪽팔림을 감수하며 의연하게 끝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거꾸로 무빙 워크'의 끝부분에 가자,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리 무빙워크에서 내려서려 해도,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이 상황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임--;;;;)
결국 나는 끝부분에서 폴짝 뛰어서 평지에 내려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근처에는 대부분 무료하게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뿐이었으므로,
나는 아마 재밌는 볼거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생각난 것은,
지금의 내가 역방향 무빙 워크에 올라탔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남들은 제 방향 꺼 타고 잘 가고 있는데
나는 괜히 엉뚱한 방향을 타고 낑낑대면서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비록 역방향 무빙워크를 타긴 했지만
결국 내가 가고자 했던 곳에 갔듯이
지금 나도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폴짝 뛰어내려
내 땅을 딛고 설 것이라 믿는다.
Non, je ne regrette rien.




Pandemic






꼭 다시 한 번 가보고픈 호텔이 있었다.
이 호텔에 다시 숙박할 수 있는 무료숙박권이 있지만 사용기한(예약을 결정해야 하는) 이 4월 22일까지라서 '이러다가 전염병 때문에 제대로 원하는 호텔에 쓰지도 못 하고 되는 대로 아무 날짜에나 예약해놓게 생겼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 호텔 체인 ceo가 전세계 고객에게 메일을 보냈다. 올해 날짜로 종료되는 숙박권의 사용 기한을 2021년 1월까지로 연장하겠다고.

얼마전까지 아시아에 위치한 호텔에 한해 이런저런 대책을 발표하던 호텔 체인이 드디어 전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갑자기 정말로 PANdemic이며 전지구적인 현상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을까?


오래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업적"이라며 황우석 박사를 언론에서 치켜세우다가, 갑자기 또 그의 연구 결과 조작이 밝혀져 한국이 연일 시끄러울 때, '세계를 놀라게 했다'던 이 업적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사실상 한국만 난리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테니스 그랜드 슬램 대회를 할 때 나달이 우승을 하기라도 하면 나는 온통 그 생각 뿐이고 나에겐 가장 중요한 뉴스지만, 국내 포털 사이트 스포츠 뉴스란 헤드라인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심지어 스포츠 전문 espn.com에 가도 테니스는 첫머리 기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다.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면 내 세상은 모두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사실 세계는 너무 넓고 인구는 너무 많고, 관심거리도 너무 많다. 나에게는 절절하고 절박한 일이, 한 발짝만 나가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지구적 공통 관심사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월말부터 스멀스멀 한국인의 삶을 잠식해 들어오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3월 들어 이제 전지구적인 문제가 되었다.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가 이렇게 한 가지 주제로 도배되는 일은 거의 처음 보는 듯 하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


예전에 신종플루에 대해서도 WHO가 판데믹을 선언했다고는 하지만, 치사율도 낮았고 당시엔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도 한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맞이하는 전지구적 문제,
무사히 빨리 종료되었으면 좋겠다.
보통의 일상이란 게 언제쯤 가능해질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쓸데없는 소비와 돈 낭비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언니를 보며
나에겐 테니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2월 빼고는 매주 경기가 있는 테니스를 보며, 대리 만족도 느끼고 흥분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긴긴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일단은" 모든 ATP 경기가 6주간 취소되었다.
'잠정적으로는' 4월 26일까지의 모든 대회가 취소되었는데, 4월 27일에 개막하는 뮌헨/에스토릴오픈 시기가 되더라도 실행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수준.


캐나다 총리 부인까지 이 병 때문에 격리되어 있다고 하는 마당에, 나나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병에 안 걸리기를 빌고 있어야 하는 수준인지도...

음.... "일단은" 4월말까지 무슨 재미로 살지?
영화관 못 가는 건 마찬가지고....

전세계적으로 정말 사상 초유의 사태인 것 같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테니스/영화 등의 옵션이 사라지니, 뭘 하고 놀지? 싶다.

이제는 무엇으로 버틸지 잘 생각해봐야 겠다.
🤔







지배력을 시험하다




2007.03.12 13:01 


우리 집 5명 중에서 유일하게(!) 연애질 잘하는 남동생.
대학교 1학년 때 두 학번 위의 누나를 집에 데려오는 공개 연애를 하다가 (난 울집 거실에서 그녀와 같이 밥먹은 적 있음) 뭔가 단점을 깨달았는지, 이후엔 철저한 비공개 연애로 돌아섰다.
 
나와 내 남동생은 싸이월드 1촌이 아닌지라, 어쩌다 한 번 서로 홈피에 왕래하는 정도라서 05학번 요즘 여자친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가끔 가보는 동생 홈피에서 느끼는 건, 어린 그녀가 상당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는 거. 그녀의 글은 모두 이런 식이다.
 
"대문 사진 맘에 안 들어 바꿔"
"저 사진 맘에 든다. 저거 대문에 올리라니깐"
"일촌명 이상하네. 바꿔."
번듯한 외모 때문에 그래도 인기남인 내 동생을 자신이 지배하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내가 장동건 여자 친구라면 대중 앞에서 그가 내 말을 잘 듣는 남자임을 과시하고 싶을 것 같다. 쿠쿠
 
 
 
어제 밤에는 밀란 더비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serie A 중계를 시작한 첫 시즌이기 때문에 밀란 더비를 시청한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었지만, 내가 본 두 번 모두 근사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AC밀란 팬인 내 동생은 거실에서 축구를 조금 보다가 여자친구의 유선 전화에 호출당해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멋진 장면을 본 내가 감탄사를 연발할 때마다 동생은 전화하다 말고 방에서 뛰쳐나와서 스코어를 살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여친, 난 솔직히 축구보고 싶다. 전화 좀 끊자'
 
그러나 내 생각에 그녀는 자신이 축구보다 후순위에 위치하는 것을 거부한 것 같았다. 동생은 계속 전화에 붙잡혀 자기 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전반전 40분쯤 호나우두가 골을 넣었을 때 내가 두 번이나 "호나우두가 골 넣었어!"라고 외쳤지만 동생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오지 '못'했다. 아마도.
 
같은 학교, 같은 과라서 다음날 아침이면 만날 수 있는 그들이 구태여 늦은 밤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다. 내가 보기엔 확실히 여자친구가 자신의 지배력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후반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온 동생은 KBS가 전반전 리플레이를 안 해 주는 바람에 호나우두의 골 장면을 끝내 볼 수 없었다. 모든 중계가 끝나고 동생은 kbs를 욕하며 자기 방으로 사라졌지만 여자친구에 대한 원망도 살짝 섞였으리라.
 
 
 
많은 인간관계가 '우선 순위'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 약속이 어그러지거나 믿음을 저버렸을 때, '내가 그것보다 중요치 않단 말이야? 내가 그것보다 못하단 말이야?' 이런 사실에 화가 난다.
 
내가 꿈꾸는 연애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믿고, 배려해서 지배력을 시험하지 않으려는 연애이다. 상대편이 축구 팬인데, 축구 팬에게 밀란 더비를 본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한다면, 아무리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잠시 양보해주는 식으로. 
 
상대편이 지금 내 전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내가 영원히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축구가 중요하지만 그것만 끝나면 내가 당연히 1순위로 복귀하리라는 믿음이 있는 관계.
 
하지만 이건 머리 속에서나 가능할 일일지도.
언젠가 나도 이런 말을 할지 몰라.
 
 
 
 
"죽을래?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내가 중요해, 축구가 중요해?"   

댓글1

  1. ㅅㅎ진
    정말 공감...우선순위 시험은 상대방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자기 사랑이지. 그래도 결국 그리되는 인간상...ㅋㅋ
    2007.03.13







thrift·y




2014.03.12 02:13 


친구들과 갔던 '커피빈' 에서의 일화 :)
커피빈의 일명 '핑크 카드'는 커피빈에서 12번의 음료를 마시면 음료 하나를 공짜로 제공하게 되어있다.
친구 2명과 커피빈을 같이 갔는데, 나는 8번의 도장의 찍힌 핑크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음료를 계산하러 가는데,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 놓고 간 핑크 카드가 보였다.
"2명 것은 돈 내고 시키고, 저 도장 두 개만 추가할 수 있으면 한 명의 음료는 공짜로 먹을 수 있을텐데..."했더니
동생 한 명이 누군가 놓고 간 그 카드를 슬쩍 집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그걸 집는 것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버리고 간 거라도...뭔가 부끄러워서?!?!
어쨌든, 그 동생이 새 카드를 집어왔기 때문에 나는 12번의 도장을 완성해서 1잔의 공짜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잘 마시지도 않는 내가 '4천원대 간단 커피' 대신에 '6천원대 생크림과 초코칩의 향연' 커피 중에서 공짜를 고르고 있으니,
아까 카드를 집어온 동생이 나를 너무 부끄러워했다. "아유, 언니 왜 그러세요."(=공짜로 비싼 음료 받아내려고 하는 거 넘 티나요 @.@)
헤헤.
이 상황을 겪고 나니, 사람들이 각자 할 수 있는 것과 부끄러워하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남의 카드 집어오는 것을 절대 못 할 것 같았는데, 그 동생은 핑크카드로 제일 비싼 음료를 공짜로 받는 것을 못 해낼 것 같았다.


또한
사람들은 돈을 아끼는 각자의 포인트가 있다.
혹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 집착하는 저마다의 분야가 있다. 큰돈을 잘 쓰지 못 하고 월급이 적어서 고생하는 사람들 중에도, 포인트 적립이나 적립 카드를 내미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옷은 무지 비싼 것을 사입는데 밥값은 아끼는 사람도 있고,
먹는 것은 잘 챙겨먹는데 의복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왠지 안 어울리는 것 같은 상황인데...
다들 부끄러움,혹은 집중의 포인트가 다른 것이다.







100,000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되는 분은
100,000번째 이 블로그 방문자일 수 있는데...
물론 구글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거라면 다른 글을 읽을 경우의 수가 더 크지만.





게다가 구글 블로그는 카운팅이 엉망이라서
저 숫자 중에 50,000 정도는 내가 올린 숫자일 것 같다.

아무리 '이 접속은 카운팅에 포함하지 않음'에 체크해도 본인의 접속 카운트가 올라감 😡



아무튼 누구라도 정말 100,000번째 방문자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분께 행운이 있길~!





동거 생물들




2008.03.08 17:55 






내 침실에 저녁 때쯤 한두 마리 나타나는 gecko들이 세 마리나 나와서 사진 찍어봄^^

찬조출연으로 우측 상단 거미줄과 거미까지...

댓글6

  1. 전ㅎㅇ
    아하하 그래두 작은 도마뱀은 귀여운 거 같아요 ㅋㅋ
    2008.03.08 19:35 

  2. 귀여워서 봐주는 거지...ㅎ
    2008.03.10 15:53 
  3. ㅎㅅㅎ
    아진쫘ㅋㅋㅋㅋㅋ
    2008.03.11 09:07 
  4. ㅅㅎ진
    오 이게 미국에서 가이코라는 보험회사 선전할때 나오는 생물이구나!
    2008.03.18 00:26 
  5. ㅇㅁㅅ
    아우~~~미야야~ 저런걸 귀엽게 봐주다니^^;;;;ㅋㅋ
    2008.03.21 00:31 
  6. kdj
    ㅎㅎㅎ 그거는잡아서 못 먹는건가?
    2008.04.16 19:01 






가치의 변화




1. 재작년 7월에 어떤 호텔에 두 번 간 적 있었는데 개관 기념으로 선물을 제공하고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나름 유용하게 썼던 텀블러를 받았는데 두번째 가니 선물이 많이 품절되었다며 몇몇 소소한 선택지를 내놓았다. 

남은 물건들이 너무 별로여서 겨우 고른 게 마스크였고, 직원도 미안해했다. 나는 원래 미세먼지에 둔해서 마스크를 잘 안 하고 다녀서 어딘가 처박아 두었는데, 이게 지금 시점이 되니 최고의 선물로 바뀌었다. 당시 직원이 이걸 줄 때 엄청 미안해했는데, 지금 이 난리가 날 걸 알았다면 그 직원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






2. 작년 겨울에 밖을 돌아다니면서 하는 알바를 잠시 한 적 있었다. 몇 주 만에 끝나는 일이지만 근로계약서가 있었는데, 나에게 근로계약서를 가져다 주신 분이 마스크도 주셨다. 비록 하루에 한두 시간도 안 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밖에서 하는 일이라고 신경 써 주신 것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받자마자 처박아 둠. 마스크 모양새도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그것을 찾아보니... 





세상에 5매나 들어있다. 😯 지금은 줄서서 구해야 될 정도인데, 당시에는 별 가치가 없었으니 그냥 주고 가신 셈.



나는 미련이 많고 게을러서 많은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데 (그래서 내 방은 난장판 ☺️) 그 기질에 대해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사물의 가치가 변화하는 것을 보니, 뭔가 모아두는 게 아주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만 괴롭다.



대학교 때 무조건 이중전공을 해야 했다.
그래서 보통 우리 학부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영문/심리 전공 @@@입니다." "노문/사회 전공 @@@" "독문/철학 전공" 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곤 했다.

학부 친구가 같은 학교 공대 출신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문과대와 공대 동기들이 주르르 식당에 모여 청첩장을 건네받던 날, 우리 문과대 친구들이 모두 본인을 "영문/사회, 국문/심리, 철학/사학..."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 공대생 예비신랑이 놀라면서 "어? 나는 여태까지 우리 여친이 똑똑해서 이중 전공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 하는 거였네?" 🤣 이랬던 적도 있다.


아무튼, 학교 정책에 따라서 나는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전공으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하는 필수 수강 학점 단위가 매우 적은 수라서 전문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둘다 매우 사랑하는 전공이다.

어중이 떠중이(?) 그냥 가장 유명한 과라서 전공자가 많았던 영문과는 상대적으로 학점을 받기 쉬웠지만, 대학원 진학까지 목표로 하는 야심찬 여학생(통상적으로 여학생이 좀 더 열심히 공부한다)이 많았던 심리학과는 성적을 잘 받기가 좀 어려웠다. 내 대학 때 절친 중에 두 명이나 심리학 박사를 취득해 교수가 됐는데, 학부 시절 그들과 나의 성적은 하늘과 땅 차이 ㅎㅎㅎ.

그래도 성적이 잘 나오던 과목은 내가 흥미있어 하던 이상심리학, 건강심리학 이런 부류였다. 지금도 관심이 많다. 건강심리학 교과서는 영어로 되어있었는데, 다른 건 다 잊어도 myocardial infarction 이 단어는 잊혀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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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하다가 마주치는, 특히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이들은 알고 보면 성격 장애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름 심리학 전공했다고 하는 나조차도 당하기만 하다가 나중에야 자료를 찾아보게 되는데,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하던 종류의 행동도 나중에 보면 교과서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깨달으면 퍼즐이 하나씩 맞아들어 가는....


기억에 남는 성격장애자가 두어 명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만난지 석 달 이내에 내가 증상을 짐작한 경우였다. 근처에서 엮일 일이 많아서 힘들어 했더니 정신과 의사인 아는 동생이 "언니, 그런 사람은 그냥 버리세요.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라고 단호히 충고해주기도 했다.

성격장애자는 보통 본인은 본인의 병을 모르고 주위 사람만 괴로운 경우가 많다. 성격 장애에는 여러 하위 분류가 있는데, 일부 성격 장애자는 본인은 멀쩡하고 왜 자기가 병자인지 모르지만 오히려 주위 사람이 참다 참다 홧병이 나서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할 정도.


살다 보니, 제일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증상의 서서한 발현'이었다. 몇몇 성격 장애 중에 성인 시기를 거치면서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를 겪어 보니, 차라리 예전에 3개월 만에 이상한 것 깨닫고 거리를 두게 했던 성격장애자들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경우에 주위 사람이 더 고통받는다.
내가 아는 그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면서, 뭔가 현재의 찜찜한 행동에도 갸웃거리면서도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먼 길을 와 있다.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이상한 괴물이 내 옆에 서 있는 것이다.

웬만한 관계라면 그냥 끊어버릴 텐데, 결혼을 했을 경우 또는 내 아이의 부모일 경우....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상성격자에게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우울증 같은 것을 상담 받으러 정신과에 가보면 약 처방만 열심히 해줘서 상처 받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던데, 우울증은 약 처방이 있고 본인이 괴로운 병이다. 하지만 성격 장애는 약이 없고 본인이 그 장애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고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타인이 괴롭다.


뭐가 뭔지 몰라서, 주위 사람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서히 증상이 악화하는 사람에게.




단체 생활




2018.03.06 22:30


1월에 2주간 나만 홀로 동떨어지는, 매우 이질적인(?) 집단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오후 6시경 공항에서 매우 어색한 만남 뒤에, 대표자와 다음날 일정 상의를 하고 아침 식사 시간은 9시로 정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여러 원탁 테이블 중 하나에 껴서 정말 어색한 식사를 했다.
낼름 한 접시만 입에 겨우 털어넣고는 서둘러 내 방으로 올라왔다. 밤에 금방 배가 고파졌다.
치킨 요리 정말 맛있었는데, 너무 어색해서 더 앉아있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 어색한 식사는 다신 하기 싫었지만, 전날 밤에 너무 적게 먹은 관계로 배가 고파서 아침 식사는 일단 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혼자', 개인 행동에 익숙한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9시든 언제든 가서 혼자 밥먹으면 되겠지...하고 식당이 있는 호텔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식당 앞 로비에 두런두런 모여있던 위 사진 속 "검은 바지" 사람들 20여 명이 나를 알아보고 그제야 식당으로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기 시작한다. 정말 당황했다.
그 전날 그나마 말을 텄었던 팀 매니저에게 "why ... didn't you have...?!?!?." 얼버무렸다. 너무 당황해서 영어도 안 나왔다. 왜 대체 알아서들 밥을 안 먹고 있는 거야?

알고 보니, 이들은 단체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개인 행동은 없었고 식사 전에도 항상 다 모였다가 같은 시간에 식당에 들어가곤 했다. 몇몇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호텔에 있었는데,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하는 걸 보았다.

2주가 지나가면서 많은 "다름"에 적응했지만...
첫날, 알아서 각자 식사를 해결하는 줄 알았다가 꼴찌로 도착한 나를 기다려서 모두 함께 식당에 들어가는 그 사람들을 보고 정말 당황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게다가 너무나 이질적인 나를 자기들 팀원에 포함해서 생각했다는 것도 당황.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려고 상당히 노력한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몇몇 순간들은
내가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 한 적이 있었다.

'다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기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아에로멕시코




2015.03.06 02:27 

비행기 사진을 찍을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한국에 직항편이 없는 항공사(2015년 시점)의 항공기는 처음 타는 것 같아서 왠지 신기한(?) 기분.




아에로멕시코의 특징은 본인이 앉게 되는 좌석의 알파벳대로 (A, B, C...)탑승을 시킨다는 것. 미국 항공사들이 비행기 앞쪽이냐 뒤쪽이냐(즉 숫자)에 따라서 그룹을 나눠 탑승시키는 것과는 다른 방식.
3-3열 비행기는 복도가 하나 밖에 없으니, 타보면 다들 좁은 데서 짐 정리 하고 짐칸에 넣느라 아수라장인데, 이럴 땐 그룹이고 뭐고 다들 뒤엉켜 난리다. 아에로멕시코는 창가자리 승객이 가장 먼저 탑승하고, 그 다음이 중간, 마지막으로 복도석 승객이 탑승하도록 줄을 세운다. 사람들이 제대로 이 순서대로 탑승해 앉는다면야, 이 방법이 더 합리적이기도.


난 늘 창가자리를 지정하지만 늘 늦게 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창가쪽에 앉는 나 때문에 이미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창가자리 지정했으면 일찍 타긴 해야겠지...내가 민폐.


몬테레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에게 '덕분에 생전 처음 아에로메히꼬 타고 갑니다~ 이따 봐요!!'라고 메시지 보내놓고는,

'스페인어의 'X' 발음이 여러가지인데, 메히꼬 맞겠지? 내 기억에 의하면 맞을 거야...'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비행기에 타고 나서 들은 안내 방송의 발음은 '아에로메히꼬'가 맞다는 것을 단번에 확인해 주었다.



먼저 타게 된 샌프란시스코 ->멕시코시티 구간은 약 4시간이 소요되는 국제선 구간.
천으로 만든 시트가 아닌 인조 가죽으로 만들어진 시트에는 처음 앉아봤는데, 멀리서 볼 때는 기내 전체가 깔끔해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얼룩과 음료 쏟은 자국이 왜그리 많던지;;;; 천보다 얼룩 제거가 더 쉬울 텐데 누가 좀 안 닦나?

4시간 국제선이라서 그런지 기내 영화도 빵빵했지만 'Argo'를 좀 보다가 정신 시끄러워서 시청 중단. 내 바로 뒷자리가 비상구석으로, 2열이 위치해 있었는데 아에로메히꼬는 비행기 탑승 뒤 비상구석 탑승자의 역할에 대해 따로 설명을 해야 하는 규정이 있나보다.
승무원이 내 뒷줄쪽에 서더니, "영어로 할까? 스페인어로 할까?" 이러더니 스페인어로 빠르게 말하고 사라져버렸다.


다음 비행편인 멕시코 시티 ->몬테레이 구간을 델타항공 사이트에서 마일리지로 예약하면서 비상구 좌석을 얻게 되어서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었는데.....음, 다음 비행편에서 저렇게 스페인어로만 말해버리면 나는 알았다고 해야 되나, 모른다고 해야 되나?? 근데 비상구석이 인기있다던데 어찌 나에게 차례가 돌아왔는지 신기하단 말야.




날렵한 winglets 오랜 만에 봐서, 촌스럽게 이런 것도 사진 찍음.
3-3 배열인 이 항공기는 어느 정도 꽉 찬 것 같은데, 내 옆자리는 역시 신기하게 비어있다.

나름 4시간짜리 국제선이라 '멕시칸 푸드'를 기대했는데, 부실한 샌드위치와 당근 조각들 던져주고 끝.
얼마 뒤, 이 자리에 왜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 않았다.
바로 뒷자리가 비상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탈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젠장, 속았네.


나름 seatguru 평을 다 읽어보고 탄 거 같은데, 내가 타는 날 갑자기 비행기 기종이 바뀐 거 같기도 하다.
그래 이렇게 앞자리 좋은 자리가 그냥 비어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북미대륙의 특징적인 지형인, 캘리포니아 아래 -Baja Califonia 로 삐죽 나와 있는 반도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남겨봄. 사진은 흐릿하게 나왔지만 기내에서 볼 때는 정말로 저 지형이 그대로 보였다. 창밖 왼쪽으로 코르테스 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고 있고 나머지가 반도.




멕시코시티에서 환승해서 타게 된 아에로메히꼬 국내선 멕시코 시티 ->몬테레이 구간은 내가 App을 통해 12열로 지정.
비상구석이고 3-3배열에서 여기만 좌석이 2개라서 옆사람 걸리적거리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비상구좌석에 대한 스페인어 설명은, 걱정 안 해도 될 정도. 스페인어 왕초급인데도 이상하게 무슨 소리인지 다 알 것 같았다. 원래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승무원도 이 반복되는 절차에 질렸는지 "너 이해했니?" 같은 건 물어보지 않고 할 말만 하고 사라짐.


비상구석은 인기가 있다던데, 이상하게 이 자리도 나 혼자.
그러나 역시 이륙 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 뒤로 젖혀지지 않는 의자!
ㅠ.ㅠ


아까 4시간은 오히려 별 불편함없이 왔는데, 이넘의 좌석은 진짜 90도로 앉아가는 느낌이라 너무 불편했다. 1시간 비행이라 그냥 참기로 했다.
seatguru에서 미리 경고가 있었는데, 장점도 많이 써놔서 내가 그 부분은 흘려봤구나 ㅜ
그래, 인기 좋다는 비상구석이 텅텅 빈 이유가 있었어.




델타항공 저 좌석안내도 상의 *표시는 젖혀지지 않는 좌석에 대한 표시라는데, 왜 12열에는 없는 거야? 12열도 안 젖혀집니다.
737기종 일부는 그냥 비상구석에서 멀어져야 하는 것 같다.



비상구 좌석은 따로 돈 받고 파는 항공사가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자리인데,
예약 시에 만약 비상구석 사전 지정이 쉽고, 이 자리가 비어있다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