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야드 서울 타임 스퀘어 Courtyard by Marriott Seoul Times Square영등포





 

Courtyard는 매리어트에 속한 호텔 중,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브랜드이다. 2018년 10월 말 기준으로 50개국 이상에 1,100곳의 코트야드 호텔이 있다고 한다.

서울보다 훨씬 많은 여러 호텔 체인들의 경연장이며 거대도시권인 도쿄, 베이징, 방콕에도 1-2곳씩밖에 없는 브랜드인데 서울-수도권엔 코트야드가 현재 4곳이나 있다.
(2020년 1월 수원에 추가 개관해 5곳이 될 예정)

미국에 비해 동양권 코트야드 시설이 더 좋고 (라운지 설치 등)
좋은 시설에 비해서는, flash sale 등을 이용 적절한 가격에 머무를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결국 가장 자주(?) 가본 매리어트 브랜드가 됐다.


코트야드 서울 타임 스퀘어는 2009년 개관해서 국내 코트야드 중에 가장 오래된 곳.
그래서 방 내부는 약간은 오래된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당시는 지금처럼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목을 맬 시기가 아니어서 파워 아웃렛 등의 위치가 기능적이지는 않고 부족하다. 
2017년 가을과, 2018년 겨울에 두 번 숙박할 기회가 있었는데
2017년에는 방이 이랬다.





'비교적' 넓은 구조가 장점. 28-31m²(8.5평-9.4평) 크기.
2017년 처음 봤을 때는 딱히 넓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16m² 정도인 작은 호텔들만 다니다 2018년에 다시 와보니, 침대 사이의 간격도 더 넓고 해서 옆사람의 뒤척이는 소리가 훨씬 덜 들리기도 해서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대부분 판단의 근거는 '상대적'이다.)






트윈룸에서 침대 하나의 크기가 (약간 빡빡하게) 2명이 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다.
이곳은 공식앱에서 성인 3명이 1 room에 예약해도 2인 예약일 때랑 비용이 같다. (물론 식사 비용 등은 추가 지불해야 한다.) 많은 호텔들이 3인 예약을 시도하면 검색 자체가 되지 않거나 1인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것에 비해서는 후한 편이다. 3인 모임을 할 때 좋은 곳.

2009년 개관 당시에는 황녹(?)색과 보라색의 조화를 통해 룸 내부를 꾸민 것으로 보였는데
2018년 여름에 회색톤으로 바꾸는 약간의 리노베이션을 완료했다.
리노베이션 이후 2018년 겨울에 숙박했을 때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서 정확한 비교 샷은 불가 🙍🏻



2017년

2017년


⬇️



2018년 색감 변화






marriott.com의 사진




알록달록 카페트를 걷어내고 마루바닥의 차분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이 세면대는 2017년 당시에도 그리 낡아보이진 않았는데, 2018년 이후 하얀색 상판으로 새로이 교체되었다



스위트 & 일부 트윈룸에만 욕조가 있다







트윈룸에도 욕조가 없는 경우가 있어서, 욕조 없는 트윈룸에서 숙박한 분들이 본인의 경험에 기초하여 "이 호텔은 트윈룸에는 욕조가 없고 1킹베드룸에는 욕조가 있다" 또는 "이 호텔에는 욕조가 없다"라고 후기를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욕조는 일부 트윈룸과 스위트에만 있는 게 맞다. 공식 예약 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다.
"Suites, accessible rooms and rooms with 2 double beds have a bathtub only."
이 영어 문장도 'only'의 위치 때문에 뭔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느낌이 있긴 하나....



     



그 외에 방 내부시설은 2018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티비나 책상, 이런 다기 세트들은 예전과 동일.
다기 세트 외에는, 미니바 시설이 tv 아래로 모두 정리되어 들어가 있어 외관이 깔끔하다.
2017에는 낡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2018년에는 큰 변화없이도 전체적으로 호텔이 더 쾌적해지고 낡은 인상이 많이 지워짐



디카페인 커피도 있음



영등포 북쪽이 보이는 방의 뷰는 이렇다.





코트야드 영등포에서 약간 아쉬운 것이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인데,
(코트야드에 라운지가 아예 없는 나라도 많아서 감지덕지일 수도 있지만)
2009년 첫 코트야드이니, 한국인들의 라운지 사랑을 예측하지 못해서 규모를 너무 작게 지었다.



2017
2018


평일 5시까지는 한적하나 해피아워 시, 금방 붐비는 곳이 됨.
음식의 종류나 술 종류 등은 모두 코트야드 판교가 우위인 듯.
코트야드 영등포에서는 국수장국이 젤 먹을 만했다.





그래도 야무지게 챙겨먹음 ㅋㅋ
2018년 12월에 숙박했어서 그래도 라운지에서 먹었는데, 2019년 1월 이후에는 저녁 해피아워를 15층 라운지 대신에 5층 모모카페 옆에서 제공하고 있어서 사람들 불만의 목소리가 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나 사람들이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 기대하는 어떤 '배타성'?? '특별함'이 사라지고, 손님들이 계속 드나드는 저녁 뷔페식당의 개방된 공간 한 켠에 있다는 느낌 때문인 듯하다. 



* 2023년 1월 1일부로 해피 아워 종료. 라운지 때문에 호텔에 가기도 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잃을 수도...





모든 것이 무난무난한 이 호텔에서, 2018년에 가장 감사하고 싶었던 것은 "조용히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







코트야드 영등포는 중앙난방식으로, 겨울에는 실내 온도 조절이 어려워 방이 덥고 건조해지기 쉬운데 (창문을 열어 온도 조절을 해야한다고 함)
외출했다가 돌아와보니 따로 요청하지도 않았던 가습기가 조용히 들어와 켜져 있었다.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에 너무 감사했다.







밤 해피아워에 다녀와보니, 이번엔 요청하지 않았던 공기청정기도 조용히 등장.
요즘 한국의 겨울은 영하 8-9도 가까운 청정한 추운 날씨 아니면
미세먼지 낀 뿌연 날의 연속인데, 내가 머문 날이 영상 10도 육박할 정도로 겨울치고 기온은 높았지만 공기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공기 청정기를 조용히 가져다 놓으신 것에도 감사.




장점

- 영등포역 근처에 위치해 있고, 바로 옆에 연결된 타임스퀘어, 영화관, 백화점, 이마트.... 추운 겨울에도 외투를 입지 않고 쇼핑을 다닐 수 있고, 심야 영화를 봐도 금방 숙소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문화 체험이 가능.

- 2009년부터 영등포 지역의 독보적인 숙소였으나, 주위에 중소 호텔들이 늘어나고 2018년 바로 근처에 페어필드 서울이 개관하면서 경쟁이 커져 룸레이트가 전과 비교해서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서울 호텔 중에서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를 비교적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업그레이드 등을 기대할 상황이 안 되지만 라운지 혜택을 누리고 싶을 때 이 곳을 예약하면 좋다.

-호텔 옆 타임스퀘어 식음료 매장에 객실 키를 제시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점

- 라운지가 규모가 너무 작아서 쾌적하지가 않고, 저녁 해피 아워 메뉴의 구성의 질이 점점 하락

- 최근 설계된 호텔은 마스터 조명 조절기가 침대 머리맡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호텔은 모든 조명을 한 번에 제어하려면 방 입구 문앞까지 걸어나가야 했음.

- 생각보다 티비 채널이 적다.
혹시 모를, (나같은) 테니스팬들에게 tip⁉️ ATP 투어 경기는 2019년 시점에 kbsn스포츠에서 중계 중인데, 코트야드 영등포 티비 채널에는 mbc-sbs스포츠만 있고 kbsn만 딱 없는 방도 있었다. 🤷‍♀️ 모든 방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 marriott.com 예약시 Service Charge 10%  +  VAT 11.00% 가 붙는다. ++이라서 괜히 돈 더 많이 내는 느낌. 
매리어트 포인트는 세금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 적립되므로, SC가 안 붙는 호텔에 비해서 같은 총액을 내더라도 포인트가 적게 쌓인다.




☆☆
아래  ⬇️ courtyard 라벨을 클릭하면 서울/天津/paris의 다른 코트야드 후기를 볼 수 있습니다.🤗


Memorable moments 2018








Memorable moments 2018

1. 올해 초, 통역 임무로 한 나라의 국가대표팀과 함께 보낸 2주일. 주로 개인 스포츠만 봐왔는데, 단체 스포츠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연습을 위해 체육관에 왔다갔다할 때는 장난스럽던 분위기가 경기 날, 체육관으로 향하는 버스에선 비장한 분위기로 확 바뀌던 놀라움. 알 수 없는 Farsi 주문(??)같은 것을 외면서 신기한 '기' 같은 게 흘러넘치던 버스 안을 잊을 수 없다. 첫 만남에는 긴장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사고 안 치고 규칙 잘 지키고 시간 잘 지켜준 이란 선수단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2. 윔블던, US오픈... 올해 라파엘 나달이 뛴 모든 5세트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달은 테니스계는 물론이고 종종 모든 스포츠계를 따져도 최고의 정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데, 5시간 가까운 모든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는 그 정신력과 실력은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고통을 즐겼다고 말하는 나달. 하지만 2주 동안 7번의 경기를 치르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3세트 내에 못 끝내고 매번 5세트 경기를 가진다는 것은 그 대회 컨디션이 상대를 압도할 상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체력 저하로 우승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처절한 4-5시간짜리 경기들에 감동을 받아, "나도 같이 이 고통을 즐기리라"하며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달의 US오픈 4강전을 새벽 5시에 시청했는데, 1세트 시작하자마자 진이 빠져 '아휴 이것도 못할 짓이다'로 마음가짐이 바뀌어 버렸다. 그 경기에서 나달은 무릎 부상으로 기권했고 2018 시즌을 마감했다. 나혼자 아무리 의지를 다져도 막상 어떤 상황을 딱 만나고 나면 그동안 모든 생각들이 다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3. 강남구청역 반경 100m 이내의 모든 식당을 방문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친절했고 직원들끼리의 유대관계도 가장 좋아보이던 식당이 그 지역 내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맛으로 인정받는 식당이기도 했다(별을 받지는 못했지만 2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 맛집을 표방하면서 거만하고 문턱 높은 식당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세로, 내 식당에 매상을 올려주지 않는 어떤 방문자도 환영한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Job, 소명에 대한 자세에 감동받았던 시간.






머큐어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Mercure Ambassador Gangnam SoDoWe




☆☆ 머큐어 강남은 2021년 하반기부터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Marriott 계열의 AC hotel로 2022년 3월 재개관.
내부 수리를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되므로, 2012년 3월 -2021년 6월의 머큐어 강남의 옛모습으로만 참고. 기본적 방 설계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한계가 있지만 지리적 여건이 좋은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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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나보다 동생인데도 늘 밥을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호텔 1박을 쏘기로.
(대신에 그 친구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돕느라 하루 고생 좀 했다.)

난 조식이 원래 포함된 예약이 아닌 이상, 조식을 잘 안 먹지만
친구까지 아침을 굶길 수는 없어서 조식 포함가로 해도 합리적이면서 시설이 괜찮은 호텔 검색.


그래서 선택된 곳이 머큐어 강남 쏘도베.
역삼역 4번 출구에서 1분 거리 정도? 늘 후기에서 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가깝다.

이 호텔은 침대 뒤 벽에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그 그림에 따라서 평이 갈리기도 한다.






우리 방은 그냥 평범한 와인잔. 머무르는 동안 한번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침대는 포근하고 좋아서 같이 간 친구가 잠을 너무 잘 잤다고 좋아했다.






머큐어는 어느 정도 급이 있는 호텔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방은 작았다. 22m².
화장실은 미닫이문으로 침실과 구분되기는 하지만 화장실을 닫는 유리문의 틈이 커서 자연의 소리가 다 들린다.
저가 호텔을 지향하며 화장실 벽을 완전히 없앤 설계(한-중 지역 동일)로 오픈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페어필드 서울과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ㅎㅎㅎ 조금 민망하긴 결국 머큐어 서울도 마찬가지.

같이 온 친구는 저번 1월에도 같이 호텔놀이를 했었는데, 당시 방을 예약한 나도 기대치 않았던 업그레이드 - 스위트룸 - 에서 같이 묵었던 경험이 있는 친구라, 이번 룸에는 아마 약간 실망했을지도. 
참고로 스탠더드 "트윈" 객실은 7층이 제일 높은 방이라는 이야기를 체크인할 때 들었다. 높은 방 전망을 원하는 사람은 더블 베드룸으로 예약해야....







그래도 와인잔까지 다 구비되어 있어서 잘 이용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오픈한지 시일이 좀 지난 호텔이지만 전기포트도 새로 교체한 듯 했다. 
Cafe bueno라는 dripbag 콜롬비아 커피를 제공하는데, 향이 진하다. 나처럼 카페인에 약해 커피를 많이 못 마시는 사람은 조금만 마신 뒤 티백? 커피백? 🤗에 물을 내려 방에 놓아두기만 해도 은은히 방에 커피향이 퍼져 좋을 듯 하다.

새로 오픈한 서울 호텔이 아니다 보니, 사진 찍을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서 방 구석구석 사진이 없는데....
막상 친구와 같이 저녁 술파티(?)를 하려다 보니, 탁자가 없는 게 단점이었다.
방 한켠에 책상은 있고, 거기에 돌출된 뭔가 구조가 있긴 했지만 의자도 단 하나 뿐이라 둘이 앉을 데가 없었다.

여태 호텔 숙박을 하면서 탁자가 있어도 저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며 무관심 했었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없는 ㅎㅎㅎ
여기는 역삼역 1분 거리라는 위치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진짜 출장자용 호텔을 목표로 한 것 같다.
월요일 아침 9시 이후 조식 식당에는 90%가 정장을 입은 외국인.











욕조 목욕을 좋아해서 욕조 있는 방을 신청했지만, 욕조에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보통 호텔 욕조에는 샤워하는 사람들 미끄러지지 말라고 마찰이 큰 바닥재를 붙여놓은 곳이 있는데, 이곳이 그랬다.
원래 색깔이 그 색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이 검누런 색이라....그렇게 목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왠지 색깔이 사람들의 발때가 묻은 느낌.
기껏 욕조 있는 방 요청해놓고 결국 샤워기만 이용 ㅎㅎ 앞으로 욕조가 있는 방을 특별히 요청하는 것은 개관 3개월 이내인 호텔에서만 하기로🛀🏻🤗

비치된 샴푸 등의 품질은 나쁘지 않다. Paraben free의 자연적인 느낌이 나는 제품.







친구가 "이 호텔은 방은 포기하고 조식에 돈을 다 쏟아부었나봐" 할 정도로 체급(?)에 비해 먹을 것은 많았던 조식에는 한식, 양식 다 골고루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 어제 저녁 뷔페에서 남은 것인지, 런치 뷔페를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음식들인지, 뭔가 조식에 어울리지 않는 든든한 메뉴를 포함해서 종류가 많았다. 보통 혼자 조식을 먹으러 가면 몇 십분 내에 결판을 내고 그냥 올라오는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앉아서 종류별로 먹어봄 ㅎㅎ.


강남역에서도 금방 걸어올만한 거리라서 강남역에서 밤 10시에 끝나는 영화를 보고 떡볶이를 사들고 걸어 오니 서울에 놀러온 기분. 이래서 호텔놀이를 못 끊는 걸까.




장점

- 역삼역 도보 1분, 서울 강남권을 여행하기에 아주 편리하다.
- 개관 만 7년이 가까워 오면서 세월의 흔적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잘 관리되어 있고, 대로변에서 한 블럭 들어와있어서 밤새 조용했다.



단점

- 강남 한복판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방이 좁은 편. 휴식보다는 출장 용도에 적합.
- 테이블이 없어서 음식을 두명이 먹을 때는 불편
- 화장실 소리가 완벽히 차단이 안 되어, 2명이 숙박하면 서로 일 볼 때마다 조금씩 민망함
- 아마도 화장실 샤워 커튼에서?? 습한 냄새가 조금 났다. 화장실에 들어설 때마다 약간 불쾌.
- Accor의 국내 협력 체인인 앰배서더 이름은 달고 있지만, 식음료 매장이 앰배텔 포인트 할인, 적립에는 참여하지 않음. 






열정도 "다가구酒택"





용산의 빌딩들 사이로, 이런 허름한 골목과 다소 유치한 감성의 밥집, 술집들이 모여있는 줄 몰랐다.




오래 된 건물을 개조해서 술집으로 꾸밈.





아... 이 창문의 무늬는....


           이 무늬를 알면 진정 옛날 사람








Waterproof T.T



오래 된 랩탑의 키보드에 물을 쏟아서 결국 문제가 생겼다.
너무 오래 된 재품이라, 새로 샀으면 샀지,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지금은 아이패드로 작성 중) 
맨윗줄, 소위 qwerty 자판에서 앞 4개의 기능을 잃었고 중간의 T, Y는 괜찮고 그 오른쪽옆 자판 4개도 입력이 안 된다.
26개 알파벳 중 8개만 잃었지만 대부분의 단어를 칠 수가 없다.
맨 윗줄에 E U I O, 모음이 몰려있어 단어 완성이 안 되기 때문.
어제 밤 잠시 중간줄 맨 왼쪽 A 자판도 입력이 안 되었는데 그러면 거의 모든 모음이 입력 안 되는 거라서, 키보드로서의 기능을 잃을 뻔. 지금은 그나마 A라도 눌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한글도 자음의 대부분 ㅂㅈㄷㄱ 와 ㅕㅑㅐㅔ가 안 되어서 문장을 구성할 수 없다.
그래도 컴퓨터에 가상 키보드라는 기능도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대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왜 부주의하게 물을 쏟아서 안그래도 늙어가는 이 랩탑과의 이별을 더 앞당기게 되었는지...안타깝네.
키보드 부분이 방수인 제품은 .... 이젠 있겠지?


지금 내 랩탑 키보드로 모든 요일을 친다면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모요일
ㅡㅁ요일
토요일
일요일



take me





감상이 아니라 '체험'이 되는 몇몇 영화들이 있다.
그 체험의 종류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던 작품들이 '체험'으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Mar adentro, P.S. I love you, 인사이드아웃,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같은 영화들.


그중 누군가의 기일과 겹쳐, 그날밤 영화 보다가 너무 울어서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까지도 콧속 (머리 속?)에서 특유의 울고 난 뒤 코가 막혀 맹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던 영화, P.S. I love you.
다른 세 영화는 탁월한 명작이라 원래 눈물콧물 짜내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P.S. I love you는 개인 경험과 겹치면서 영화 초중반부터 질질 짜며 보게 만든 것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 '날'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울지 않으면서 봤을지도 모른다. 뭐야? 너무 뻔하잖아? 하면서...




(thumbnail이 뭐 이래.... ㅎㅎ 제라드 버틀러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임)



OST도 좋아서 당시 mp3와 친하지 않았던 나였는데도 몇 곡 구입하기까지 했었다.
위의 youtube에서 나오는 Love you 'till the end는 이 영화를 대표하는 노래인데, 사실 이 노래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극중에서 주인공이 너무 슬프게 부르는 버전이 있어서 그게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특히, "oh, why don't you just take me where I've never been before~" 라는 가사는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저 가사가 그냥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와닿는다.
위 가사는 사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해석해보니, 딱히 '장소'로 데려가 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난 그냥 literally 나를 끌어줄 뭔가에 이끌려, 진짜 새로운 동네에 가보고 싶네.









당황스럽게 막을 내린 2014 ATP 테니스 시즌.

2014년 11월 17일 적은 글.

이렇게 열심히 테니스 보고, 글 쓰고 하던 시절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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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투어 일정에서 첫 메이저 대회 - 호주 오픈 결승전 - 이 나달의 부상으로 입장료 아까운 경기가 되고 말았는데,
2014 한 해를 결산하는 나름 대형 대회 - 투어 파이널즈 결승전 - 마저 페더러의 기권으로 결승전이 아예 사라진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07년 정도부터 해외 테니스 중계를 보아왔는데, 매해 거의 그놈이 그놈인 결과로 끝났던 게 ATP 투어라면, 2014년이 가장 변화가 많았던 해인 듯.
평생에 걸쳐 기권이 거의 없는 페더러인데, 수많은 관중 앞에서 진통제 이야기까지 해가며 자신의 부상을 설명하고 기권을 해야 하는 기분은 어땠을지...


혼자서 2014년 대충 돌아보기.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다음에는 더 멋지게 실패하라는... 바브린카의 팔 문신.

몇 번의 실패로부터 결국 성공을 이끌어낸 호주 오픈 이후 거물급 인사가 된, 그러나 그 이후 성과는 생각보다 미미했던 스탠 바브린카.

Andrew Murray가 Andy라는 애칭을 공식적으로 쓰듯이 Stanislas도 Stan으로 쉽게 부르고 표기하도록 ATP에 요청해서, 롤랑 가로스부터 공식적으로 Stan이란 짧아진 이름으로 투어에 참가하고 있다.




나달 코치 토니 삼촌의 영어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쎈 억양을 써서,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토니 코치와 바브린카가 소통이 잘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토니 삼촌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는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를 훨씬 잘 하더라. 프랑스 방송국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 몇십 분씩 떠들 정도. 프랑스어가 더 익숙한 바브린카와는 아마 프랑스어로 대화할 듯.

더 이상 서로를 보며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이가 된 나달과 조코비치, 2014 프렌치 오픈의 결승전 상대.


2012년 결승전 사진


둘다 너무나 간절한 우승이었기 때문에 롤랑 가로스 시상식에서 결국은 둘 다 눈물을 보였다.
서로에게 너무나 큰 장벽.

나달은 이 대회 이후로 계속 컨디션 난조로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조코비치는...



새 옷 갈아입듯이 다시 태어났다.
윔블던 두 번째 우승과 함께 다시 World No.1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아쉬운 점도 몇몇 가지 있었겠지만 결국은 투어 파이널즈 우승까지 차지하며 201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내년 초까지의 전망도 가장 밝고.
2014년 호주오픈에서 바브린카에 패해 일찍 탈락한 것이 결국은 2015년 랭킹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만들어줄 듯 하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ATP 500대회도 우승해 본 적 없던 칠리치의 US open 우승. 조코비치를 5세트만에 꺾고 올라오느라 힘이 빠진 니시코리를 3세트에 비교적 쉽게 제압했다.
여태 대부분 5세트 혈전 뒤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진행되어 왔던 US open 시상식 시간을 해질녁으로 앞당겼다. 

칠리치는 US open 우승자들의 통과 의례인 미국 방송국 투어를 하며,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던져주었다.


"그까짓 메이저 이제 16번만 더 우승하면 페더러를 따라잡겠군."


흔치 않은 페더러의 기권으로 투어 파이널즈의 결승전이 사라져버린 대신에,
집에서 한가한 일요일 오후를 비디오 게임과 함께 보내고 있던 앤디 머리가 전화 한 통 받고, 순순히 이벤트 경기를 위해 O2 Arena로 나왔다.
테니스 원로들까지 이벤트 복식 매치에 합세하고.

ATP 남자 선수들의 훈훈한 매너인 듯. (뒤에서는 에이전트가 피튀기는 출전비 협상을 벌이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는 경쟁하는 관계이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같은 인터뷰도 심심치 않게 하는 WTA 여자 선수들과는 왠지 다른 ATP 선수들 분위기.ㅎㅎ


이렇게 또 한 시즌이 지나는구나.
개인적으로는 테니스와 가까워지기도, 어떤 면에서는 멀어지기도 했던 시즌.
그래도 내년엔...


글로 남겨놓지 않았다면 잊었을 이름들, 경험들 - 3



16 Nov.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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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훈련 과정 도중 여주에 있는 오순절 평화의 집에 봉사실습을 갔다.
지체장애아동 여러 명이 모여있는 곳.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이곳이 그나마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말은 한눈에 보고 믿을 수 있었다.

그날은 그 곳의 아동들이 건강검진차 X-ray를 찍으러 바깥 병원에 나가는 날이었다.

장애등급에 따라 나뉘어진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한 명씩 데리고 나와서 책임지고 버스로 이동하고 사진까지 찍은 다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하루 이런 봉사에 심한 회의가 들었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들을 감싸안고 내려간다는게, 나의 가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봉사.

내가 처음에 맡은 '대남'이라는 아이. 
안아주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내내 안고 있어야 했는데, 아마도 상체는 거의 나만하게 큰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상체가 유달리 말라서...) 나중에 팔에 근육통이 생겼을 정도로 무거운 대남이를 내려놓으면, 모든 손잡이가 달린 문을 열려고 뛰어가서 정말 불안불안했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 했던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음에 맡은 아이는 덩치가 더 컸다. 제대로 자랐으면 거의 나만했을 것 같은 미란이라는 아이. 

제대로 몸을 못 가눠서 처음에 봤을 때도 눕혀진 상태였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두 좌석을 차지하고 누운 상태로 내 무릎을 베고 갔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고 웃었다.
장난을 걸면 너무나 좋아라했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내가 내는 소리를 따라 내려 노력했다.
가식을 떨지 않기 위해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나즈막히 불러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따라하는 건지 미란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무슨 이유로 이 아이는 평생을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걸까. 

그뒤 미란이와 어린 아기들이 있는 방에 남게 되었다. 미란이는 이름을 불러주고 장난을 걸면 웃는데, 매일매일 봉사자들이 있는게 아닐 것이므로 대부분의 나날을 외롭게 있을 게 분명했다.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렇게 돌아갔으면 이날 하루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이날을 기억하게 만든 아이는 '초희'이다.

아마도 다운증후군이라 버려졌을 이 아기는 너무 작고 얌전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우유병이 들려지고 이 아기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너무나 얌전하게 우유를 잘 받아 마시던 이 아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순간 느꼈다. 아기에게는 꾸준히 눈을 맞춰줄 '모성'이 필요하구나...하고...
이렇게 꾸준히 눈을 맞춰주고, 일관성을 제공하고 애착을 제공할 상대가 없으니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매일매일 바뀌는 '엄마'는 이 아기에게 얼만큼의 안정감을 제공할까...

어디서 주워들은대로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안고 서서 방을 빙빙 돌아다녔다. 아기는 신기하게 트림을 했고 내가 계속 눈을 맞춰주니 아기가 드디어 웃는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휴..
이런 하루 봉사가 정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아기는 계속 눈맞춰줄 모성이 필요할텐데...
약간 회의적이었던 이 봉사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그날 하루를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어준 초희.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Not a But e




페이스북에 어떤 사진을 올릴까 말까 하다가 
비공개로 보류해 놓았다.


몇 시간 뒤 다시 보니, 공개로 안 하길 잘 했다.


Be....a...r??



☕️커피일까, 곰.... 🐻⁉️❕일까?
e만 4개 썼어야 하는데 🍺 a는 왜? ㅋㅋㅋㅋ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괜히 썼다가 철자 틀리는 사람 많이 본다. 
나도 거기에 동참했네 ㅋㅋㅋ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외국인의 한국어 실수가 떠오른다.

"내가 곧 갈대니까 기다려!"
(나 = 갈대?...😂)


글로 남겨놓지 않았으면 잊어버렸을 경험들....2





2003년 11월 10일 중국에서 적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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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국어선생님과 일명 "영어선생님"으로 통하는 나는 
王蘭庄이라는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인 부부는 우리에게 방 두 개를 내어 주고
초딩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들과 한 방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학원 원장선생님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선생님이랑 돈을 합쳐서 680元 짜리 선물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Isetan백화점의 종이백에 넣어서 그 선물을 거실에
던져 두었다.

Isetan 백화점은 일본계 백화점으로, 서울 생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어제 낮에 갑자기 쌀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그걸 대체 어찌 
해결할까...서러웠는데(--;;) 그 백화점에 가니
각 나라의 음식을 다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식 쌀국수보다 훨씬 한국사람 입맛에 맞고
맛있다.


어제 밤에 난방 기구를 수리하러 남편 분과 함께 오셨던 
주인 아주머니는 그 백화점 종이백을 보고 놀라시더니
우리에게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내가 알아들은 건 아니구..--;;)
그러면서 자기 남편은 한 달에 800元을 번다고 하셨다.


거의 중국 근로자의 한 달치 봉급에 육박하는 선물을 사 온
우리가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인구도 국력이라지만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일자리도 모자라고, 인건비도 너무 저평가되어 있고...
사람들 힘들어서 어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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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5년 전 당시엔, 그 중국인 가족이 우리가 세들어 사는 집의 "집주인"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 집주인보다 세들어 사는 '한국인'들이 더 잘 사는 사람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잘 산다고 알려진 한국인은 범죄 대상이 되기 쉬우니, 절대 외국어하는 티내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당부도 들었었고.

집주인이었지만, 우리에게 더 큰 공간을 내주고 비좁게 살면서 세를 받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주인 아줌마가 우리의 청소와 빨래, 반찬거리 등을 도와주시면서 추가로 얼마간의 돈을 더 받고 사셨다. (중국에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투자'의 개념으로 빚을 내서 집을 사셔서 우리의 월세로 이자를 충당하고 계셨던 것인지...)


내가 살던 시기의 중국에는 너무 쉽게 어렵게 사는 분을 마주칠 수 있었고, 길만 조금 걸어나가 반대편 동네에는 냉장 시설도 없이 그대로 생고기를 내놓고 파는 정육점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내가 이렇게 걱정 안 해줘도 이 가족들이 나보다 훨씬 더 부자로 잘 살고 있을 듯!







그림자 극장



집앞 나갔는데
독특한 분위기의 배경을 제공했던 석양




석양을 배경으로 한 그림자 극장에 배우 등장





극의 제목은 "일방통행"?


공간





지난 2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던 방.

'그래서 내가 안 보였구나.'


안 보이는 걸 보아달라고, 보았어야 했다고 투정부릴 수는 없구나.
슬픈 일이었지만, 그 뒤로 아픈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을 주었던 깨달음.



이런 시대




댄 브라운의 소설 [Lost symbol]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들을 보면 지금의 우리를 '신'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사실 신이 뭐 별 거냐?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


진짜로 그러할 것 같다.
수백년 전, 어떤 '왕'들의 사인은 그저 "맹장염"이었을 법도 하다.
수백년 전에는, 최고의 의사들에 둘러싸인 왕도 속수무책으로 복막까지 번진 맹장염을 고치지 못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신께 제사를 지내고 기원을 드리고 복통이 심한 왕의 쾌유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겠지.

현대에 오면 맹장염 (충수염)은 2박 3일 안에 퇴원을 종용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 된다.
(요즘 많이 하는 복강경 방식이 아니고, 나는 스리랑카에서 개복 수술로 맹장을 떼어냈는데도 자신의 완벽한 수술 실력을 자랑하고픈 의사가 하루 만에 내 입원실에 와서 자꾸 퇴원하길 권했었다. "You can do anything what you want from now" ㅎㅎㅎ)

예전에는 아무리 빌고 제물을 바쳐도 안 되던, 극심한 복통이 이틀 안에 사라지게 하는 그냥 '신'이 이제는 우리 곁에 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서서 "앞으로 251번 버스가 4분 23초 후에 이 정류장에 도착할 것이니라" 하면 아무도 안 믿었을 거다. '이 사람은 선지자인가?' 
하지만 요즘은 선지자가 아니어도 손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내가 탈 버스의 위치와 도착 시간을 알 수 있다. 내 눈앞에 없는 것의 위치도 알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됐다.



한때 은행의 순번대기표와 "딩동" 호출소리도 혁신적인 기술 발전이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차 안에서, 화장실 안에서
내가 갈 은행 지점에 현재 몇 명이 대기중인지도 확인할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대기번호표 미리 발행도 가능하다.


90년대로 돌아가서, 은행에 볼일 보러 가는 어머니께 
내가 집에서 "엄마, 지금 은행에 17명 대기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번호표를 발행해 드릴 테니 @@분 뒤에 가보면 딱 맞을 거예요" 한다면
니가 무슨 점쟁이냐, 신이냐?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옛날 사람들이 현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본다면 정말 신이 따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는 탐험가들이 목숨 걸고 몇달간 배로 건너던 대서양 바다 건너기도 이젠 몇 시간 안에 이동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도 얼굴 보며 매일매일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라니....진짜 예전에는 신이나 가능한 일 아니었나. 

기도는 필요없고, 충전이 필요할 뿐.






ලොකු මතක ගොඩක් (A lot of great memories)



කවදා හරි දවසක

නුවර පාරේ
බස් එකක නැගලා

මේ බිම් කඩ පහු කරද්දී
ඹේ පපුව ඇතුළේ
හීනියට ගින්දරක් මතුවෙලා

ලොකු මතක ගොඩක්

පුංචි හිනවක් මුව අගටත්

චූටි කඳුලක් ඇස් අගටත්

එයි මචං...




내가 일했던 대학교 사진과 함께, 제자가 위의 문구를 퍼와서 본인 페북에 게시했다.
단어 몇 개를 보니 느낌이 오는 내용이었다.
오늘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해석을 하니, 확실해졌다.

어느날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마주친
모교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
두번째 줄의 නුවර පාර가 내가 일했던 대학교가 위치한 도로 이름인데,
내가 살던 집 주소 역시 그 도로 이름을 사용했다.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나도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긴 했지만 가끔 නුවර පාර를 따라 20여 분 걸어가면 나오던 나의 학교.


아무리 읽어도 '문자 음독'만 가능할 뿐, 내용은 감을 잡을 수 없는 글들 투성이였는데
그래도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을 만나 기쁘다.
흑흑.

몇 년 외국에 살다 왔다면서
그나라 말 잘 못 하는 사람 비웃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이야.

차라리 이렇게 단어 읽는 거, 단어 뜻 기억해내는 거가 낫지
말로 하는 것은 똑같이 2년 살고 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못한다.ㅠ.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꼬불꼬불 글씨를 읽고 일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게 신기해진다.

내가 이 글자 읽을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මම මෙලෙස ඇවිද ආවෙමි
ඔබ මග කියාදුන් නිසා


ඔයා නත්තල් කලින් එන එකට අකමැතිනම්

ඇයි මේ ෆොටො එකට හිනැහෙන්නේ?



의식




영어권 사람들 중에, 특정 나이를 지나면 "oo years old" 대신에 65 years "young"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들은 본다.

처음에는 참신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 통념을 거부하는, 자기 식대로 삶을 살겠다는 표현이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나는 오늘로 70 years young이 되었다" 라고 쓰는 것 자체가
이미 늙은 것이고 나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17살인, 21살인 사람들은 "23 years young"이라고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살며, 나이를 의식도 안 하고 사니까.


마음이 흘러흘러




일명 '소셜 미디어'....
내가 가장 분주한 시절을 보낸 곳은 싸이월드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한다.

2008년경 부터 아무 생각없이 끄적였는데
2013-2014년쯤부터 내 관심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기 블로그가 되었고
모르는 사람도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인터넷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네이버]인데
내가 관심있어서 글을 꾸준히 쓰던 주제에 대해서는, 네이버에 그 단어를 치면
내 블로그가 가장 먼저 검색되어 나왔었다. 내 블로그는 네이버 블로그가 아닌 싸이월드 블로그인데도...

그래서 그 단어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는 날이면 어떤 때는 수천 명 방문자가 찾아오기도 했던 블로그.
나중에는 아무 성의없이 끼적거린 글인데도, 자연스레 검색 첫 페이지에 나와서 천여 명이 읽고 가는 바람에 조금은 글 쓰기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블로그.


2015년 가을,
십여 년 만에 외국에서 친구를 만났다. 내 생활을 궁금해 하는.
그 친구가 성공적인 직업을 갖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이뤄놓은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친구 "매일 밤 늦게 잔다고? 대체 그 늦게까지 뭘 하는 거야?"
나    "........"


그때 입 속에서 꾸물꾸물 "야, 네이버에 XX(국제적으로 유명한 일임) 한 번 쳐봐. 내 블로그가 제일 먼저 나올테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블로그의 공개는 내 생활상의 공개이기도 해서 꺼려졌다.
그 친구가 말로만 내 생활을 궁금해했을 뿐, 내 블로그를 안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네이버에 XX 검색해보라고 말 안 하길 진짜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싸이월드 블로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싸이월드의 개편으로 '싸이홈'이라는 이름으로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이상한 형태로 통합되었고, 네이버 검색에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친구에게 차마 말을 하진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나마 내가 7년간 한 일 중에 뭔가 꾸준히 해서 티가 나는 일은 블로그 뿐이었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에, 그 결과물은 사라졌다. 매일 3-400명이 찾아오던 블로그엔 싸이월드 개편 이후로 3,4명의 방문자가 찾아왔다.



방문자가 줄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몇 주간 싸이월드에 접속 자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속내를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심심? 초조? 우울?해졌다.

그래서 결국 구글 블로그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곳은 이제나 저제나 조용하다.
네이버는 구글 블로그를 등한시해서 네이버를 통해 방문자가 유입되는 일도 드물고
한국인은 구글 검색 자체를 별로 안 하기 때문에 구글을 통한 유입도 드물다.

한때 나의 싸이 블로그에 댓글을 많이 달아주는 애독자였던 친구에게 이곳 구글 블로그를 만들었을 당시에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 친구가 그때처럼 댓글을 많이 달아주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갖게 되길 바랐지만
그 친구는 싸이월드에도 발길을 끊었고 여기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3년 전 이맘때, 싸이홈이라는 데에 끄적여 놓은 글을 보면, 바뀐 싸이도 낯설고 새로 옮긴 구글도 낯설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엄청 심적으로 외로웠었지.


나는 아직도 싸이홈도 하고, 구글 블로그도 하고, 페이스북도 한다.
한국 사람 사이에서는 인스터그램이 대세라서, 그냥 인스터그램에만 주로 일상을 소개하고 다른 매체에는 똑같은 내용+인스터그램 주소만 그대로 링크해서 올려놓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싸이월드, 구글 블로그, 페이스북에 각각 다른 내용을 쓴다.
뭐 일상이 거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새 각각 다른 내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3년 전에 그렇게 낯설었던 구글 블로그가 이제 가장 편해져서
가장 마음 속 이야기는 여기에 쓰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절친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싸이월드는 그냥....미련이 남아서 예의처럼, 습관처럼, 끼적이는 내용들.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어쩌면 사회 생활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대부분이 스리랑카 학생들이라, 나는 거기서 '착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는 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혼자 좋아하고 살다가 한 방에 걷어차이고 이혼한 전남편 같고,
구글 블로그는 혼자 남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결국 내 옆을 지키게 된 새 남자친구,
페이스북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사귀는 친구 느낌이다.

아픔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북적북적 부대끼던 옛 시절을 못 잊어, 여전히 서로 예의차리고 안부 묻는 ex남편 싸이월드.
슬슬 정은 붙어 가지만, 친구가 너무 없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은 새 남자친구 구글 블로그.
남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숨겨놓고 싶기도 한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있으면 뭔가 자연스런 내 모습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식적인 내 모습 연출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international한 친구 페북이.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