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죽기 직전의 임사 체험(!)을 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굉장히 짧은 순간에, 그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대체 어떤 영상일지 궁금하다.
내 인생에서 어떤 부분이 선택되어 있을지....


또 하나 궁금한 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를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하거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되면
따듯한 미소와 함께 눈을 감게 될지...
아니면, '아, 이 사람이?!?' 하는 탄식과 함께 눈을 감게 될지 궁금하다.

마지막 순간에 신의 선물처럼, 퀴즈의 답처럼 보여주면 좋겠다.



알 수 있어.



꽤 오래 전에,
누군가가 석사 논문 제출 안 하고, 수료로만 마치려는 걸 지인이 설득해서 억지로 졸업을 시켰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억지로 써서 낸 졸업 논문 수준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논문 공개 사이트에 가봤다.

 

※ 해당 논문은 저작자의 요청에 따라 [원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음...그렇구나.
뭔가 공개하기 부끄러웠나봐.


또 몇 년이 지나고....
지도교수와 전혀 상담도 없이, 수료 후 몇년 만에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나 홀로 논문 발표를 하고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태 얼굴도 몰랐던 학생의 등장에 교수들도 '논문 이렇게 쓰는 거 아닙니다' 했지만, 통과는 시켜줬다고 했다. 수업을 꽤나 등한시해서 학교를 떠난 줄 알았던 사람인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에겐 학위'만' 필요했나보다.

그런 사람은 어떤 수준의 논문을 낼까 궁금해서 논문 공개 사이트에 가봤다.



※ 해당 논문은 저작자의 요청에 따라 [원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위 두 사람 외에, 내 지인 중에 논문 공개를 불허한 사람은 없다. 

음....
그렇구나.
뭔가 자랑스런 논문을 내지 못한 사람은 티가 나는구나. 




어떤 순간 포착




재미있는 트윗을 봐서 화면 캡처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화면이 퐁퐁 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게 뭐지? 하는데, 아마 내가 캡처 버튼을 누르려는 동시에 글쓴이는 삭제를 하고 있었나보다. 다시 봐도 그 글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이거 재밌네. 내 폰에 저장해놔야지.'하고 생각한 순간과 
그 글쓴이가 '이거 지워야겠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는 게 뭔가 웃기다.


내용은, "한국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된 외국인들이 '깻잎'을 '깨싶'이라고 읽을 때마다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뭐 이런 거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라도 한국어 초보였으면 깨십이라고 읽었을 것이고, 깬닙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나에겐 당연히 모국어니까 깻잎을 백번 봐도 지금 머리속에선 '깬닙'이라고 자동 음성이 흘러나오지만....


Daughter,  enough, merci beaucoup....
곧이 곧대로 쓰여진 철자 그대로 읽으면 절대 제대로 된 발음을 낼 수 없는 외국어들을 보며, 이게 뭐야? 해왔지만...

알고 보니 한국어도 제대로 된 발음을 외국어로서 배우기엔 변칙이 많은 언어였다.
평생 써 온 언어라서 잘 못느낄 뿐.

사실 한국인에게도 한국어는 쉽지 않고, 변수가 많은 언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음 동화 때문에 '선릉'역은 설릉이 맞고, 지하철역사에도 영어로 "Seolleung"역이라고 표기되지만 한국 사람 중에 설릉역이라고 발음하는 사람 거의 못봤다. 대부분 "선능역".
학여울역도 "Hangnyeoul"역이라고 역에 써있지만, 항녀울역이라고 읽는 한국인 아무도 못봤다. 대부분 '하겨울역'. 아마도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이가 크지 않을 발음일 것이다. 한글을 보고 읽으면 대부분 저렇게 읽을 테니까.

외국인에게 내가 한국어를 가르칠 때 비음, 설측음 등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음동화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 학생들이 이해했는지는 미지수이다 ㅎㅎㅎ.





지금 깨달았다.




원래 이런 거 잘 안 챙기지만...
얼마 전 4월 14일에 갑자기 '블랙데이'를 기념하고 싶어져서 😉 짜파구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너구리는 있는데, 짜파게티가 없어서 사러 수퍼에 갔다. 그런데 수퍼에는 5개들이 묶음만 판매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유통기한 지나버린 짜파게티 묶음 일부러 먹느라 고생했었기 때문에, 블랙데이 하루 때문에 5개묶음을 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낱개 라면도 파는 편의점으로....

편의점에 가니 짜파게티 있던 곳은 비어 있고(헉! 블랙데이라고 나처럼 짜파게티 사먹는 사람이 또 있나🤪) 사천짜파게티만 있었다. 2인분을 만들 것이었기 때문에 2개를 사들고 집으로.




뭔가 씹히는 맛이 좀 더 나게 하기 위해
'크래미'같은 이름을 가진 게맛살류를 좀 더 추가하고, 그냥 냉장고에 있길래 시금치를 던져 넣었다.

생각보다 엄청 맛있었던 짜파구리 ㅎㅎ.



그런데 지금 새벽에 문득,
너구리 분말스프를 끄집어내기 위해 너구리 한 봉을 뜯은 것이 생각났다. 분말스프만 썼기 때문에 너구리 면은 그대로 남았고, 사천 짜파게티 스프 하나도 반 이상이 그대로 냉장고에 따로따로 남아있는 게 생각났다.

그렇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면발 굵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짜파구리 '2인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래 짜파게티 1개+너구리 1개로 충분하다. 2인분을 만들 때 나처럼 집에 짜파게티가 없다고 해서, 짜파게티를 2개 더 사와서 너구리 1개는 스프만 뜯고 남겨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ㅎㅎㅎ

지금 뭐 너구리 면+사천 짜파게티 스프가 따로따로 남아있으니, 사천 짜파게티 한 번 더 만들어먹을 수 있긴 하지만, 사실 2인분 만든다고 2개를 살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편의점 물가가 더 비싸기도 하고.


머리를 좀 쓰고 살자.
🤯








나는 이게 이상해



한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남주/여주를 맡던 사랑스런 배우들도 40대가 넘어가면 순식간에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자기가 하던 남우주연/여우주연의 아빠-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만 고집하다가 30대 후반기를 잘못 보내면 결국엔 역할이 더 줄어들게 되어 휴직 상태가 되므로, 생각보다 더 이른 나이에 주연의 엄마-아빠 역으로 넘어가서 조연에 안착하는 배우들을 많이 봤다. 실제로는 중고생 자녀가 있을 수 없는 나이인데도 이미 중고생의 부모로 등장하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 역이 아닌
40대 이상의 여성이 단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몇몇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 주연 배우가 인터뷰할 때마다 "이 역을 하기 위해 물도 안 마시고 살을 뺐다." 를 몇 번씩 강조했던 것은 아쉬웠다. 또다른 배우는 드라마상에서 집에 들어와서 쉴 때조차도 너무나도 외출복같은 예쁜 옷을 입고 우아하게 나타난다. 연기력 외에도 "와, 저 배우 저 나이에 몸매 관리 잘했다." "와, 저 옷 어디 거야? 예쁘다" 이것으로도 화제를 끌어야한다는 게 아쉽다. 여자는 능력 말고도 외모/차림새로도 인정을 받아야 해서.


최근의 한 드라마도 "능력있어서 너무 바쁜 의사 엄마 + 무능력하지만 자신과 잘 놀아준 아빠" - 구도가 등장하면서, 부부가 이혼 위기에 처했을 때 아들이 아빠에게 더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짧아서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거 뭔지도 잘 모르잖아!" 소리를 아들에게 듣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가, 매일매일 바뀌는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선보인다. 대체 매일 바뀌는 저런 옷/구두/장신구 다 색깔 맞춰 다 구입할 시간은 있는데, 아들이랑 놀아줄 시간은 없는 엄마란 말인가. 정말 바쁘고 능력있는 의료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람들이 잘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퍼스널 쇼퍼'가 따로 있다고 해도 그 옷들 '컨펌'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을라나...아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옷 챙겨입는 거 하나는 확실한 엄마. 누군가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잖아?'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여자 = 늘 옷에 신경을 써야하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새벽에도, 한밤에도, 금방 외출할 수 있을 듯한 완벽한 차림새를 집에서 하고 있다. 어떤 아침 장면에서는 꽤나 외출복다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엄마는 이제 출근 준비할게"하더니, 또 다른 옷을 갈아 입고 나온다. 연기력만으로는 안 되고, 입고 나오는 옷과 몸매 관리로도 이목을 끌어야하는 게 '여'배우의 숙명인지.... 

'가정사'로 출근 시간에 무단 지각을 해서 황급하게 나타나는 상황에도, 여배우는 역시나 "색깔맞춤"을 한 완벽한 옷차림을 선보인다. 기다리는 환자들은 생각 안 하고 옷만 고르고 있던 사람으로 보인다. 여기서라도 좀 더 다급하게 나타난 모습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신던 하이힐 대신에 '스니커즈'라도 신고 내달려서 나타난다든지 하는....배우나 그 스태프나 영리하진 않은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검은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시선을 모았다. 마크 저커버그는 똑같은 티셔츠와 바지가 수십 벌이 있다고 하며, 옷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갑부 청년의 무심함과 소탈함으로 화제를 모았다.

어떤 외국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다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의 실용성은 칭찬하지만, 그런 기업의 셰릴 샌드버그 같은 여성 대표가 프리젠테이션에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절대 같은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아들과 사이가 소원할 정도로 바쁜 능력자 엄마도,
그래서 매일매일 아름다운 옷으로 시선을 끌고 타인의 부러움을 사야 하나보다.

'모든 게 완벽히 행복한 줄 알았던 성공한 여자, 그녀에게 갑자기 일어난......'으로 드라마의 전제가 시작될 때, 그 여자가 통통하거나 빌 게이츠처럼 푸근하게 스웨터에 면바지 차림으로 다녀서는 '성공'한 여성으로 부러움을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조건 옷은 수백벌이 있어야 하고, 그 옷에 맞게 늘씬해야 한다. 그래서 몇년 전 어떤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은 여성이 인터뷰때마다 체중 감량을 강조했었나보다.


50대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해서 칭송받는 여배우들이 사회 생활 장면에서는 최고의 매력을 유지하더라도 (마크 저커버그가 아니니, 청바지 입고 회사에 나갈 수 없다) 집에서 쉬는 장면에서는 좀 현실성있게 편안한 옷을 입고 나와도 되는, 그런 시선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독주연급 여배우가 극중에서 "무릎나온 츄리닝"을 입고 나와 양푼에 밥 비벼먹으면, "ㅇㅇㅇ 연기 변신! 대책없이 망가졌다." "ㅇㅇㅇ 에게 이런 모습이!" 같은 기사가 뜨던데..ㅡ 사실 밖에서는 칼로 베일 듯 도도한 코트-구두-장신구 합을 다 맞춰서 돌아다니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다들 무릎나온 늘어진 바지로 갈아입고 대충 챙겨먹지 않나?? 아닌가? '전문직'들은 집에서도 드레스를 입고 사는 걸까.


매일 바뀌는 옷과 구두로 '어머, 저거 브랜드 어디 꺼래?' 이 궁금증 유발시키려는 노력 그만 하고....
이젠 종종 같은 옷도 좀 입고 나오고 그랬으면 좋겠다. 
매분마다 바뀌는 옷으로 그 배우의 노력을 평가하는 건 이제 그만.








나도 언젠가는 그랬을까



단톡방에 같이 속해 있는 아는 사람이 이사를 했다.
거기에 속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들에게 비싼 집들이 선물을 해주자, 그들이 단톡방에 즉시 사진을 찍어 올리고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약소한 선물을 보냈는데, 거기에 대해선 잘 받았다는 인사가 없다. 아마도 나도 다른 사람처럼 비싼 뭔가를 보냈으면, 지금처럼 그냥 밀어놓고 나중에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격지심인가.

뭔가 서글퍼진다.
돈을 적게 쓰면, 아무래도 적게 쓰는 그 사람에 대한 대접은 확실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혹시 예전에 그렇게 가격에 따라 차별을 두어 사람을 대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하루 만에 가장 많은 선물을 받은 날은, 내가 2년 동안 임기를 마치고 학교를 떠날 때였다. 






높이가 내 턱밑까지 차는 이 선물은 사실 받고도 당황했던 제품^^. 다행히 학생들이 나에게 줄 때도 박스에 넣어왔기 때문에 그 박스채로 EMS로 집에 부쳤는데, 박스 안에서 흔들려 파손될 위험 때문에 박스와 저 램프 사이사이 빈 공간을 채워야했다. 종이와 신문지 같은 걸로 채우다 채우다 결국 그날 입고 있었던 옷의 일부까지 넣어서 한국으로 보냈었다. 🤪🤣




얼마 뒤 집에 와 보니, 무사히 도착해있었다ㅡ 나머지 코끼리상, 백조(?)상, 불상(!) 등은 나의 환송회 때 선물 받아서 직접 내가 가방에 넣어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온 것들이다. 스리랑카 학생들은 유난히 저런 장식품이나 액자 선물을 많이 하는데،‌‌ 운반이 너무 어려워서 많이 깨먹었다 ㅠ.ㅠ

그리고 특징적인 선물은 장신구. 
기본적으로 인도의 사리 같은 의상을 자주 착용하기 때문에 목걸이 팔찌 등이 아주 많고, 스리랑카의 여자 아기라면 태어난 뒤 무조건 귀를 뚫기 때문에 귀고리, 목걸이, 팔찌 선물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귀를 안 뚫어서...)


 
받은 것들 중 일부임 :)



아이들이 수줍게 내민 모든 선물들 다 아직도 가지고 있고 감사 인사 하고 싶은데, 애들 대부분이 자기 이름을 안 적어서 선물을 줬다.
순식간에 수십가지 선물을 받았는데, 그중에 이름이 써진 것은 몇 개 없어서 대부분의 선물을 누가 준 것인지 모른다. 😭

 
적은 용돈에 그래도 마음을 담아 내민 선물들인데, 내가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그리고 나도 받으면서 크고 화려한 것에만 눈이 돌아가고, 소소한 것에는 미미하게 반응하지 않았을지 걱정된다.

사실 비싸고 좋은 것에 눈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은 뭐, 거의 본능에 가까우니....




다시 한 번,



사실상 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아마 죽었을) 우리 고양이만 보고 싶을 뿐, 그리운 사람은 없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테니스 선수를 지난 십여년 간 '불가사의하게' 응원하며 그 선수의 부침에 따라 같이 울고 웃고 했던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행복을 질투하지 않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서. 
긍정적인 기분으로 한 사람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줘서.


이런 생각을 지금 다시 하는 이유는,
70대이신 엄마가 너무 안타까워서.
유투브에 중독되어, 그들이 전파하는 말만 믿고 계시는 우리 엄마.
엄마가 싫어하는 정파에서 한 일은 무얼해도 다 싫을 뿐이고, 모든 것을 다 공산주의, 빨갱이, 좌파라는 프레임으로 보신다.
우리 엄마는 종교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분이셨는데, 지금 유투버들의 말을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아시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이 교회 예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쉽게 '헌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이유는 '세뇌'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봤다. 매주 사람을 불러 모아 자주자주 세뇌를 시켜야 하는데, 예배를 건너뛰다 보면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회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매일매일 준비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논리로 보자니, "유투브교"는 뭐 24/7 사시사철 세뇌에 가장 좋은 도구였다. 쿼런틴에 락다운이 걸려도 여전히 돌아가는 그곳.
이렇게 자신들의 사상을 손바닥 위에서 전파하는 유투브 채널들은, 종교적인 것에 냉담하던 우리 엄마도 쉽게 신자로 포섭했다.


어차피 70년 넘게 살아온 배경, 믿음...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이 들면 즐길거리가 점점 줄어드는데, 유투브 시청이나 카톡을 통해 넘나드는 음모론 전파 이상 가는 재미있는 스포츠도 어르신들께는 없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한 가지 너무 아쉬운 건,
인생의 말년을 누구에 대한 지독한 증오로 보내신다는 것. 그게 너무 안타깝다.
우리 엄마는 목소리가 크신 편인데, 거실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다 들린다.

"아유, 언니...요즘 어때? 속상해 죽겠어"
"아유... 이 난리통에 어떻게 지내? 정말 정부 꼬라지 때문에 열받아 죽겠지?"


이번 정부가 무얼 하더라도 엄마의 증오 대상이란 걸 알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중도를 유지하는 사람에겐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도 알지만.... 대충 나는 정치인 모두 맘에 안 들고 어느쪽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데, 나와 다르게 우리 엄마는 정치 전사로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되실 줄은 몰랐다.




느긋하게 인생을 관조하며 보내게 될 줄 알았던 인간의 노년이, 음모론과 선동, '이걸 설마 믿나?'싶은 걸 믿는 흐려진 판단력과 함께, 증오와 혐오로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갑갑하다.


꼴보기 싫은 사람 같이 욕해주는 유투브에 젖어 살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며, 추억에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면서 살기에도 예측 불허인 이 세상에
혐오와 짜증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몇년마다 한번씩 후회하는 일



나는 다른 과목에 비해 유난히 수학을 못하는 우등생(??)이었다. 나는 언어/사회 계열 과목에 어느 정도 강점이 있었고, 다른 우등생들은 대충 공부한다던 과목인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한문, 가정, 가사까지 대부분 만점을 받아서 내신 성적이 전체적으로 좋은 학생이었지만 ... 수학 점수만은 처참했다.

당시 만점 80점으로 절대평가를 하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모의고사에서 나는 시험이 어려운 달이든, 쉬운 달이든 늘 40점대를 맞곤 했는데, 그래도 다른 영역에서 점수를 커버해서 반 1등 정도는 늘 유지했다.
내가 대학 입시 시절 본 수능은 이른바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수능으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데, 난 이 수능에서 역시 수리영역 40점대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은 평소보다 수학 점수가 폭락한데 비해서,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40점대 현상 유지를 해서 그냥 평소와 비슷한 총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는데,  아무리 다들 못봤다고 해도 내 수리 점수는 너무 낮았던 게 그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당시 수험장은 아직도 기억나는데...
1교시 언어영역 때는 약간 긴장했던 것 같기도 하고
2교시는 수리영역은 정말 어려웠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어차피 한정되어 있어서 (모의고사 때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어보고 나니 시간이 남았다. 그다음부터는 찍기의 시작. 
내 실력엔 당연히 공식을 세워 제대로 풀 수 없었던 '경우의 수' 한 문제에 대해서 소위 '맨투맨 방식'이라고 하던.... 무조건 모든 수를 다 투입해서 '노동집약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일에 도전했다. 

아마 2,3,4점으로 배점된 시험 문제들 중에서 3점 짜리 주관식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모든 수를 다 집어넣어서 무식하게 풀어본 결과 나온 답이 "23"이었다. 그래서 난 그대로 주관식 답안지에 23을 적어내고 말았다.

저녁에 채점을 하니,
정답은 24였다.

이런 바보... 아무리 수학을 못한다고 해도 그렇지,
4×3×2×1 = 같은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경우의 수' 문제의 답이 23이 될 수가 있나? ㅠㅠ
기껏 모든 수를 다 투입해서 멍청하게 풀어본 결과 23이라는 수가 나왔으면... "아, 23은 근사치인 것이고 답은 24인 거로구나." 하고 머리를 더 굴렸어야 하는데... ㅠ.ㅠ 23을 그대로 적어내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3점은 상당히 소중한 3점이었다. 특히 내가 지원했다 떨어진 학과는 수학/영어 점수에 추가로 가중치를 곱해서 입시에 반영했었기 때문에...


가끔 인생의 "가지 못한 길"을 생각해 볼 때
경우의 수 문제에 수십분간 시험지 빈 귀퉁이에 모든 숫자를 써서 일일이 다 대입해보곤, '23'이라는 답을 적어내던 그 멍청함이 안타까워지곤 한다.


물론, 3점 더 얻었다고 대학에 붙었을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
게다가...3점이 올라도, 내 수리영역 점수는 여전히 40점대다ㅋㅋㅋ.🤪🤣

(역시 기억의 조작인지...나중에 당시 문제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주관식 답이 24인 문제는 없었다. 대신 정답이 72인데, 내가 70을 적어낸 문제는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일일이 대입해서 풀어봐서 70이 나왔더라도 4의 배수인 72 정도로 답을 바꿔서 적었을 걸...'이런 식으로 후회했던 게 24라고 기억에 잘못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그 문제는 3점도 아닌 실제는 4점짜리 ㅎㅎ 어차피 고난도라 못 맞혔을 듯)









계절의 공존



4월의 오후,
길을 걷다가 
어? 여기는 왜 갑자기 가을이야? 했다.





그런데 도로 반대편은 또 벚꽃 핀 길.... 꽃이 꽤 많이 지긴 했디만.





신기하다.
계절을 거슬러 찍어야 되는 드라마/영화들이 있는데
이 도로 한쪽에서 가을 장면 찍고, 길만 건너면 봄 장면 찍을 수 있을 듯.







모두들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냐



대학원 다닐 때 미국의 모대학교 중국계 교수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몇주간 속성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떠나신 적이 있다. 짧았지만 정식으로 학점이 부여되는 수업이었다.


요즘같이 유학이 흔할 때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중국에서 학부를 마치셨는데도 그뒤 미국에 건너가서 해당 분야 북미 학회장이 되실 정도로 노력파이신 분이었는데, 솔직히 수업은 실망스럽긴 했다.

하지만 동양인(?!)들 사이에 흐르는 특유의 정인지 뭔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로 생일 축하 정도의 연락은 주고 받고 있다. 

나는 사실 '이 분이랑 그렇게 친한 관계인가?'싶어서 생일 축하를 잊어먹을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분은 페이스북에 불쑥 나타나 우리 과 친구들 모두에게 생일 메시지를 날리고 사라지신다. 미국에 거주 중이시니 사실 한국보다 시간대가 더 늦는데도, 몇년째 항상 페이스북에 내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분은 이 분인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호주 쪽에 거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미국보다는 차라리 유럽쪽 거주자가 먼저 생일 축하를 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우리처럼 그냥 몇 주 스쳐지나가는 제자뿐만 아니라 실제로 석박사 과정을 통해 길러내는 제자가 아주 많을 텐데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게 신기하다.

게다가 그분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톈진, 내가 잠시 살았던 곳과 같았다. 그래서 내가 2019년에 톈진에 다녀온 뒤에 이분께 따로 많은 사진을 보내고 감흥을 적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분도 본인은 2018년에 이르러, 떠난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톈진에 가보았다고 하시며 톈진은 너무 변해서 내가 두고 떠난 그곳이 아니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오늘 그분이 생일을 맞이하셨길래, 톈진 사진을 골라서 (그분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인정한 톈진이기에, 일부러 유명한 옛 건물 사진을 골라서...) 이 도시의 추억과 함께 생일 축하를 전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한 안부와 함께.

얼마 뒤, 답장이 왔는데 ....
이분은 내가 보낸 사진을 서울의 풍경으로 생각하고 계신 듯 했다. 우리가 함께 한 서울의 풍경을 공유해주어 고맙다고....🙄


나는 단지 8개월 살았을 뿐인 톈진을 많이 그리워하고 그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는데,
이분에겐 성인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거주했던 중국이지만, 중국을 떠나서 미국에서 산 세월이 두 배 정도이기 때문인지... 톈진을 많이 잊으셨나 보다. 전혀 생각나지도 않으시나봐.ㅎㅎ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이 생각하기를 기대하면 안 됨 🤗
아니면, 
한국어로 썼다면 공통된 추억을 상기시키려는 내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외국어로 남과 소통하는 것은 역시 더 어렵다는 예시의 하나가 되겠지.






복잡한 마음....



페이스북에 중국 여자가 지네(?)로 추정되는 음식을 먹으려는 영상이 돌면서 캡션이 "이들은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나도 중국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식성에는 경악하는 중이지만... 이 영상을 아마도 비웃음의 소재로(?) 페이스북에 공유한 스리랑카, 이란 친구들을 보면서 착잡해진다. (이들도 결국 편견 속에 살아가야 하는 Asian이지만 자기들은 아리안계열이라고, 자기들은 눈 작은 동양인이랑은 다른 종족이라고 쉽게 생각했겠지.)


한국인은 중국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중국인을 비웃는 것/ 중국이 만든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해외에 나가면 고스란히 아시안에 대한 공격으로 돌아온다.

이런 중국인의 식성이 결국은 "눈 작고 찢어진" 동아시아인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해외에서 동아시아인을 공격하는 빌미를 만들어주겠지....너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는 애들이라고.


해외여행이 모두에게 거대한 장벽이 된 시대...
앞으로 이 코로나 판데믹이 끝나더라도 눈 작고 중국인과 비슷하게 생기고, 키까지 작은 나는 .... 유럽이나 미국, 대양주에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꿀잠 침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
꿀잠 침대.




장소는 새크라멘토 호스텔.
12시? 1시쯤 이른 시간에 체크인해서 8인실쯤 되는 이 방에서 가장 좋은 위치의 침대를 배정받았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와서, 1층에서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방으로 올라 오니, 이 조용한 도시에 생각보다 여럿이 체크인해서 북적이고 있었다.

물론 시차 적응도 제대로 안 된 상태였고
서울-》샌프란시스코-》 멕시코 몬떼레이 -》 달라스 -》 새크라멘토로 이어지는 정신없는 여정이기는 했지만 
나는 피곤해도 잠을 잘 못자는 특성이 있다.

오후 7-8시 경 잠깐 누워볼까...하고 누웠는데 
눈 떠보니 다음날 새벽 5-6시 경이 되어 있었다.

중간에 한 번도 안깨고 최소 9시간 이상을 그대로 잔 것이었다.
나에겐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을 때 많이 놀랐다.
8인실이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감.


작년에 중국에 가서, 이미 감기에 걸린 채로 출발해 상태가 안 좋았던 데다가
허리 끊어지게 많이 걷는 도보 여행을 미친듯이 하면서 
혼자 특급 호텔 최고의 침대에서 잠을 청했는데도 
여행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고생한 걸 생각해보면....


매트리스도 허술했던 저 침대는 진짜 꿀잠 침대였음에 틀림없다. 

새벽에 눈을 뜨니 머리맡 뿐만 아니라 측면으로도 예쁜 레이스 커튼이 달린 창문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곳.


샌프란시스코도 아니고, 시애틀도 아니고...
내가 '새크라멘토'라는 작은 도시에 다시 가볼 일이 있을지.
혹시라도 그런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낡은 이 호스텔은 남아있을지...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