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의 15번째 그랜드 슬램대회 우승





나달의 전성기는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할 것 같았던 2016년,
그러나 2017년 다시 메이저 결승에 오르는 실력을 보여주며 결국 15번째 그랜드 슬램 트로피를 추가한 나달. 이제 확실히 샘프라스를 넘어서게 되었다.


물론 나달은 랭킹 1위를 차지했던 기간이 짧다든지, 투어 파이널 우승 기록이 없다는 점 등이 약점이지만
샘프라스가 하지 못했던 커리어 그랜드 슬램, 역대 최다 마스터즈 우승 횟수, 올림픽 단/복식 금메달 등 다른 화려한 기록도 많다.

최근에는 조코비치만 기록 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에
조코비치가 10번째, 11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을 할 때마다 조코비치, 페더러, 나달의 기록과 비교하는 포스팅을 했었는데, (http://mori-masa.blogspot.kr/2015/11/10.html / http://mori-masa.blogspot.kr/2016/01/11.html )
조코비치는 갑작스런 난조에 빠지고 갑자기 '할배' 취급 받던 페더러와 나달이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나달이 3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15번째 그랜드 슬램 트로피를 수집한 가운데,
페더러의 15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나달은 19세에 롤랑 가로스 첫 우승을 하고 만 24세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누구보다 페이스가 빨랐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 페더러 만27세, 조코비치 만29세)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메이저 대회 불참이 많아진데다가, 실력의 최전성기가 오려고 했을 때 -클레이 특화 선수 이미지에서 드디어 하드/클레이/잔디 가리지 않고 모두 결승에 올라가던 시기에- 하필이면 조코비치의 최최전성기도 같이 오면서, 무수한 준우승으로 메이저 타이틀 추가 횟수가 뚝 떨어졌다.


페더러의 15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은 2009년 7월, 그의 나이 만 27세 11개월때였다.
나달의 15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은 만 31세 때로 페더러와 큰 차이가 난다.






미국 선수 앤디 로딕을 꺾고, 역시 미국 선수인 피트 샘프라스가 가진 메이저 우승 14회 기록을 넘어서서 진정한 '역대 1위' 등극.

나는 이때 2008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콜롬보의 한 호텔 펍에서 결승전을 봤다.
2004, 2005년 준우승자인 앤디 로딕, 세번째 윔블던 결승에서 또 페더러와 세번째 붙는 그를 마음 속으로 응원할 수 밖에 없었으나.... 또다시 페더러에게 패하며 윔블던에서는 준우승 3회를 최고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09년초 호주 오픈에서 나달에 패해 준우승하며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던 페더러. (일명 '흑역사'로 기록될 장면)
"이젠 나달의 시대인가요~?" 하는 순간,
페더러가 롤랑 가로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이루고, 윔블던에서는 샘프라스의 기록을 마침내 넘어섰다. 쌍둥이 첫 딸들까지 얻는 등, 결과적으로 2009년은 페더러에게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




쓰디쓴 對페더러 4연속 준우승(US open 포함). 그러나 끝까지 의연했던 앤디 로딕.





남자 테니스는 항상 "아, 이제 XXXXXX는 완성형이네요. 이제 XXXXXX 누가 잡죠?"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다시 힘의 균형이 뒤집히는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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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롤랑 가로스에서 14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을 한 이후로
3년 가까이 그랜드 슬램 대회 8강조차 버거웠던 나달. 이미 역사의 한 켠으로 저무는 "옛사람"이 된 것 같았다.

2017년 호주 오픈, 나달의 1라운드 경기를 보다가 어느 장면에서 '아, 저 모습은 2009년의 나달 같다.' 하며 혼자 옛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나달이 귀신같이 예전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호주 오픈 포함, 그 뒤로 이어진 하드 코트 결승에서 연이어 뼈아픈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클레이 시즌이 되자 2010년까지나 가능했던 무적 포스를 다시 보여주며 여러 대회를 휩쓸기 시작.
롤랑 가로스에서도 6-0 6-1 6-0 등등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보여주며 결승에 올랐다.







2017 롤랑 가로스 결승전 상대는 하필이면 나달이 근 3년간 헤매게 된 결정적인 시초였던 2014년 호주 오픈 결승의 상대자였던 와린카. (여태 바브린카라고 적었지만, 스탄 본인이 v 소리가 아닌, 이렇게 부르는 것을 원한다고 해서, 와린카로 적겠음. Waw-rink-a를 원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린카/와으린카는 쪼금 이상하고... ㅎㅎ)

나달의 부상을 동반한 2014년의 맥없는 패배때문에, 이번 결승전 상대도 와린카라는 것이 조금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결승 이전 6경기에서 보여준 나달의 압도적인 경기력 때문에 나 역시 마음 한 켠에서는 그냥 의외로 일방적인 경기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ㅋㅋ 이런 내용을 결승전 전에 이미 당당히 밝혔더라면 더 신빙성이 있었겠지만, 정말 결승 전날 어느 시점이 되니 나달이 그냥 쉽게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31세에 15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을 기록한지라
다음 우승이 언제일지 기약없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단일 대회에서 10번의 우승을 기록했다는 것만은 정말 불멸의 기록이 될 수 있을 거다.


결승전에서 실력 차가 너무 나게 보이는 경기를 해서 (6-2 6-3 6-1)
약간의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는 와린카.
하지만 "결승전" 상대로는 여전히 무서운 선수임은 분명하다.


미남미녀 연예인들이 사진을 잘 못 찍거나 옷을 못 입거나 연기를 못 하거나...
아무튼 그런 상황이 생기면 "그 얼굴 그렇게 막 쓸 거면 나 줘"라는 댓글이 주로 달린다.

다들 신났는데
와린카 혼자서 "그 트로피 그렇게 막 다룰 거면 그냥 나 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도 학창(?)시절 '2등' 때문에 마음 아팠던 적이 너무 많아서
앤디 로딕이나, 와린카를 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조코비치는 만 31세 8개월에 그랜드 슬램 15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페더러의 만 27세 11개월, 나달의 만 31세 달성에 비해 약간 늦지만, 그래도 앞날이 창창하다. 천적이 없는 선수라서...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모두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대회에서 그랜드슬램 15회 우승을 달성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 기록 보유자였던 피트 샘프라스 (14회) 기록을 넘어서서 G.O.A.T 논쟁에 불을 지피게 되는 15회째 우승을 하는 시점에, 페더러는 윔블던 6회 우승 - 나달은 롤랑 가로스 10회 우승 -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7번째 우승을 각각 기록했다.


2019.01.29

내가 실제로 본 Tallest building in the world.




전망대에 올라가보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내가 오다가다(?) 실제로 본 건물들.


1Burj KhalifaDuai United Arab Emirates828 m2,717 ft1632010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위키피디아에 완공년도가 2010년으로 나와있는데, 나는 완공 전 2009년말에 보았다. 
이 사진은 전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찍은 사진으로, 그때 무슨 이유인지 카메라가 망가져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는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인데...음. 아쉽다.
내가 두바이를 방문한 당시는 모라토리엄 선언이네 뭐네 하면서 '뭔가' 두바이가 을씨년(?)스럽던 때라 사진과 그 분위기가 더 어울린다.



5



핑안 국제 금융 센터. 중국 션전 시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고 역시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고, 아래층은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다. 세계 top5인 것 치고는 매우 안 유명한 건물 아닐까...





6Lotte World TowerSeoul South Korea554.51,8191232017





사실상 우리집 앞에서도 맨날 볼 수 있는 세계 6위 높이의 건물 롯데 월드 타워.
하늘이 매우 맑던 날, 집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좀 더 개성있게 건물을 지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부르즈 할리파는 모양만으로도 아, 두바이! UAE! 할 만 하지만
롯데 월드 타워 사진만 보고도 "이거 서울에 있는 건물이지" 라고 알아볼 수 있는 외국인이 몇 명이나 있을지....

초고층 빌딩 경쟁은 보통 개발도상국에서 더 열을 올리면서 하기 때문에
이 건물이 OECD 회원 국가에 위치한 건물 중에서는 최고층이라고 한다.



7One World Trade CenterNew York City United States541.31,776942014




세계 6위 높이의 wtc 뉴욕. 2015년 근처 방문.
이 건물 앞에는 옛 무역센터 트윈 타워가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남겨서 기념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사실 뉴욕에는 순수 건물 자체 높이로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있다. 1WTC는 100m가 넘는 첨탑 높이를 포함해서 541m이기 때문이다. 사진만 봐도 보이지만 첩탑 높이가 엄청나다.





8Tianjin CTF Finance CenterTianjin CTF Finance Centre, 23 of 24 cropped.jpgTianjin China5301,739972019




                       세계 8위 높이의 건물은 의외로(?) 중국 톈진 빈하이신구에 있다.
완공년도는 2019년으로 나오지만, 2019년 4월 방문 시에도 뭔가 미완성 상태처럼 보였다.
절대 활기의 요소를 느낄 수 없었다.
사진을 멀리에서 찍었고, 주위가 무척 황량해 보이지만 나름 지하철 접근성도 좋은 건물이다. 톈진 지하철 9호선 시민광장역 바로 근처에 있다.





11Taipei 101Taipei101.portrait.altonthompson.jpgTaipei Taiwan5081,6671012004The world's tallest building
from 2004 to 2010.



2011년 방문. 
전망대에 올라가진 않았지만 위 건물 중에 몇 안 되는,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본 건물 ㅎㅎ
바로 앞에서 사진을 따로 찍지는 않아서 이렇게 가는 길에 멀리서 찍은 것 뿐.
전망대에 올라갈 생각도 없었지만 사실 내가 대만에 체류하는 내내 날씨가 흐렸는데, 올라가봤자 뭐가 보였을까 싶다.
2010년에 부르즈 할리파가 완공되기 전까지 한동안 최고의 높이로 유명했던, 세계 1위 경험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2004년 - 2010년)
쿠알라룸푸르에 678m짜리 건물이 완공을 앞두면서, top 10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Tallest building list를 찬찬히 보니, 내가 전망대까지 올라가본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은 역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구나(381m). 1931년에 지어진 건물이 여전히 세계 54위 높이 건물이라는 것이 놀랍다.










빈부 격차?





마트 쇼핑카트를 끌고 마트 밖으로 나와서 집 근처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원들이 그거 수거하느라 고생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다 갑자기 작년 어느 추운 겨울날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갔던 진짜 추운 날) 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4명의 20대 청년(!) -그들에게 내가 완전 아줌마 나이라는 것은 비밀 -들과 함께 중동 국가 운동 선수들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20대 청년 중 2명은 아랍어 구사자였고, 나머지 두 명은 나처럼 영어로 통역을 했다. 참, 그중 한 명은 영어 통역 이상의 다국어 구사자이긴 했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보다 독일어/영어가 더 편하다는 친구. 우리가 머물던 호텔 외에도 추가로 세 곳의 호텔에 통역들이 여러 명 더 있었는데, 나중에 다들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기본으로 3개국어 구사자였다. 이런... 나는 영어는 겉핡기로만 하고 한국어에만 능통한 1개 국어 구사자인데. 쩝.

다른 아랍 국가와 다르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란팀이 내 담당이었다. 다행히 이들도 영어를 그닥 잘 못해서 나의 소박한 영어 실력이 크게 들통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ㅎㅎㅎ 
아무튼, 남자들만 우글우글했던 그 호텔에서 혼자 여자인 게 불리한 점도 있었지만 유리한 점도 많았다. 
특히 남녀 구분이 확실한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선수들과의 접촉은 제한적이었고 나에게 뭔가를 함부로 부탁하지도 못했다. 단지 임원진들은 나를 약간 귀찮게 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바쁜 일이 사라진 2주차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에서 놀고 먹으며 보냈다. 

그런데 다른 중동 기름부자 나라 4개국의 남자 통역들은 신나게 부려먹히고 있었다. 환전까지 해다가 갖다주는 것도 봤고, 세탁물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았으며 심지어 어떤 나라 임원은 새벽에 심장 발작이 와서 통역이 한밤중에 불려나갔다. (무사히 스텐트 시술) 


특히 1인당 국민 소득이 7-8만 달러라는 기름 부자 나라 카타르는 한국에 와서 돈을 우습게 쓰고 갔다. 갑자기 강추위가 찾아오자 그 자리에서 패딩을 200만원어치씩 사기도 했고(일주일 뒤 본국으로 돌아가면 입을 일이 없는) , 귀국 비행기 탑승을 위해 오후 8시에는 호텔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1박 추가 방값을 다 지불했다고 한다. (약 20만원 정도하는 방을 20개 가까이 씀) 이란팀은 카타르팀과 동일 비행편(카타르항공)으로 출국하는 거였지만, 돈이 아까우니 당연히 낮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모두 버스에 싣고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카타르팀은 결승전을 마치고 온 뒤 단 두어 시간만 호텔에 추가로 머물기 위해 수백 만원의 돈을 그냥 지출하는 재력을 과시했다.


사회 생활 경험이 없는 대학생 통역들이 거절도 못하고 각팀이 시키는 대로 휘둘리고 있는 게 안타까웠는데, 그때 제일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카타르 팀 선수들이 마트에서 호텔까지 카트를 끌고 오는 바람에 통역 담당 남자애가 영하 15도의 날씨에 그걸 다시 돌려주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걸 니가 왜해? 끌고 온 사람이 해야지!" 하지만 그 학생은 착해서 그걸 다 해줬다고 했다. 

대신에 워낙 돈을 물 쓰듯 (기름 쓰듯?) 쓰는 나라다 보니, 나중에 그 통역에게 따로 수고비를 좀 더 줬다고는 한다. 그래도 그 친구가 고생을 많이 해서 하나도 안 부러웠다. 당시 카타르 통역 친구는 200달러를 추가로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씀씀이로 미루어볼 때 200만원 받았는데 그냥 줄여서 얘기해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랬다면 좀 부럽네 😝

아까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읽으니 새삼 그때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그리 많이 샀을까? 그 덩치 큰 카타르 선수들이 양손에 들고 오지 못하고 카트로 끌고 와야 될 정도로?" 돈이 참 많긴 많구나.



우리가 머무른 호텔은 내부 흡연 적발시 벌금 300달러가 부과되는 곳이었는데, 기름 부자 나라들은 그 정도는 우스운지 많이들 피워서 몇몇 국가가 벌금을 냈었다.



나중에 내가 그 호텔에 머물렀을 때와 같은 시점에 작성된 어떤 분의 후기 보니...😖 이런 피해를 끼치고 가다니.



하지만 늘 돈돈돈...과 환불은 안 되냐?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산유국이지만 돈 없는 나라 이란. 강추위 속에서도 규칙을 지키기 위해 "츄리닝" 하나 입고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가던, 규칙 잘 지키던 선수들이 떠오른다.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눈 쌓이는 겨울'이 있는 나라인데 다들 어찌 그리 얇은 옷만 가져왔는지... 애처롭던. 













몰랐던 이유




난 대학교 졸업 무렵까지만 해도, 집밖에서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 방당 20명 넘게 집어넣는(!) 경주 "여관"시설의 더러운 이불을 보고 
처음 이틀 간은 내 옷을 꺼내 깔고 덮고 잤다. 물론 이불이 원래 부족하기도 했기 때문에 유난스레 결벽증처럼 튀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땐 한 반 학생이 50명이 넘었으니까. 그러나 3박 4일 마지막 밤에는 지쳐서 그냥 숙소 이불 속에 섞여서 잤던 걸로 기억.

대학생 때는 역시 집밖 숙소 기피증으로 인해, 엠티 같은 것도 많이 가지 않았고
만약이라도 가게 되면 내 "주특기"를 이용해 밤을 그냥 새웠다. 그래서 이불이 필요없었다.
나는 원래도 밤을 잘 새지만, 술을 마셔도 끝까지 살아남는 편이었다. 어떤 것에도 머리를 대지 않고 그대로 집에 돌아오는 법을 택했다. 


집 밖 숙소는 왠지 더러운 것 같아, 잠을 전혀 못 자던 것은 해외봉사단 생활을 하면서 자동으로 극복이 되었다.
물론 내 집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문화 생활을 하려면 수도에 꼭 나가야 했다. 수도에 나갈 때마다 묵는 유숙소, 그리고 각 지방에 놀러갈 때마다 있던 각 단원의 집.... 결국 아무데서나 잠드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베개는 왠지 꺼림칙해서 내 수건이나 내 옷을 베고 자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냥 숙소 침구를 믿고 그냥 잔다. 그리고 이젠 늙어서 술을 많이 마시면 곯아떨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2014 London hostel. 원래는 호스텔 첫 숙박 기념으로 찍어둔 사진이지만,
베개 부분에 내 티셔츠가 펼쳐져 있는 걸 보면 나의 습관을 알 수 있다.😜




집밖에선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사람에서 
늘 "없는 살림"에 돈을 쪼개 아무 목적없는 홀로 호텔 숙박을 좋아하게 된 나... 그 이유가 뭘까.
그냥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존재라 아무도 없고, 어떤 방해도 없는 공간이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최근에도 5박짜리 홀로 여행을 즐기고 와서, 다시 집 생활에 적응(?)하려니...
내가 호텔 숙박을 하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던 게 뭔지 새삼 깨달았다.
그건 바로 깔끔한 화장실/욕실이 옆에 딸려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넓은 집이 전혀 아니지만, 아무튼 가족 중 누구보다 내 방에서 화장실이 제일 멀다.
나는 선천적으로 안좋은 장을 타고 태어나서 (예전에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의사가 타고 난 것이니 그냥 적응하고 살아야 된다고 했었다😢) 새벽 설#가 잦은 편인데... 그냥 내 방 옆에 화장실이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그 민망한 사운드가 아무에게도 안 들리면 좋겠다 ㅎㅎ.

그리고 나는 샤워를 아주 좋아하는데, 우리집 욕실은 2개가 있지만 둘다 샤워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우리 엄마와 언니는 신기할 정도로 샤워를 자주 안 하는데🤔 비교적 깔끔한 외양을 유지하고 산다. 아마 어릴 적부터 샤워 간격을 길게 가져왔기에 거기에 신체가 적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머지 두 사람은 욕실 환경 개선에 관심이 없다. 

또한 물욕이 상상을 초월하는 언니의 잡동사니로 인해, 우리집 거실 욕실은 너무나 지저분하다. (한 번에 샴푸를 8가지 종류를 사놓고 돌아가며 씀, 그외에도 안 씻는 사람치고는 잡다한 목적의 세정제를 많이 보유함. 사용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하는데, 물건 주인이 그걸 안 하고 또 없어지면 없어졌다고 난리이니... 물건들이 모두 갈 곳을 잃은 채 너저분하게 몇년째 욕실에 늘어서 있음) 찍소리도 못하는 막내로서는 그냥 눈치 보며 매일 한 켠에서 샤워를 할 밖에.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호텔 화장실은 여러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은 곳임에도, 우리집 화장실보다 깔끔하고 안정감있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원하면 금방 화장실 변기에 도달할 수 있고, 1박 2일간 욕조 목욕을 3번 즐기며... 너른 공간에서 여유있게 바디 로션을 바르고... 내가 호텔에 머무는 걸 즐기던 숨은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침대 바로 옆 나만의 화장실.... ㅜ.ㅜ


누군가는 호텔에 돈 퍼붓지 말고, 빨리 제대로 돈 벌어서 좋은 집으로 독립하라고 그러겠지.😥
이 문제는 진짜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한 해결책인 것 같다. 만약 파트너가 생긴다 해도, 타인의 화장실 취미는 알 수 없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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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숨은 이유는 최후의(?) 도피처를 만들어놓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가끔 "저 지금 부부싸움하고 그냥 집 나왔는데, 갈 데가 없어서 제 차 안에 있어요. 어쩌죠? 갈 데도 없고, 친정은 안 되고 다시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이런 글을 볼 때마다 호텔 멤버십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게 뭔가 위안이 된다. 부부싸움할 남편은 없지만 🤓. 
정말 못 참아서 어딘가로 혼자 숨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돈 한 푼 없더라도  3개의 서로 다른 호텔 체인에 잘 배분하면 6박 정도는 무료 숙박할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게 참 안심이 되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통 웬만한 동물들의 새끼는 다 귀엽다. 인간의 경우에도 아기는 특히 귀엽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고 빽빽 울기만 하는 갓 태어난 개체들이 귀엽기라도 해야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에 이렇게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그렇다면, 노인의 경우에도 주위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한데
왜 노인이나 나이 든 동물은 쭈글쭈글하고, 털에 윤기가 없어지면서 예쁘지 않게 늙어갈까.
말그대로 "늙으면 죽어야지" 이것이 진짜 자연의 섭리인 건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한 남자가 늙고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가 점점 젊어지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뒤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 되어 죽게 된다. 원래 인간의 모습이 이랬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본인이 낳은 자식, 못생겨도 다 이쁘다고 난리인데 어렸을 때 좀 쭈글꾸글하고 냄새나게 태어나도 그래도 자식이니 정성껏 키우지 않을까? 누구나 그렇게 태어나고 좀 자라면 훨씬 나아진다는 것을 다 안다면....
지금과 반대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갈수록 너무 귀여워지고 깜찍해진다면 제대로 된 '노인 공경 사회'가 올까?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남의 집 귀여운 아기들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육아 예능이 많은데
할아버지/할머니가 그집에서 가장 귀여운 존재라면....?
각집마다 귀여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출연하는 '育老人'예능이 인기를 끌 수도 있겠다.

조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귀여운' 조부모가 없는 집은, 조부모가 있는 집을 부러워하며 티비 예능 시청으로 상실감을 달래고.... 자식들은 저마다 자기가 귀여운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겠다며 다투고 .....

그런 일은 없겠지?
No country for old men...

나달이 늙어간다.




방금 끝난 마드리드오픈 준결승에서 20세 치치파스에게 패배.

나달의 클레이코트 경기에는 종종 나달만의 반짝거림이 있는데, 오늘은 치치파스를 상대하며 별 대책이 없는 평범한 선수로 보여서 패배를 예견해야 했다. 그래도 바라는 건, 2014년 롤랑 가로스 때도 대회 중반까지 나달의 경기가 평범해보여서 '올해는 힘들겠구나' 했는데 어느 순간 반짝임이 살아나더니 실제로 우승해버린 적이 있는데, 올해도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12월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경기가 있고, 대회마다 엄청 많은 운동량이 필요한 프로 테니스. 대부분의 선수가 30대 초반에 은퇴를 해왔다. 페더러라는 괴물(!)이 만37세를 넘어서도 우승을 해내며 30대 초반에 은퇴한 선수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정말 특별한 선수이고, 사실 정말 체력적으로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된다.

그 테니스 선수 중에서도 나달은 엄청난 활동량과 우주 방어 수비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조코비치의 수비가 더 뛰어날 때도 있는데 여전히 수비 테니스의 대명사는 나달인 것 같다) 로 유명했고, 그 활동량과 더불어 잦은 부상으로 이른 은퇴가 예견되어왔다.

나달이 서른 살도 되기 전인 2015년경부터 기량 하락이 오면서 나 역시 마음을 내려놓고 테니스를 보고 있었는데, 2017년에 뜬금 부활 (정말 기대하지 않았음) 해서 다시 나달의 테니스를 보는 기쁨을 많이 안겨줬었다.


올해도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괜찮았었는데, 조코비치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더니 클레이 시즌에 들어와서도 예전의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운동 선수를 절절하게 응원해 본 것이 처음이라, 내가 응원하던 선수가 나이 들어가면서 패배가 잦아지는 일을 경험하는 것도 처음이다. 뭔가 짠하면서 마음 아프다.


상당한 휴식 기간을 가지는 다른 프로 스포츠 종목과 달리, 거의 1년 내내 대회가 있는 테니스 관람은 취미로 삼기에 상당히 좋은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제 2의 나달, , '또다른 my favorite'을 빨리 만들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favorite 응원 선수가 꼭 필요한 까닭은 아무래도 경기를 보는 몰입도가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나달 응원을 시작한 건 2007년 윔블던부터로 기억하는데, 어느 새벽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긴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길 뿐, 내가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나달이 중요 경기에서 패할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큰 영향을 받는데, 나달도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면서 패배는 점점 잦아지니 패배에 연연치 않고 무던해지려고 엄청 애를 쓰는데 쉽지는 않다. 마음에서 선수 하나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듯이, 누군가를 맞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어느 새벽 갑자기 TV 중계 화면 속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온다는 일은 상당히 멋진 일이다.
2007년 7월 새벽 어느 날의 응원으로부터 시작되어, 내가 12년을 꼼짝없이 울고 웃고 했다.








내가 "보았다"고 하는 것의 허상




외국에 나가기 전에 환전을 하면서 체크카드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해외 사용 금액의 1.5%를 환급해주고, 그 외 국내에서는 음식점, 병원 등에서 쓴 금액의 0.5%를 캐시백해준다는 카드.
은행원이 카드 안내 설명서를 출력해주면서 "출국 전에 카드 승인이 제대로 되는지 국내에서도 한 번 써보시고 나가세요"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비빔밥이 8000원이기에 그 새로 만든 카드로 지불하고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원래 공항에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만 뭐 출출하기도 하고, 카드 점검도 할 겸 잘 됐네... 0.5%라도 할인 받고.'


해외에 나가서도 내가 결제한 것에 수수료가 어떻게 붙는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환급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번이나 카드 안내서를 들여다 봤었다. 


시간이 지나, 저번 달에 쓴 비용이 환급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해외 사용분은 1.5% 잘 환급이 되었는데 공항 음식점에서 사용한 것은 환급이 되지 않았다. '항상 모든 룰에서 예외가 되는 '공항'에서 먹어서 그런가?, 분명히 카드 전표에 음식점이라고 표시가 되는데 환급이 안 됐네?'


무슨 이유일까 하고 다시 한 번 그 카드 안내서를 읽어 보니 지난 3주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나 읽어 보던 내용 바로 아랫 줄이었다. "만원 이상의 사용 금액에 한함" 😳

내가 먹은 비빔밥은 8천원이었기에 전혀 환급 대상이 아니었던 것.
정말 신기했다. 그 안내서를 수십 번 읽어보는 동안, 다른 글자들과 똑같은 크기로 중요하게 써져 있던 내용이 어떻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관심이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수도 없이 들어보고 직접 경험한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나 그거 못 봤는데? 라고 말했던 일들, 혹은 범죄 현장에서의 중요한 증언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보려고 하는 것만 보일 뿐, 현실에 멀쩡히 있어도 안 보이는/ 안 보는 것들이 태반이다.






추억




톈진에서 
살던 아파트와 일하던 학원 다음으로 궁금했던 곳.
图书大厦( Book building ) 건물.

고층 건물에서 그중 1-6층을 모두 서점으로 쓰는, 이름부터가 도서빌딩인 곳.
15년 전에는 놀러갈 곳이 별로 없어서 백화점 두어 군데와 이 서점만 늘 왔다갔다 했었다.

이 서점에 갈 때는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애매한 곳에 있어서, 버스에서 내린 뒤 늘 10차선 대로를 무단횡단해서 찾아가야 했다.
당시 중국에는 신호등이나 건널목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지켜서 건넌다는 개념은 그닥...

언제나 두려움에 떨며, 주위에 중국인이 있나 살펴서 그들이 건널 때 잽싸게 따라 건너야 편하게 건널 수 있었던 그길.

옛글을 좀 참고해보면....
⬇️


2005.02.06 01:26 

아련함


天津...
8개월 동안 살았던 그 곳을 떠난지 9개월이 지났다.
가끔 지저분하고 답답한 감옥 같기도 했던 그 곳이 이젠 아련하게
그립다.
그 8개월은 내 삶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사진 왼쪽 삐죽한 세모돌이 건물은 랜드마크로 삼기에 좋은 르네상스
호텔 건물.
가운데 높은 건물은 내가 총총 길을 건너 圖書빌딩을 찾아갈 때
기준점으로 삼곤 했던 금빛으로 치장한 건물이다.
항상 뿌연 천진 하늘에선 사실 구름보기도 어려운데 이 사진은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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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금빛 건물이 여전히 이곳에! 


15년 만에, 이 길을 건너며 
이제 목숨 건 무단횡단이 아니고, 신호에 따라 건널목을 건넌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보았다. 
계속 걸으면서 찍은 사진 치고는 흔들리지 않고 잘 찍혔네.


당시에는 오른쪽 금색 건물과 앞쪽에 세모로 뾰족한 건물만 튀는 높은 건물이었는데
이제는 고층 건물이 너무 많아져 이 건물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15년 전에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 수준 격차가 컸었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한국인처럼 보이면 안 된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튀게 다니지 마라' '밤에 다니지 마라' 이런 주의를 줬었다.

어느날 이 서점을 둘러보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는데 그 사람이 서투르게 '미안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하고 지나가서
'내가 한국인인 게 보이나?' 하고 깜짝 놀라서 무서워졌던 일,
그리고 원래는 밤 외출을 안 했는데 어느날엔가 이 서점에서 깜깜한 밤에 나와서 가본 적 없는 뒷길을 걸어 집에 갔던 일 등등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왜 그 길을 걸었는지, 무서움에 덜덜 떨었는지, 아니면 '별 거 아니네'하고 의기양양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2019년, 야경이 예쁜 톈진에는 밤에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실 나처럼 혼자 걷는 여자는 별로 없었지만, 밤에 가족 단위 외출도 많이 보였고 밤길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상황은 드물었다. (물론 으슥한 곳은 가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이번 여행 첫날 숙박한 곳은 오래 전엔 '그쪽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 소리를 들었던 江 동쪽이었다. 예전 8개월 동안 살면서 딱 한 번 넘어가보았던 그곳을 이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며, 그땐 왜 그런 소리를 들었을까 궁금했다.





15년 전에는 왜 그렇게 중국 사람을 무서워하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미 모든 걸 겪어 본, 한국인 선배들의 충고 때문이었겠지만.


당시에는 상점 점원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유럽배낭여행을 많이 다닌 내 또래에 비해선 난 유럽보다 미국을 많이 방문한 편인데
늘 친구들에게 "미국은 땅이 넓어서 사람들의 알 수 없는 그 여유가 좋아"라고 말하곤 했었다. "역시 넓은 데 살아야 여유가 생겨. 그런데 중국의 경우를 보면 또 그게 다 맞는 건 아니네" 이런 말도 덧붙이면서.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마주친 직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친절했다.
자신있게(!) 아는 말 하나만 해서 중국어로 주문했다가 그 다음에 쏟아지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눈만 똥그래지는 나를 보고도 모두 참을성있게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다들 신기할 정도로 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한국 식당은 혼자 온 손님을 좋지 않은 자리에 배정하고, 4인석에 앉으면 눈치를 주는데
기본적으로 식당들의 크기가 큰 중국 식당은 늘 큼직한 4인석에 나를 안내했다. 그것 역시 너른 땅에서 나온 여유 같았다. 


          닷새 스쳐가는 여행객은 그저 모든 게 아름답지만, 오래 살다보면 다시 인간이 무서워질까.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문화가 발전하면서 그들이 부드러워진 걸까.
아니면 내가 15년 전에 너무 마음의 문을 닫고 산 걸까.



* 중국에 오래 살았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시점에 이미 성인이었던 중국인과 그 시기를 거쳐 자라난 세대 중국인은 무척 성향이 다르다고 한다,
정말이지, 2019년 닷새간 만난 중국인들의 여유와 친절은... 놀라운 변화였다.




Tianjin Binhai library 天津滨海图书馆 톈진 빈하이 도서관








사진으로 엄청 기대감을 키운 곳이었지만, 역시 사진 찍기에만 좋았던 곳.
그냥 "just instagrammable destination"인 것 같다.

다들 실망했다는 평이 많았지만, 특유의 공간감이 있을 것 같아서
좋지 않은 날씨에 (여행 기간 중 유일하게 비를 맞음) 어렵게 찾아갔지만... 물음표가 가득했던 곳.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책 모양 프린팅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 놀랍지는 않았다.
이 중간 아트리움 뒤로는 도서 진열대나 열람실이 있긴 하지만 본격 도서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20만권 장서가 목표라고는 한다.)







사진 찍는 것보다 이 공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남들처럼 사진만 열심히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

이 도서관은 톈진역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55분 걸리는 市民广场역에서 내린 뒤, 20여분 정도 걸으면 찾아갈 수 있다. 9호선은 지상철이라서 역에 접근할 때 이 도서관/미술관 등을 모아놓은 문화 컴플렉스가 밖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걸 보고 방향을 잡으면서 이동하면 된다. 다만, 이 지역이 滨海新区라고 신도시 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매우 휑~ 하고 인적이 드문 편. 

나는 도보를 즐기지만, 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해서 택시를 탔다.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다.

"삔하이 투슈관~"

내멋대로의 성조에😆 아저씨가 살짝 의아해하는 듯 하더니 금방 데려다 준다. 당시 약한 감기 기운 때문에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비도 살짝 와서 그냥 택시를 탔고, 아저씨가 날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해도 그냥 10위엔 던지고 내릴 참이었는데, 1위엔 거슬러 주시네... 
(2019년 말 택시 기본료가 11위엔으로 인상되어, 이제 10위엔 내고 돈 거슬러 받을 일은 없다.) 나처럼 지하철+택시 조합으로 할 거면 시민광창역까지 가지 않고 그 이전역인 타이다泰达(地铁站)에서 내리면 더 빠를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안내는 시민광창짠에서 찾아가라고 되어있다. 

도서관 입구 안내가 잘 되어있지 않아 뱅뱅 돌다가 겨우 찾아서 들어갔다. 나와 같이 뱅뱅 돌고 있는 한 여자분이 있었다. 😛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다가 결국은 다시 마주침. 그분도 외국인인 듯. 나는 오기 전에 사진들을 보고 도서관 단독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내에서 다른 건물들과 이어져 있는 게 헤맨 이유이기도 했다. 입장 시에 짐가방 x-ray 통과 검사를 받는데 따로 안내받은 바는 없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특이하게 카메라 휴대 입장을 금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뭐 어차피 모두 폰으로 사진 찍는 데 뭐. 카메라를 굳이 금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또한 민소매옷을 금지하는 특이한 규정도 있으니 여름에 주의!







생각보다 내부가 작은 편이었고, 특유의 분위기는 없었다. (사진빨이 훨씬 좋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왔기에...(9호선은 톈진역이 출발역이라 맘놓고 있었는데 다들 우르르 맹렬한 속도로 타는 바람에 금방 자리가 없어졌다. 자리가 나기까지 40여 분 이상을 서서 이동한 것 같다) 떠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고, 사진에서 저 가운데 모양 하얀 구에서 조명을 하는 것도 보았기 때문에 6시 넘어서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도서관 실내 방향 출구 바로 건너편에 맥도날드가 있다.
주문하면 갖다주고, 먹고 나서 그냥 일어서면 자리를 치워주는 중국 맥도날드....오랜만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지만, 조명 같은 걸 시작할 분위기는 안 보인다. 다시 한 시간 이상 걸려서 톈진 시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도서관을 떠났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하면 담소 나누기에 좋은 장소일 것 같았다. (칸칸마다 앉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아트리움 뒤편 열람실도 조용하고 깨끗해서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부하러 올 만 하겠다 싶었다.







밖에서 본 빈하이 도서관. 다른 각도에서 제대로 사진을 찍으면 눈동자 모양처럼 보여서, '빈하이의 눈'이라고도 하더라.
이상하게 위 사진에 보이는 출구로는 못 나가게 했다. 늘 못 나가게 하는 건지, 아니면 특정 시간대에 막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돌아갈 때는 전철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市民广场역으로 갈 때는 주위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높은 건물이 (여전히 건설 중인 듯? 무려 세계 7위 높이의 건물이라고 함) 역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걸어가면 된다. 도서관에서 이쪽 방향으로 나오면 바로 앞에 예쁜 공원을 조성 중이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걸어갈 수 있다. 




단, 구불구불한 공원 설계에서 자동차 도로 쪽 출구가 될 법한 길이 보일 때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난 더 가도 되겠지...하다가, 결국 구불구불 엄청 돌아서 자동차 도로에 도착했다. 공원 끝자락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구불구불 구부러진 또 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것을 보고 '아까 도로 보일 때 빨리 나갔을 걸'하며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옴ㅋㅋ  그래서 그냥 풀을 즈려밟고🚷 길을 가로질러 도로에 도착.


이 공원을 나온 쪽에서 남쪽으로 가면 빈하이 고속철역이 있다. 내가 톈진역에서 9호선을 타고 55분/9위엔을 내고 온 것에 비하면 고속철을 타면 단돈 12위엔으로 그 절반의 시간에 톈진역에 도착할 수 있다. 고속철을 2200원 받고 태워주다니, 중국만이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맞나??😅)인 듯. 톈진역에서 9호선 타고 시민광창역 오는 것이 용산역에서 지하철로 수원 가는 시간과 비슷한데 지하철 요금은 두 나라가 얼마 차이 안 나지만, 서울에서 30분짜리 수원행 ktx는 8400원이던데...

하지만 현지 SIM을 사지 않아 폰으로 열차 시간표를 조회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기차는 지하철과 달리 배차 간격이 기니까), 도착 첫날이라 중국에 아직 적응이 안 되어(?!) 고속철 표를 살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또 한 시간 걸리는 전철을 택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왔던 길이 아니라 인적이 거의 없는 새로운 길을 혼자 걸어서 고속철역 찾아가기도 그렇고.

그래도 중국 여행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고속철 타고 이동 시간을 30분 줄일 수 있다. 길거리엔 택시가 아예 없다시피 했지만, 역앞에는 택시들 몇 대 정도는 대기하고 있지 않을까. 중국어를 쓰는 것에 좀 적응이 된 여행 막바지에 빈하이에 갔으면 고속철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나는 혼자 가는 길이라 다소 심심하게 오고 갔지만, 9호선이 지상철이라 변해가는 톈진 시 풍경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중간에 ikea도 있다), 결국은 다녀오고 나니 약간은 뿌듯했던 곳. 시민광창역 매표소에서 만난, 어떻게든 영어를 쓰시며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던 직원도 기억에 남는다^^. 그땐 여행 첫날이라 몰랐지만 그 이후로는 내가 외국인이든 뭐든 무조건 중국어로만 답하는 분들만 만났으니... 


기껏 본인이 좋아라 다녀오고 나선, 남들이 간다고 할 땐 또 아는 척 하겠지.
"야, 거기까지 구태여 안 가도 돼~~ 그 도서관 그냥 겉치레 뿐이야~"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