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pe of secret







영화 the shape of water 의 이야기가 허술하다는 평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평범한 청소부들을 국가 기밀 시설에 저렇게 쉽게 접근을 시키냐" 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허점은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감안하고 넘어가야 되는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잘난' 과학자들은 스스로 청소를 하지 않는다. 과학자, 군인들이 '내가 여기 청소를 하느니 기밀이 약간 새어나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ㅎㅎ.



몇 년 전에 미국 백악관이 적에게 공격 당하는 영화가 연이어 나왔었다. 그런 류의 영화를 보면 백악관 지하 깊숙한 곳에 첨단 기밀 시설이 들어가 있어서, 유사시에 국가 수뇌부가 그곳으로 대피하는 장면이 늘 나온다. 

그런 장면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냥 땅파서 만든 움막도 아니고 저 정도 규모의 최첨단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장비 수송, 비교적 오랜 기간의 공사가 필요했을 텐데, 저 위치의 보안과 기밀은 어떻게 유지할까? 하는 거.

인부들에게 안대를 씌워 목적지까지 데려가고 데리고 나온다고 해도,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 입막음을 할 수 있을까 ㅎㅎ 이런 건 그냥 영화를 보면서 꼬투리잡지 않고 그냥 봐줘야 되는 측면이 아닌가 싶다 ^^ 지금 현실에도 저런 기밀 시설은 많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아는 사람들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있는 것처럼.






오호라









무단으로 옮겨와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분이 (t010****7089) 공개적인 자리에 쓰신 거니까 여기에 올려본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계산적이다"라는 내용.
나는 위의 영화평이 나온 영화, '캐롤'은 작년에 이미 보았다.


올해 들어서는 the shape of water, call me by your name 등등 이성 동성 양성, 심지어 'creature'까지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영화를 보았다. 한국에서 개봉한 두 영화 모두, 일부 영화평에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라는 평이 종종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들의 "어느 순간 푹빠짐"이 이해가 가기는 했다.

그러나 위의 누군가의 글을 읽고 보니, 첫눈에 빠지는 순간도 사실 계산적일 수 있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Call me by your name의 '어른' 남자주인공도 너무 과도하게 매력적이라, '소년'이 순식간에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 사실 너무 수긍이 가는 상황이 되어 도리어 영화의 매력을 좀 잃었달까.... 그리고 사전에 이들이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영화를 보게 되어 영화 감상이 약간은 밋밋해졌다. 지금은 '밀당'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연애하겠지? 하고 보면서 알고 기다리는 느낌??








나는 일부러라도 영화 정보를 거의 보지 않은 채로 극장에 가는 편인데, 그래서 아주 이름난 영화라도 내용을 잘 모르고 갔다가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Call me by your name의 경우 사전에 홍보나 영화 포스터만 봐도 내용이 짐작이 가는 영화였지만, 정말 어떤 내용인지 아예 모르고 이 영화를 만났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 측면에서 '듣도 보도 못한 생명체'와 빠져드는 the shape of water에서의 사랑은, 그 순간적인 계산까지 뛰어넘은 사랑인 걸까?



나는 the shape of water가 call me by your name보다 조금 더 좋게 다가왔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정말 아무 이유도 없는 사랑"이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두 영화, 둘 다 좋았다.




"When he looks at me, the way he looks at me... He does not know, what I lack... Or - how - I am incomplete. He sees me, for what I - am, as I am. He's happy - to see me. Every time. Every day. "


아는 세계 모르는 세계





10년 가까이 테니스(특히 ATP) 팬을 하면서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11월 말 - 12월 중순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경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대양주 - 중남미- 북미 -유럽- 북미- 아시아-유럽 순서로 돌면서 ATP 'world tour'가 펼쳐지기에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 몇몇이 있으면,  1년 내내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잠 안 오는 새벽에도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반드시 테니스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1월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한국 정현 선수가 4강에 오르면서 국내에도 테니스에 관심이 생긴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됐다. "정현 이번 주 대회 또 나가나요?" "저번 주에도 경기 있지 않았나요?" "정현 지치지 않나요?" "참가 대회 관리 좀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글들이 보이는 것이다.

1년 내내 끊임없이 전세계를 돌아가며 투어를 하는 프로 테니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상황인데, 초심자에게는 신기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수많은 대회에 연달아 참가할 수 있는지...
나는 그동안 테니스를 잘 안 보던 사람들의 여러 가지 반응을 예상했지만 저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었다^^.

새삼 내가 아는 세계, 내가 모르는 세계, 상대방이 알았던 세계, 상대방은 모르는 세계 등등의 간극이 참 크다고 생각했다.



테니스 선수들만 보다가, 핸드볼 선수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경기장을 'hall'이라고 불렀다. 테니스의 경우 'court'라고 부르듯이.
hall이라고 하면 결혼식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넓은 방 같은 곳만 떠올렸던 나는 그들이 말하는 'hall'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 했었다.

오래 전부터 매주 쉴새없이 대회가 펼쳐져 왔던 프로 테니스 일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내가 낯설어하듯이,
자신들이 당연하게 부르는 hall이 뭔지 못 알아듣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겠지.
내가 몰랐던 세계였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단,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존중해줄 수 있을 때.








be social




소셜 미디어의 장점은 크게 모르겠고 단점은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소셜 미디어를 떠날 수 없는 것은, 멀리 떨어져 사는 지인들과의 연락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의 '글'을 좋아하는데, 글은 보기 힘들고 수많은 사진들만의 나열에 지쳐 페이스북을 그만 둘까 하다가도
스리랑카에 있는 내 제자들의 소식을 주고 받기에는 페이스북 만한 것이 없다. 메신저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고.
그래서 포스팅은 자주 안 하고 like만 눌러대면서 페이스북에 남았다.

요즘 잘 안 하던 페이스북 포스팅을 다시금 종종 하기 시작했는데,
왠지 페이스북이 한결 편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스리랑카 제자들에 비해서 한국인들은 모두 재빠르게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서, 페이스북은 흉가가 되어버렸는데
모두들 like가 많고 즉각 반응이 오는 소셜 미디어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싸이월드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다음은??)

관심을 갈구하는 듯한 사람들은 이제 거의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했기에, 페이스북에 남은 사람들은 뭔가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있다. 과도한 자랑은 잘 올라오지 않는다. (이미 페이스북이 그 '자랑'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너무 썰렁한 곳이 되어벼렸기 때문에.) 그래서 이용하기 한결 편안하다. 삶의 솔직한 한 단면에 대한 글이나 사진이 더 많이 올라온다.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호황이던 시절에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약간 먼 사람의 세세한 일과까지도 '어쩔 수 없이' 내가 다 알게 되어 뭔가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이제 한국인 대다수의 일상은 인스타그램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싸이월드 경우에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흉가가 되어버린 싸이월드 블로그를 나는 꿋꿋이 지켰듯이, 이젠 또 조용해진 페이스북을 지키고 있다. 관리하다가 버려지는 소셜 미디어가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아서 아마 앞으로도 인스타그램은 가입하지 않을 것 같다.

10년 전에 스리랑카 제자가 권하는, 제3세계(?)에서 잠시 유행했던 소셜 미디어에 가입했다가... 이제는 거기 로그인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아직도 거기 어딘가에 내 사진이 남아있는데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찝찝하기만 하다.


나는 주로 테니스 선수의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곤 하는데, 그들 역시 "뜨는" 미디어가 새로 생길 때마다 새로 가입해야만 팬들과 제대로 소통이 되기 때문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동시에 굴리는 것을 본다. (특히) 트위터 계정은 이제 버린 선수들이 많이 보이지만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내용을 세 군데에 다 올리는 것을 보면...참 정신없을 것 같다.
테니스 선수들도 슬슬 'like가 순식간에 불어나는' 인스타그램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그' 인스타그램도 언젠가는 트위터처럼 버려지겠지.


이제 또 상업성이 판치는 곳이 되어버린 인스타그램도 슬슬 지친 사람이 나오는데
차세대 인기 소셜 미디어는 무엇이 될지.




who am i?




"그래서, 넌 원래는 뭘 하고 사는데?"

직업이 너무 명백해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과 잠시 일을 하던 어느날,
처음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어느새 질문의 시기가 왔다.
서로에 대해 궁금할 일도, 사적인 것을 질문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고 일 했었기에
갑작스런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 사람처럼 하늘이 부여한 천직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되고 싶다고 되는 직업이 아니고 재능이 있어야 뽑힘)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이해 못 하겠지?

"난 regular job 안 좋아해. 그래서 엄마랑 다툼이 많지."
대충 얼버무리고 나의 과거의 경험 몇 개를 이야기해줬지만, 괜히 뭔가 쪼그라드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

그 사람과 비슷한 분야의 대학원을 다녔다고 하면 차라리 조금 설명이 될 일인데, 그 사실조차 아득히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당황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했다.
나는 뭐지?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질문한 사람이 외국인이었기에 더 말문이 막힌 것도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어로는 내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는 아무도 이해 못 시키겠지. 왜 그러고 살았는지....


그래서 최근에 영화를 보다가 한 장면에서, 그 흔한 대사에서, 공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When he looks at me, the way he looks at me... He does not know, what I lack... Or - how - I am incomplete. He sees me, for what I - am, as I am. He's happy - to see me. Every time. Every day......"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에서는
대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가 전혀 상관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란 없으리라 생각한다. 뭐라도 직업이 있어야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으니.


나는 뭐지?
뭐 하는 사람이지?







판단 오류




여러 사람들 무리에 섞여 통역으로 일할 때였다.

나를 주로 괴롭히던 한 아저씨A 등쌀에 넌더리가 날 지경.
팀워크가 중요한 일이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팀보다 자기 아들 선물 사는 일에 더 관심 있던 그 아저씨A. 익일 배송도 잘만 되던 택배가 그때따라 사흘이나 뒤에 오는 바람에, 고가의 그 택배 물품을 얼마나 신경써야 했는지.
그 팀의 대표는 늘 나보고 이 아저씨A는 말이 너무 많으니 그 말 다 들을 필요 없다고 중간에서 자르곤 했다.

그 날도 이 아저씨A는 이 행사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의 명단을 요구해서, 내가 구해다가 telegram으로 보내줬다.

잠시 뒤,
늘 차분하고 말을 별로 하지 않던 아저씨B가 나에게 갑자기 자기도 참가자 명단을 달라고 한다.


"그거 A에게 이미 줬어."
"그래도 나에게 보내줘. 나의 전화번호는...."


나는 뭔가 이들 사이에 이상 기류를 감지하고, 그냥 아저씨B의 번호도 텔레그램에 등록하고 그에게도 명단을 보내줬다. B옆 10m 이내에 있었던 A에게 말하고 자기들끼리 텔레그램 메시지 받는 것이 나에게 번호 알려주고 새로 친구 등록하는 것보다 덜 번거롭고 시간이 훨씬 덜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A 대신에 나를 찾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둘이 같은 팀이고 서로 금방 주고 받으면 될 텐데, 굳이 나에게 다시 부탁하는 것은 둘 사이가 안 좋다는 증거?? 서로 말도 하기 싫다?? 맨날 팀 대표도 아저씨A 말 듣지 말라는 걸 보면 A는 팀에서 왕따인가봐...'


나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팀이긴 하지만 내가 뭔가 모르는 게 그 밑에 흐르고 있겠지.
내가 며칠째 A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정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저씨 B에게서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미안하지만, 은행에 좀 같이 가 줄 수 있겠어? 나 외국에 송금할 일이 있어."


아저씨B의 첫 부탁이었기 때문에 그냥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아저씨A와 달리 아저씨B는 상당히 온화하고 미안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거주 등록을 했거나 직장이 있는 외국인이 아닌, 그저 한국에 방문 중인 사람이 한국 은행에서 해외송금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결국 은행에 이틀 동안 가야했지만 아저씨B는 매우 미안해하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아저씨A는 감사 인사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 일을 했을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저씨A 왕따설'이라는 내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잘 생각해보니, '참가자 명단 추가 요구'는 팀내 불화 때문이 아닌, 내 번호를 얻기 위한 아저씨B의 큰그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저씨B의 출신국가는 해외 송금이 매우 어려운 나라였고, 아저씨B 역시 팀워크보다는 '한국에 온 김에 송금'이라는 목적 달성때문에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런저런 통역을 가장한 잡무가 하기 싫었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아저씨B는 나와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참가자 명단"을 빌미로 나와 텔레그램 연결에 성공했다는 게 더 맞는 판단인 것 같다. 게다가 참가자 명단이 그렇게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
눈치를 잘못 채고, 인과 관계를 함부로 판단하면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다 숨은 이유가 있다는 것 ^^








beautiful moment



나이들어가면서 사고 체계와 가치 판단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가는
주위 노년층들을 보면서
나이 드는 게 점점 너무 무서워진다.

그분들이 지금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이상한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계시듯이
나도 나이 들어 어느 순간 내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를 이해 못하는 젊은 사람들은 경솔하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한때 그분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 체계가 흐트러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순간에 나도 고루한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지금 내 판단이 노년층 몇몇분의 판단과 "달라서" 그분들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을 철썩같이 믿어버리는 노년층들이 있다. 그런 사례를 보면 사고/가치 판단 체계가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발표 호명 실수에 대해, 왜 수상 명단 봉투를 건네준 회계사의 부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작품상 시상자였던 워렌 베이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80대에 가까운 고령자였다는 것도 분명히 작품상 호명 실수에 한 축을 담당했다. (젊은 배우나 젊은 감독에게는 작품상 시상을 맡기지도 않지만, 3-40대 정도의 배우가 "Emma Stone - La La land" 라고 써진 것을 보고도 이걸 작품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http://mori-masa.blogspot.kr/2017/03/2066.html?q 이것은 분명히 앞으로 펼쳐질 초고령화 시대에 대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주고, 인생사의 많은 부분에서 견해가 일치하는 좋은 친구들은 지금 대부분 두 아이의 엄마이며 돈 잘 버는 직장인인 경우가 많다. (그런 좋은 성격/인품 때문에 다들 일찌감치 유부녀가 되고, 퇴사하지 않고도 자기 커리어를 지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다. 직장일도 바쁘지만 언제나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 두 아이의 엄마 노릇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1년에 한 두번 밖에 만나지 못 하는 그 짧은 대화가 오히려 우리 우정을 지켜주었는지도 모르겠다. 😆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말실수도 늘어났을 테니...


그들과 좀 더 자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많은 공감을 나누고, 더 많이 위로받고 싶지만.... 자녀 교육에 바쁜 그들과의 진득한 만남은...아마도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미뤄야 되지 않을까 싶다. 10년이 더 남았네...

지금도 많은 5,60대 주부들의 일상이 모임, 모임, 모임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많은 인생 선배들이 3,40대에는 절친도 1년에 한 번 만나기 힘들다가 아이들이 다 커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오랜 시간이 다시 지나야 내 친구들과 '자식 얘기' 아닌 '우리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 같다.


내가 아쉬운 것은
이제 그렇게 '우리'에게도 시간 여유가 찾아올 때쯤이면
우리의 사고 체계도 무너지기 시작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나누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나도 '옛날에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아니네'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리고 70대에 이르신 우리 엄마의 친구들과의 모임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억력과 배려심이 감퇴해서 서로 엉뚱한 약속 장소에서 나타나 서로 탓하다가 기분 상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도 두렵다. 기억력과 기동력이 감퇴해서 약속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 어느 순간 건강 문제로 친구들이 하나둘씩 줄어드는 것.


최근에 누군가의 소셜 미디어에서 읽은 아름다운 글,

"God, Give the most beautiful moments to my parents, because they lost the most beautiful moments for me."


자신들의 가장 아름답고 명징하던 시절을 자식에게 준 내 친구들...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아름답고 명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는 시간의 여유를 좀 찾아서...


나도 그때가 되어.... '젊은 사람이 들으면 뜨악할 이야기나 하는'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찌들지 않도록.








석학




스리랑카 학생들은 ㄴ받침과 ㅇ받침을 구분해서 발음하지 못한다.
내가 배우기로는 분명히 그들의 문자에도 න් 과 ං ...
ㄴ받침과 ㅇ받침을 구분하는 문자가 있는데, 실제로는 구분해서 발음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하는 우등생 스리랑카 학생에게서도 '돈대문' '선샌님'이라는 발음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동대문'을 제대로 발음하는 학생은 아직 보지 못했다.


10년 전, 처음 스리랑카 대학교에 파견되어서 선배들의 수업을 참관하며 기말고사 시험장에 들어가던 시절. (내가 강의했던 대학교는 강당 같은 곳에 수백 명을 모아놓고 기말고사를 보았다.) 여리여리한 우등생 여학생의 코믹 답안을 보게 되었다.

그 기말고사는 3년제 스리랑카 대학교의 학창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험으로,
내 선배단원은 "한국어를 전공한 이유와 3년 동안 배운 소감을 써보세요"라는 주관식 문제를 가장 마지막 문제로 냈었다.

그 학생의 답안은 이렇게 시작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발정한 국가입니다......"




ㄴ과 ㅇ을 받침을 구분하지 못하는 스리랑카 학생의 특성 때문에 나온 재미있는 답안이었다.
요즘처럼 누구나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는 시절이었다면, 반드시 사진으로 남겼을 텐데 ㅎㅎ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를 휘감는, 욕나오는 뉴스들을 보니
이 학생은 10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간파한, 진정한 한국학의 대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나는
모든 이에게 같은 정도로 나를 노출시키는 사람이었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 그런 내용은 별로 없고
내가 입밖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입밖으로 내지 않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나, 10년 된 친구에게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같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아는 사람과 친한 사람, 좀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나뉘는데
결국 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또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종류가 달라졌다.


옛이야기만 해도 괜찮은 친구가 있고, 찌질한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있고
정치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가 있고, 연예인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가 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친구들의 반응 특징을 알게 됐고, 내가 생각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친구에게는 그 종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상책이 됐다.


영화 shape of water를 2월에 본 후
여러 생각끝에 오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다.
내 마음 그대로 받아들여줄 친구는 없다.


그냥 혼자서 내 마음이랑 계속 이야기할 밖에 :)



장단점




지금 돌이켜보니
나와 같은 업무로 한 호텔에 숙박했던 백 여명 모두가 덩치 큰 장정(?)들이고 여자는 단 두 명뿐(나머지 여자 한 명은 내가 모르는 외국인)이어서 무척 긴장했었던 1월.
마지막 일을 마칠 때쯤엔 그 사람들에게 적응했었기 때문에 그 긴장을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친구에게 이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기억을 되살려보니, 초기의 나는 상당히 겁을 내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ㅎㅎ


하지만 한국인 여자가 혼자였던 덕분에
남자들 대부분이 2인 1실이었지만 나는 나 혼자 방을 쓸 수 있었고
한 달 이상 지난 지금, 그때의 평화로움이 너무 그립다.
일, 동료들에게 적응하기 전 일주일은 기절할 것 같이 힘들었지만
적응을 마치고 난 일주일은 평온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샤워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그립다.
침대 옆에 바로 딸린 (유감스럽게도 집보다 깨끗한) 욕실에서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샤워할 수 있는 욕실이 두 개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내 방에서 제일 멀다.
(물론 우리집이 넓은 집은 아니라서 10초 안에 금방 도달하지만ㅋㅋ)
집에서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샤워하는 것도 조금 제약이 있고, 화장실 공간도 샤워만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라서 난잡스럽다.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물욕이 많은 언니의 잡다구리한 물건들이 사방에 놓여있는 정신 사나운 욕실. 샤워 부스나 커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방으로 물이 튀어 신경도 쓰인다.

'화장실 딸린 방'에 살던 편리함이 그립다.
그리고 난 평소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또 그리운 것은 나의 자유로운 채널 선택권.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독립한 뒤 어쩌다 집의 막내가 된 나는, 집에선 채널 선택권이 없다.
TV를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지만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보는 소위 '예능' 프로그램이 몇 개 있는데, 드라마 애호가인 엄마/언니와 취향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내 방에서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으로 혼자 티비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혼자 호텔방에 묵게 된 지 며칠 안 된 어느날 밤, 새로 시작한 모 예능 프로그램이 웃기다는 실시간 후기가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 이거 어떤지 나도 한 번 봐야겠다.'
습관적으로 계속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방송시청앱을 눌러댔지만 반응이 없다.
나중에 며칠 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거지만 내가 묵었던 그 호텔은 밤에 몇 분간 와이파이가 잘 연결이 안 되는 시간이 늘 있었다.

'아고, 사람들이 재밌다는데 하필 왜 와이파이 안돼? 결국 못 보겠네'

몇 분 뒤,
나는 그 호텔방에서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내 호텔방에는 내 TV가 있었다. 리모컨과 함께 얌전히 켜지기를 기다리는....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ㅎㅎㅎ
늘 스마트폰 앱으로 TV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눈앞에 나만을 위한 티비가 있어도 그걸 켜서 내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


오직 나의 선택만을 기다리던 내 티비도 그립다.






돈 벌어서 독립을 하지 그러냐? 라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호텔 생활의 장점은 청소도, 요리도 내가 할 필요 없다는 점😆


정말 모든 세상사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혼자 여자라서 사실 힘든 것도 있었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만약 동료 여자가 많아서 누군가와 같이 방을 썼다면 그 시간이 평화로운 2주일로 기억되지도 못 했을 거고, 이 방이 그립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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