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were silly like us; your gift survived it all:"



 

In Memory of W. B. Yeats


W. H. Auden, 1907 - 1973


I
He disappeared in the dead of winter:
The brooks were frozen, the airports almost deserted,
And snow disfigured the public statues;
The mercury sank in the mouth of the dying day.
What instruments we have agree
The day of his death was a dark cold day.
Far from his illness
The wolves ran on through the evergreen forests,
The peasant river was untempted by the fashionable quays;
By mourning tongues
The death of the poet was kept from his poems.
But for him it was his last afternoon as himself,
An afternoon of nurses and rumours;
The provinces of his body revolted,
The squares of his mind were empty,
Silence invaded the suburbs,
The current of his feeling failed; he became his admirers.
Now he is scattered among a hundred cities
And wholly given over to unfamiliar affections,
To find his happiness in another kind of wood
And be punished under a foreign code of conscience.
The words of a dead man
Are modified in the guts of the living.
But in the importance and noise of to-morrow
When the brokers are roaring like beasts on the floor of the
     Bourse,
And the poor have the sufferings to which they are fairly
     accustomed,
And each in the cell of himself is almost convinced of his
     freedom,
A few thousand will think of this day
As one thinks of a day when one did something slightly unusual.
What instruments we have agree
The day of his death was a dark cold day.
II
You were silly like us; your gift survived it all:
The parish of rich women, physical decay,
Yourself. Mad Ireland hurt you into poetry.
Now Ireland has her madness and her weather still,
For poetry makes nothing happen: it survives
In the valley of its making where executives
Would never want to tamper, flows on south
From ranches of isolation and the busy griefs,
Raw towns that we believe and die in; it survives,
A way of happening, a mouth.


III
Earth, receive an honoured guest:
William Yeats is laid to rest.
Let the Irish vessel lie
Emptied of its poetry.

In the nightmare of the dark
All the dogs of Europe bark,
And the living nations wait,
Each sequestered in its hate;

Intellectual disgrace
Stares from every human face,
And the seas of pity lie
Locked and frozen in each eye.

Follow, poet, follow right
To the bottom of the night,
With your unconstraining voice
Still persuade us to rejoice;

With the farming of a verse
Make a vineyard of the curse,
Sing of human unsuccess
In a rapture of distress;

In the deserts of the heart
Let the healing fountain start,
In the prison of his days
Teach the free man how to praise.

우선 순위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 대한 미움을 없애자.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자.

그때 그 향




대학교 1학년 때 입학하면 무조건 들어야하는 교양 영어 교과서에 나오던 글.




"Yes, the sense of smell is the most nostalgic of our senses."


- Hans Zinsser "Mamie"



모든 과 학생이 다 들었기 때문에, 우리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사실 그 시절엔 공부 안 하는 1학년이 훨씬 더 많아서, 모두 알고 있는지는 잘....)


나와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가수가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 문장을 예로 든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윗 문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수라서 그런지, 아마 '후각보다는 청각이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각인 것 같다.' 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후각보다는 어쩌면 청각이 더 옛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왔는데....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예전 2007년에 어떤 잡지의 부록으로 나와서 받았던 향수 바디 로션인데,
2014년에 우연히 또 하나가 더 생겼다.
7년 만에 이 바디로션을 바르는 순간, 나의 기억은 콜롬보 자나키 호텔의 방으로 이동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



http://koyocn.com/ru/ProjectsList.asp?287-216.html





tripadvisor.com   Thalea의 사진



내가 2007년 11월, 처음 스리랑카에 도착해서 2주 정도 머물렀던 호텔, Janaki.
그곳에서 쓰기 시작했던게 저 bright crystal 바디 로션이었다.

잊고 있었던 그 호텔 방의 전경이 이 바디 로션을 바르고 그 향기를 맡는 순간,  머리 속으로 스쳐지나갔다.
신기했다. 7년 만에.
나는 그 호텔 방 사진 한 장 찍어놓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 풍경과 화장실의 모습까지 훅 지나갔다.


정말로, 후각은 순식간에 시간과 장소 이동을 하게 해주는 'the most nostalgic of our senses'인가 보다.



속고 속이기




마음에도 없는 호의를 베풀면서
그 일을 억지로 하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여태껏 내가 '아, 정말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나봐.' 라면서
감사히 받았던 상대방의 호의도
지금 나처럼
진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남도 할 수 있었겠지.




털털, 소탈함의 오해




누가 잘났고, 누구는 못났고...
사람을 비교한다는 개념이 웃기지만
대개는 그래도 어떻게 봐도 잘난 사람이 있다. 아니면 소위 '조건'이 좋은 사람.

가끔 그런 잘난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을 격의없이 대하고 잘 어울릴 때
"참 털털해" "소탈해" "그 사람 괜찮아, 인간성 좋아"이러는 것을 보면 웃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배려하고 잘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게 무슨 칭찬할 거리라고....

누군가를 털털하고 소탈하다고 칭찬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비교 (우위)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잘난 사람들-부자들은 타인을 무시해야 평범한 거고, 잘 지내면 '털털' '소탈'해서 언급할 만한 일이 되는 건가?

그 사람의 태도에서 '이 상대방은 정말 경쟁할 상대조차 되지 않으며 신경전이 무의미한 대상이라서 맘놓고 잘 해주는' 것이 퐁퐁 스며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저 "털털해", "소탈해" 이러는 것도 웃기다.





매일매일 방이 바뀌는 삶?







여행 다닐 때 호텔 고르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매일 자던 곳과 다른, 새로운 방에 들어설 때의 기대감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그 디테일들을 즐기는 것.

그래서 나는 8~9일 정도 한 도시 근교에 머무는 여행을 가도, 숙소는 4-5곳 정도 가보는 것이 기본이다. 정신없이 옮겨다닌다.
내가 원래 짐을 잘 풀지 않고 가방에서 조금씩 꺼내 쓰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짐 풀고 짐 싸기 귀찮아서라도 보통 그렇게 매일 호텔을 옮겨다니지는 않는다.

지금 한 번 해보고 싶은 삶은,,,
매일 매일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삶.^^
지쳐서 '내 집'이 그리워질 때까지.


수많은 사람 중에




at Museum of Fine Arts Boston








미술관이 소장한 그림이 많아, 복도 벽에 다닥다닥 걸려 있는 작품들을 보며 지나가는 중에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그림 하나.


Storm in the Mountains
about 1870
Albert Bierstadt (American (born in Germany), 1830–1902)







그렇게
사람과 사람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가고....
그리고 또 지나쳐가고...





할랄 가이즈 :)

 







뉴욕 맨해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라는 할랄 가이즈.
치킨 오버 라이스나 램 오버 라이스를 보통 먹고, 닭고기-양고기 콤보를 주문할 수도 있다.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근처 53rd st, 6th Ave에 위치하고 있는데, 유명세를 타면서 주위에 비슷한 노점들이 여러 개 생겨났다.
줄이 긴 곳을 가면 그 곳이 원조라고 해서, 힐튼 호텔 (맨해튼에서 가장 많은 객실을 보유한 초대형 건물이다) 대각선 위치(6번가 기점으로 지도 오른쪽)에서 줄을 서서 사먹었는데
구글 지도를 보면 6번가 지도 왼쪽으로 할랄 가이즈 표시가 있네;;;;
그곳이 원조였던 것인가?


가격은 7달러 정도인데, 여자 2인 이상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치킨-램 콤보 주문





닭고기, 양고기 순살에 밥, 채소도 조금 곁들여 있으니 영양학(?) 상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멕시칸 음식이나 케밥 같은 것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보편화 되어 있으니, 그와 비슷한 익숙한 맛이다.
이리저리 섞어 먹으면 먹는 재미가 있다.

구입 시에 화이트소스와 핫소스 두 가지를 주는데,
핫소스를 아무 생각없이 잔뜩 뿌렸다가 일생 최대의 매운맛을 보았다.
물을 계속 들이키고 진정을 시켜도 사라지지 않는 강렬한 고통?!?!?!

사람들이 화이트소스와 핫소스를 적당히 섞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데...
대체 다들 얼마나 내성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먹은 핫소스가 유달리 매웠나?

뉴욕에서 구입한 마지막 식사였고, 양이 많아 꽤나 버리고 왔는데
가끔 아쉽다.
지금 주면 꼼꼼히 끝까지 다 긁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싸이월드의 비극




나는 싸이월드를 2003년부터 했고,
싸이블로그를 2008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했다.

그동안 많은 부침을 겪다가 페이스북의 득세 이후 결국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싸이월드.
나는 그래도 익숙함과 그 '조용함' 때문에 끝까지 싸이월드를 지켰다.
분주하고 들썩이는 페이스북과 인스터그램에 지친 친구들이 한 두명 다시 싸이월드로 돌아오기도 했다.



2015년 10월,
싸이월드는 더 이상 '싸이월드'같아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동안의 싸이월드의 특성을 모두 없애고, 현재 유행하는 social media의 특성을 따라가는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쫓아내고 말았다.
회심의 한 수를 던졌지만 아마 이제 진정한 회생 불가능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
네이버, 다음에서의 검색 유입 없이는 '싸이월드' 혼자로서 우뚝 서는 게 불가능한데 개편 과정에서 이 검색어 유입마저 놓쳤다. 이것은 싸이월드 자체에 들어오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http://media.daum.net/digital/others/newsview?newsid=20151031044602835
"기존 블로거들은 URL 검색 노출이 안 되는 문제를 가장 크게 꼽고 있는데 해결됐나?
검색 노출 부분은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죽 급했으면 그것도 똑바로 못 했을까 싶다. 현재 약 3000만 회원의 기록을 옮기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양이다. 지금도 1000만명 정도의 기록을 옮겼을 뿐이다. 싸이월드에 남긴 기록이 없어지고 검색 노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비스를 개편한 의미가 없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직원들이 오늘도 밤낮없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잘 생각해보니,
이 싸이월드의 비극은 '사람들이 나를 [왜] 좋아했는지 몰랐다'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사람들이 싸이월드를 좋아했던 특성들은 가뿐하게 폐기 처분하고, 그저 남들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개편으로 결국 있던 사람을 다 쫓아내고 말았다. 다른 social media와 다르게 용도 별로 나뉘어져 있던 폴더, 오래된 글도 찾기 쉽던 전개 방식, 팝업 스타일....이런 특성을 모두 버린 싸이월드라니...누가 가고 싶어할까.

그리고 페이스북의 wall 방식... 친구들의 그닥 궁금하지 않는 소소한 일상까지 무방비로 마주쳐야 하는 그 방식이 싫은 사람도 있는데, 언제부턴가 싸이월드도 그렇게 남들의 모든 update가 다 들여다보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수개월이 걸려서 예전의 폴더 특성을 회복했지만...
매일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social media의 특성상, 며칠 사이에 공백을 못 견디고 모두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like와 댓글이 많은 곳으로 미디어를 옮겨다니기 때문에 떠나간 사람들을 다시 붙잡기는 어렵다.



싸이월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 상대방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거나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다들 많은 실수를 한다.

나를 왜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가 실수를 하면
그것은 싸이월드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비극이 될 수 있다.



잘 생각해보세요.






사진 몇 장으로 남은 UC Berkeley .




2015년 2월의 따스했던 날.


free speech movement cafe, 야외 테이블



이 방향으로 보면 썰렁해 보이지만
내 뒷편에 앉은 학생들은 일요일 오후에 저마다 '공부'를 하고 있었다.
책을 보거나 랩탑을 가지고 뭔가를 하거나...




나를 포함, 동네 방문객이 더 많은 일요일

학교 앞 Pizzeria


누적이다





인간 관계의 잔이 까닭 모르게 갑자기 ''펑''하고 사라질 때가 있다.
그것은 둘 사이 마지막 사건이 그 잔에 타격을 가해 깨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관계의 잔에 스멀스멀 차올라 한계선에 도달했던 불만에
마지막 사건이 불만을 더 들이부어 넘쳐 흘러버린 것이다.




인간관계가 끊어지면 대부분 마지막 사건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건 이유가 아닌 것 같다.

신기한 것은,
한 사람은 불만이 흘러넘쳐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 때
다른 한 쪽은 불만 하나 없는 텅 빈 잔을 든 채로 계속 건배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쪽이 관계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할 때
다른 한 쪽은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이를 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동안
한쪽은 자기도 모른 채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가해자인 줄도 모른다는 사실에 더 상처받는다.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된 사람도,
그동안 피해자의 고통을 알고 나면 신기하고, 미안해진다.
어떻게 이 관계가 이어져왔을까. 그들은 어떻게 견뎌왔을까
2006.12.2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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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1
많은 사건들이 '누적'의 결과로 발생한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 보면, 결국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성장 과정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어른들은 "쯔쯔..다들 버티는 데 군대에서 조금만 참지, 그걸 못 버티고 나쁜 선택을 하냐..."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 '군대'가 유일 원인인 게 아니고, 그 사람 인생의 여러 부분에서 아픔이 누적되어 왔는데 마지막으로 군대가 한계선에 넘치는 고통을 얹으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인간 관계가 파탄나는 이유도 딱 그 마지막 사건이 때문이 아니라 누적되어온 불만의 결과이듯이
어떤 사람이 "사실 제가 그 사건 이후 좀 힘들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것만이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여태까지의 누적된 것이 원인.

어떤 사건 이후로 영 인생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을 보고, "쟤는 고작 그 일을 겪였다고 지금 저렇게 반항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아픔이 쌓여왔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 터지고 수습하고, 일 터지고 마음 추스르고, 그렇게 겨우겨우 살아왔는데
또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긴다면 잔뜩 움츠러들기 쉬운 게 인간의 마음.

whiner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추억 속 가수의 귀환에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장 내 기억에 남는 무대는 나보다 열살 이상 어린 가수들의 몇몇 무대이다.

아마도 십대 초반부터 소위 '기획사'라는 곳을 서성였을 것이며
많은 청소년이 적어내는 '장래 희망'이라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그 꿈을 이뤄 데뷔하고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치이고, 어른에게 데이고, 동료에게 속고....
상처가 많아 보이는 아이들.
(두 가지 의미를 다 전달하고 싶다. 아이들(kids)이기도 하고, 외래어 표기법상 idol[aɪdl]은 '아이들'이기도 하고.)



이 '아이들'은 20대 중반이면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표정을 하고 있으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무대나 토크쇼 같은 곳에서 눈물 쏟는 모습이 흔하다.

성공한 '아이들'은 이십대 초반 나이에 내가 여태까지 평생 번 만큼의 돈을 한 달에 쓸어담게 되겠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크나큰 배신이나 사회 생활의 쓰디쓴 경험도 동시에 쓸어담고 있었을 거다.


상처를 툭툭 털고 나서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게 노래라서, 제일 잘 하는 게 노래라서
그렇게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내 자신이 참 작게 느껴질 때가 많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나는 그냥 투덜이였는데
나를 우울한 방에 가둬 놓고 매일 똑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그래도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나도,
나를 가둔 좁은 방에서 빨리 나가야겠다.









그 어느 것도 마음껏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다.

단점이
상처가
위험 요소가

늘 먼저 보인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주위에 가득한 삶.
그게 정말 복받은 삶이다.

사랑해야만 하는데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주위에 가득할 수도 있다.







inseparable




모교에 직원으로 남아, 우리가 19년전 처음 만났던 그 학교에 매일 출근하고 있는 친구가 준 선물.
학교 개교 기념으로 만든 독수리 + Teddy bear 인형이다.

진학 과정에 아쉬움도 남았고, 그래서 초기에 적응을 못해 힘들기도 했었고...
그러면서도 다른 학교를 졸업했다면 하지 못했을 즐거운 추억도 만들었고....
그래도 이상하게 애증이 겹쳐 마음이 가지 않는 모교였다.


졸업하고는 가끔 사람들에게 '이혼한 사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후후.
나와는 끊을 수도 없고 결국은 계속 따라나닐 관계이고 슬쩍슬쩍 관심도 가지만
그렇다고 늘 같이 있고 싶지는 않고, 뭉클한 추억보다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이.







대학원은 다른 학교로 진학했는데, 마침 내 학부 독수리학교와 대학원 사자 학교가 농구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다. 내가 공부하던 바로 그 건물에서 농구 경기가 열렸다. 대학원 친구들이 내가 독수리 학교를 응원할 거라면서 놀렸고, 나는 '이미 이혼한 사이'라며 맞받아쳤지만 내심 상황이 닥치면 어느 곳을 '본능적으로' 응원하게 될지 나도 궁금했었다. 결과는 현재 다니는 학교 응원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최종적으로는 독수리학교가 이기기는 했지만, 당시의 대학원이었던 '우리 학교'가 바짝 따라붙었을 때마다 엄청 기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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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많은 좌절감을 줬던 학교라는 생각에, 이 인형에도 정이 가지 않아 거실에 두었다.
사실 그 학교가 나에게 악감정을 품어서 벌인 일일 리가 없고, 그냥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났던 일일 뿐인데 그냥 그 학교가 행하는 일들이 싫었다.

그러다가 거실에 혼자 있는 인형이 너무 추워 보여 살짝 안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곰은 크기도 적당하고 몽실몽실 느낌도 남다른 거다.
저 매서운 눈매의 독수리 망토만 벗기면 순딩순딩 곰인형으로는 나쁘지 않겠군!
하는 생각에서 독수리 망토를 벗기려고 보니, 어찌나 꼼꼼히 바느질이 되어 있는지...

독수리 부리 아래, 앞쪽 리본, 그리고 뒷목덜미에 튼튼한 박음질이 되어 있어 망토를 벗길 수가 없었다. 망토를 살짝 뒤집어보면 이 곰은 귀 모양까지 완전히 만들어진 곰인데, 독수리에 눌려져 곰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 이제 떼어낼 수가 없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내 목덜미에 달라붙어 평생 따라다닐 학적.
평생 데리고 살 수 밖에.


ㅎㅎㅎ
또 내가 혼자 하기 좋아하는 의미 부여 놀이 시작.


내가 저 독수리 망토를 뒤집어 썼다는 그 이유만으로 내가 받았던 호의는 무시한 채,
저 독수리를 떼어내고 싶어하는 오만.


Approaching Storm: Beach near Newport

 

about 1861–62
Martin Johnson Heade (American, 1819–1904)





이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좀 더 신경써서 찍을 걸'하고 후회하는 사진들이 있다.


바로 이 그림도 그중 하나인데....내가 찍은 사진이 약간 초점이 나간 거 같아서 더 선명하게 보려고 구글 이미지를 뒤졌지만, 이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 공식 사이트에 나온 이미지보다, 내 사진이 더 사실감이 있고, 그림의 질감이 잘 살아나 있다.


초점 제대로 맞추고 한 번 더 찍어볼 걸....




미국 h2o sim 심카드

혹시 미국 가실 때 SIM 카드 필요하신 분


제가 미국에서 잘 썼던 심카드 입니다.
AT&T 네트워크를 쓰는 선불제 회사라서 믿을만 해요.
(T mobile은 가격이 대체적으로 더 싸지만 잘 안 터지는 곳이 많음)


아이폰 5에 넣어서 $25달러 충전하고 8일간 달라스, 애틀랜타, 보스턴, 뉴욕에서 썼는데 4도시에서 모두 문제없이 잘 됐습니다. 하루에 3700원 정도의 비용으로 로밍보다 훨씬 싸고 편하게 썼습니다.
(대신, 안드로이드폰보다 아이폰에서 사용하기 편하다는 후기가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국제전화 사용시에 특정 번호를 더 눌러야 한다고.... 아이폰의 경우, 익숙한(?) 011누르고 82 누르면 한국 전화 쉽고 무제한 무료로~~)


$25 플랜은 아마 쓸 때마다 잔액이 줄어드는 형식같은데, 전화 여러 번 하고, 문자 보내고, 비 오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 3G 켜놓고 지도 보고 오랜 기간 걸어다녔지만, 마지막 날 $12 이상 잔액이 남았을 정도로 데이터 용량 충분했습니다. (통화 한 번 하고 나면 항상 남은 잔액이 문자로 들어옵니다.)
      
 
제가 개통 시에 바보같이 충전 수수료 $2까지 포함된 $32를 지불하고 한 달 정액제 $30 플랜 충전 PIN을 받아놓은 게 있는데, 쓰지 못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냥 https://www.h2owirelessnow.com 통해서 충전하면 $30에 되는데, 데이타 쓸 수 있게 APN 설정하는 과정에서 메시지가 들어온 paycell/cell pay 이라는 곳을 통해서 하니 수수료가 나가더군요;;;;

여기서 충전하실 필요없어요 ㅠ.ㅠ  https://www.h2owirelessnow.com에서 하면 그냥 $30

 
여행 마지막 날, 고객 센터에 전화해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올 것 같은 인도 억양의 청년과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들어가며 수십 분 통화를 했지만 결국 환불 받지 못 했습니다 ㅠ.ㅠ 이메일 고객 센터에서는 신용카드 넘버 등등이 있으면 환불 가능하다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 인도 청년은 수퍼바이저에 수퍼바이저 모두 불러가면서 수십 분 뱅뱅 돌린 끝에 결국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아, 시간 낭비 ㅠ.ㅠ



아... 솔직히는 한 번 더 미국 가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ㅠ.ㅠ
이제야 H2O 돌아가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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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에서 가장 유명한 X








바로 바닥의 이 X.
JFK가 암살 당한 자리.




JFK를 향한 총알이 발사되었다고 하는 당시 교과서 창고 건물 6층.
현재는 이곳에 The Sixth Floor Museum at Dealey Plaza가 있다.
입장료가 $16이라 비싼 편이던데, 음모론자들은 한 번 들어가보고 싶어할 듯.





JFK 암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좀 봤다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ㅋㅋ
"악명 높은"  grassy knoll.
사건 당시에 사실 총알은 여기서 발사 됐다, 이곳에 의문의 사람이 있었다....라는 썰이 떠돌고 있다.






미국 내 인구 순위로 9위를 차지하는 달라스이지만, 한국에서 지명도는 높지 않은 편이고
유명 관광지도 아니다. 건물 외부에 은은하게 마름모꼴 무늬가 빛나는 (사진에는 잘 안 나왔지만) 위 빌딩은 달라스에서 2번째로 높은 56층  '르네상스 타워' 빌딩이고, 미국 내에서는 30위권 높이라고 한다. (2021년말에는 53위권으로 밀림)






뉴욕이 아닌 바에야, 시내 중심부가 조오~용한 주말의 미국 도시들.
하지만 JFK가 암살 당한 자리를 보려는 사람들로 이곳만은 인구 밀도가 높았다.




사진 가운데 붉은 건물은 Old Red Museum of Dallas County History & Culture.




그림이 주는 위로







처음에는 허세라고 생각했지만
미술관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림이 주는 알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아직 얼굴에 철판 덜 깔음




저번 금요일에 이비스 인사동 1박 가격이 싸게 나와서 급히 결정해서 다녀왔다.
그동안 쌓아놓은 포인트를 활용해, 만6천원 정도에 1박.
금요일 저녁이니, 친구를 부를까 말까 망설이며 2인으로 예약했더니
웰컴 드링크 바우처를 2장 줬음.





국내 accor 계열 호텔은 현재 특정 요금제에 한해 스크래치 카드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조식 정도는 걸리겠지 하면서 기대를 했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지만 공짜로 준다면 안 먹을 이유는 없으니...^^




음... 그런데 결과는 역시 드링크 2잔 ㅜ.ㅜ
체크인할 때 직원도 '아...혜택이 겹치네요.'하면서 아쉬워했다.
내가 좀 더 얼굴에 철판을 깔았더라면 사근사근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돼요? 똑같은데 ㅠㅠ."라고 해봤을텐데...
그 직원도 약간 여지가 있어보였지만, 소심한 나는 잠깐의 유혹에서 금방 벗어나와 그냥 내 방으로 향했다.


결국
혼자서 1박 2일 동안
맥주 두 잔 마시고,
카페라떼와 카푸치노 한 잔씩 마셨다.
맥주 1잔은 3,300원, 커피 한 잔은 7,700원이라고 써 있었으니
뭐 22,000원 정도는 누리고 온 셈.




내 행복의 원인

자신이 행복감을 느낄 때, 그 행복감의 원천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표면적인 것에 가려져, 행복감의 원인을 잘못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그래서 그렇게 다들 모른 척 하고 살아가는 거겠지.
세상을 살아가려면 속이고 살아야하는 게 너무 많다.



 


그의 인기를 간과했다.




오래 전, 3월이지만 매우 추웠던 날씨에 혼자 건물 밖에서 1시간 동안 줄 서서 MoMA Free Friday 표($0.00)를 받았었다. 당시에는 Target이 협찬하였지만, 요즘은 Uniqlo라더라...



2006



그 당시 여행 때 미술관 네 곳을 방문했었고, 그 중 실제로 보고 특히 감동했던 게 반 고흐의 그림이었는데, MoMA가 자랑하는 고흐의  the Starry night는 그 그림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아 접근을 할 수도, 오랫동안 그 그림을 보고 즐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가게 되면 사람 많은 무료 입장인 날 가는 게 아니라, 정규적인 표를 사서 들어가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9년 여 만에 뉴욕에 가게 된 날,
top of the rock 전망대와 MoMA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사서 목요일 밤에 라커펠러 센터에 가고, 금요일 오전에 MoMA에 갔다.







어휴.... 하지만, 역시 뉴욕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의 하나였고, MoMA는 뉴욕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장소 중의 하나였다. 나는 Rock+MoMA combo로 길게 줄을 서지 않고도 입장권을 금방 받을 할 수 있었지만, $25 입장권 사는 줄은 엄청 길었고, 인파도 여전히 많았다.







기대했던,  the Starry night 그림 앞에는 공짜 입장이 허락되던 그 시간만큼이나 사람이 많았다.
그래, 나만 얄팍했던 거였어.
기꺼이 입장료를 전부 지불하고도 보아야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그림인데,
오래 전 그 날만 공짜 입장이라서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하다니....







이 그림은 정말 뉴욕 MoMA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이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정말 정말 다시 만나기를 기대했던 그림이었는데,
역시 두번째는 약했다.
9년 전에는 평면적으로 사진에서만 보던 고흐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감동이 대단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MoMA design store에서 엽서도 사고, MoMA만의 연하장도 샀다. 이 holiday 카드는 8개가 세트로 들어있고, 세금 포함 $23.9이다. 8개가 들어있어서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기 좋다. 내가 갔을 때는 2014 버전이 여러 개 나와있어서 그 중에 고심해서 골랐는데, 2015년에는 어떤 새로운 디자인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25인 MoMA 입장과 $32인 Top of the Rock 전망대 입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Rock MoMA combo는 $45.







사람들이 뉴욕, 뉴욕, 런던, 런던, 파리, 파리 목매는 게 우습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유명할 때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같이 무능력한(?) 사람이 뉴욕을 3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고, 이렇게 같은 미술관을 두 번씩 돌아볼 기회도 가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시 가고 싶다.

역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ㅎㅎㅎ
타인의 글에서 뉴욕 뉴욕 난리 치는 거 보면, 유난스럽다 싶지만
나 역시 다시 가고 싶은 건 사실 ^^


새로운 시대 디즈니 만화영화의 시작 - 인어공주


The Little Mermaid - Part of your world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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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91년에 "계몽문화센터"에서 본 기억이 있는 The Little Mermaid (1989) 는, 지금 찾아보니 1989년작이다. 그래, 옛날에는 미국 개봉시기와 한국 개봉시기 간에 엄청난 격차가 있었지.
지금은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도 많지만, 2007년 정도까지만 해도 오히려 방콕에서 서울보다 개봉이 더 빠른 영화를 보고 올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개봉한 후에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킹, 포카 혼타스 등이 매년 차례로 개봉하면서 만화영화의 개봉이 연례 행사가 되었다.
Wall*E같은 명작, 슈렉-쿵푸 팬더 같은 귀여운 시리즈물의 등장을 이끈 게 바로 이 '인어공주'의 성공 덕이 아니었나 한다. 

요즘 유난히 입에 흥얼거려지는 'part of your world' 의 가사를 제대로 찾아보니, 
역시 디즈니 영화 속 노래 가사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내가 92년에 본 '미녀와 야수' 주제가의 가사도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든 뒤, 생각해 보면 상당히 깊은 내용이다.

작년 겨울 '겨울 왕국'이 엄청난 관객 몰이를 했을 때, 너도나도 '영화 속 Elsa의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가 시대의 변화를 드러내며 흥행에 한몫했다'라고 분석해댔는데, 1989년 인어공주 속 Ariel이 그 원류인 듯. 디즈니 만화영화의 여주인공은 한 번도 Elsa같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구나 Elsa같았고, Ariel같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래서, 겨울왕국에 대한 그 분석은 틀렸다. 


디즈니 영화의 마법은 새삼 대단하다.
아이를 위한 영화가 아니었다.
내가 만약 1991년 겨울, 아이들 만화 보여주겠다고 극장을 찾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줌마였다면
이 가사를 듣고 내면 속 자유 의지가 꿈틀꿈틀했을 듯.
이 가사 내용은 어릴 땐 오히려 느낌이 안 왔을 것 같다.
그때는 이 가사 속 이 간절함을 몰랐을 것이다.
Up where they walk
up where they run
up where they stay all day in the sun,
wandering free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When's it my turn?
wouldn't i love?
love to explore that shore up above
out of the sea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Lyrics by Howard Ashman
이 작사가는 라임을 참 잘 맞춘다.

내가 아니야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 한 켠에 불이 켜진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자신이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 한 켠에 돌이 놓인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좋아하는 마음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어서 그 불씨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싫어하는 마음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어서 그 돌덩이들이 내 마음을 막 후벼 판다.


서툰 대학교 1학년




지금은 사라진 옛 구두 브랜드의 광고지를 보다가
그 브랜드 신발을 신었던,
촌스러운 대학 1학년 신입생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엄마는 우리 대학교 앞에 저렴한 상품을 파는 백화점에 데려가서 '자켓'만 여러 벌 사주셨다. 
그래서 그 당시 입었던 옷들은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입는 옷보다 더 노숙한 옷들이었던 것 같다.
그땐 그렇게 대학생들은 '자켓'을 입고 다니는 줄 알았지.

명동의 유명한 '제화점' 상품권을 사용하여 호기롭게 샀던 가죽 배낭은 
가방 무게만으로도 너무 무거워서 하루 만에 사용을 포기해야 했다. 
대학교에 와서도 무슨 수업이 그렇게 많은지, 책을 들고 다닐 게 많았고, 영문과 책은 특히 무거웠다.
다행히(?) 가방에 하자가 있어서 교환인가 환불을 했었던 듯.

작은 키를 보완하고 싶어서 샀던 7cm의 통굽 신발은 
체중이 쏠린 발 앞부분의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신발임이 '역시 하루 만에' 밝혀졌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렇게 높은 신발을 신어 본 적이 없으니,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몰랐다.
나름 비싸게 주고 산 신발이었는데, 그 뒤로는 길게 수선한 부츠컷 바지를 입을 때만 가끔 신는 신발로 남았던 것 같다. 



내가 다닌 문과대는 정문에서부터 길게 쭈욱 펼쳐진 길을 10여 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합격생 예비 소집 때 그 칼바람을 함께 경험한 엄마는 해당업계 유명 브랜드의 비싼 '무스탕'을 한 벌 사주셨다.
추위에만 특화되어 있던 그 시커먼 무스탕의 디자인은 그냥 그랬고, 한번은 친구가 "엄마꺼 입고 왔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고마움에 늘 한 해에 가장 추운 날은 그 무스탕과 함께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도저히 입을 수 없는 디자인이 된 그 옷은 동네 헌 옷 보관함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런 형태의 옷을 지칭할 때 '무스탕'이라는 단어조차도 쓰지 않을 만큼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비싼 옷이었을텐데.



나름 대학생이 되었다고 이것저것 구비했지만
모든 게 시행착오였고, 사알짝 촌스러웠던 1학년.
나의 1학년은
1학년 (자기 실력을 정확한 눈으로 보지 못 한) 학생들이 종종 겪는 패배감과 음울함에 시달렸던 때다. 
지금 생각하면 내 수준에 딱 맞는 대학교인 것도 같고, 내가 조금만 더 약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아직도 있다.

신입생 환영회, OT... 모든 것을 가고 싶지 않아서 안 갔기에 1학년 3월 초엔 친구가 없었고,
그 촌스러운 옷들을 입고 빈 강의실을 혼자 돌아다니던 기억이 아스라히 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결국 영원히 '아웃사이더'가 되기 쉬운데, 2학년 가을에 타학교와의 교류전에서 학교 생활의 재미를 배워서, 그뒤로 외롭지 않게 대학교를 마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친구




보스턴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예전 미국 여행을 했었던 외사촌 말처럼, 유난히 중장년층은 '하버드대학교'에 환상이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다.

하버드 교정을 걷고 싶어하시던 엄마를 모시고 학교를 한바퀴 돌고 나왔는데, 화장실이 갑자기 가고 싶었다. 그 전에 들렀던 카페에서 얼음 가득 레모네이드를 먹은 게 실수였다. 그런데 보스턴의 스타벅스나 기타 등등 가게의 화장실 문에는 모두 비밀번호 패드가 달려 있었다. 여기저기를 전전해도 모두 그랬는데, 그냥 구매고객인 척 아무렇지 않게 비밀번호를 묻는 천연덕스러움이 나에게는 없었다.

구태여 화장실 문에 비밀번호를 모두 지정해놓은 것은, "뜨내기 관광객은 우리 화장실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미일텐데, 그 '뜨내기 관광객'인 내가 비밀번호를 물어본다고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따라서 가족들을 끌고 다니기가 미안해서 가족들을 길거리의 휴대전화 충전소 앞에 두고, 나 혼자 화장실을 찾아나섰다.

모든 가게의 화장실 문마다 비밀번호가 있었고, 결국 하버드 광장에서 약간 거리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손님이 드문 스타벅스에서 $5가 넘는 비싼 주스를 하나 구입했다. (결국 화장실 이용 비용이 6천원인 셈이다😓) 비밀번호를 물어보려는 찰나에 다른 누군가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제 내가 "공식적으로"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확보되었다는 안도감에 일단은 그 스타벅스를 나와서 길거리에서 충전 중인 엄마, 언니에게로 갔다.

"화장실 성공했어?"

엄마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얼버무렸다.

빠릿빠릿 천연덕스럽게 화장실 비번을 물어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못 하더니, 한참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음료수 병을 하나 들고왔는데도 여전히 화장실을 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밝히자니 엄마한테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면 모든 일에 서투르고 소심한 내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가족들을 이리저리 화장실로 끌고 다닌 것도 미안한데, 아직도 화장실 해결을 못했다는 것을 말하기가 싫었다. 나도 나지만, 우리 엄마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피드백을 주는 분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나까지 포함, 모두 '비난 본능'이 강한 사람들이다.
아무튼 가족을 다 데리고 그 스타벅스로 와서 일단 가족들도 쉬고, 나도 얼마 뒤 화장실을 다녀왔다.

몇 분 뒤에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다른 일로 논쟁이 생겼을 때, 엄마가 "화장실 갔다 왔냐 이 질문 하나에도 답을 못 하고 우물거리는 니가 너무 답답하다" 라고 재차 거론을 하시기에, 그냥 지나간 줄 알았던 이 일이 엄마 맘속에 남아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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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뒤 두 달 가까이 지나, 친구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그 친구는 단번에 "오오... 나같아도 그 상황에선 엄마한테 그 말 못해. 아직 화장실 못 갔다왔다고" 라고 공감해주었다. 마치 본인도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이해해주었다. 그래, 우리 이렇게 비슷하게 소심하니 우린 친구인 거지. 내가 너무 바보 같은 건가 우울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그 친구에게 "야, 니 애들이 네 질문에 대답 못 하고 우물거릴 때가 있으면, 걔들도 그때 마음 속에서 여러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이해해줘라." 라고 했다. 


하느님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사람 곁에 두셨다는 말이 있는데,
엄마가 다 해줄 수 없는 일을 위해 또 친구를 만들었나보다.

나보다 윗사람이기에,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존재이기에 약간은 어려운 관계인 부모님,
그래서
비슷한 나이에서 같은 시각으로 같은 눈높이로 봐주는 것은 역시 친구만한 존재가 없는 것 같다.


아부의 사회학

 



페이스북에 너무 시간을 들이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 앱을 지웠다.
나는 거의 데스크탑에서만 페이스북에 로그인한다.
데스크탑 화면은 크기 때문에, 나의 페북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 무엇에 like를 눌렀는지를 실시간으로 다 보여준다.
(이 기능은 얼마 뒤에 사라졌다. 아마 사생활이 너무 노출되어서 그런지...)


내가 아는 분 중에 갑자기 출세(?)한 분이 있다.
원래 안티가 많았던 분인데, 출세를 하고 나니 갑자기 추종자가 늘었다.
별 영양가 없는 '그분'의 글에 열심히 like를 누르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데 요즘,
'그분'이 열심히 자신의 상급 단체와 상급자의 포스팅에 like를 누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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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에 푸욱 잠기고 싶을 때 - 21grams OST

21 Grams OST
1. Do We Lose 21 Grams 2. Can Things Be Better? 3. Did This Really Happen? 4. Should I Let Her Know? 5. Can Emptiness Be Filled? 6. Shake Rattle And Roll 7. ...
YouTube
1. Do We Lose 21 Grams   https://youtu.be/Ry6fO8N_BPE?list=PLEE5BE45823778CFC
2. Can Things Be Better?   https://youtu.be/HdhCmzEM4Gw?list=PLEE5BE45823778CFC
3. Did This Really Happen?
4. Should I Let Her Know?
5. Can Emptiness Be Filled? https://youtu.be/MKKrUeppZ3A
6. Shake Rattle And Roll
7. Can I Be Forgiven?
8. Is There A Way To Help Her?
9. Does He Who Looks For The Truth, Deserve The Punishment For Finding It?
10. Can Dry Leaves Help Us?
11. Can We Mix The Unmixable? (Remix)
12. Can Light Be Found In The Darkness?
13. When Our Wings Are Cut, Can We Still Fly? - The Kronos Quartet


~~~ (2016/02/13)
내가 이 글을 올린 후에 유투브 영상이 삭제되어서 위의 링크로는 전곡을 들을 수가 없다.
아래 영상은  21grams OST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잘 볼 수 있는 편집본이다. https://youtu.be/DFhYx67ILUI  ~~~
 
이번에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가 아카데미에서 주목받기 전부터 팬이 되게 만들었던 영화, 21grams.
이 감독도 놀라운 감독이지만 기예르모 아리아가-라는 각본가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라는 작곡가와의 호흡도 놀랍다. 물론 기예르모 아리아가와 계속 작업해오다가 2006년에 (그다지 매끄럽지 않게) 갈라지고, 2014년 다른 사람들과 만든 버드맨이라는 작품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게 됐지만.
 
알레한드로 G.이냐리투 감독은 배우들에게서 최상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감독이기도 한데, 이번 버드맨에서도 3명의 배우를 아카데미 후보자 명단에 올렸다. 21grams에서도 나오미 와츠와 베니시오 델 토로가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었고 숀펜이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Babel에서는 일본 배우 기쿠치 린코, 멕시코 배우 아드리아나 바라싸가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Biutiful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았고 그는 이 작품으로 칸느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Amores perros에서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배신에 슬퍼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 보여준 표정은 정말 그 배우 최상의 연기로 뽑고 싶다.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마이클 키튼이 코미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알레한드로 G.이냐리투 감독에게 '당신이 다음 작품을 한다면 ((오디션을 본다면)) 여기 모인 배우 중에 안 나타날 사람이 없다.' 라는 내용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사실일 듯하다. 이미 촬영을 마친, 이냐리투 감독의 다음 작품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한 작품이다. 남부러울 게 없는데 오스카만 부족한 남자, 디카프리오가 드디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배우들 외에, 최상의 협업자들은 각본가와 작곡가.
하나의 사고로, 순식간에 어그러지는 인간 삶의 모습을 깊게 파헤쳐 내려가는 각본의 기예르모 아리아가. amores perros, 21gram, babel....로 이어지는 그가 쓴 작품들을 보면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되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역시 amores perros, 21grams, babel, biutiful을 알레한드로 G.이냐리투와 같이 작업했고 Babel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를 모르고 이 음악만 들으면 느낌이 잘 안 오겠지만
21grams의 영화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음악만 따로 들어도 영화와 얼마나 어울리는 음악이고, 우울에 빠지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안을 주는 음악인지 알 것이다.

위 youtube에서는 17분 40초 쯤부터 나오는 10. Can Dry Leaves Help Us ? 라는 곡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그대로 떠오를, 슬픔의 바닥을 치는 곡.  https://youtu.be/Av3aooLkJ0E

영화를 볼 때에는 이 곡의 존재를 알지 못 했는데, 3번째 곡 3. Did This Really Happen?이 이상하게 위안을 준다. https://youtu.be/cbcHB3b6GZ0?list=PLEE5BE45823778CFC

 

Birdman - 우리 모두의 이야기

버드맨 - 모두의 이야기


동영상 아님



보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이 두어 번 눈물이 났던 영화.
알려진 줄거리대로, "한때 잘나갔던 무비 히어로로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한물간 배우"의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모두의 인생 같았다.

처음에 태어났을 땐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엄마, 아빠의 귀한 자식.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중요하지 않은 주변 인물로 이 삶을 마쳐야 한다는 걸 깨닫는 때가 온다.
그렇게 시시하게 인생을 끝내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노력해보는 발버둥.
그리고 그 과거(의 영광)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자막. 영어로만 읽을까, 한글 자막 읽을까 고민하다가 둘다 놓쳐버려서 집에 와서 다시 찾았다.

"And did you get what
you wanted this life, even so?
I did.
And what did you want?
To call myself beloved, to feel myself
beloved on the earth.

<Late fragment>- Reymond Carver



"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 (거울 우측 아래 붙어있는 문구)

비켜 나가기 빗겨 나가기



* 오래 전,
내가 하던 말을 모두 귀담아 듣고, 나의 행동을 신기하게(혹은 멋지게?) 보던 사람이 있었다.
오고 가는 생활 영역이 비교적 나와 비슷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그 사람은 다른 세계로 진입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오랜 만에 만난 그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신기해하지 않았다. 그해에 내가 새로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니, '어머 그랬어요?' 대신에  '치잇, 저는 이미 그보다 더한 것도 다 해봐서요'와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본인의 삶에 비해 내 삶이 시시해진 것일까.

아쉽게도, 이 사람과 이제 다시 친해질 일이 없을 것 같다.
그 사이에 많은 시간과 '경험'이 흘렀다.

부모 입장이 되어보는 간접 경험.
어렸을 때 무조건 부모를 우러러 보던 자식이, 머리가 커가면서 '아, 부모의 말씀이 별 것 아니었구나' 깨닫고 부모 말을 한귀로 흘려듣는 것을 보는 듯한 기분.






* 내 남동생과 오래 전에 공유하던 social media 기록들을 보면, 그 매개체는 '해외 축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나는 테니스, 남동생은 국내야구로 관심사가 바뀌면서 지금은 서로 공유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음...한때 '부부가 오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취미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겠군. '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취미도 변할 수가 있구나. ㅎㅎ
공통점이란 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새로이 해외 생활을 시작한 어린 친구가 "어려운 길이라 일부러 택했다"라는 야심찬 출사표를 써놓은 것을 봤다.
피식, 첨엔 다 그렇지. 유치한데 혼자 그냥 생각하지 저걸 남들 보라고 써놓다니 ㅎㅎㅎ

그런데, 잠시 더 생각해보니, 나도 8년 전 스리랑카로 떠나면서 별의별 의미를 다 갖다붙였던 것이 생각났다. "내려놓겠습니다." "평생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2년만 떼어서 일부러라도 고생하면서 살아보자." "평생 먹을 수 있는 한식, 2년만 안 먹으면 어때요"

나 역시 이런 것들을 '남들 보란 듯이' 써놓았었다. 나도 딱 그 나이 때엔 그랬구나... 시간이 지났다고 그걸 벌써 잊고 남을 비웃다니...



Westin Peachtree plaza Atlanta 71st Floor, Sun dial restaurant




Atlanta공항에서 Marta를 타고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할 때부터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원통형 둥근 건물 Westin Peachtree plaza.


Centennial Olympic Park 입구에서 찍은 Westin Peachtree Plaza



애틀랜타 시내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220m)이다. 위 사진에는 거리 조형물(?) 가로등(?)이랑 겹쳐 찍히는 바람에, 건물 위에 작은 구조물이 추가로 올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딱 둥근 원통 건물만 Westin이다. 1976년에 세워졌으며, 1977년 디트로이트에 다른 호텔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잠시 동안 전세계 "호텔" 중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지상에서는 끝까지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한 건물.
이 호텔은 73층까지 있지만, 서울의 63빌딩(249m)은 물론이고 서울 삼성동의 55층 무역센터(229m)보다 높이가 낮다. 음...?


이 호텔의 최상부에는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다.
71층은 Sundial restaurant, 72층에는 전망대(입장료 $8), 73층에는 bar가 있다.
약 40여 분에 한 바퀴? 정도로 회전하는데, 계속 바깥 풍경이 변화하기 때문에 회전하는 것이 아주 잘 느껴질 정도의 속도이다.


로비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보이는 71층 전경



저번 여름에 오랜 만에(?) 번역 알바로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한턱 쏘려다가
이왕 돈 쓸 거 여행 가서 더 멋진 곳에서 사기로 하고 계획을 미뤘다.
우리 가족이 애틀랜타에 도착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서, 일요일 브런치를 먹기로.
(브런치 시간 일요일 11:30 - 3:00)
사실 저녁에 뭔가를 먹으려면 호되게 비싼 곳인데, 운좋게 브런치를 운영하는 일요일에 애틀랜타 방문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뭐 주중에도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메뉴를 비슷한 가격대에 팔더라는.....굳이 Sunday brunch라고 명명해서 팔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그랬지?😥


오후 2시경 브런치를 위해 입장.
분위기는 너무 정중한 것도 아니고, 너무 가벼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 슬슬 회전하기 때문에 애틀랜타의 전경을 모두 감상하기 좋다. 미리 예약을 해두긴 했지만 2시가 늦은 시간이라 자리가 아주 빡빡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가운데 황금색 지붕은 애틀랜타가 속한 Georgia 주 의사당. (Georgia state Capitol)
그 뒷편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 구장인 터너 필드가 보인다.






가운데에 삐죽하게 솟은 빌딩이 '연필 빌딩'이라는 별명이 붙은 Bank of America Plaza 빌딩(312m)이고, 애틀랜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또한 미국에서 "State Capitol이 위치한 도시 -州都"에 건설된 빌딩 중에서는 에틀랜타의 이 빌딩이 가장 높다고 한다.

오른쪽에 살짝 잘려서 반만 보이는 빌딩이 애틀랜타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 Suntrust Plaza(264m).






가운데 보이는 것이 CNN의 본사 건물. 식사 뒤에 수박 겉핥기로 대충 들여다보고 나옴.
애틀랜타는 CNN, Coca- cola, Delta 항공 등 여러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이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콜라가 땡겨서 한 병 사먹었는데 너무 비쌌다. 코카 콜라의 심장부답게 수도꼭지만 틀어도 콜라가 펑펑 쏟아질 줄 알았더니만ㅋㅋ 공항 판매품이 비싼 것은 어딜가나 마찬가지.

CNN 본사 뒤로 보이는 것이 조지아돔, 현재 새로운 돔을 또 만들고 있다.
현재는 미식축구팀 애틀랜타 팰콘스의 홈이며, 1996년 올림픽 때는 농구, 체조, 핸드볼 등의 경기가 열린 곳이라고 한다.

조지아돔은 2017년 11월, 철거되었다.






우리 가족이 주문한 것은 와플&치킨, 프렌치 토스트, 연어구이와 뢰스티 등등.
음....맛은....
이런 곳이 어디나 그렇듯이, 맛난 것을 먹으러 올라오는 곳은 아니다 ^^
분위기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지.ㅎㅎ
감자 뢰스티나 프렌치 토스트의 맛은 괜찮았다.



이 분위기에서 이 정도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뭐 서울의 거품 가득 브런치와 비교해도 비슷한 가격. 물론 저 금액에 20% 가까운 팁을 더해줘야 한다는 사실은 함정. 
한국 호텔에서는 워낙 커피를 말도 안 되게 비싸게 팔아서, 이곳 71층에서 4140원 정도의 커피는 거저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도 여행 온 김에 허세녀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좋은 곳.
나는 그저 '효도'차원에서 갔다고 포장하고 싶다 :)

언제 애틀랜타에 다시 방문할 일이 있다면, Westin에도 다시 가서 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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