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여기에

 


가끔

겪을 당시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곳의 풍경이 머리 속에 휙 지나쳐갈 때가 있다.

오늘은 갑자기 트리아농 궁의 어떤 복도가 떠올라 그 사진을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날 날씨 참 좋았지...하면서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을 빼고 건물 모습만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쓰기 위해 화면을 확대해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전까지는 이 사진을 확대해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런 벙거지 모자?? 애기들은 쓰긴 쓰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하얀색 벙거지 모자 비슷한 것을 가져갔었는데, 이상하게도 쓸 때마다 뭔가 시선이 꽂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모자 유럽 사람들은 안 쓰나?? 어릴 때 그림책에서 봤던, 잠잘 때 쓰는 그런 모자처럼 보이나?? 왜 이렇게 사람들이 이상하게 날 보는 느낌이 들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에이, 그래도 유럽에서도 이렇게 생긴 모자 안 쓰는 건 아니구나... 하면서 아기 사진을 보다가....한 아이 차림새가 뭔지 모르게 낯이 익다?!?!

몇 달 전에 다른 트리아농 사진을 보다가 
내 거울 셀피 프레임 안에 같이 들어온, 뒤를 쓱 돌아보는 '유럽 회화에 등장하는 아이' 같은 사진이 있어서 저장해 놓은 게 있었다. 오래 된 유럽 그림 중에 꼭 저렇게 뭔가를 돌아보는 듯한 볼이 통통한 아이 그림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느낌?? 



뭔가 재밌어서 저장해놓은 그 사진에 있던 바로 그 아이와 모자 색깔 상의 색깔이 같다. 얼핏 보이는 하의 색깔도??
보호자가 다른데? 하고 보니 아이의 손을 잡아끌던 남자 어르신의 옷 차림새는 맨 위 사진에선 복도 끝에 선 사람과 입은 것이 같다. 할아버지와 엄마인가??!?


ㅎㅎ
사진 찍은 곳은 그헝 트리아농인데
15분 시차를 두고 찍은 사진에 계속 등장하는 아이를 발견하니 재밌다.


아마도 나와 같은 날 이곳을 돌아다닌 누군가의 사진첩에도
내가 이렇게 여기저기 찍혀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나는 배경만 찍었을 뿐인데, 우연히 주인공처럼 인물 사진이 찍힌 분들이 있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사진 찾아가세요~" 하고 싶다. 

아래 같은 분.⬇️
이 분에게도 좋은 기념 사진이 될 텐데 누군지 몰라 전해줄 수가 뿐.









 






a Wheatfield with Cypresses



내가 가진 마지막 고흐 물컵 그림.
여기에 물컵이라고 계속 썼지만 사실 맥주만 담아 마셨다. 😋🍺






이 그림 역시 몇몇 다른 버전이 있는데, 비교 대조 결과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버전인 것으로 잠정 결론. 1889년 9월 작품.

내셔널 갤러리도 관람한 적 있지만 이 그림을 봤는지 기억은 흐려졌고, 1층 기념품 가게에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인쇄한 기념품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어디서 뭘 봤는지 헷갈리 게 된 이후로는 미술관에서 엽서를 사두려고 노력하는데, 지금 그 엽서들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 누가 들으면 엄청 넓은 집에 사는 줄 알겠어..🤥


내가 사진으로 남긴 것은 2015년에 뉴욕 Metropolitan museum에서 본 것.
위 컵에 있는 그림과 아주 조금씩 다르다.






오래 전, 평면적으로 사진만 보던 반고흐의 그림 붓터치를 처음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이 커서 그 뒤로 미술관 갈 때마다 그의 그림을 찾아다녔지만.. 사실 그런 느낌도 역시 반복되다 보면 옅어졌다.

하지만 또 그 그림을 실제로 본 마지막 경험이 2015년...시간이 오래 흐르고 나니, 다시 한 번 더 가서 보고 싶다.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된 버전은 1889년 6월에 그려진 작품이다.








the starry night






너무 유명한 그림.
위 사진은 뉴욕 MoMA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 모인 사람들 사진이다. 물론 루브르의 모나리자만큼은 아니지만 항상 그 앞에 사람이 많아서 천천히 감상할 여유는 없다. 그래도 9년 차이를 두고 두 번 가서 봤다.









MoMA에서는 1889년 6월 중순에 그린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고흐가 머무르던 Saint - Remy 정신병원의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에 작가의 감각을 입힌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1889년 9월에 전시되었다는 동생 테오의 편지.
 
























밤의 카페 테라스



내가 가진 반고흐 컵 두번째 그림은 café terrace at night. 1888년 9월에 그려진 그림이다.







다른 고흐 그림들은 대도시에 위치한 여러 미술관에서 실제로 몇 번 봤는데, 이 그림은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에 소장되어 내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 국립공원 안에 있는 - 버스가 없으면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 미술관이라고 하고
암스테르담에서도 떨어져 있어서 대중교통으로는 약간 고생이 따르기 때문에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실제로 가 볼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도 보니 암스테르담보다 독일 국경이 더 가까울 정도네..


개인 소장품을 공개하는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반고흐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i'm from



내가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오던 반고흐 물컵 세트가 있는데
소중하게 생각한 것 치고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집 내부에 있다는 것은 안다)

2007년경 백화점 사은품으로 받은 것인데 
2007년에 내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나의 모든 물건들은 베란다행이 됐고, 그뒤로 집이 두 번 이사하면서 어디론가 계속 옮겨지기만 했다.

15년만인 작년, 벽장 청소를 하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 컵들.
사실 15년 전에는, 몇 년이 지나면 내가 내 살림을 꾸리고 이 컵을 잘 쓰게 될 줄 알았는데..여전히 얹혀 사는지라 '나만 쓰는 컵'이 될 수 없어서, 한 번씩만 써보고 다시 내 방에 고이 모셔놨다.

컵에는 반고흐 그림 4개가 인쇄되어 있는데 어떤 컵을 먼저 쓸까 생각하다가 그림이 그려진 연도를 최대한 조사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4작품 중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조사된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다.





해바라기, 1888년 8월.
해바라기에도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꽃의 위치와 서명의 위치까지 하나 하나 대조해보고, 영국 Natioanl gallery에 있는 작품과 가장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제작된 미드를 보다가, 반고흐 뮤지엄이 나오는 장면을 보니...






내가 가진 컵의 그림은 반고흐 미술관의 해바라기보다는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꽃의 모양이나 서명의 위치 등등을 비교해 볼 때. 
반고흐 미술관의 해바라기는 1889년 1월 작품.



그냥, 그랬다구...
영국 프랑스 미국의 미술관이 영화나 드라마 배경으로 나오는 것은 많이 봤어도 네덜란드 미술관이 나오는 것은 거의 처음 봐서.










쓸쓸



길고양이나 캣맘을 배척해서 싸움나는 아파트 단지도 많다던데

우리 아파트는 고양이랑 잘 공존하고 있다. 인간들과 너무 친해진 고양이도 있지만, 아파트 바로 뒷산에 기거하며 야생성을 버리지 않는 고양이도 있다.

오늘 아파트 안 산책을 하다가 새삼 이 동 저 동 화단마다 고양이 밥그릇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다들 냥이를 예뻐하지만 집에서 키울 여력은 안 되는 사람들.

뒷산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 동 아래켠에 가장 큰 사료 밥그릇이 있기에...
산에서 내려온, 눈빛이 형형한, 인간에게 경계를 풀지 않는 고양이들을 거기서 가끔 마주친다.






털도 고르지 않고, 경계심 가득한 표정은 무섭기까지 한 그들. 
오늘은 너무 힘들어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걸 봤다.





그루밍같은 건 꿈도 못 꾸고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는 것 같은 형색. 우리 아파트엔 손 내밀면 따듯하게 받아줄 사람들 너무 많은데, 어떤 이유인지 간에 인간을 멀리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산고양이.




뒷산과 가까운 놀이터에서 잘 따르는 친구 냥이랑 놀다보니, 주차장에서 봤던 맨위 사진 그 고양이가 다시 느릿느릿 걸어서 산으로 돌아간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후닥닥 피할 힘조차 없어보이고 가까이서 확인하진 못했지만 입에서 침이 늘어져 아래로 흐르는 걸로 보였다. 구내염 같은 건가... ㅜㅜ 그러니까 그루밍은 꿈도 못 꾸고, 딱딱한 사료는 먹지도 못하겠지.

평소엔 영역 다툼의 화신이라 모든 외부냥이들을 접근 못하게 다 패고 다니는 '레오'라는 동네 인기냥이도 그를 그냥 보내준다. 고양이들끼리도 아나보다. 저 고양이는 아픈 고양이라는 걸... ㅜㅜ 

유독 마음이 더 아프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러다 내 미래 모습이 저 모습 아닐까 싶기도 해서.

건강보험료 언제까지 낼 수 있을까
쥐꼬리 국민연금..받을 수 있나?
늙으면 내곁에 누가 있지?

사람들을 어느 정도 멀리하는 인생, 그리고 타인들도 나와 멀어지는 것을 그리 아쉽지 않아하는 듯한 인생이 됐지만

결국은 서로서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게 삶.














너의 목소리





아파트 한켠에서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던 길냥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좋게 생각하면 누군가가 데려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지만 사람을 극도로 피하던 냥이라서 가능성이 적어보인다.)

몇 년을 날 피하던 그 고양이가 마지막 몇 달간 나를 보면 뛰쳐나온 것이랑 냥냥 소리를 내준 것, 그래도 그 영상을 남긴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 내 고양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특유의 '앙앙' 소리 내며 다가오는 영상이 있지만
나를 보면 나무에서도 뛰어내리는 다른 한 마리는 소리가 남은 영상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헤어질지 기약이 없는 길냥이, 그 냥이 만나면 소리낼 때 영상을 남겨놔야지 했는데 
바로 다음날 담장 건너편에서 아옹거리며 나를 부르는 그 냥이를 만났다.


다 큰 고양이들의 소리는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내는 거라고 하던데
나를 보고 반가워서 아옹아옹 거리면서 건너 오는 줄 알았더니
땅에 착지하고는 친구냥 만나러 간다.🤦‍♀️

역시 이 녀석은 밀당을 할 줄 안다.







 


음.... 30초 넘어가는 동영상은 업로드가 잘 안 되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넷플릭스를 오랜만에 딱 한 달만 구독하고 이번에는 명작으로 꼽히는 미드를 몇 개 봤다. 오늘은 시청 가능한 마지막날.

재미있는 중드로 유명하지만 나에겐 그닥이라 예전에 시청 중단했던 중드를 2회인가 3회에서 다시 시작. 여전히 그닥이지만 구독 마지막날이고, 어차피 볼 것도 없어서 x1.5배속으로 11회까지는 왔다. 재미있다고 추천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20 몇회쯤 가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지금은 그냥 시간 때우는 수준이고, 아마 20회 가기 전에 구독이 끊길 듯.

극중에서 주인공이 노르웨이로 출장을 갔는데
당연히 노르웨이 현지 촬영을 했을 리는 없고 😆 노르웨이라면서 수상할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한 서양인들과 중국어가 내부에 써진 호텔방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밤에 주인공이 친구랑 운전해서 어디론가 가더니...






노르웨이 오슬로가 아닌, "시카고" 야경이 등장한다. 😝

아니 아무리 현지에 가서 찍기 어려우니 중국에서 대충 때운다고 해도, 도시 야경은 잘 찾아서 합성을 해야지, 저렇게 유명한 건물이 있는 도시 야경이랑 합성을 하면 어떻게 해...

위 대사처럼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도...ㅋㅋ
노르웨이에서 운전해서 시카고 갈 수도 있고 좋은 세상이야.







예전에 다른 드라마에서도 ⬆️이거 좀 웃겼는데...
아무리 봐도 파리는 아닌 듯 했는데
이미지 검색을 하니 밀라노라고 한다. 😊
그래도 파리 이미지 정도는 검색해서 넣는 성의는 보였어야...


'그저 중국만이 최고'인 중드는 '외국' 설정을 고민없이 너무 대충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극중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장교" 역할을 중국인이 더빙을 한 것 같은데,
한국 연기자들처럼 일본어에 없어서 발음이 안 되는 받침 발음을 뭉개거나 특유의 억양을 통해 일본인 느낌을 내는 게 아니라
그냥 "술먹고 입돌아간 동네 바보형 중국어"로 외국인을 표현해서, 고위급 장교인 그 사람만 나오면 장면이 너무 하찮아졌다🤣. 일본 사람 조금만 참고했어도 저런 더빙은 안 할텐데...  심지어 일본군끼리 대화를 하는 심각한 장면에서도 그 입돌아간 중국어로 대사를 해서 웃겨서 집중이 안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그땐 일본어로 대화해야지.🤭






빨랐던 사람들



* 초등..아니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반 여자아이가 피구하다가 넘어졌다. 걱정하는 친구들이 그 애에게로 몰려들자 그 10살 짜리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 싫어. 오지마. 난 남들이 날 동정하는 게 싫단 말이야" 

그때 나도 10살이긴 했지만 그 순간이 무슨 드라마 속 한 장면 처럼 느껴져서 당황했던 게 기억난다. 쟤는 어디서 저런 감성을 흡수했을까. 

지금 떠올리면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도 약간 갈색인, 키도 큰 편이었던 여자 부반장 아이. 또래보다 좀 더 조숙했던 것 같다. 내가 5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갔기 때문에 5년 다닌 그 학교의 졸업앨범은 나에겐 없으니 그 친구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낼 방법은 이제 없지만. 




* 대학교 1학년 5월 쯤엔가, 교양국어 시간에 단체로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갔다. 바로 앞에 배우 얼굴이 보이는, 나름 흥겹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입장권 뒤에 감상을 짧게 적어내는 게 과제였으므로 모두 그렇게 했다. 

다음 수업 시간, 교양국어 담당 선생님이 수업 참가자 모두의 감상을 깨알같이 타이핑해서 가져오셨다. 대부분 나처럼 뭐 즐거웠다. 잘 봤다. 사회적 메시지도 있었다. 그런 내용. 하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던 후기 하나. " 노래 부르고 춤만 춘다고 다 뮤지컬이면 뮤지컬 못할 사람 없겠다. 레미제라블이나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뮤지컬에 익숙한 나에게는 좀 시시했다." 

@.@
당시 만 나이 19세 언저리의 대학교 1학년 1학기. 그리고 지금처럼 뮤지컬이 인기있던 시기도 아니었다(무려 당시는 20세기였음ㅋㅋ)  입시 교육에 쩌든 한국 고딩을 벗어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시기였는데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이런 류에 이미 익숙하다고?? 
나랑은 소속 학과가 달라 잘 모르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어떤 문화 생활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늘 어디에나 남들보다 빨리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