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영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언니의 근속 휴가로
영상 6도의 날씨에 야외 수영을 즐기고 왔다.

랜덤으로 사진이 뜨는 야후 날씨앱인데 그날따라 계속 남산 타워(일명 N서울 타워)가 서울 대표 사진으로 내내 떠서, 6도 날씨에 남산 배경으로 수영을 즐긴 것을 기념하는 사진을 남겨봤다.







습관



내 방에 들어오면 책상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눕거나 둘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바닥에 앉을 일은 별로 없다.

오늘 양말을 신기 위해 바닥에 앉았다가 뭔가 다른 걸 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내 특유의 자세로 앉아 있는 게 느껴져서 보고 피식 웃으며 사진을 찍어 봤다. 




양반다리도 아니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난 이렇게 양쪽 무릎이 맞닿게 앉는 버릇이 있다.

치마를 입어도, 치마에 덮인 아래로는 다리를 만들어 이렇게 앉기 때문에 .... 오래 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행사 야외 백일장대회에서 내 친구 무리들과 앉아 있는 돗자리를 둘러 보시던 담임 선생님이 교복 치마를 입고 이렇게 앉은 나를 보시고 "넌 대체 두 다리가 어떻게 이쪽으로 각각 나와있는 거냐?" 하셨던 기억이 난다. 🤣 진짜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긴 습관.


이거 이렇게 무릎을 겹쳐서 못 앉는 사람도 있던데(맞닿아 포개지지 않고 한쪽 무릎이 붕 뜸), 난 어쩌다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앉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완전 습관이라 어딘가 몸 구조에 나쁜 자세만 아니면 좋겠는데... 🤔 늘 왼쪽 무릎이 깔리는 쪽이라 거기가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 더 찾아보니 이거 골반 교정에 도움이 되는 자세라고 하네?? 무의적으로 왼쪽만 깔고 앉는데 반대로도 바꿔줘야겠음.












남의 입장이 되기란...



14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스리랑카 제자가 지금 한국에 왔다고 한다. "유학"왔다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느낌상 '단기 연수'인 것 같기도 하고. 한국어가 아주 매끄럽진 않아서 소통은 잘 안 된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된 거 같은데, 연락이 늦은 이유는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 좀 아팠다고 한다. 한 번 만나야겠다 싶었다. 우리집에는 언니가 입지 않는 옷들이 아주 많은데 (이건 농담 아니고 진짜 500벌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꽁칫꽁칫 언니 방 옷장에 한 번도 빛을 못 본 옷들이 구겨들어가 있고, 그 옷장이 넘쳐서 언니 방 옷장이 안방에도 가 있다.) 언니에게 부탁해 좀 도톰한 스웨터 두 벌도 받아서 건네 줄 계획을 세웠다. 

이번 주 중반까지는 날씨가 아주 춥진 않을 것 같아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보니, 자기는 혼자서 외출 하기가 어려우니 친구 4명이 있는데 같이 가도 되냐고 한다. @.@
밥도 사주고, 옷도 따로 건네주고픈데 그렇게 친구가 많으면 안 되지... 그래서 "혼자 외출할 수 있게 되면 만나자" 라는 답을 보냈다.

아니... 한국 온 지 두 달인데 아직도 혼자 못 다녀?!?! 
내가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났던 씩씩한 제자들을 생각했다. 20대 초반에 겨우 2,3년 배운 언어를 가지고 한국 유학 생활에 부딪히던 아이들. 

그러고 보니 14년이 지났다.
나만 늙은 게 아니고 내 제자들도 나이가 들었다. 그렇다면 그 제자도 30대 중반이잖아? 제자라니까 늘 아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들도 이젠 어른이었다. 그런데 무서워서 혼자 외출을 못한다고?? 스리랑카랑 비교도 안 되게 대중교통 잘 되어 있고 안전한 한국에서?? 그리고 지금 내가 중동 같은 데 뚝 떨어져서 아랍어 표지판도 못 읽고 말도 안 통해서 외출을 못 하는..그런 상태도 아니고, 15년 공부한 언어가 통하는 나라에 온 건데도? 답답하네.

처음에는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친구의 입장도 되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 제자는 연수 프로그램 같은 데 뽑혀서 해외에 나간 적이 없고... 아마 이번이 30여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리랑카 섬 밖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렵고 할 수도 있지.
그래도 두어 달 동안 몇 번 시도라도 해봤으면 지금쯤은 서울 안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ㅜㅜ 안타깝긴 하다.

정 만나고 싶으면 내가 학교 근처로 찾아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 학교가 우리 집에서 좀 멀어서 서로 중간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못 나온다고 하니...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 공부하러 온 30대 중반 제자를 세상 밖으로 더 끌어내고 싶지, 내가 우쭈쭈 학교 앞으로 찾아가고 싶지는 않네. "너를 도와주기 싫은 게 아냐. 니가 스스로 했으면 좋겠는 거지" 
....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나에게서 꼰대의 향기가 풀풀 난다.


갑자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 제자에 대해 '30살 넘어서 혼자 저것도 못해?' 라고 생각했다면, 다른 누군가 역시 나에 대해 '40대에 아직 저러고 살아?' 라고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는 행위를 하고 있겠지 싶다. 
두 달 동안 저렇게 아무 것도 시도를 안 했다니, 혹은 '그동안은 친구랑 다녔지만 이번에는 혼자 가볼게요' 라고 하지 않으니 내가 도와주고 싶지가 않네..라는 생각이 쉽게 드는데, 그와 똑같은 이유로 남들이 날 안 도와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소극적으로 지내는 거 꼴보기 싫어서.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잃고



얼마 전에 매주 일희일비 해야 하는 스포츠팬 다시는 못할 것 같다고 글 썼지만...
사실 테니스팬 하면서 좋았던 건 매주 볼거리가 있다는 거였는데 요즘 매우 심심하긴 하다.
오늘로서 ATP 2023 경기는 막을 내리긴 하는데... 남의 잔치 결승전 😭 누군가는 좋겠네.
내 선수가 결승 뛰면 지금쯤 두근두근 하고 있을 시간일 텐데.
정말 한 시절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우승하고 좋아하던 게 진짜 까마득한 옛날 같다.






오늘 어떤 공개 게시판에 누군가의 파리 여행 질문에 대답해주다가 피식 웃음. 🙃 여행 전문가가 많은 게시판인데 아무도 안 나서니, 작년에 테니스 보며 12일 머무른 기억으로 내가 파리 전문가인 것처럼 혼자 답해주고 있네...

모든 게 기적같았던 그 파리 여행을 포함해서 얻은 게 많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아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여전히 잘 나가는 남의 아들들을 보고 있으니 오늘은 또 '테니스를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뭔가를 좋아하는 감정에는 유치한 질투심도 꼭 따라오나봐. 나에게 좋았던 일 있었던 걸로는 안 끝나네??

매주 경기가 있는 테니스...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일 없이 그냥 소소한 취미로 보게 되면 꾸준한 소일거리는 되겠지만 대신 강렬한 자극이 없다. 작년에 테니스 보러 파리에 다녀온 몇 개월 뒤... 10년 전에는 그토록 원했던 큰 대회가 마침내 서울에서 열렸지만 보러 가지 않은 이유는, 결국 '최애' 응원 선수가 없으면 경기장에 앉아 있어도 미적지근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최애'가 생기면, 기쁜 만큼 패배 충격도 커지기 때문에 섣불리 그걸 다시 겪고 싶지도 않고 ...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말하듯 '선호' 가 생긴다는 건 나도 모르는 새에 당하는 "사고"☄️ 같은 거라서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누가 막 좋아지지도 않는다.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할까.

뭘 얻고
뭘 버릴 것인가.












외화벌이... 드디어 쥬스값 벌다



중국 여행 하느라 알리페이 앱을 설치하고 나서
푼돈 뿌리는 🔖红包가 있다는 걸 알고 종종 앱테크를 함.

한국 앱에 비해, 뭔가 세금도 안 내고 있는 나라의 외화를 버는 것 같아서 뿌듯(?!)함.
그런데 중국에 갈 일이 없으면 쓸 일도 없기는 한데...

알리페이에 한국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중국에서 대부분은 결제가 가능하긴 했는데 종종 안 되는 곳이 있었다. 왜 어떤 곳은 되고, 어떤 곳은 안 되는지 이유도 알 수 없음. 이런 때 가장 결제가 잘 되는 것은 사이버 머니(??)와 비슷한 알리페이 balance.

그래서 호텔 직원에게 내가 갖고 있던 현금을 20위엔을 건네 주고 알리페이로 송금받아서 balance 20위엔을 갖고 있었다. 

그 20위엔을 앱테크를 통해 불려서 오늘 35위엔으로 만들어놨다. ㅋㅋ



15위엔을 앱으로 만들어낸 셈인데...
중국에서 15위엔은 펄블랙티 한 잔 가격.





중국이나 홍콩에서 줄 서서 먹는다는 Hey tea라는 브랜드, 7월에 갔을 때 마심. 
과육 많이 들어간 과일차가 더 유명한 곳인데, 내가 다른 브랜드와 착각해서 블랙티를 주문했었다. 사실 아주 맛있진 않았다. 과일차 시킬 걸. 

앱테크로 차 한 잔 사먹을 돈을 벌어놨는데 ㅋㅋ
중국에 다시 언제 가지?






웃긴 거

 


스리랑카에 살기 전에 스리랑카 문자 - සිංසල싱할러를 배우고 가서 조금 읽고 쓸 줄은 알았지만 사실 2년 살면서 말을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를 거친 곳이라 영어도 잘 통했고 (현지인들 영어 자부심 강하다), 한국어 교사였으니 학생들이랑은 한국어 하면 되고, 날 도와줄 학생도 많고.

그나마 썼던 것은 숫자인데 (교통 수단 흥정에 필요) 귀국 후 정말 다 까먹었다. 


귀국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뒤로 이상하게 외국 여행을 갔다가 말문이 막혀 단어가 안 떠오르면 머리 속에 스리랑카 단어 몇 개가 먼저 맴돌곤 했다. 물론 실제로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특히 메떠닝 මෙතනින් 같은 거. 정작 스리랑카 살 때는 내 입 밖으로 한 번도 안 내본 단어인데. 🤷‍♀️

මෙතනින්은 여기에서 여기서..뭐 그런 의미인데 랑카에선 here면 통하니까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외국에 있을 때 이런 의미의 단어를 말해야 될 때 이상하게 메떠닝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웃겨. 내가 스리랑카 말을 잘 구사했던 것도 아니고, 거기선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텐데. 실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단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외국땅에서 갑자기 떠오른다는 게 진짜 이상함.

그나마 랑카에서 실제로 좀 썼던 것 중에는 පුලුවන්ද?가 있는데, 할 수 있어요? 이거 돼요? 이런 의미인데, 이 문장 역시 전혀 관련 없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문장을 써야 할 경우에 뜬금 머리 속에서 먼저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는데 (외국에서 어떤 단어를 말해야 되는데 이상하게 먼저 머리 속에서 치고 나오던 싱할러 단어) 지금은 안 떠오르지만 나중에 생각나면 추가해야지. 가끔 어느 나라에서나 "너 우리나라 말 할 줄 알아?"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머리 속에서 "조금 할 줄 알아"라고 대답하기 위해 항상 චුඩ්ඩක් (스리랑카어로 "조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웃기다. 이것은 아마 실제로 스리랑카에서도 내가 많이 썼던 말이기 때문일 듯도 하다. 항상 "조금 할 줄 알아"라고 대답했으니까. ඔක්කොම가 "모두, 다" 라는 뜻인데, 귀국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국에서도 '이거 다 주세요' 이런 거 말할 때 ඔක්කොම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에 nate 검색 엔진에서 "시맨틱 검색" 이란 걸 도입한 적이 있었다. 단어 하나 입력하면 그 단어의 정의 & 뭐뭐 & 뭐뭐뭐 를 차례로 보여주는 형식이었는데, 그렇게 정교하지는 않아서 어떤 단어 다음에 "은/는"이 들어가면 그 다음 문장이 그 단어의 정의인 걸로 나오곤 했다. 즉 "한국어 대한민국의 공용어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를 설명하는 문장에는 "는"이 포함된다는 점을 이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동안 네이트 검색에 "싱할러"를 입력하면 내 싸이월드 블로그의 한 문장이 "싱할러"의 정의라고 첫번째로 나왔었다. 😄





싱할러의 정의 -> 싱할러 진정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죠.

ㅋㅋㅋ 나? 싱할러의 정의를 내려버린 사람.

스리랑카에서 수술 받았을 때 마취에서 깨어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 "වේලාව කීයද?" 스리랑카어였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싱할러의 정의'로 검색에 걸려나올 줄이야... 


싱할러는 진정 내 마음 속에 있었나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정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죠"는 한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였다. 철지난 시대상도 반영하고 있네. 😁





진짜는 어땠을까

 


한동안 실제보다 하늘이 파랗게 찍히는 카메라를 썼었고

결과물을 보면 예쁘긴 하다.






그런데 색깔이 어느 정도는 비현실적이라
실제 하늘 색깔이 어땠는지가 자꾸 궁금해진다.
그런데 떠올릴 길이 없다.

기억을 돕기 위해 사진을 찍어두는데
기억을 방해하는 사진이 됐다.




이 정도로 파랗지는 않았는데...?!?





 


어떤 전시물










무슨 주제인지는 모르지만
2015년 2월, 샌프란시스코 예르바 부에나 센터 외벽에 있었던 전시물.

"나는 씁쓸하다" 식의 번역투 문장이 아닌 걸 보면, 뭔가 한국어를 좀 아는 사람이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
모국어를 발견한 사람들이 흠칫 멈춰 서서, 나처럼 사진 찍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런데 영어 바로 아래 글자는 아랍어로도, 페르시아어로도 번역기에 뜻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자모가 하나씩 뚝뚝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건가??
예전에 아랍어 전공한 사람이랑 같이 알바한 적 있었는데 그때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일까



가족의 정기 검진날이어서 CT 촬영실 앞에서 대기했다. 얼마 뒤 아마도 보호자는 따로 없는 듯한, 노령까지로는 안 보이는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운 채로 실려 내려왔고 그 침대는 CT실 벽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분은 지금 본인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한켠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조차 난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변줄을 끼고 계신 것 같았는데 그 소변을 받은 주머니가 침대 아래로 늘어져 있는 것이 CT 검사실 앞에 대기 중인 10여 명에게 그대로 보였다.


병원에서 늘 마주하게 되는 차가운 현실.
저게 남의 일일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저렇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까지 모두 노출 되고 있는 환자의 삶.
시선을 피하며 우울해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하지만 누구인들 저렇게 되고 싶었겠어. 그냥 어떤 일이 닥치면 다들 본인도 모르는 새에 그 자리에 가 있는 거지.

아프고 싶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에게도 선택권이 없다.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신이 걸린 병을 고른 사람도 아무도 없고.


정기 검진이라 해도, 병원에 다녀오면 무기력해진다.
다들 아프지않기를.










중국 드라마 입문 추천작

 


모임도 없던 코로나 시대의 추운 연말 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갑자기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된 지 3년이 되어가는 것을 기념하며, 중드 시청 시작하기에 좋은 작품을 추천한다. 고유의 의미가 있는 작품을 골랐다.



1. 平凡的荣耀 평범적영요 Ordinary glory (2020년 9월 중국 방영) 총41화


"未到终局,焉知生死"

40회-70회 분량으로 만들어지는 중국 드라마의 첫번째 진입 장벽→ 잘 만들어진 미드/한드처럼 처음 1화부터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초반 5-6화 분량이 매우 재미없다. 남•여 주인공을 어떻게든 만나게 하기 위한 초반 억지 설정까지 넘쳐나서 탈주 계획 세우게 됨.🏃‍♂️ 심지어 중드는 흥미를 유발하는 편집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되면 회차를 뚝 끊는✂️방식의 편집이 많아서, 애 태우며 다음 회로 넘어가게 만드는 요인도 없다. 여태 '20회까지만 참아보세요. 그 다음부턴 술술 넘어갑니다'가 최고 기록인 줄 알았는데 무려 "34"회까지는 참고 한 번 보라는 작품마저 등장했다(꽤 명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작품임). 대부분의 중국 드라마가 초반이 재미없는데, '중후반에 괜찮아진대'라는 입소문만 믿고 참아가며 봐야 한다.

또한 현대극에선 인기있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하기에 '핫한' 20대 중초반 배우를 출연시키는데, 주인공의 매력을 마구 주입시키려다 보니 나이에 비해 성취가 과도한 인물들이 나온다(예: 20대 중반 배우 ➡️ 로펌 대표). 극중 역할이 운동 선수/연예인처럼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직종이 아닌데 20대에 이미 업계 평정하고 주위 사람들은 벌벌 기는 설정 흔함. 이게 뭔가 싶으니 또 탈주하고 싶어지게 되는데... 平凡的荣耀는 익숙한 [미생]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1회부터 현실적으로 잘 짜여진 대본과 연출을 볼 수 있다.

다른 중국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출연 배우 신상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그저 진짜 회사원처럼 보이기 때문에 굉장히 실감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그랬음😜) 그래서 입문작으로 추천. 다른 드라마를 많이 본 후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되면 '어 저 부장님 거기 나왔던 사람이잖아?' 하면서 역할이 짐작이 되고 어떤 연기를 할지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진다.

이 '몰입'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 배우를 예로 들면 이해할 수 있다. 평소 이정재의 생활상을 아는 한국인들 중에는 그의 '오징어게임' 연기를 약간은 어색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많고 '연기 변신했네' 정도로 연기력 자체는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극중 이정재가 아무리 경마장에서 폭력배에게 얻어터져도 한국인들은 그가 말끔하게 수십억대 집으로 귀가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정재를 처음 봤을 미국인들에게는 그저 처절한 상황에 던져진 찌질한 '성기훈' 그 자체로만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정재는 미국 레드카펫에서 "이렇게 스타로 떠오른 기분이 어때?" 이런 류의 질문을 받았다.) 이정재는 미국에서 TV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최정점의 연기상(SAG, Emmy)을 모두 가져갔다. 정작 그의 한국어 대사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에선 오징어게임으로 연기 상을 거의 못 받았는데 말이다. 배우의 원래 모습을 모르는 것은 극 몰입에 영향을 꽤 미친다고 생각한다.



미생은 일본•중국에서 모두 리메이크 됐는데, 한중일 3명 중에서 외모로는 중국 배우 白敬亭이 '장그래' 역할 자체에는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 白敬亭에 비해서 임시완은 '기가 엄청 쎄' 보여 덜 안쓰럽다는 이야기가 많다(임시완이 연기를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가진 분위기를 말하는 것). 白敬亭도 연기를 매우 잘 해서 내가 수여하는 2021년 남우주연상감이었음. 멋적을 때 머리 긁적긁적하는 동작이 매우 안 어울리는 거 빼고는, 표정은 물론이고 감정 따라 바뀌는 걸음걸이와 애처로운 뒷모습까지 정교하게 잘 연기했다.

특유의 숨막힐 것 같은 회사 분위기도 제대로 연출되어 있다. 감독이 30대 초반에 연출한 작품인데 어디 가서 많이 치이다 온 건지, 치열하면서도 갑갑한 회사 내부를 실감나게 살려냈다. 원작을 잘 받아들이면서도 중국 상황도 잘 조화시킨 모범적 리메이크 작품이다.

회사에서도 고생하는데 구태여 미생까지 왜 보며 또 괴로워야 함?? 이랬던 사람들은 (내가 그랬음😜) 언어가 다르고 약간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미생] 스토리를 중국인을 통해 대리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드라마보다 외국 것을 더 많이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의 오류가 생기더라도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을 해서 생기는 거리감을 더 편하게 여긴다. 




2. 去有風的地方 거유풍적지방 Meet yourself (2023년 1월 중국 방영) 총 40화


"乌云会有时 总会有风来"

여태까지 본 중드 중에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무난하고 따스한 스토리. 하지만 일부 모티브나 소소한 등장 인물의 외양마저 한국 드라마 "갯마을차차차" 표절설이 있다는 게 약점이다. 중국 현대극 대부분은 상하이, 베이징 등이 배경이지만 이 드라마는 윈난성 大理가 배경이라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도시의 실제 관광 수입 증대에 드라마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요"라는 원제와 Meet yourself라는 영어 제목에서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 유유자적 사는 단순한 얘기만은 아니고 중국 사회 문제를 조금씩 엿볼 수 있다. 

배우들은 서로 잘 섞여 들어가는 연기를 보여주며 남녀 주연 훤칠하고 나긋나긋 예쁘다. 특히 중/노년 여배우들의 연기가 드라마 전개를 착실히 받쳐주고 있는데, 1938년생(!) 배우 吴彦姝의 귀여운 할머니 연기를 우리 엄마가 참 좋아하셨다. 중국 거대 전자 기업 화웨이 창업자의 늦둥이 딸 姚安娜가 하버드를 졸업하고 연예계에 뛰어들어, 이 드라마에서 구멍가게 점원으로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풍경이 아름답고, 등장인물 설정 무난하고, 민망한 억지 에피소드가 드문... "밥 먹을 때 켜놓고 보는" 밥친구로 좋은 드라마.

그저 악역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악역으로 나와서 쓸데없이 눈을 부라리며 연기하는 악역도 없고, 중국 드라마의 치명적 단점인 '궁금하지도 않고 별 매력도 없는 조연 배우들까지 커플로 꼼꼼히 엮어 주느라' 그 곁가지가 전체 분량을 왕창 잡아먹는 경우가 이 드라마에선 거의 없음. 깔끔함.




3. 아적전반생 我的前半生 the First half of my life (2017년 7월 중국 방영) 총 42화


"可我偏偏就是这么‘’

현대극이지만 2017년 방영작으로 이제 살짝 촌스럽고, 이 드라마 역시 앞의 4-5화 이상 견뎌내야 속도 붙음.

중국 드라마에서 가장 양산하고 있는 게 한국식 분류로 말하면 이런 '로맨스'극인데, 그중에서는 가장 추천함 (특히 3-40대 이상에게). 🧑‍🦱👩‍🦱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주인공 커플이 '겁나게' 일을 잘 하면서 주위 사람을 물심양면 돕는 중국식 '도시정감극都市情感剧'에 한국 아침 드라마 느낌 한 스푼. 홍콩 작가 亦舒의 1982년 출판 소설 원작을 2010년대 중국 상황에 맞게 각색했다. (사족으로, 중국어에선 각색脚色이라고 하지 않고 개편改编이라고 쓰고, 같은 음으로 읽히는 각색角色/juésè/는 배역, 역할을 의미한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야" 라고는 쉽게 말을 못하겠는데, 굳이 '중국' 드라마를 보겠다면 이걸 보라고는 권할 수 있는 작품. 2016년에 촬영했기에 내가 이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된 2021년과 중국 제작 시기가 5년 정도 차이가 나긴 했지만, 당시 한국과 꽤 다른 중국 사회 문화를 볼 수 있었다. 중국은 군 입대가 없고 그때까지도 20대에 결혼을 서두르던 문화여서... 서른 살에 이미 결혼 생활은 지루해지고, "사회 생활 10년을 채운 30대 초반이면 꽤 많은 걸 이루어 놓아야 하는" 중국 도시 사람들의 압박감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많다. 한국에서 꽤 인기를 얻은 중국 드라마에 속하는 三十而已 (겨우 서른) 도 이 측면에서는 비슷한 결을 보여준다.

요즘의 한국에선 20대 후반까지도 직장 제대로 자리잡기 힘들고, 30대 초반에 결혼해도 "빠른 편"에 속해 겨우 사회초년생 티를 벗게 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드라마 제목인 我的前半生은 내 인생의 전반부-라는 뜻으로 30대 초에 이미 인생의 토대를 다 닦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중국식 삶을 보여준다.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도 한국과 비슷하게 결혼을 미루고 출산률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 회사라는 공간에 가족/외부인들이 너무 쉽게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이 말이 되나?? 했었다. 하지만 다른 드라마들을 봐도 외부인들이 직업의 공간에 너무 쉽게 들어오는 모습을(특히 병원) 많이 보게 되니 이젠 "이게 중국의 특징인가보다" 한다.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병원을 보면 의사는 쉴 곳이 없나 싶게 본인의 지인, 환자 & 환자 보호자들이 수시로 공간에 침입한다. 또한 형사가 자식을 경찰서에 데려와 재우거나 돌보는 설정도 두어 번 봄. 🙇




'어른'들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 뻔하지만 또 보게 되는 전개. 인간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함. 

미사여구가 아니고 정말 흔한 대사인데, 사랑에 빠진 남녀가 왜 천지분간 못하고 뛰어다니는지 이해하게 만들어준 대사가 하나 나온다. 수많은 드라마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 설정이 "아닌 척 하다가"도, "내 감정을 부정하다가"도 상대방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몸이 먼저 자동으로 뛰어드는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 대사에 나왔다. 남들이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대사인데, 나에게는 어떤 가르침🛂을 줬다.





4. 鬓边不是海棠红 빈변불시해당홍 Winter Begonia (2020년 3월 중국 방영) 총 49화


‘’你知道什么是知音吗?‘’

경극 배우 등장 - '중국'이기에 만들 수 있는 내용. 

앞의 작품들이 무난하고 국적과 상관없는 인간사를 다뤘다면, 여기부터는 좀 더 중국스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는 작품. 경극에 대한 지식이나 1930년대 역사적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 좋을 듯.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이해도가 높아짐. 드라마 상황과 궤를 같이 하는 경극 공연이 종종 나오는 듯한데, 한국인으로서는 가사와 맥락 이해 불가. 경극 가사에는 자막이 제대로 안 나와서 아쉬우나 번역자도 애로 사항 많았을 것이다. 한국어에서도 "제비 몰러 나간다~" 이런 것을 외국어로 느낌 그대로 살려 번역하기는 어려우니까.

소설 원작은 훨씬 더 진한 男-男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 중국은 드라마 검열과 규제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드라마를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知己" "知音‘’으로 극화한 두 사람의 관계가 나에게는 훨씬 좋았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무엇이든 그 어딘가에 걸쳐있는 사람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단 한 가지가 아니므로.



배우의 힘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드라마인데, 주연 배우 2명이 타고난 자질에 덧붙인 노력으로 극을 어떻게 끌고 가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배우가 가진 화면 장악력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나온다. 

한 명은 중화권 최고 미남 배우의 매력과 눈빛, 목소리로 화면을 채우고 다른 한 명은 표정 뿐만 아니라 이모저모 신체를 잘 쓴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싸움을 시작하면 얼굴과 몸이 화면에서 분리되는데(대역 사용) 이 드라마에선 경극 배우의 고운 손짓도 소화해 낸 주연 배우 尹正이 무력을 사용할 때는 대부분 얼굴까지 같이 잡히면서 직접 액션을 소화하기에, 그는 몸을 꽤 잘 쓰는 배우로 보인다. (얼굴 근육을 못 써서 사랑에 빠져도 목석🌵🪨이고, 몸을 못 써서 누워 있는 모습조차 어색한🤖 배우도 허다한 현실)

보면서 '아휴 이게 뭐여' 라는 이해 안 가는 설정(ㅊㅅㅇ ㅂㅁ)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점수를 깎았는데, 누군가의 해석을 들어보니 반전이 있는 나름 필요한 설정이기도 했다. 꼭 이래야만 했나.. 라는 '그' 설정이 나오는 27회지만, 동시에 절박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인간의 본심/利害 계산...이런 것들 때문에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회차이기도 해서, 다시 한 번 깨닫는 바가 있어 탈주🏃‍♂️ 욕구를 참고 계속 봤다. 

극 중후반... 성우였든 배우였든 코를 빨래집게로 찝은 듯한 일본인 장교 역할의 대사 처리 (위협적인 존재로 보여야 긴장감이 사는데, 입만 열면 사람이 우스워짐. 중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인이란 대체 뭔지 일본인 역할은 모두 코먹은 소리 더빙인데, 그중 가장 높은 직위의 사람이 가장 맹한 발음을 함) + 중국 침략을 위해 '친절하게🙄' 산동 사투리 중국어를 배워온 일본 장교 설정까지는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겠는데 일본군끼리 있을 때도 고작 "요시~" 만 쓰다가 그 코먹은 중국어로 일본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을 보면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


더불어 후반부에는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한 방에 고친다며 상황극을 만드는 내용🤷까지 더해져 드라마 완성도를 해친다고 생각 될 정도. 정교한 세트장과 화려한 의상 뿐만 아니라 항일 전투 등 예산 안 아끼고 열심히 만든 작품이지만 그래도 덜컹 콜록거리는 부분은 있다. 인생을 바꿔버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한번에 용서하길 종용하거나 트라우마를 짠!하고 xx요법으로 건드리면 나아지겠지? 하는 게 중국 드라마 고질병인데 여기에도 등장한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영향으로 환생을 믿고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자, 타임슬립 소재 제작을 제한했다는 중국에서 이런 근거도 없는 "트라우마 퇴치" 충격 요법 장면은 왜 제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드라마의 이런 설정 믿고 맘대로 충격 요법 실시하는 사람 나올까 걱정은 안 하는지?

몇몇 단점이 보여서 정작 처음 시청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히려 지나고 난 뒤에야 더 생각나는 아련함이 있었고 다시 보면 모든 화면이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패왕별희'로 익숙해진 경극이라 해도 처음 볼 때는 '꼭 저런 목소리로 노래해야 하나?' 하고 여전히 적응이 안 됐지만, 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다면 두번째 볼 때부터는 경극 배경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검열과 가위질로 후반부 🐲용두사미🐍를 넘어서 용두사망😵‍💫🚑으로 가버리는 드라마가 속출하는 중국에서, 이 드라마는 감정을 잘 쌓아가다가 마지막회에서 주인공들 사이의 애틋함이 정점을 찍으며 끝난다(중간 회차 숨겨졌던 가족사가 좀 지루하긴 했지만). 요즘은 중국 당국이 드라마 내용 제한에 이어서 드라마 길이마저 "40회" 이하로 제한하게 되어서, 49회인 이 드라마도 만약 이 제한에 걸렸었다면 아마도 가정사 부분을 덜어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명대사가 여기 저기 숨어있다. 인간 대 인간의 교류, 사람이 가지는 감정의 종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됨. 영어나 스페인어 자막 등으로 bosom friend, alma gemela로 이해해야 하는 문화권에서는 절대 모를, 지음‘’知音‘’이라는 단어 속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자를 배우면서 자란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我听着呢") 




대체 무슨 일인지, "음(知音zhiyin)이 뭔지 아세요?" 라는 주제곡 중 나레이션을 "consonante-음-이 뭔지 아세요?" 라고 번역해버린 스페인어 자막. 🤯 '知音'에 대한 굉장히 뭉클한 답이 이어지는데... 이 유튜브 영상을 본 스페인 사람들은 오역으로 이 질문-답변이 왜 뭉클한지 전혀 느낄 수 없게 됐다. '지음'에 Soulmate 의미의 단어를 넣어도 반쯤 이해될까말까인데 "자음"이라니...

한문을 알아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경극에, '소재 제한과 검열'이라는 국가적 특징이 낳은 -  은근하고 모호해도 애틋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점까지 더해져 이게 바로 진정한 "중국" 드라마 아닐까.





5. 琅琊榜 랑야방 Nirvana in fire (2015년 9월 중국 방영) 총 54화


‘’我想选你 靖王殿下‘’

이 드라마 역시 '중국'이기에 만들 수 있는 내용. 한국에는 2010년대 중반에 이 드라마로 중국 드라에 입문한 사람이 가장 많긴 하지만, 이걸로 입문하면 그 뒤 이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나기 힘들어서 늘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므로 솔직히 입문작으로는 비추. 개인적으로는, 무난한 중드 추천작들 보다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시기가 생긴다면 그때 이 작품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작품.

기묘한 病과 맘대로 "customizing"한 맹독을 밑도 끝도 없는 '내맘이지' 의술 체계로 해결을 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굳이 꼽는 이 드라마의 약점. "다른 중국 고대 배경 드라마들도 이런 독을 수시로 쓰는 것처럼, 여기서도 무슨 일이든 가능하지 않겠느냐" 보다는 극사실주의 극본으로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함. 이 약점 빼면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일이므로. 하지만 원작에 "죽었던 이가 얼굴에 점찍고 복수하러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라는 설정이 있는 한, 어쨌든 현실성에 큰 구멍이 생기기 때문에 작가로선 "판타지" 장치를 넣을 수 밖에 없긴 하다. 그래도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파고드는 내용이라 겁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마냥 붙들려 있게 된다.




맛깔나게 상황에 맞춰 독성을 발휘하는 맹독을 신묘하게 치료하고, 사람이 푸드덕 🧚‍♀️하늘을 날아다니는 - 이런 류의 중국 드라마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시작 부분 연출이 조악해 보이는 것을 실소와 함께 참아내야 한다. 어떤 분이 쓴, "강추를 받고 시청을 시작했는데 1회에서 x🕊x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소리지르며 껐다" 라는 글이 왜 그리 안 잊혀지던지. 그 장면을 넘기더라도 주인공이 마침내 얼굴을 확 드러내며 무동력 🚤타고 첫 등장하는 순간.. 다시 비명을 지르며 전원을 끄고 싶어질 수 있다. 🪈🫣 나는 이런 입문 장벽이 지나간 뒷부분부터 우연히 라이브로 보기 시작해서, 다행히(?) 채널 안 돌리고 계속 볼 수 있었다.🤭

낯선 호칭을 가진 등장 인물 수십 명이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것 역시 너무 고민하지 말고 참고 보다 보면 나중에 이해하게 됨. 어차피 진짜 중요한 인물은 몇 안 되고 결국 눈에 익게 된다. 처음에는 회차를 넘기기 어려워서 나도 10여 회 시청 후 쉬었다가 3개월 후에야 전편 시청을 완료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촌스러워서 '으악' 하는 순간이 있어도 결국에는 처연함과 비장함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 정도 연출력 유지하면서 '우리 중국이 이렇게 잘 났다'(??) 🤷 함정으로 안 빠지는 중국 드라마 극히 드물고, 같은 감독의 다른 연출작도 이 수준이 안 나온다. 이 드라마 이후로, 기존 권력을 재편해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내용을 제한하기에 앞으로 이런 소재 드라마는 중국에서 다시 제작되기 어렵다고 한다.




중반 이후 속도가 붙으면 54회라는 분량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고, 연출도 점점 유려하게 잘 한다. 50회쯤 되면 끝나가는 게 아쉽고, 54회가 끝나면 1회를 보러 다시 돌아가게 되어있다. 다시 보면 처음에 안 보이던 것이 다 보임. 탄탄한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직접 드라마 대본으로 만들었고 애절한 음악이 극 분위기를 잘 받치고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본인 목소리로 더빙까지 한 남자 주연 2명 모두 200% 연기를 보여주지만, 만약에 '조연상'을 준다고 하면 한 두명 수상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모든 배우가 최대의 실력을 발휘했다. (조연 중 몇 명은 성우 더빙이라, 살짝 애매한 느낌은 있다. 국어책 읽는 연기력을 성우가 살려놓는 경우도 있어서.)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배우들이 점점 역할에 젖어 들어 표정과 연기가 더 살아난다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초반부 장면인데 마지막날 찍고, 감정이 폭발하는 후반 장면인데 촬영 초기에 찍은 장면이 꽤 있었다. 몇 개월 동안 그 인물을 연기해 오면서 감정이 쌓이고 쌓여 저렇게 울컥하나봐....는 나의 오판이었다. 극 전개상 25회랑 40회는 계절마저 바뀌는 시간차가 있고 배우들이 옷도 갈아입지만, 배우 얼굴 뾰루지 상태를 보면 아마도 같은 날 촬영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낄낄 웃다가도 촬영 시작하면 1초 만에 몰입하는 게 배우들인데, 내가 회차가 진행되는 순서대로 촬영 했을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네.



제목부터 "그저 사랑뿐" 이런 류 드라마를 내가 골라서 보다가, 제목조차 깜빡하고 '😠저 사랑 타령 좀 그만 하면 안 되냐?' 하면서 시청을 중단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드라마, 랑야방에는 절제된 감정만 드러난다. 미국 드라마에 절여진 눈으로 보니 이 드라마에서도 다음 장면에 행여나 남녀가 같이 누워있기라도 할까봐🫂 나중에 뜬금없이 여주인공이 부른 배를 안고 나타나기라도 할까봐🤰 걱정한 적도 있지만, 다행히 그런 장면은 없는 정치 복수극이다.

54회나 되는 분량에서,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최고 명대사가 고작 한국어 자막 6글자(중국어로는 8글자)라는 것이 오히려 이 대본이 얼마나 잘 짜여진 대본인지 증명한다. 게다가 그 '명대사' 라는 게 심오한 철학을 담은 대사도 아니고, 짧다고 해서 "이 안에 너 있다"류의 플러팅도 아님. 촘촘하게 잘 배치한 인물 관계 덕에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는 순간을 한 마디로 만들어내는 대사이다. 인생에 이런 작품 하나 남긴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일까 하고 배우들이 부러워진 드라마. 주연 배우 3명이 ost 한 곡씩 불렀는데 3곡 모두 드라마 분위기에 어우러져 처연하고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현시점 미국에서는 Succession, 중국에서는 랑야방이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보는데 나에게는 두 작품의 ost가 모두 상당히 매력적이다. 석세션 ost가 "재벌가 권력 다툼" 이라는 분위기를 우아하면서도 애잔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처럼, 랑야방 ost 역시 바닥에 슬픔이 베어있는 권력 쟁취극의 처연함과 비장함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중국 드라마에선 ost 가사가 있는 경우엔 자막을 화면에 띄우고 + 시도때도 없이 처량한 연주 음악을 밀어 넣으면서, 감정 강요로 오롯한 내용 감상을 망치는 비율이 거의 98%인데 랑야방은 연주 음악 & 가사가 있는 노래들이 모두 극 분위기를 잘 받치고 있어서 신기함. 랑야방과 거의 같은 제작진/배우들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伪装者'만 봐도 '으악, 제발 음악 좀 그만 틀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비해서 랑야방은 ost 선율이 뛰어나다. "작품성에 ost가 기여한다" -> 이 매칭이 힘겨울 때가 있는데, 석세션과 더불어 명작은 심지어 음악까지 하늘이 도와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





* 중국 드라마 특징 : '가족애'를 강조하는 한국에 비해 '주인공 쌍방 구원'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주인공들이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는 경우가 거의 없음. 대부분이 이혼 혹은 사별, 부모님 캐릭터 배제 혹은 부모의 자식 착취.

중국 작가들은 홀로 남겨짐+트라우마 있는 주인공끼리 필연적으로 오직 서로만을 의지하며 "성장"하는 스토리 미치도록 좋아함. 양친 모두 모시고 자란 사람은 본인의 연애에 매달릴 리가 없다는 편견이 있는 건지 대체 뭔지. 

위의 드라마 1-5에 나오는 남주•여주만 봐도....


1. 주인공 어머니 1명 생존.

2. 남주는 아버지가 계시나 할머니와 살고 있고, 유일하게 부모 모두 생존한 여주의 가정이 따스하게 그려지지만 독립해서 산다. 따듯한 가정에선 사연이 안 생긴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1회부터 여주의 절친이 죽으면서 시작한다. 

3. 남•여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3명인데 이 3명을 모두 합쳐서 부모님이 단 1명 등장하지만 그분은... (최대 6명 출연 가능인데도)

4. 주인공 2명이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 부모 아무도 안 살아계심.

5. 이 드라마도 주연 명단에 3명이 올라 있는데, 부모가 최대 6명이 등장할 수 있으나 부모 모두 몰살에 가깝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모친을 가진 주연은 단 1명, 그나마 살아 계신 부친 1명은 피와 살육의 아버지라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전혀 없다.


-> 1 -5 드라마 주연급을 총 11명이라고 치면, 부모가 최대 22명까지 존재할 수 있지만 극중 살아서 등장하는 친부모는 단 7명, 그리고 그 중 2명은 후반부에 사망. 2번 거유풍적지방에서만 친부모가 3명 출연해서 그 드라마 하나가 절반 가져간 덕에 7명이 되었을 뿐이지, 나머지 드라마엔 자식 잘 키워준 부모 캐릭터가 거의 없다고 봐도... 😶


다음에 할 일



이런저런 이유로 좋아하는 홍콩.
언젠가 다시 가겠지, 하고 교통카드도 잔돈도 남겨두었지만 사실 기약은 없다.
그래도 다음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2007년 홍콩에서 찍었던 유일한 사진, 바다 건너 구룡반도 우측 구석이 보이는 호텔 방...이지만 안 보임.




2023년에 찍은 리펄스베이 배경에 2009년에 찍힌 사진 넣음



2007년의 나, 2009년의 나, 2023년의 나
그리고 언젠가의 나를 떠올리며 
이 홍콩 노래를 듣는 것.
홍콩가수 陈奕迅이 광동어 아닌 보통화로 불러서 홍콩같은 느낌은 약하지만
광동어 특유의 음절음절 톡톡 튀는 소리보다는, 보통화가 더 어울리는 쓸쓸한 분위기.












"...好久不见。。" 오랜만이야. 

정말 아련한 노래.
홍콩에서 조용히 혼자 창밖을 내다보며 들어보고 싶다. 서울에서 듣는 거랑 다를 것 같아.
공식 MV는 다른 내용인 듯 하고, 위 영상은 일반인들이 만들지 않았나 싶은데 영상에 홍콩 거리가 나오니 홍콩에서 이 노래를 듣고 싶어졌다.


올해 여름, 14년만에 홍콩 갔을 때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가 보고싶은 게 아니고 
오래 전 흘려보낸 시간이 그립다.


이런 내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위 영상에도 "상대방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있었던 그 시간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 있다"라는 누군가의 긴 댓글이 달려 있다.






🎤🎼 "我们回不到那天" 우리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지.


가사 해석할 때 배 타고 산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전세계에 비슷한 상황을 그린 노래가 수백곡이 있을 것 같은 담백하고 쉬운 가사. 
(오랜만에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와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함)

흔한 감성이지만 곡 분위기가 독보적이다. 
들으면 없던 사연도 있는 사람 됨.


광동어 버전 - 不如不見
가사가 다른 광동어 버전의 제목은 더 직접적? -> "안 보는 게 낫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소리가 부드러운데, 보통화 가사에 'ㄴ' 'ㅇ' 받침 소리가 나는 단어가 많다면, 광동어 가사에는 'ㄱ' 'ㅅ'받침 소리가 나는 단어가 많아서 약간 더 딱딱하게 들리긴 한다.

위 영상을 보면, 不如不見 노래 끝내고 陈奕迅이 장국영이 그립다고 추모하고 들어가네...  













취향



중국/홍콩 여행할 때 가장 좋았던 것:



면 요리 천국.
면이 주식인 사람들.

난 면 요리를 좋아하는데, 집에선 엄마가 '쌀밥만이 밥'이며 면은 주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눈치를 보며 먹어야 한다. (👩‍🦱 : "맨날 그런 것만 먹고... 그게 밥이 되겠니??"🫤)

하지만 혼자 여행가니, 호텔 한발짝만 나가면 온갖 면 요리가 펄쳐지는 중국 남부권에서 거의 매끼니를 면으로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중국 3성 호텔 조식당에 나오는 국수 요리조차 국물 맛있음. (개인적으로는 국내는 5성 호텔 조식당도 면 요리 육수는 대충 만든다고 생각)

사진 속 맨마지막 국수는 홍콩에서의 마지막 식사, 똠얌국수였는데, 국물맛은 똠얌 맞나 싶게 어설퍼도 한국에는 없는 식감의 쫄깃한 면발이 맘에 들었다. 그냥 동네 식당이지만 가격은 홍콩답게 약 만 천원 정도. 

원래 똠얌국수는 중국 션전에서 식당가를 서성이다 눈에 들어왔지만 못 먹고 홍콩으로 돌아왔었던 건데, 중국에선 37위엔, 약 6700원 정도. 이 정도 물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지하철 타고 션전에 자주 건너 가나보다.






그래서 여기에...




요즘 친구/직장 동료들 사이에 생일 선물은 대부분 기프티콘이다. 간편하고, 만나지 않아도 전달 될 수 있고. 

나는 사실 실체가 있는 선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친구들이 결혼할 때도 축의금보다는 선물을 많이 했다. 어떤 친구의 경우는 내가 밥그릇 국그릇 식기 세트를 선물했더니 그 부부는 실제로 몇년간 그 그릇을 메인으로 썼고, 친구의 남편이 내 존재를 모를 수가 없게 되어 나를 만날 때마다 "밥그릇 사준 친구 있잖아? 걔랑 오늘 만나"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
이런 경우는 엄청 뿌듯하다.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파스타 접시와 수면 바지를 한 적이 있는데 몇 년이 지나고 친구가 '그거 여전히 잘 쓰고 있어. 그때마다 너 생각해.' 이럴 때도 기뻤다.

하지만 솔직히 어떤 "물건"을 선물하는 일은 그냥 돈이나 상품권을 주는 것보다 위험 부담이 커지기는 한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취향이 전혀 다를 수 있다. 그저 "예쁜 쓰레기"를 공급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사례로 들었던 밥그릇 국그릇보다 내가 훨씬 모양새를 맘에 들어하며 선물했었던 세트를 어느 부부는 그저 선반에 올려놓고 있었다. 내가 신혼이라면 진짜로 쓰고 싶은 귀여운 밥/국그릇 세트였는데 그들 부부에게는 아니었던 거다. 지금쯤은 아마 어딘가 쳐박혀 있거나 버렸겠지. 그들에게 예쁜 쓰레기를 줘서 미안.

최근에 오랜 만에 친구 생일에 자질구레한 상품 몇 개를 선물했는데, 받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한데 그런 건 알 수 없다. 캐물을 수도 없고.

그러다가...나도 실물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꼭꼭 사용 실태를 그 상대에게 보고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나도 남에게 보여 준 적이 없는데, 어찌 남이 사용하는 걸 내가 보길 원하는지...





그런 측면에서 몇년 전 친구에게 받은 이 팔찌가 생각 남. 물론 이것 역시 카카오톡 상에서만 거래(?)가 오고 갔지만 친구가 고심해서 고른 몇 가지 중에 내가 최종적으로 하나를 고르는 형식이었고, 친구가 그렇게 내 생각을 해준 게 고마웠다. 굉장히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친구에게 새삼 고마워서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낼까...하다가 그만 뒀다. 물론 친구도 기분 좋아질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다음 생일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 주절거릴 밖에.








모든 언어를 다 할 수는 없어




예전에도 이 내용을 이 블로그에 썼었는데...





영화 '기생충' 영어 예고편에는 자막이 이렇게 되어 있지만 스페인어 예고편의 더빙 버전에서는 이 부분의 대사가
내 귀에 "Esta es nuestro oportunidad."으로 들린다.
(혹시 누군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정정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대신에 스페인어로는 "우리에겐 기회다" 이런 뜻인데, 독일어 버전 역시 "Das ist unsere Chance" (=그게 우리의 기회)로 더빙이 되어 있다고 한다. 아주 큰 줄기에서는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도 계속 "계획" "계획" 이라는 대사가 반복되는데 그 연결성을 놓칠 수 있을 듯 했고 한국에선 저 대사가 엄청 유명해졌지만 다른 나라에선 "기회"라는 의미로는 그럴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떤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자막을 통해 이해하다 보면 놓치는 게 새삼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도 한국어 자막으로 본 중국 드라마에서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의 대사가 원어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기억으로는 "너는 이제 내 마음에 없어" 라는 식의 결별 선언 자막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어로는 한자가 너무 달라서 번역기를 통해서 보니 "너 이제 더 이상 억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돼" 라고 나온다. 이 장면 앞부분에서 "사실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 없지? 그저 나를 이용했구나?" 라는 뉘앙스로 대차게 싸운 후에 나오는 대사이기 때문에 왜 이런 말을 하며 헤어지는지 알겠는데...한국어 번역자는 많이 초월 번역을 했네. 왜 마음을 닫았는지 알게 하는 대사인데, 그 느낌이 사라짐.

이런 번역이 극중에서 단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나올 것을 생각하면
사실 자막을 통하면 얼마나 극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기생충을 저런 식의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는' 번역으로 접근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기생충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물론 대여섯개 언어에 능통한 사람도 많다지만, 지구상의 그 누구도 지구에 있는 모든 언어를 다 할 수는 없으니...언제나 잘못 이해하고 다르게 이해할 소지가 많다.
그리고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에서 "다"가 추가되었을 때의 느낌을 외국어로 정확히 옮길 수 없듯이,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쉽게 옮겨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볼 때, 대사 번역보다 더 안타까운 게 중국어 노래 가사 번역이다. 
그 누구도 정답이 없고 중국어 초보가 제대로 참고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 
방송사 공식 자막조차 중국어 초보인 내가 봐도 당연히 틀린 자막이 나오기도 하고,
중국어 선생님을 자처하는 고수들의 학습 블로그에 가봐도 가사의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각운을 맞추려고 끌고 나온 갑툭튀 단어들, 가사로 부르기 좋게 하기 위한 생략으로 짧아진 문장 등등 탓에 의미 파악이 어려워지는 이유도 있고...
그리고 중국어 동사에 시제 개념이 좀 약해서, 번역기에 노래 가사를 넣으면 (맥락을 모르는)번역기마다 다른 시제가 근본 없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번역기에 의존한 가사 내용을 올리는 분들의 경우는 해석이 저마다 다른 것 같다.      
또한 내가 느낀 바로는 한 구절 가사가 동사로 시작하면 누군가는 그걸 명령문으로 해석을 하고, 누군가는 (주어가 생략된) 평서문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래서 해석이 많이 달라진다. 중국어 대사보다 더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운 게 중국 노래 가사인 듯.



유투브에서 찾을 수 있는, 가사 한 줄 "良辰美景奈何天"에 대한 3가지 자막.



"아름다운 이 시간도 신의 저주를 받았네"(영어 번역)
"좋은 날씨와 풍경 그저 하늘의 뜻일 뿐"(영어 번역)
"아름다운 한때와 풍경이지만 하늘과 함께하지 않아"(스페인어 번역)

같은 가사에 대해서 분명히 능력자가 만들었을 이 자막들도 묘하게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다 다르다. 한 가지 자막으로 이 가사를 받아들일 영어/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이 가사에 대해 전혀 다른 인상을 갖게 된다. 한쪽에선 "저주"라는 강한 단어가 사용됐으므로.

조금 더 공부해보니...위에 예로 든 부분은 ost를 위해 작사된 게 아니고, 위 가사를 앞뒤로 한 4줄 정도는 실제 명나라 때 나온 희곡(牡丹亭)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렇대도 해석은 애매하다.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 하늘인들 어찌하리’ 라는 해석 방식까지 추가 됨🫠 답이 안 나오는 걸로...

위 번역에 등장한 "저주" 같은 식의 과한 번역 아니더라도, 원래 영어 자막에는 초월 번역이 난무한다. 그래도 중국과 한국은 한자 문화권이라 한자로 두 글자인 단어는 한글로도 단 두 글자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영어로 전달하다 보면 사정없이 자막이 길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초월 번역도 필요하다. 영어 자막으로 중드를 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화면에 자막이 가득 찬다. 


难道。。이걸 다 읽으라는 거야??



(그저 단어 때문에 영자막만 길어지는 예시➡️)
他患有肺结核.
그는 폐결핵 환자야.
He has pulmonary tuberculosis.


그래서 영어 자막판 번역은 참고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중국인이 번역했을 법한 가사 자막도 뜻이 제각각이다. 이쯤 되면 '글자 하나가 여러 음과 뜻을 가졌다'라는 한자의 복잡성으로 인해 사실상 중국인들조차도 가사를 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제일 간단한 예로, 현재까지 중국 드라마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며 한국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랑야방'의 ost 중 赤血长殷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한국 방송국에서 '적혈장은'이라는 자막을 달아 방송했고, 현재 국내 어디서나 적혈장은이라는 제목으로 통한다.

하지만 어떤 분 트위터에서 봤더니 이 제목에서 殷은 "성할(은) 중국어 발음 yin"이 아니며, 피의 붉은 색을 의미하는 "검붉은빛(안) 중국어 발음 yan"이 맞다고 한다. 즉 "적혈장".👀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중국 드라마 ost 수록곡 '제목'조차 잘못 알려져 있는데, 가사는 뭐 말할 필요도...

노래를 귀기울여 들어보면 가수도 "옌"으로 발음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은 병음 안내를 봐도 더 흔하게 쓰는 발음인 "yin"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어서, '중국인들조차 한자 다 읽을 줄 모르고 가사를 다들 맘대로 해석 중인 거 아닐까?" 🤔 하는 내 의심이 확고해진다. 

"중국 드라마 대본은 거지같아도 ost 하나는 기차게 뽑는다" 이런 평이 있는데, 실제로 좋은 노래들이 꽤 많은데 제대로 된 가사 해석은 어려워서 아쉽다. 한자의 나열만 몇 개 보고 '와 이 가사 좋다.'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도 제대로 된 문법을 적용해 해석한 것을 보면  잉? 이거 아니네' 싶은 경우도 흔했다. 나 혼자 문법을 무시하고 상상 속으로 가사를 만들었던 것. 지금은 그저 내 취미 수준이지만, 뭔가에 꽂혀 중국어 학습량이 많이 쌓이더라도 결국은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워 보인다. 😶‍🌫️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을 보면...꽤나 어려운 길인 것 같다.

영어 가사는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어도 공부해보면 의미가 확실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 노래는 너무 시적이다. 분명히 구체적 상황을 노래하는 중이었는데 다음 가사는 갑자기 은유적으로 "흙먼지 속에서 꽃은 피네"란다. 어쩔...
그래서 중국어 노래 가사는 더 공부해봤자 배가 산으로 간다. 여기저기 남들이 한 가사 번역을 참고해 보면, 아무리 봐도 이게 같은 곡이 맞나 싶게 각자 다른 산⛰을 타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모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지.
자막으로는 알 수 없는, 어딘가 멀리 존재하는 거기.











내꺼








최근 장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나만의' 화장실이 그립다.

사실 내가 호텔에 혼자 머무를 때 가는 화장실은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던 곳일 테니 위생적으로는 훨씬 안 좋을 텐데도, 적어도 하루 동안은 나만의 화장실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더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성큼성큼






가을이 점점.


종종 가던 동네 칼국수집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맛이 없어서 '이젠 가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집 주변 칼국수집은 대부분 바지락이 기본이라 닭칼국수는 여기 밖에 없어서 오랜만에 갔다.

오랜만에 먹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브레이크 타임도 없어서 좋았고.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