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둔감한 상대방의 단점은
그 둔감함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서적으로 둔감하거나
필요치 않은 기억은 재빨리 삭제하는 상대방은
장점도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크게 줬으리라고 걱정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상처도 덜 받았고, 이미 기억도 못 한다.       

조금 덜 미안해지더라...




한때는 봄







꽃비 날리던 봄은 황사와 미세먼지와 함께 사라졌다.




기대



서울 우리집은 경기도에서 가깝다.
차로는 9분, 맘먹고 걸으면 음.... 40여 분 만에 걸어서 경기도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집 근처에서 경기도로 가는 광역버스가 많이 출발한다.
주말에 모여서 등산 가는 '전세 버스' 역시 집 근처 역에서 많이 출발한다.

오후 4시경에 집 근처 길을 걷는데 학교 이름을 앞에 단 버스가 줄지어 계속 오는 것이 보였다.

'소풍갔다오나봐...'

그런데 시간은 오후 4시. 애매한 시간이다.

'고등학생이라 원래 일찍 일어날테니 애들을 7시부터 모아서 데리고 갔다고 해도 4시에 서울 도착이면 너무 소풍 시간이 짧은데....'


버스의 전광판을 계속 보았다. (요즘 버스들은 종이에 적어서 붙이고 이런 거 안 하고 다 전광판이 있더라 ㅎㅎ)

상인고 5반
상인고 7반
상인고 8반....


상인고가 어디있던 학교더라?

마지막에 지나는 버스에서 맨뒤에 앉은 여학생이 버스 창문을 열어서, 그 사이로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소풍 갔다가 돌아오는 것 치고는 매우 즐거운 표정.
소풍이 끝나가면 지치고 짜증날텐데 말이다.


걸어가면서 검색을 하니
상인고는 대구에 있는 학교였다.

'서울로 놀러온 거구나.'

갑자기 학생의 밝은 표정이 이해가 갔다.
얼마나 기대되고 재미있을까.

바로 일주일 전에 대구에 잠시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도시 규모가 작았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산다고 해도, 사실 모든 문화 생활의 중심은 서울에 몰려있다는 부산 사람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어린 학생들에게 서울은 재미있는 체험 장소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기대를 가지고 찾아올 그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거리를 걸으면서 예상치 못한 눈물이 조금 났다.

그들의 젊음과, 그리고 무엇을 해도 신나할 그 수용성(?)이 부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좋겠다. 얘들아 ㅎㅎ
명분은 '현장 체험 학습'이겠지만, 재미있게 지내다 가길...




잠 자던 나달을 깨운 경기






2016년 3월 인디언 웰스 16강전.
당시 18살이던 신예 알렉산더 즈베레프와의 경기
즈베레프에게 3세트 매치포인트(6-7 6-0 3-5  30:40)까지 잡히고 나서 다시 살아난 경기.

이 경기의 승리 이후로 예전의 나달 모습이 조금씩 돌아왔던 것 같다.
2014년 롤랑 가로스 우승 이후로는 압도적인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정말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나달.

2016년 4월 몬테 카를로 우승에 이어서 바르셀로나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인 니시코리를 2세트 만에 제압하고 바르셀로나에서 9번째 우승.

'자신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알게 됐다.
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믿는 것.


한쪽을 찾으니 다른 한쪽이 없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 목록이 있다.
제대로 보관을 못 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 중 대학 친구들 명단이 주로 있는 부분은 예전에 어디선가 찾은 것 같다.
그러면서 회사 친구나 중고등 친구 명단이 많이 없어서 의아했는데.


최근에 다시 찾으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그 반쪽을 찾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예전 반쪽이 또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 달내에 그 반쪽 명단이 필요한데...
대체 어디서 찾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슬슬
뭔가 보관하는 곳을 일정하게 어디엔가 적어두어야 할 때인가 보다.



어디있을까.

거짓이 기본인 사회 2

 

가장 싫은 것은....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질 것이 명백한데도 일단 거짓말을 하고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싫다.

스캔들로 물러나는 공직자가 "저는 떳떳하기에 이렇게 의심받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정권에 누가 될까 일단은 물러납니다. 저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하겠습니다." 이렇게 사퇴의 변을 밝혔다가, 나중에 명백한 증거가 나와서 죄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져 마지막 공식 사과의 기회도 놓친 죄인이 되는 일,(자기가 저지른 일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텐데 일단은 거짓말을 하고 보는 그 심리 상태가 궁금)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보다도 먼저 탈출한 선원이 "아이들을 구하려 노력했지만 경사가 심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그 경사를 걸어다니며 구명벌을 펴보려고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이 찍힌 사진 증거가 나와 그 변명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진다든지 하는 일.

정말 소름끼치게 싫다.
그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동안 얼마나 쉽게 다른 거짓말을 해왔을까.
그동안 얼마나 대충대충 자신의 잘못을 넘어가고 남의 잘못을 묵인해줬을까.

그 마지막 국민의 앞에 설 기회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그래서 일단 거짓말을 하고 도망쳤던 걸까.
왜 이렇게 한국이
거짓말과 비리에 둔감한 사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평행선


얼마나 많은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혀 보았는가? 

말싸움을 하다가 상대방의 타당성을 깨닫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경우는? 


나 같은 경우엔 거의 없다. 

논쟁이 과열될수록 은근히 자존심도 끼어들면서 

절대 내 주장을 굽힐 수 없게 되고, 

상대방의 편협함을 점점 더, 새삼 더 많이 깨닫게 된다. 

내 자신의 편협함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결국 끝나고 나면 다시 각자의 생각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길을 간다. 마음에 얼마간의 앙금을 남긴 채로... 


그럼에도 왜 또 말을 걸어서 내 쪽으로 끌어당겨보고 싶은 것일까? 

내가 그 쪽으로 갈 리 없듯이, 

그 쪽도 여기로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군' 이런 생각을 수만 번 하면서도 

왜 오늘도 다시 긁어보는 것일까? 


(2004.9.14)


내 안에 남은 기억들 :)

폐 속까지 먼지가 쌓이는 것 같은 시커먼 공기...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는 침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하나씩 엎어져 있는 곤충 시체들...
집을 하루 비운 다음날...나를 비웃는 듯한 탁자 위의 쥐똥.

이 모든 위협들을 뒤로 하고...
그래도 이곳 생활했던 것이 앞으로 평생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남부 아시아"의 이미지가 그대로 체현되는 pettah 시장을 '지저분한' 버스 타고 지나다가 생각했다.

이곳은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고, 영원히 내 속에 남을 거라고. 

Boudin 클램 차우더








2015년 2월에 방문한 fishermans wharf, san francisco.
유명한 Sourdough를 사려는 친구를 따라 boudin bakery & cafe로 들어감.


초점 나간 Boudin 전경 사진




친구는 빵을 샀지만 나는 빵을 한국까지 가져갈 수는 없으니, 클램 차우더 캔을 구입. 6-7달러 사이로 기억. 









실한 크기.... ㅎㅎ
좀 방치해두었다가 1년도 넘어서 조리해본다. 유통 기한 임박.
물을 첨가하지 말고 그냥 익히라고 되어있다.
(Heat, stirring occasionally, DO NOT BOIL)
까다롭다.








그냥 캔 내용을 그대로 쏟아부어 끓이면 이런 모양.
캠벨 수프보다 훨씬 낫다. 내용물이 많다.
그냥 끓이면 좀 짜고, 우유를 좀 넣어서 끓이면 더 부드러운 맛이 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누구나 좋아할 맛은 아니다.


아무래도 캔의 그림처럼 sourdough와 먹어야 훨씬 더 맛있을 듯. 





어려운 길



누구나 살면서 큰 상처를 한번씩 받는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자식들은 그것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처리해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걱정하는 게 싫기 때문.




부모는 '내가 인생은 수십 년 더 살았으니 내 말을 따르라'라고 자식에게 훈계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 '지금 자식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겠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방황을 끝낸 자식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노련한 인생 경험이 쌓여도
남의 고통 눈치채기 어렵고,




자식에게 힘을 주고 싶어도
팍팍한 삶에 돈이 모자란다.


다 큰 자녀에게 재정적 지원이 의미없다..고 하면서도
아무에게도 안 하면 모르되,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특정 자녀에게 쏠린 지원을 결국 부모가 하게 되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자녀에게 상처를 남긴다.








부모의 길이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
아이 하나 낳고 보면 어느새 둘, 셋의 부모가 되어 있는 친구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씨티 포인트 델타항공으로 옮기기




1포인트 = 1원의 가치가 있는 씨티 포인트 12,940p를 델타 마일로 옮김.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생각보다는 금방 647마일이 계정에 들어옴.





포인트가 쌓이는 씨티카드에서 항공마일리지가 쌓이는 씨티카드로 바꾸고 나니
자투리 포인트가 남아서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델타항공 마일리지로 옮기고, 남은 것은 ktx 예약할 때 썼다. 


예전에 15만 5천원 주고 구입한 델타 국내선 항공권으로 580마일 받은 것이나
7만 4천원 주고 왕복한 KE 국내선 항공권으로 418마일 정도 쌓인 것을 생각하면
씨티포인트도 나쁘지 않은 전환 비율인 것 같아서....

(참...그러고 보면 1만 포인트가 쌓이기까지 지출한 나의 돈이 있겠구나...하지만 포인트를 위해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으니.... 포인트는 돈을 쓰다 보면 쌓이는 부산물인 것이지.)



*참고
2017년 4월 28일 오후 5시부터 델타-씨티카드 제휴 종료 
(종료 "시간"까지 밝힌 것이 참 특이하다 ㅎㅎ) 




쉽게 얻어지는 달콤함은 없었다





나는 카페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말이 약간 많아지며, 다음날 새벽 5-6시까지도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다. 카페인으로 적당히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는데, 기분이 아주 나빠지고 뭔가 갑갑해질 때도 있다.


어제 오후 2시부터 4시쯤 까지 오랜만에 아주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집에서 먼 곳에 있는 스타벅스 였는데, 다른 곳보다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카페인 때문에 잠이 안 올까봐
스타벅스 바로 앞 지하철역을 두고 두 정거장 거리(3.6km)를 일부러 더 걸어서 다음다음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하지만
카페인의 여파로 새벽 5시 넘어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침 9시 전에 깼다.
그리고는 낮잠도 잘 오지 않고, 오후 7시 현재까지 가슴이 좀 두근거리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신 것은 좋았지만
지금은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대가없이 얻어지는 달콤함은 없나봐...

schadenfreude

 




schadenfreude
'남의 불운에서 얻는 기쁨, 행복'이라는 뜻이 있는 독일어이다.
딱히 한 단어로 바꿀 영어 단어가 없어서 영어로 된 글 중에서도 저 단어가 그냥 그 의미대로 쓰인다. (shadenfreude로 쓰기도 함)

가끔
남들의 비밀스런 schadenfreude는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

아마 남에게 공개할 수 있는 정도와
공개할 수 없는 비밀스런 schadenfreude도 있을 것이다.
내가 공개할 수 있는 정도의 schadenfreude는 뭐냐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은
내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있을 때 같이 잡으면서 나오지 않고,자기 몸만 쏙 빠져나오는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속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내가 니 하녀야???

예전에 홍대 근처 사거리에 있는 은행 ATM에서 돈을 뽑고 나오는데
내 뒤에 있던 여자분이 내가 문을 잡고 있는 동안 자기 몸만 쏙 빠져나갔다.
젠장! 저 여자 뭐야? 하면서 사거리에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 여자분이 뭘 놓쳤는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방금 인출한 그 분의 돈다발이 길거리에 휘날리고 있었다.
(진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십장의 지폐가 차도에 휘날렸음)
어떤 분은 돈 줍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나는 'ㅋ 꼴좋다!' 하고, 그냥 내 길을 갔다.
보행자용 파란불이 바뀌고 차들이 내달리기 시작하면 돈 줍기 쉽지 않았을텐데...."



이것이 나의 schadenfreude 였다.
얄팍한 내 심보에 도와줄 마음은 실종 ;;;;;;;       

The Sheltering Sky (1990)

 
 
Port Moresby: Well, terra firma.
Tunner: We're probably the first tourists they've had since the war.
Kit Moresby: Tunner, we're not tourists. We're travelers.
Tunner: Oh. What's the difference?
Port Moresby: A tourist is someone who thinks about going home the moment they arrive, Tunner.
Kit Moresby: Whereas a traveler might not come back at all.
Tunner: You mean *I'm* a tourist.
Kit Moresby: Yes, Tunner. And I'm half and half.
 
 
(Morocco 항구에 도착한 Port&Kit 부부와 Tunner)
port: 드디어 땅을 밟는군.
tunner: 아마 우리咱们가 전쟁 시작된 뒤로는 첫 관광객일걸요?
kit: 터너, 저희我们는 관광객이 아녜요. 저희 부부는 여행자죠.
tunner: 그 차이가 뭔데요?
port: 관광객이란 도착하는 순간부터 돌아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야, 터너. 
kit: 반면에 여행자들은 아마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tunner: 그렇다면, 난 관광객이라는 말이군요.
kit: 그래요, 터너. 그리고 나는 반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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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 봤던 6-7년전부터
나는 당연히 여행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 돌이켜보니....
여행지 도착해서도, 돌아갈 비행기 좌석 좀 더 편한 데로 옮길 수 없나 매일매일 앱을 켜서 찾아보던 나는
항상 관광객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돌아갈 과정까지 생각하느라 현재 여행 시간을 잡아먹는....
 
다음 이동해야 할 곳에 대한 정보 관리해가며 항상 시간에 강박을 느끼던 것에서 벗어난 
진정한 여행은 언제쯤 해보려나....




한국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들어왔던 초기에는...











'인터내쇼날' 크림이라고 광고.

"It's rich, creamy and so food" 라.....
굳이 이 단어를 넣었어야 할 이유가? ^^



1990년 당시에 혼자서 며칠씩 먹을 수 있는 2000원 짜리 큼직한 '빙그레 투게더' 아이스크림이나 퍼먹던 나는....
1900원 짜리 조막만한 31 싱글 컵을 먹어보곤 문화 충격을 느낌.
그렇다고 맛에서 "전혀 다른 아이스크림의 세계"를 느껴보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주 나폴리펜션 "오렌지" 방

**** 이 글은 내가  2014년에 같은 숙소를  '르마레 게스트 하우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벙크 베드 침대 1개 숙박을 판매했을 때 경험한 내용을 적은 것임. 2018년 새로 검색해보니, 나폴리리조트에 딸려서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4인 이상 단체 숙박만 받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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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소셜쇼핑으로 검색하다보면 조식 불포함 13,700원, 초저가로 4인실을 예약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정도 가격에 벙크베드를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최소 8인실에서 최대 14인실 정도에 묵어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4인실에 여성 전용이라 조용하지만, '나폴리'라는 펜션에 딸려 있는 부속물로 직원들이 신경을 별로 안 쓴다는 등,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예산 절감 차원에서 그냥 예약.
공항버스 600번 정류장(대포항)에서 가깝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대포항까지 공항버스 요금은 4500원(2014년). 중문에서 롯데, 신라... 각 호텔들을 빙빙 돌기 때문에 한 시간 만에 대포항 도착.
정류장에 도착하면 건너편에 '나폴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헤매기 딱 좋다. 그리고 지도도 잘못되어 있다.


      


지도에서 르마레라고 되어있는 곳은 르마레가 아니고, 베르사체 뒤편 제주 나폴리리조트가 르마레 게스트하우스이다. 나처럼 안에까지 들어가보지 말기를 ㅎㅎㅎ
지도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이 공항버스 600번이 서는 곳이다.

문도 안 잠긴 채 열려 있는 황량한 공용 공간을 가진 방을 들어서면 모든 것은 사진과 같으나 실제로는 조금 더 후진 방이 나온다. 방 전체에 스며 있는 냄새가 완전 마이너스. 대신 개인등과 개인 power outlet이 침대 바로 곁에 구비되어 있는 것은 좋았다.
      





나름 주방도 있고, 방 밖에 냉장고도 있어서 음식 보관 가능하고, 식기도 조금 갖춰져 있으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도 열어놓고 외출하고 미스트도 뿌려보고 했지만 깊게 밴 냄새라서 그닥 효과는 없는 듯.

밤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았는데, 굉장히 늦게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냄새 빼려고 상당히 노력했는데 창문을 닫음과 동시에 효과가 사라졌을 것이므로...아마 이 방에 처음 들어온 이 손님들은 '이 여자는 어째 이런 냄새나는 방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있지?'라고 생각했을지도 ?!?!
아니면 사실....냄새에 예민하지 않은 분은 전혀 못 느꼈을 수도 있다.
      



4인실마다 하나씩 있는 화장실 공간은 넓으나 옛 여관급 퀄리티. 수압이 높은 건 괜찮았으나 욕실도 황량함.
하지만 4인만 사용하고, 1층의 경우 방 바로 옆에 딸려 있다는 것은 장점.


    
그래도 방에서도 바다가 (쬐금...) 보이는 곳이긴 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조금 걸어내려가 5번 버스를 타면 중문을 찍고 돌고 돌아 서귀포 시내까지 간다. 서귀포까지 가려면 시간이 40여분은 걸림.
낮에 갈때는 좋아도 밤에 혼자 돌아올 때는 꽤나 외진 곳. 어두컴컴한 길을 혼자 걸어 돌아옴. 이곳은 웬만하면 차가 있는 분에게만 추천.


* 장점
- 조식불포함으로 초저가로 예약 가능. 나처럼 아침에 식욕이 없는 사람에겐 좋음 (펜션에서 제공하는 조식 먹을 시 5천원 지불)
- 나름 자연 속의 펜션 느낌도 있긴 있음
- 중문 단지까지 가깝다. 버스로는 서너 정거장 정도.
- 체크인 2시부터, 체크아웃 11시까지로 다른 게스트하우스보다 시간 여유가 있다.



* 단점
- 방과 욕실에 밴 냄새
- 낮에 체크인하고 외출하는 동안 아무런 잠금 장치가 없는 방 안에 짐을 남겨놔야 한다
- 와이파이 제공 없음
- 1층 방을 배정 받았는데 위층에서 나는 층간소음 문제가... 그리고 뭔지 모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난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분에게만 추천

* 모바일 아닌, full site 화면으로 접속하셨을 경우, 아래에 "Hostel" 태그를 클릭하시면 제주도의 다른 숙소 이야기도 보실 수 있어요^^*

2011 대만의 여기저기


대만의 어느 온천




중정기념당 - 中正紀念堂.
대만의 초대 총동 장제스를 기념해 지은 곳.






여기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이렇다





 

잠시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등극했었던 타이페이 101 건물이 저 멀리 보인다.
주위에 고층 건물이 거의 없고, 이 건물만 독야청청 높다.




'宜蘭' 가는 길



대만을 떠나며.....







대만 타오위엔 국제야구장 (桃園國際棒球場)








2011년 11월 방문했던 대만 타오위엔 국제 야구장.






20,000석 규모라는데 그렇게 큰 느낌은 안 듦.

















우리가 방문하고 나서 일주일 뒤에 국제 대회를 치를 예정이었다.




 국제 경기가 열리기도 하지만  Lamigo Monkeys 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의 goods shop도 많이 좋아졌지만,
2011년 당시에는 한국의 그 어떤 구단 상품점보다 더 나았던 Lamigo의 구단 상품 샵.








방문 기념으로 하나 받음 :) 






대만 출신 LA 다저스 외야수였던 陳金鋒(Chen, ChinFeng 진금봉씨^^)의 사인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줬던 대만 학생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사진 :)



소화불량일까




소화 불량 증상으로 병원에 갔다.

밥을 먹기 시작하면 평소에 비해 배가 너무 부풀어오르기 시작해서
소화도 안 되고 꽉 막혀 있다가 3-4일만에야 겨우 힘겹게 외부로 배출.
예전에는 1일 1쾌변(!)이었는데 말이다.

20분 가까이 걸어서
동네에 새로 생긴 내과에 갔다.

짧은 머리를 한 앳된 여자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증상을 듣더니
열심히 약 처방만 한다.
나는 너무 속이 꽉 막힌 느낌이라 내시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오후까지 완전 금식을 하고 갔는데 말이다.
그래도 친절하고 시원시원한 분.


아침-점심-저녁에 먹는 약의 조합이 다 다르다.
6종류의 약을 처방 받았고, 아침 저녁 다른 조합으로 한 번에 최대 5알씩 먹게 되어있는데
그중에 항우울/항불안 약이 2종류다.
그래, 많은 병이 심리적인 요인에서 기인하지.


개원한지 얼마 안 된, 어린 의사라서 경험이 너무 모자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마 나의 쪼그라든 얼굴 표정에서 뭔가를 감지했나보다.

대학생 때도 귀를 다친 후 이명 증상 때문에 학교 옆 대형 대학병원을 몇 달간 다녔는데
그 분야의 꽤나 전문가로 인정받으시는 그 백발의 이비인후과 교수님은 나에게 xanax약 한 통을 처방해줬었다.
이명은 사실 사라지기 어려우니, 맘 편히 갖고 잠이나 푹 자라는 뜻이었나보다.
그 약이 그렇게 유명한 약인 줄은 아주 한참 뒤에야 미국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미국 영화 주인공들이 xanax 자주 먹는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병원을 다녀오고 나니
심리적으로 조금은 안정이 되고
약의 힘이든, 뭐든
덜 우울하기는 하다.
소화도 그냥 나아지는 것 같고.
지난 몇 주간 듣지 못 했던, 배에서 꾸루룩 꾸루룩 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로저 이버트 Life itself




어떻게 그를 처음 알게 됐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종종 글을 챙겨보는 영화 평론가였던 로저 이버트.
십년 전쯤 AFKN 채널에서 일요일 오후 3시쯤이었던가... Ebert & Roeper라는 프로그램을 애청했었다. 물론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미국 개봉일과 한국 개봉일이 상당히 차이났던 그 시절에, 그 프로그램은 신작 영화의 예고편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통로였다.







2006년에는 한 해가 지나 저렴하게 파는 ebert의 movie yearbook 2005를 미국에서 사오기도 했었다.


어느날, 그의 투병 소식과 함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고,
사각형에 가까운 그의 인자한 얼굴에 익숙했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Esquire


턱 주위에 생긴 암으로 절제 수술을 하고 숨김없이 카메라 앞에 선 로저 이버트.
사실 이 모습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충격이었다.


그러던 오늘,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Life itself를 중간 부분부터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은 미국 시간으로 로저 이버트가 70세에 세상을 떠난지 딱 3년 되는 날이었다.

평면 사진보다 입체적인 모습은 조금 더 충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과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에는 먹먹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0세에 일생의 동반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까지 충만한 사랑으로 서로를 지키던 그 모습.
점점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나로선, 그렇게 나이들어 마지막을 함께 할 상대를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위안이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을 다룬 부분은 못 보고,
그의 힘겹던 마지막 인생을 다룬 부분만 보게 됐지만
눈을 떼지 못 하고 계속 볼 수 밖에 없었던 다큐멘터리, life itself.




어디에서 살았니?




2016년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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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동시대를 살아도 삶의 양상이 참 다르다.

난 한국에서 태어났고,
당시에는 못 사는 나라 축에 들었던 중국, 스리랑카에서도 얼마간 살아봤고
앞으로도 장기간 동안 초일류 강대국으로 군림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에는 잠시 다녀와 봤고.

내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 자랐느냐에 따라서 삶의 양상이 얼마나 다른지.


서울에서 살다가 스리랑카 콜롬보에 갔을 때는 교통 카드가 없는 것이 참 불편했다.
스리랑카 시내 버스는 모두 차장이 탑승해서 거리별로 요금을 걷는다. 우리의 옛 모습과도 같다.
내가 가고자 하는 정류장 이름을 현지어로 항상 제대로 발음해야 하는 것도 어려웠고, 항상 알맞는 잔돈을 준비해야 했고..... '띡' '띡; 한국에서는 한 번의 터치로 끝나는 일인데 뭐이리 귀찮은 게 많은가.
'으아...교통카드 사업을 들여와서 대박을 쳐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참 단순해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스리랑카에 살면서... 마이클 잭슨이 죽은 것도 며칠 뒤에 알았고, 한국에 아이폰 첫 출시 날짜에 우연히 맞춰서 휴가를 가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반년쯤 더 늦게 알았을 것 같다. 한국도 출시가 빠른 편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하나도 안달이 나거나 불행해하지 않았다. 쉴새없이 모든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있고, 남들이 가진 걸 못 가지면 위축되는 삶.... 스리랑카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맛있는 것 먹고, 내 고양이와 즐기고, 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가끔 여행하고, 그것이면 족했던 삶. 교통 카드가 없는 것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작은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 http://mori-masa.blogspot.kr/2015/10/blog-post_91.html





십 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 잡화점이랄까....문구점이랄까...그런 곳에 우연히 들어갔다.
미국에 가면 유난히 많은 카드. 축하 카드, 위로 카드, 감사 카드....이것저것 디자인을 둘러보다가 생일 축하 카드 섹션에 20세 생일용, 30세 생일용, 40세 생일용, 삼촌 생일용, 숙모 생일용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 카드 종류의 수 만큼 다양한 기회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나라에 살면 그냥 생일 축하 카드만 있는 줄 알고 살텐데, 한 걸음 벗어나보면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 나도 거기서 아빠 엄마의 '30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카드를 골라서 사왔었다.




최근에 누군가 게시판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기내에서 와이파이 되나요? 라는 질문을 올렸는데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폰 꺼야 되지 않나요?' '폰에 비행기 모드가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 인터넷은 기내에서 못 씁니다.'  ' 등등의 답변.
심지어 대한항공 승무원인 친구에게 기내에서 내가 와이파이 사용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눈이 똥그래지며 "기내에서는 와이파이 안돼~"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에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나라인 한국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기내 와이파이가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게 신기했다.
장거리 국제선 최첨단 기재가 아니라 이미 미국 국내선 낡은 비행기에까지도 보편화되어 있는 게 와이파이인데... 물론 몇몇은 이미 사용 경험이 있으니 '외항사는 설치한 곳이 많지만 한국은 아직 아닙니다.'라는 답변한 사람도 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특히 AA의 경우, 기내 접속시 현재의 나의 비행에 남은 시간까지 표시 된다.










나도 물론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알고 있는 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차이가 엄청 크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순간. 아직도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 격차는 크구나 하는 생각.
어떤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 어떤 나라에서는 의외의 일로.
난 우연히 어떤 나라에 태어났을 뿐인데, 그 이유로 상당히 다른 질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하는 격차는 좀 억울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가 더 많고 훌륭한데 영어 구사력이 딸려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며 힘들어하던....20대 중반 이후 미국에 건너가서 박사 학위를 받은 친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세계 인구 70억이 다 그렇게 선택하지 않은 나라에서 '일단'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제주 버스기사 아저씨 인심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은 편인 제주도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라체육관 앞까지 가기로 했다.
버스 한 대 놓치면 다음 버스를 30분씩 기다려야 하는 곳.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 아저씨가 너무 영업을 하려고 하셔서 불편해서 별로.


Daum 지도를 이용해 정류장을 조회해서 나는 이 버스가 맞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버스가 오니 다들 관광객이라 행선지를 물어보면서 타는 분위기.
제대로 탔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에 맞춰서 "아라 1동 복지 회관 가죠?"라고 물어봤다.

"엥? 거기 안 가는데?? 그게 어디여?"
"제가 지도에서 봤는데요. 이 버스 맞던데..."

나도 예상치 않은 응답에 깜짝 놀랐지만, 다음지도에서 이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 안내까지 제대로 지켜서 도착한 버스였는데, 이 버스가 아닐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저씨가 계속 거기 안 가는데....안 가는데...하셔서 계속 타고 있을 수도, 내릴 수도 없었다.

"한라체육관, 거기 근처만 가면 되는데요."
"가긴 가는데..... 뭐 안 되면 시외터미널에 내려서 환승하셔~~"
아저씨는 내가 어딘가 잘못 가게 될까봐 한참이나 버스를 세워놓고 고민하셨다.
시간도 촉박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타고 가기로.


지도를 다시 조회해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짐.
"아저씨, 오라 1동이네요 ;;;;;; 죄송해요ㅜㅜ"
"글치? 아라동은 안 간다니까.... 노인네들 게이트볼 치는 거기인가? 거기서 내려~~"


지리 파악은 잘 안 되어서 내가 한 정거장 먼저 하차 벨을 눌렀더니, 이젠 내부 승객들이 "다음에 내리면 된다"며 나를 성가셔 할 지경.
애초에 나 때문에 출발도 지연됐었기 때문.

그래도 기사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게 나를 한라체육관쪽 바로 앞 정류장에 내려주시고 사라지셨다.
최근 무뚝뚝하고 운전을 험하게 하는 기사 분도 많이 만났는데, 다행히 이번엔 친절한 분을 만나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짐.


모자란(?) 타인에게 인내심있게 베푸는 친절이 하루를 밝게 만들어준다.

'쏘쿨'병에는 답이 없다.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sing any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The Great Gatsby의 첫 문장.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한 문장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고 알게 된 문장이기 때문에, 사실 '만들어진' 감동일 수도 있다. 내가 읽으면서 '맞아, 맞아'하고 공감하면서 넘어간 게 아니라, 남들의 감상문을 읽다가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하게 된 문장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고픈 마음이 들 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혜택을 누리고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겨보라"는 아버지의 충고. (영문학도 사이에선 첫 줄의 'vulnerable'의 번역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유명한 문장들이다.)



요즘 새삼 이 문장의 무게가 많이 느껴진다.
정말이지, 어릴 때부터 많이 받고 자라, 현재에도 유복한 사람들은 정말 남들의 인생에 대해 모르더라. 그러면서 열심히 충고를 한다.

뭔가에 집착할 수 밖에 없이 자란 사람에게 '집착하지말라'며 충고하는
그렇게 '쏘쿨'한 사람들을 보니,
내가 아닌 남의 괴로움은 정말 알기 힘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눈앞에 음식이 놓이는 순간 달려들어 내것을 움켜잡고 게걸스럽게 먹지 않고서는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던 '9남매'집에서 자란 사람에게 "먹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마. 나중에 언제든지 또 생겨"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의미없는 충고.



'쿨'할 수가 없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쿨'해지라며 밑도 끝도 없이 충고하는
'쏘쿨'병에는 답이 없더라.








베스트웨스턴 트래블 카드








저번 달에는 $10짜리를 보냈길래,
'머리 참 못 쓰네... $10보다는 더 큰 금액의 트래블 카드를 보냈어야 다른 호텔 예약하려던 사람이 덥석 미끼를 물텐데...'라고 생각했었다.

4월에는 떠억 $25짜리가 왔다.
실물카드가 아니고 웹상에 번호만 있는 거라서
사실 사전 예약 요금에 인터넷 결제할 때 반영되어 결제하면 편할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pre-paid rates에서는 사용 불가.


•Travel Cards cannot be applied to pre-paid reservations.
•Currency-loaded Travel Cards can be used toward Best Western hotel lodging charges (i.e., room night charges and applicable taxes). Acceptance of the Travel Card for services other than hotel lodging charges is at the discretion of the individual hotel.
•Currency-loaded Travel Cards can be redeemed at any Best Western branded hotel worldwide.
•If a Travel Card is loaded in a currency other than the local currency of the Best Western branded hotel, the Travel Card is still redeemable, and the currency will be converted within the Best Western system.




제약이 많은 트래블 카드네...하고 생각했는데
4월 중순 남쪽 여행 계획이 있어서 베스트웨스턴 앱을 통해 예약을 하려고 보니, 대부분 취소 가능 요금이 많고(= full pre-paid가 아닌), 실제 숙박 요금은 체크인 시에 현장 결제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 트래블 카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산의 호텔에 전화를 해보았다.

그 결과 베스트웨스턴 해운대 호텔은 이 트래블카드를 받지 않고,
서면에 있는 UL호텔은 트래블 카드를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가게 될지 안 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네...ㅎㅎ

참고로, BW해운대호텔이나 UL호텔이나 전화받는 분은 다들 친절하셨다.
왜 불친절할 거라 지레 짐작하고 소심하게 전화했지???


-----추가
"Currency-loaded Travel Cards can be redeemed at any Best Western branded hotel worldwide."

-> 이 말 때문에 아무래도 의아해서 베스트웨스턴 해운대에 다시 전화해봤더니 사용이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답변해준다. 아마 저번에 전화 받으신 분이 신참이라 트래블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안 된다고 답변해버리신 건가??!!??




내 형편 때문에 놓친 친구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내 삶을 인정할 여유가 없었을 때
친구의 '나와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멀어진 친구들이 있다.

그 당시엔 그 친구들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문제였던 것 같다.

별것 아닌 것에도 괜히 화나던 시절.
내 길을 못 찾아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은 그들과는 괜히 맘이 멀어지던 시절.

시간이 지나니
영원한 친구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멀어졌을 친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그 친구들 뭐하고 있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리고 아주아주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들...
사실 내 이름은 약간 독특한 편인데 (동명이인이 별로 없어서 네이버에 이름을 쳐보면 첫 화면에서 내 논문이나 내가 쓴 글을 찾을 수 있다) 혹시라도, 외국에서라도, 슬며시 나를 찾아보는 친구가 있을까...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아까 다른 정보를 찾으려고 12년전 중국에서 사온 잡지를 펼쳤는데
십수년간 잊고 있었던 대학 친구의 편지가 그 사이에 껴있었다.
이 친구는 내가 밀어낸 친구였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져서
나도 그 친구의 이름을 한 번 검색해보았다.




그러다보니, 잊혀진 옛 친구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솔직히는
다시 만나도..... 또 나와 안 맞다고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경험의 폭이 좁은 사람




내 베개는 가끔 수많은 눈물 자국이 번져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그걸 들켰을 때, 뭔가 부끄러우면서도 내가 이렇게 힘들었다고... 말로 하기 힘든 그것을 그 눈물 자국이 전해주길 바랐었다.

"어휴.... 너는 자면서 무슨 침을 이렇게...."
"........."


살면서 베갯잇을 눈물콧물로 적셔보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공감을 기대하긴 무리였지.
처음부터.



 

멕시코 소리아나






멕시코의 월마트 Soriana.
없는 것 없이 파는 대형 매장.
2015년 2월 사진인데, 요즘은 찾아 보니 로고가 많이 바뀌었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초대형 햄. ㅋㅋ
몬떼레이 북부 지역의 이 소리아나에는 나름 무료 와이파이도 있어서, 전화기도 없이 아이패드만 가지고 있던 내가 친구와 계속 연락하며 기다리기에 좋았다.






Suburbia (영어 suburb가 더 익숙하지만 멕시코 발음 수부르비아)
멕시코의 (의류)백화점이라고 한다.
저녁에 친구를 기다리며, 비도 오고 갈 곳도 없어서 소리아나만 몇 바퀴 뱅뱅 돌았는데
먼저 저기도 한 번 가볼 걸 그랬다.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