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육아






예전에 통역 맡았던 나라 남자팀이 너무 예의 바르고 시간 잘 지켜서 여자팀도 덥석 맡았다.

남자팀보다 온순하겠지?? 는 착각.
온순한 건 온순한 건데, 시간을 너무 안 지키고 모든 상황에서 막무가내이다.
내일 일정 계획이 중요한데 계획성이란 게 없고, 과거로부터의 학습이 없다.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득시켜야 한다. 사실 소통도 자유롭진 않지만.

게다가 남자팀은 거의 안 했던 쇼핑에 모두 눈돌아감.👀 특히 임원들이 모든 약속 시간에 다 늦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너무 열심히 뛰던 어린 선수들이 안 됐다. 임원들이 늦어버리니, 누가 "일찍 일찍 다녀~" 라고 잔소리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다 늦어진다.

첫째가 너무 순해서 둘째를 덥석 낳았다가 둘째의 까다로운 성미에 전투 육아를 하는 부모가 된 느낌.




어라...?





얼마전에 여기에 (전에는 안 좋아했던) 호텔 조식당이 그립다고 썼던 게 통했나? 앞으로 며칠간 지겹게 같은 호텔 조식을 먹게 됐다.

하지만 난 단지 '사람들이 열심히 안 먹는 조용한 조식당'이 그리워졌다고 한 건데, 이번엔 일하는 사람들과 먹는 거라 전투적으로 먹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전투 조식.

지금도 첫날이라 정신이 멍하다.
하지만 예전에도 이와 같은 일을 했었는데... 첫날부터 며칠간은 하루하루 넘긴 날짜에 줄을 그어가며 '탈옥'을 꿈꾸어야 할 정도였지만, 결국엔 근래 손에 꼽는 추억이 되었었다.

올해도 그렇게 되기만을 바람.












그런 시기가 있다



길고양이와 많이 친해지면 음식이 없어도 졸졸 따라오는데, 덜 친해진 단계라거나 인간과의 친분에 관심이 없는 고양이는 맛없는 음식을 가져가면 실망해서 거리를 둔다.




그동안 맛있는 거 줬더니, 내가 아무 것도 없이 지나갈 때도 사진 속 저 '은둔의 위치'에서 냥냥거리며 뛰쳐나와서 당황하게 만들더니... 최근 몇 번 성에 안 차는 음식을 줬더니, 오늘은 맛있는 거 가져갔는데도 안 나온다.

애초에 인간의 따스한 체온에는 관심없는 고양이 같고, 먹을 것에만 반응하던 냥이였는데 그동안 내가 가져온 음식 수준에 실망했나보다. 늘 뛰쳐나오더니 오늘은 안 나오니 섭섭하네. 오늘은 양이 적긴 해도 소고기인데...

그래도 내가 이만큼 다가갔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앞으로는 뭔가 냄새를 솔솔 풍기는 맛나는 거 아니고서야 이제 저 위치에서 다시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이젠 안 속아!' 이런 느낌?? 



돌아가던 길에 원래부터도 소고기 부위만 좋아하고 돼지고기/닭고기 류는 안 받아먹던 냥이를 마주쳐 그 냥이가 다 먹었다. 그래도 그 냥이를 만나 다행이네.



취향 확실한 냥이, 동네 아이가 '망고'라고 부름



이 고양이와는 많이 친해졌지만, 이 고양이도 맛없는 거 가져가면 멀리 가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먹을 거 없어도 나를 졸졸 따라온다.




 

안도



2년 전 위내시경 검사 결과지에 드디어 '장상피화생'이 등장했다. 나이 드신 분 결과지에서 보던 건데?!? 그보다 2년 전에는 "보기 드물게 깨끗하네요"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그 외에도 약하게 식도염이 관찰된다고 했었다.

장상피화생은 망가진 위 점막이 재생될 때 장 점막처럼 재생되는 것이라고 한다. 만성 염증의 결과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의사들의 유투브 영상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걱정 말라. 3,40년 산 뒤에 여전히 내 피부가 아기 피부인 걸 기대할 수 없듯이, 위 점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안심하고 살고는 있었는데, 끊을 수 없는 야식 습관과 너무 좋아하는 콜라... 이런 것 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름 쯤에는 갑자기 목 아래 쯤에서 뭔가가 컥 막히며 하루 이상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식도/위장 사이가 조금 느슨해져 있다고 하더니 아예 위산이 다 역류해서 난리가 났나? 이제 제대로 식도염이 왔나보다.. 했다.

하지만 뭔가 심리적인 요인이었는지?? 이틀 뒤 증상은 사라졌고 마침 그 다음날 만났던 내과 의사 친구도 내 증상을 듣고는 큰 관심없이 넘겼다.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흔한 증상이려나...

이번에 정기 검진을 하면서 뭔가 잔소리를 많이 들을 각오를 했다. 최근 갑자기 매운맛 야식이 땡겨서 며칠 연속 먹고 잠들기도 했고, 예전보다 커피도 더 많이 마시고...갑자기 신물이 올라오는 일도 잦고.
아마도 확정적으로 식도 부분은 문제가 생겨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2년 전보다 상태가 괜찮다고 한다. 장상피화생도 별 거 아니라고 하고, 식도 부위는 결과 사진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더니 물론 위산이 역류해 표면이 변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머지는 멀쩡하다.

병원 밖을 나와서 기분이 좋아짐.
나이가 들면 병원 갈 때마다 무서운 기분이 든다 ㅎㅎ 병명이 치명적인 경우가 많아져서.

너무 좋은 결과의 단점은... 방심하게 된다는 거.
4년 전에 " 누구나 있는 '표재성/미란성 위염' 이런 게 없는, 한국인에게 보기 드문 깨끗한 위" 라는 말을 듣고 커피 콜라 술을 맘대로 마신 결과 2년 뒤에는 결국 장상피화생과 만성 위축성 위염이라는 결과지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지금도 매운 컵라면 하나를 부스럭부스럭 끓일 준비 중이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


오랜만에 위내시경 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잠은 안 오고 먹을 거 생각만 난다.

금식중이지만 배가 고픈 건 아니고 
그냥 온갖 음식의 맛들이 머리 속을 떠다닌다.

으흐흠...



🤤



핀란드 정교회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예전에는 일부러라도 스탑오버/레이오버 일정을 넣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지쳤다.

밤 11시까지도 밝은 6월의 헬싱키 시내에 예상보다 이른, 밤 8시에 성공적으로(?) 도착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조그만 호스텔 침대에 커튼을 치고 누워서 '내가 여길 왜 왔지? 으아 피곤타... 낼은 또 비 예보 있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환승지 여행을 택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나 뚜벅이 여행에서 비 예보는 더욱 힘빠지는 일이었다. 


다행히 8-9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은 그래도 힘이 좀 났고 오전에 비가 오기 직전인 것 같은 흐린 도시를 걸어다녔다. 일생 동안 몇 편 못 봤지만, 왠지 북유럽/동유럽 영화에서 본 것 같은...그런 음울한 회색 하늘과 회색 건물들...






다른 이들의 헬싱키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성당 순례기인데, 나는 성당 순례에 그닥 매력을 느끼진 않기 때문에 굳이 거기를 목표로 하진 않았다.

아무 것도 못 보고, 의미없는 레이오버 여행을 마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점심을 먹고 힘을 내어 길을 나섰다. 

헬싱키 도시가 크지 않아서 걷다 보니, 유명한 건물들 끄트머리가 보여서, "그래 저 정도 봤음 됐지. 이젠 바다나 보자" 하고 걸으니 또 바다가 나왔다. 바다와 마주할 때쯤 마침내 회색 하늘이 푸른 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아..





오후 1시 30분



언덕 위 아름다운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침과는 전혀 다른 파란 하늘과 함께.
남들 사진에서 보던 우스펜스키 대성당. 시내가 작아서 굳이 '뭘 하겠다'는 목표로 걷지 않아도 결국은 눈에 다 들어오는구나. 
이렇게 갑자기 화창한 날씨... 

위 사진을 찍기 10분 전 사진.



사진 찍은 시각 : 오후 1시 20분




이렇게 흐렸던 하늘이 몇 분 사이 확 개어버림. 핀란드 정교회는 당신을 환영합니다??ㅎㅎ
오전에 방문했었던 교회는 루터교 교회라고 한다.

저기쯤을 걸어갈 땐 몰랐는데 사진 속엔 이미 우스펜스키 성당이 있다.

성당 근처에 도달해서 날씨가 개면서 사진이 참 예쁘게 몇 장 찍혔다.
이 각도에서 보는 건 성당의 측면이고 입장을 위해선 언덕을 올라야 하지만 가진 않았다. 성당 근처로 다가갈 때인가... 언덕에서 전차가 내려왔다. 난 사진을 찍기 위해 걷다가 길가에 멈춰선 건데, 내가 길을 건너려한다고 판단했는지 전차 안의 여자 운전사가 나를 보고 길 가운데를 지나던 전차를 세웠다. 

엥?😲
헬싱키 시내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와서 교통 문화를 모른다. 보행자를 운전사가 육안으로 식별하고 차를 멈추기도 하는 시스템인가보다. 

내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전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여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아... 전차가 지나가기를 사람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도록 전차가 멈추기도 하는 거였구나.


도착한 당일에는 피곤해서 여길 내가 왜 왔지 했지만
지금은 헬싱키를 갔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첫인상은 '여기 살면 심심하긴 하겠다' 였지만.


원체 인구 수가 적기 때문에 조용해서 좋았던 도시.
러시아 전쟁 이전 항로로서는 서울에서 최단 시간에 유럽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였다. 북유럽답게 물가가 비싸서 실행에 옮기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많이 낯설면서도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는 곳에 "숨고" 싶을 때 헬싱키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말이 쉽지.

 


나달이 은퇴해도 맘의 준비 다 되어있다고 몇 달 전에 쓰긴 했다.

요즘은 경기를 뛰고 있긴 하지만 4연패를 기록 중이고, 본인도 본인을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니...

삶의 낙이 없다.


그렇다고 어느 새벽에 쓰윽~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33세 정도면 은퇴할 줄 알았는데 37세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아직 경기를 뛰고 있다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무엇이든 서서히 사그라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참, 그래도 어느 정도 흥미로운 일은 있었다.

나달이 태어난 지 한 달 갓 넘긴 아들을 데리고 비행해서 이탈리아 대회에 참가 중인 게 너무 신기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안부인사 겸 슬쩍 갓난아기를 동반한 출장(?) 여행이 놀랍다며 메신저로 사진도 보냈다. 

난 아이를 안 키워봤으니, 겨우 한 달 지난 아기를 비행기 태워 아빠 일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역시나'  자신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답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거다. 한 달 갓 넘긴 신생아가 있는 아기 엄마가 '친구가 응원하는 테니스 선수의 육아'가 뭐가 궁금할까. 현재 세상이 자기 아이로 가득 차 있을 텐데 ㅎㅎ.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거야? 🤗 

남의 관심사까지 나도 같이 궁금해하기엔, 내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는 걸 절실히 또 느낀 사례.











Dare to be curious



오늘도 폰 배경화면을 바꾸다가 새로운 걸 하나 배운다. 물론 외국어라서 곧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만.🤗





전차도 보이고 멀리 대성당도 보이고
전형적인(??) 북유럽 영화를 보면 나올 것 같은 딱딱한 회색빛 건물도 보이기에 찍었던 헬싱키 거리 사진.


갑자기 전차 옆 광고 문구가 궁금해서 번역해봤더니

Uskalla olla utelias -> dare to be curious 
라고 한다.
저 광고는 딱히 무엇이 목표인 광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체적으로도 늙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해준 게 헬싱키 23시간 체류였는데...

그렇게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늙어가지 않으려는 노력 중에 가장 필요한 것,
Dare to be curious 라고 생각한다.

늙으면 하던 것만 계속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다.
어릴 때는 "질문왕" 시기가 있을 정도로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궁금하지만, 나이가 들면 "Dare to be" 정도로 의식적으로라도 호기심을 갖지 않는 한, 익숙한 것만 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심지어 타인이 더 편한 길을 가르쳐줘도 '자존심 때문에라도' 내가 해온 것이 더 낫다며 새로운 방식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결국 나이가 들며 잃는 것은 "생기"인데, 호기심이 이 생기를 유지시켜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웃어도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최근 사진을 보며 걱정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찍힌 사진에는 반짝거리는 내 눈빛이 담긴 것을 보면서, 이 "생기"라는 게 삶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사람



내 방에서 라면을 끓일 물을 얻거나 차를 마실 때 쓰던 기구를 대차게 깨먹었다. 100⁰C를 견디는 유리 포트(?!)이니 잘 견딜 거라 착각했지만 강화유리와 내열유리는 또 다른 차원인가보다. 약 50cm 높이에서 낙하했지만 산산조각이 났다.





겨우겨우 잘 쓸어모아서 튼튼한 봉지에 넣고 "깨진 유리 조심"이라고 쓴 뒤, 내 수중에 있는 유일한 현금 1000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전자제품류는 버릴 때에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파트 한켠을 쓸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마대자루에 버려주셨다. 원래 집에서 유리로 된 것들을 버리려면 정해진 마대자루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 하나 깨먹고 그 마대자루를 사기는 아까웠는데 아파트 공동으로 그런 깨진 유리를 처리하는 마대자루가 경비실 앞에 놓여있었다. 돈은 더 내지 않아도 됐다.


정신이 확 나갔다가 돌아오는 느낌. 
이 제품은 이렇게 물을 끓이는 유리 제품과 ➕조리를 할 수 있는 포트 한 세트라서 다행히 하나를 깨먹어도 다른 포트에 다시 물을 끓일 수는 있다. 방에서 요리를 해먹을 생각을 없었기에 작년에 구입한 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나머지 하나를 꺼냈다. 앞으론 여기에 물을 끓여먹지 뭐.




대안이 있으니 내가 하나 날려먹고도 그렇게 절망🤷🙆‍♀️을 하거나 자책을 하지는 않았나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저걸 깨먹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와장창? 챙그랑? 진짜 딱 그대로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현실감있게 났고, 달려온 가족들이 물론 유리니까 걱정을 해줬겠지만 부가적으로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을지... 🤦‍♀️🤦‍♂️

나 혼자 처리하니 이렇게 깔끔하게 문제 없이 끝났다. 추가로 잔소리 들어가며 맘 상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난 타인에게 부담 안 주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괜찮아? 새로 사면 되니까 별거 아님。조심해." 이걸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일까?
나도 무조건 "으이구... 저럴 줄 알았다. 그걸 거기 두면 어떻게 해?? 돈도 안 아깝냐? 저런 걸 맨날 깨먹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아니었을까.

대안이 있고 회복이 가능한 일이라면 남을 다그치지 말고, 그저 안심하도록 걱정만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이렇계 쓰니까 꼭 교훈적으로 끝을 맺어야만 하는 초등학생 일기같다.)





Temppeliaukio Church 헬싱키 암석 교회






암석을 깎아서 만든 교회라는 Temppeliaukio 교회.
사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보면 외부에서나 내부에서 봐도 굳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 잘 안 와서
누군가 건축 과정을 잘못 번역한 것이 그냥 '암석을 파낸 교회'로 유명해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위 사이트(클릭 가능)에서 이 사진을 보니 왜 암석 교회인지 이해가 갔다. 
내가 직접 저 바위 위를 걸어서 올라가 보기도 했었는데 왜 그 일부를 깎아내고 만든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현지인들이 발음을 들려주는 사이트에서 검색해봤더니 '뗌뻴리아우끼오'에 가깝게 발음한다.
번역기에 넣어보니 뜻은 'temple square'
1969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부는 이런 느낌.
헬싱키 다른 교회들과는 다르게 €5 입장료가 있지만, 확실히 한 번 들어가볼 만한 분위기가 있다. 
음향 효과도 좋아서 합창 같은 것이 있으면 아름답게 들린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관광객들 밖에 없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장소에는 남다른 기운이 감돌기도 한다는 것은 믿는다.

교회에 오니 최근 몇년간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친구가 유난히 생각났다. 나에게 전도를 하고 싶어해서 나를 종종 교회에 데려갔던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일까.
그 친구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매우 친했던 친구였는데 언제부턴가 그 애에게서 낯선 반응이 돌아오면서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매일매일 고통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것을 읽고는 있다.

'내가 여기 오니 이상할 정도로 니가 자꾸 생각나서 너를 위해 기도 했어. 평안한 삶을 되찾기를 바랄게' 하고 오랜만에 메시지라도 보낼까 고민해봤지만,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나는 이렇게 집에 박혀서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데, 쟤는 여행을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을 할까봐 그만 뒀다. 
그리고... 오래 연락이 끊겨 대체 걔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거기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연락을 주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손을 놓치면, 이렇게 인연은 주저주저하다가 멀어지는 거겠지.












bánh canh @ 파리 13구



우연으로 만난 음식 반깐.

4월초부터 5월말 파리 숙소 예약을 시작했지만 5월 마지막주 주말은 유난히 호텔 가격이 올라서 예약이 어려웠다. '대체 뭐지?' 
파리에 살다 온 친구에게 물어봐도 '방학인가?' 이 수준의 대답. 😐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마지막주 토요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구장은 파리 북쪽인데도 파리 전역의 숙소가 난리 난리...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파리 남부 13구 끄트머리에 도착 첫날 숙소를 잡게 됐다.

숙소를 잡고 나서 지역 공부를 좀 해보니, 이곳은 아시아계 이민자가 자리잡은 지역이라고 한다. 서울로 치면 약간 '구로구'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위에 아시아 음식점이 많다고. 처음에 숙소를 예약했을 때 어딘가 후기에서 '호텔 옆에 라오스 음식점 가보세요' 라는 글을 보고 약간 호기심이 생겼지만 딱히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착 첫날,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낯설어서 다른 식당 앞에서는 우물쭈물하다가 호텔로 돌아오게 되니, 결국은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편인 그 음식점 "Lao Viet"에 실제로 가게 됐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5개월 만에 구글 지도 사진을 찾아보니 간판에 한자도 써있더라. "寮越"[liáo yuè] - 각각 중국어로 라오스를 뜻하는 寮 , 그리고 '월남' 할 때 바로 그 '월' 글자 越. 라오스-베트남 음식을 동시에 취급하는 식당인가보다.

인기있는 음식점인지 사람은 바글바글했고 앉을 자리는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시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처럼 음식 포장을 기다리는 아시아계 여자분이 통역을 도와줬다. "Emporter" 라는, 나중에 내가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쓰게 된 '포장' 용어도 그 분이 가르쳐줬다. 내가 "오늘 파리 도착 첫 날인데 여기서 음식을 포장해 가려고 한다"고 하니 그분은 왜 파리 중심부에 안 가고 여기에 온 건지 엄청 의아해했다. 아마 대림동 마라탕집에서 줄 서 있는 미국인을 만난 서울 사람 기분이겠지. 😁

겨우 소통이 되어 드디어 나에게 메뉴판이 주어졌다. 메뉴에서 익숙한 pho를 못 찾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맨날 먹던 거 말고 라오스 음식을 먹을 테야' 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아무튼 bánh canh 반깐이라는 이름이 붙은 국수 사진을 보고 그걸로 주문.






마침내 포장해서 호텔로 가져온 음식.
닭 육수 기반이고 선지가 들어있는 게 특이하다. 
맛은 무난한 예상할 수 있는 맛이었고, 여태 생각하던 베트남쪽 국수 면발과는 다른 면발이다. 그래서 당시 연락하던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도 사진을 보내주면서 '라오스 음식 먹는다'고 자랑. 
프랑스 생활 10년 된 그 친구도 라오스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이 'bánh canh'이라는 면이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반깐은 그냥 베트남 음식이다. 
으엥? 난 여태 그래도 13구에 갔기에 라오스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반깐은 그저 pho와는 다른 면발의 베트남 음식 종류일 뿐이라고?!?! 또한 bánh căn이라는 동글동글 구워서 요리하는 베트남 음식도 있었다.

하지만 더 조사해보니, 내가 먹은 국수의 조리법은 라오스의 khao piak과 더 비슷하다. 구글에서 조사해보면 'Khao piak sen' (sen= noodle)은 실제로 저렇게 쫄깃한 면을 넣은, 주로 닭육수를 기반으로 만든 면 요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마늘 플레이크가 뿌려져있지 않다는 점만 다르다.

반깐-라오삐악의 공통점은 저렇게 동글동글하고 어느 정도 쫄깃한 면(타피오카 사용)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베트남에서 반깐을 먹고 온 후기를 보면 대부분 '게' '새우' '도가니'를 넣은 국수이기에, 내가 파리13구에서 먹고 온 국수는 이름은 반깐이되 요리법은 라오스의 까오 삐악 까이(닭)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양다리를 걸친 lao viet인가? ㅎㅎ 어차피 두 나라가 국경이 붙어 있으니, 이 음식도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마늘 플레이크가 없어서 약간 모양새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까오삐악 먹어 봤다'라고 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느 나라 음식이나 공통적으로, 별거 아닌 일상적 현지 요리가 외국에 진출하면 비싼 음식이 되지만 라오스에서는 2000원에 사먹을 수 있는 까오삐악 국수를 파리에서 13300원 주고 사먹고 온 사람 되었음. 🤗

난 면 요리를 꽤나 좋아해서 ⬇️아래 Noodles 태그를 클릭해보면 그동안 먹은 면들 나옴. 😋




그래도 살다 보면....





일찍 결혼해서 일찍 자녀를 낳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운동선수 치고는 늦은 나이 (36세)에
 첫 아이를 얻은 나달이 '출산 휴가🧑‍🍼??'를 마치고 투어에 복귀, 현재 파리 마스터스 대회 준비 중.

중계 화면에 파리 풍경이 많이 보이니, 나도 5개월 전 떠났던 파리 생각을 또 많이 하게 됨.
"내가 응원하는 선수의 대회 우승을 실제로 현장에서 보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기쁨을 얻었던 곳이라서 파리에 애정도가 높아졌다.
8년 전 여행에서는 파리보다 런던이 훨씬 좋았었는데.

그러면서, 8년 전에는 내가 눈앞에서 놓치고 온 것들을 이번에는 많이 실현했구나 싶다.





 

2014년에 정윤성 선수의 주니어 복식 경기를 보다가 사진을 찍어 놨는데, 수년이 흐른 뒤에 사진을 확대해보니 전광판에 루블레프의 이름이 있었다. 주니어일 당시에는 저기 전광판에 있는 4명 모두가 그 또래에서 쟁쟁한 급이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은 루블레프만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내 눈앞에 루블레프가 있었다고??' 물론 당시에는 루블레프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때이긴 하지만 어째서 여러 장 사진 속에 털끝도 등장을 안 하는 거지?? 

유명하지 않았을 당시에 멀리서 찍어 놓았는데 나중에 확대해보니 그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인데, 내 눈앞에서 경기를 벌였을 루블레프가 내 카메라에 하나도 찍혀 있지 않은 게 섭섭했다. 주니어 선수들은 크면서 얼굴이 변하기 때문에 어릴 적 사진 발견하면 더 웃긴 법인데...






하지만 2022년에는 그 루블레프의 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강력한 포핸드를 구사하는 선수로, 힘주어 공을 날릴 때마다 내는 "Bweh~"라는
소리로 유명한 선수인데 그 소리도 직접 들었다. 📢📣







2014년에 멀리 지나가면서 목격한 사크레쾨르 성당.
당시에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었지만 저 근처가 소매치기의 소굴이라는 소문에,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갈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보면 됐지.






하지만 2022년에는 가까이서 이 성당을 지켜볼 기회도 얻었고...
비가 흩뿌리면서 관광객이 드물어진, 그래서 소매치기 방해도 없는, 조용한 길을 홀로 걷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멀리서 건물 끄트머리를 봤을 뿐인 베르사이유 궁전이었지만...






2022년에는 근처에 하루 숙박하면서 이틀에 걸쳐 돌아볼 기회도 생겼다.

코로나가 찾아온 첫해라 모두에게 암울했고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2020년. 

그해 유일한 구원은... 코로나 탓에 기존의 6월이 아니고 10월에 열린 이례적인 롤랑가로스에서 여전히 나달이 우승했던 것이었다. 우승자들은 파리 시내 랜드마크를 돌면서 트로피 기념 촬영을 하게 되는데, 나달은 이미 13번이나 우승을 했기에 더 이상 갈 만한 데가 없어서 디즈니랜드까지 다녀왔을 지경이었지만, 2020년에는 또 새로운 트로피 샷 장소가 나왔다.




 저기는 어딜까....언젠가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구글 지도를 뒤져 장소를 저장해놨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 상황에선 언제 다시 여행이 편해지는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소에도 예상보다 이른 2022년에 가볼 수 있었다. 내가 코로나로 꽉 막힌 2020년에 얼마나 여기에 오고 싶었었는지, 감사하게도 그게 일찍 이루어진 것에 대해 푸근한 마음으로 사색에 빠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는 없었다.

살다 보면,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이룰 기회도 주어지긴 하는구나.



2014년에도 못 이루었지만, 2022년에도 여전히 못 하고 온 것은....

루브르나 오르세를 관람하지 못한 것.

너무 테니스에 방점을 찍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예약 가능 시기가 지났거나 하필 휴관일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가서 볼 수 있겠지?? 인생은 대부분 괴롭지만 어떤 때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벽

 


오래 전에는 부산이 왜 Pusan이라고 써있었는지, 미국에서 자란 교포 언니가 "너희들의 Jesus 발음은 틀렸어" 라고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몇 년 잠시 한국어교육에 몸담은 결과, 이제는 안다.

한글의 어떤 초성은 실제로 그런 발음이고, 외국인에겐 푸산, 피빔밥, 치저스(cheesus)로 들린다는 것을. 특히 '비빔밥'은 그 단어에 들어간 'ㅂ'이 모두 각각 다른 소리가 나는 단어라고 한다. 실질적인 발음이 "피빔빠ㅂ"인 셈이라서. 

그래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받아쓰기가 엉망이다. "남차진구, 진절한 사람"....

아마도 대부분이 "ㅊ"소리로 들리거나, ㅈ/ㅊ의 소리 차이를 솔직히 구분 못하지만 대충 때려잡아서 둘 중의 하나를 돌려가며 적는 것 같다.

나도 영문과지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기에, 한국어학과 3년 졸업하고 떠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써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한국어 대학 "강사" 경력 수년 차에 돌입한 제자들이 여전히 "참미(장미)" 같은 단어를 써서 오는 것을 보면 이걸 어쩌나 싶다.


어려운 단어라면 그렇게 써도 이해하겠는데, 친구나 장미 같은 것은 거의 처음 해당 언어를 배울 때 나오는 기초 단어들인데도 여전히 제대로 못 쓰는 것을 보면 노력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귀로 들을 때 그렇게 안 들리는 것을 어찌 적나요?'도 핑계가 될 수 없는게, 영어만 해도 가장 기본 단어인 'daughter'를 들리는 대로만 쓴다면 'daughter'라고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배우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그렇게 쓰는 셈인데, 가끔 한국어 학습자 중에 "아, 소리 나는 것이 실제 쓰는 것과는 다르구나" 라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 들리는 대로 대충 쓰는 학생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프랑스어 같은 경우에도 Bordeaux 같은 도시 이름을 '제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데요?' 라면서 bordo 이렇게만 써놓고 만다면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은 달달 외워서 쓰는 수 밖에 없다.

기초만 잡아주고 그냥 현지인들에게 남겨두고 온 한국어 교육이 그래서 가끔 무책임하게 느껴져 미안할 때가 있다. 현지 교사가 ㅈ ㅊ 발음을 구별해서 내지 못하고, ㄴ받침과 ㅇ받침 소리 구별이 안 되고, 동대문과 돈대문을 차이나게 발음하지 못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제대로 듣고 배울 것인지. 




한 번은 현지 교사 본인이 구별해서 발음을 할 수 없으니 자체 제작 교재에 "한국어의 'ㅓ'와 'ㅗ' 발음은 같다"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기겁해서 고쳐준 적도 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렇게 알고 있었다니.... 외국어를 -특히 그 발음을- native speaker가 아닌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정말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교육 초기에 학생이 '치곱'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이게 뭘까 궁금해한 적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직업'을 그렇게 적은 것이었다. ㅈ ㅊ 발음을 구별 못 하고, ㅓ ㅗ 발음을 구별 못 하는 것이 결합된 사례.


그리고 한국어 교육의 최대 난제 중 하나가  은는/이가 사용 구별인데, 이건 진짜 어릴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한국어를 써온 사람만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 같다. 말과 글로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고, 10년 가까이 교단에 선 외국인 강사도 여전히 틀린다. 심지어 한국 근대 소설집을 번역해 자국어로 출판할 정도인 외국인 실력자도, 그 책의 고국 출판을 소개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번역한 책은 ☆☆☆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선 당연히 "제가 번역한 책 ☆☆☆에서 출간되었습니다."라고 소개해야 맞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언어는 그저 그 나라에서 어릴 적부터 살며 몸으로 흡수하는 것만이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접수가 안 되는 그 '어감'.


나 또한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영어를 배웠으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어 발음과 문법 실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영어로 소통할 일이 종종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한국인 동기들이 나에게 하던 말들에 그런 뜻이 있었겠구나 싶다. "딱 누나 정도의 영어 발음..." , " 그 자리엔 영어가 너무 유창한 사람은 오히려 어색해요, 누나 정도 실력이 적당할 듯"  

들을 때는 묘하게 기분이 좀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걔들에게는 장미를 '참미'로 발음하고, 동대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돈대문'이라고 발음하는 수준인 내 영어 발음이 귀에 딱딱 꽂혀서 그랬을 듯하다.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