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1. 
나는 남녀가 소위 "꽁냥꽁냥"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데, 나보다 더 딱딱한 것 같은 우리 엄마가 의외로 그런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놀랐다.

2주간 집을 떠나 있으면서, 최근에 내가 본 것 중에 그래도 가장 간질간질했고 옛생각을 불러일으키던  드라마를 엄마께 추천하고 떠났는데...본인이 좋아하면 이틀 안에 40회 분량 드라마도 밤을 새워 다 보시는 엄마가 그 드라마는 중간에 시청 중단하신 걸 확인했다. (내가 앱을 켜면 엄마가 어디쯤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사실 나도 몇몇 부분은 좋았지만
뜬금 너무나 정의로운 삶만 강조하는 내용이라든지, 대학생이 준비하는 중고등학생급 학예회 내용에 지쳐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던 드라마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근래 나온 것 중에는 가장 엄마 취향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집에 돌아와 왜 다 안봤냐고 물어보니 '스토리가 다 그게 그거고 재미없었다'고 하신다.

중국 드라마 특유의... 곱게 잘 생기긴 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눈코입 어느 부위 하나 움직이지 않는 목석같은 남자 주연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표정과 눈빛을 매우 잘 쓰는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내 맘에는 들었다. 그런데 그 배우에게 딱히 아주 미남이라는 느낌이 없는 것이 엄마에겐 몰입 방해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

역시 엄마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두 명이었다.




2.
올해 연말에 했던 일이 괴로웠던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외국인들이 해야 할 본분을 망각한 채 쇼핑에 몰두했기 때문에 내가 그 뒤치다꺼리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행사 개최지가 4년 전 수원과 같은 호텔이었으면 
올해 나에겐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보 거리 내에 쇼핑몰, 백화점, 마트가 다 있던 곳 ㅜㅜ.
여기에 묵었더라면 쇼핑몰 데려다주느라 내가 이리저리 버스 시간 바꾸고, 식사 시간 옮기고, 돌아오지 않는 그들 때문에 주차 시간 걱정하고 ... 이럴 필요도 없이 외국인들끼리 알아서 매일매일 쇼핑 다녔겠지 싶다. 4년전처럼 나는 내 방에서 그저 쉬기만 하면 되고. 

차라리 4년 전 팀과 이번 팀이 숙박 시설이 서로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이 엇갈림.
하지만 인생은 절대 내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















니가 있어 다행이야



조용하게 연말연시가 넘어가지만
몇 명에게 공개된 일기장, 이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조용히 맘을 털어놓는 곳.
누가 보는 건지 모르지만.

이곳에 무심코 써놓은 말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하고.

가장 무서웠던(?) 일은...
11월 말에 시간 약속을 절대 지키지 않는 팀에 대한 불만을 꾸역꾸역 이 곳에 쓰고 곧바로 시간에 딱 맞춰 1층으로 내려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다들 나보다 먼저 버스에 다 타고 있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
당황하지 않은 척 하고 태연하게 버스 출발시킴. 그들이 일찍 온 것이지, 내가 늦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반전은...
'이제 얘들이 각성했나?'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고
그날 딱 한 번 그랬던 거였다.
끝날 때까지 절대 시간을 지키지 않았음.
😔

4년 전과 같은 성격의 단기 알바를 했는데
4년 전 일은 많은 것을 배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올해는 얼른 잊는 게 최상의 해법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기억력도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다행.











broke the spell

 


갑자기 생각 난 일화.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도 각종 루틴으로 유명하지만

팬인 나도 집에서 경기를 혼자 볼 때는 별별 짓을 다 한다. ☺


예전에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떠나고 집에서 혼자 5시간 가까이 나달 US OPEN 결승전을 봤을 때에는 초조함을 잊기 위해?!?! 매 세트마다 원피스를 한 벌씩 갈아입었다. 여름 원피스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기분을 좋게 하는 옷을 입고 있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 경기에서 나달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종종 나달 경기가 안 풀리면 내가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 효과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한 번은 나달과 같이 고생을 하겠다는 (??) 해괴한 논리로 꽉 끼는 옷을 입었는데, 그 때는 잘 안 풀렸다. 쳇! 이건 이제 경기 볼 때는 안 입을 거다. 


나달의 경기를 직접 보겠다며 호기롭게 파리에 갔다가 구해놓은 표가 모두 엇갈리면서 파리 도착 9일째에야 처음으로 나달 경기를 직관하게 된 날, 경기가 없던 전날에 "그 꽉 끼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경기일에 숙박하게 될 호텔에 체크인을 하게 되면 갈아입을 생각으로 일단 그 옷을 입고 테니스 대회장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 중의 하나였던 그날의 호텔로 갔다.


하지만... 테니스 대회장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손님이 몰린 그 호텔은 난장판이었고 얼리 체크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짐만 맡긴 채 입고 온 옷 그대로 경기를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게 아닌데...' 싶긴 했다.


무엇을 입고 왔는지도 잊고 본 경기 1세트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1세트 마지막 나달의 대역전극에 박수를 하도 쳐서 세트 종료 후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였다. 하지만 2세트 막판, 상대 선수의 부상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상대는 기권했지만 어쨌든 나달의 승리. 경기를 끝내진 못했지만 어차피 스코어상으로도 나달이 앞서고 있었다.


몰려드는 인파를 전혀 감당하지 못하는 호텔 탓에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아침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강제로 경기를 관람한 결과, 특정한 옷에 대한 '기피'는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 하지만 사실 그날 너무너무 어렵게 이겼기 때문에 그 옷의 '저주'는 힘을 발휘하고 있긴 했나보다.


ㅋㅋㅋㅋ

내가 아닌 남이, 이렇게 입는 옷까지 집착하며 경기를 본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그 사람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니 안 웃긴다. 










28주 후...

 


지난 6월 파리에서의 마지막 하루.

미술관을 향해 가는 지하철 안에서 마침내 '낭만의 도시 -파리' 를 느꼈다.

그전까지는 낭만의 도시라더니 대체 어디에서 낭만을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던... ㅎㅎㅎ


(사실 찾아가 보니 정기 휴관일이었던) 오르세 미술관 근처의 역으로 향하던 지하철에 악기 연주자가 탔다. 차분한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서울과는 다르게 창문을 열고 달리는 파리 지하철 밖으로 보이는 시커먼 지하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바람을 맞으며 '아, 이런 게 낭만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내리기 직전에 동영상 카메라를 켰다. 

이게 바로 '여행객으로서 느끼는' 낭만이겠지. 파리 시민들은 너무 흔한 일이라 아무 생각이 없겠지만, 서울 지하철에는 뭔가 상업적 목적으로 타는 사람들만 녹음된 음악을 트는 곳인데, 그마저도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 

사실 테니스 대회가 끝나고 파리에 하루 더 체류했는데 별 의미가 없는 시간을 보내서 호텔 비용과 시간만 날린 것 같기도 했지만, 바로 이 순간 하나로 그 하루가 이상할 정도로 의미있게 됐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곡의 제목은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짧게 촬영을 해뒀지만 주위 잡음이 너무 많아서 '소리듣기' 로 검색을 해봐도 제목이 검색되어 나오지 않았다.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이니, 어디선가 다시 들려오면 그때는 제목을 알 수 있겠지...했다.


그렇게 28주가 지나고...TV에서 나오던 남자 두 명의 여행 프로그램 배경으로 드디어 이 음악이 들렸다. 드디어 찾아냈다. I'm not the only one.


반전은... 

' 아, 이런 게 낭만인가' 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사 내용은 무척이나 아픈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지하철에서 들은 것은 아마도 '오보에??'로 연주한 버전이라 가사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본 가사 내용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거의 펑펑 울 것 같은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이 곡은 TV 광고로 인지도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제 곡의 제목을 알고 나서 그 광고를 다시 찾아보니, 가사와 다른 이 곡의 분위기 때문인지 광고에서도 안 어울리는 상황에 곡을 배경으로 쓰고 있었다. 남녀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장면에 ....😓




   


너무 다른 언어


은둔 고양이.

은둔처 앞에 몇 개 놓여있는 밥그릇의 수로 봐서는
나처럼 뭔가 애처로움을 느끼는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고양이같지만 (내가 굳이 신경 안 써도 챙겨주는 다른 이도 많다는 뜻) 그래도 늘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만나기가 쉬워서 핫팩을 하나 놓아 줄까 하고 집을 나섰다.


맛있는 거 안 줬더니 최근에는 맛있는 거 갖고 가도 뚱하니 안 나와서 섭섭하게 만들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이유인지 밖으로 나와서 아옹아옹거리며 나를 부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고로 멀리까지 나를 따라왔다. 그래도 또 가까이 가려하면 저렇게 뒷모습을 보이며 도망간다. 계속 아옹거리기는 한다. 

쓰담쓰담과 궁디팡팡을 좋아하는 동네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손을 뻗치면 도망가는 고양이라서 휴지로 감싼 핫팩을 은둔처 자리로 휙 던졌는데 너무 깊이 던졌는지 돌무더기 사이로 보이지도 않고, 건물 아래쪽 깊은 곳이라 다시 꺼낼 수도 없다. 😔😬


"저거 따뜻한 거야."
'뭔지 모르겠지. 😣 밤에 저거라도 끼고 있으면 될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오늘은 배가 고픈 건지 계속 내 근처를 맴돌았지만 이런 날은 또 먹을 것은 줄 게 없고 핫팩이 뭔지 이해시킬 수도 없다.

다른 고양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언어.
대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
아예 영어조차 한 마디 못 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기분이 이럴까?!?

추운 밤에 은둔처 아래를 돌아다니다 우연히라도 뭔가 따듯한 그 물체를 발견해서 깔고 앉았으면 좋겠네.

4년 전에 제주도 PGA 대회 자봉할 때 주최측에서 나눠 준 핫팩인데 사용기한은 3년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동안 대여섯개를 전혀 안쓰고 있다가 4년이나 지났지만 혹시나 하고 뜯어서 흔들어봤더니 여전히 뜨거워지기는 한다.

워낙 근처로 가는 것도 싫어하는 냥이라 다가갈 수가 없어서 가까이로 핫팩을 휙 던졌다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려서 어떻게 다시 꺼낼 수도 없고 너무 아깝다. 은둔처 돌무더기 사이에서 그냥 식어가겠지.

고양이는 원래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특히나 소통이 너무 어려운 기분이 드는 이 냥이. 핫팩을 발견하기를.


-----''''
다음날 낮에 가서 보니 핫팩을 어디로 던졌는지는 보인다. 하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밤에 이용하지는 않은 모양.




생각보다 움직임도 빠르고 잘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도, 음식을 주면 주위 사물과 구별해서 눈으로 알아채는 게 아니라 킁킁 거리며 냄새로만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은둔 고양이가 된 건가?








영어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영어를 사용하면서 해야 하는 part-time 일이 있는데, 4년 전에는 거절했다가 "솔직히 대단한 영어 실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수락하고 결국은 했었다. 실제로 대단한 실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돌발 상황에 닥치면 이걸 뭐라고 영어로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아서 한계도 많이 느꼈던 일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손쉽게 수락을 했는데 실제로 대단한 실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난 5-6월에 프랑스에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했는데(프랑스어를 할 수 없으니) 생각 외로 필요했던 말은 잘 할 수 있었기에 약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일이 닥치자, 시제는 과거형과 미래형이 꼬여서 나오기 일쑤였고 일상적인 단어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끔 누군가가 TV 같은 데서 영어 하는 것을 볼 때 ' 저 사람은 영어에 그리 익숙한 사람은 아니구나' 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be동사+ 동사' 동시에 튀어나오기 (쉬운 예로 I am woke up 같은) 를 내 자신이 하고 있었다.


그나마 영어로 된 글은 종종 읽지만, 평소에 말로 잘 하지 않던 영어 실력을 제대로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1주일쯤 지났을 때 상황에 익숙해져서 말을 훨씬 더 잘 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선 2주차에도 실력은 제자리였다. 사실상 여행 때보다도 영어를 하루 종일 쓸 일이 더 많았는데도... 😔


게다가 나이 들어서 배운 외국어로서의 영어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모국어처럼 익힌 영어의 차이는 명백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더 느낀다. 어떻게 보면 매우 유창한 것 같은데도 단어 사용 같은 것이 확실히 차이 나는 지점이 있다.





 그 유명한 박진영의 '비닐 바지'를 보고 놀란 GOT7 잭슨 사진을 올린 박진영의 글.

홍콩 출신의 잭슨은 본인 소셜 미디어에서 그 바지를 'plastic'바지라고 칭했지만, 일견 영어가 유창한 듯 보였던 박진영은 vinyl clothes 라는 말을 쓰고 있다. Bing 검색 엔진에  JYP pla....까지만 입력하면 jyp plastic pants, jyp plastic trousers 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되면서 그 사진이 숱하게 뜨지만 jyp vinyl...이란 말은 없다. Bing보다는 한국인의 사용이 잦은 구글에선 jyp vinyl pants가 연관검색어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검색되어 나오는 내용엔 모두 plastic pants라고 써있다.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은 박진영이지만 역시 나이 들어서 배운 한국식 영어를 쓴다는 것이 티가 나는 것이다. vinyl clothes라는 단어가 안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박진영이 입은 의상은 차라리 'clear vinyl'이라고 해야 하고, plastic으로 검색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한 비닐' 옷들이 더 많이 나온다.

매우 기초적인 영어지만, 외국에 가서 우리가 생각하는 '비닐 봉지'를 얻기 위해서는 plastic bag을 달라고 해야 한다.


최근에도 어떤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영어를 매우 현실감있게 구사하는 코미디언이 있어서 그의 경력이 궁금했는데, 외국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성대모사에 뛰어난 코미디언 중에 외국어도 굉장히 잘 흉내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체 흉내로 하는 영어인 건지 외국 생활에서 습득한 영어인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한 단어에서 '이 사람은 그저 억양을 뛰어나게 흉내내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았다. 바로 hip. 다른 코미디언이 옷을 자랑하려고 뒤로 돌아서 카메라에 엉덩이를 들이대자 그 코미디언이 'wow! this is the definition of hip!' 라고 했는데, 영어로 hip은 허리 아래쪽 양옆부분으로 고관절에 더 가까운, 뒷모습과는 상관이 없는 부위다. 즉, 그는 한국產 영어를 쓰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 코미디언이 'butt' 같은 단어를 썼더라면 난 아직까지도 그가 외국에서 영어를 익힌 사람인지 뛰어난 복사기(?)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을 텐데, 한 단어로 인해 정말 뛰어나게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외국어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머리 속에서 한국어 -> 외국어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기에 (비닐 -> vinyl 🙇‍♀️ 엉덩이 -> hip? )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나도 최근에 일하면서 결국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 뜻을 적절히 표현할 영어 번역 과정조차 머리 속에서 원활하지 않아서 어벙하게 대처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결국 끝없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외국어는.





 

우와

 


투어급 대회는 모두 끝나고 비시즌인 지금, 그리스 테니스 선수가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팀 저지를 입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 의사 표명인가? 👱사진 배경을 보니 작년에 사진을 보고 눈에 익혀둔 아부다비의 리조트인 것 같다. 유일하게 투어 대회가 없는 달인 12월에 대부분의 테니스 선수들은 몰디브나 카리브해 같은 휴양지 리조트 사진을 올린다. 


'아...휴가로 이 리조트에 왔나? 예전에 대회 때문에 초청 받아서 와보고 좋았었나 보다.'


그런데 이 리조트는 문을 닫은 건지, 아니면 리노베이션을 하려는 건지, 몇달 전부터 가격 조회가 안 되었었다. '아니, 테니스 선수라고 특별히 받아주는 건가 아니면 영업 재개했나?'

그 선수의 사진을 보고 다시 예약 조회를 해보니, 리조트 자체는 여전히 예약을 받지 않고 있고, 리조트 내 60평 규모의 club villa만 1박에 400만원 넘는 가격에 예약을 받고 있다. 그래, 대회 하나 뛰면 일주일에 수억을 버는 선수들인데 1박에 400만원이 대수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 선수는 휴식 차 그 리조트에 온 것이 아니었다. 매해 새로운 테니스 시즌을 알리는 것과도 같은 아부다비의 exhibition match 연례 행사, 그 때가 벌써 돌아온 것이었다. 

내가 그 행사 때문에 그 Rixos 리조트를 알게 된 지 벌써 1년이 지난 것이었다. 아래 글을 쓴 지도 벌써 1년.





우와... 진짜 시간 빠르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게 벌써 1년이 지난 줄은 몰랐다.


코로나 때문에 무미건조했던 2년을 지나, 그래도 2022년은 꽤나 일이 많았다.

6월에는 '어라? 내가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네?'를 느꼈지만

12월에는 '어라?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를 새삼 느끼며 뜻대로는 되는 일은 역시 없다는 걸 배우기도 했다.


일을 힘들게 끝내고 나서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6월 이후 내가 가졌던 그 의기양양함 때문에 연말에 맡은 일을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을 이 정도 살았으면 절대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극악의 진상을 만날 마음의 준비도 해뒀어야 하는데 순진한 사람들을 만나리라 섣불리 예상하고 너무 풀어진 마음으로 일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행사 중반까지는 내가 만난 외국인들이 날뛰어도 '그래, 그렇게 해달라면 해주면 되지' 라고 그게 그냥 넘어가져서, 내 스스로에게 내가 놀랄 정도로 동요없이 그냥 대처가 되었다. 그래서 아, 나이가 들어 이제 내가 흔들리지 않는구나, 올해 5-6월에 행복을 잔뜩 경험하고 온 것이 연말까지도 정신력에 도움이 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한계에 이르자 모든 게 감당이 안 됐다. 아직 성숙은 멀었다. 


그래도 또 어떤 의미에서는 무사히 한 해가 지나감을 감사해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올해도 또 확실히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채로 보냈다고 자책해야 하기도 한다.



 


 

오우 나에게...





베트남 4만 동이 있네.

괜시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는데 (하지만 이걸 여기에 적는다는 것은 차라리 확 떠나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의미한다) 저가 항공 루트는 결국 극악의 환승 시간을 베트남에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택시든 우버든 그런 류의 운송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차피 공항버스를 탈 텐데.. 하고 정보를 찾아보니 호치민의 경우는 1회 탑승에 5000동이라고 한다. 10년 전에 하노이를 잠시 스쳐간 적이 있어서 그 정도 잔돈은 남아있겠지... 하고 찾아보니 40000동이 나온다. 😁

한국 돈으로 2200원, 2달러도 안 되는 가치이지만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든다. ㅋㅋ
공항은 환전 환율이 안 좋은데, 40000동 잔돈이 있으면 어쨌든 환전없이 일단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 시내에서 더 나은 환율로 환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쌀국수 한 그릇....이런 건 살 수 없는 적은 돈이지만
현재 환율 550원 정도 가치인 저 지폐 한 장이면 수퍼마켓에서 베트남 브랜드 맥주 한 캔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한다.🍺








간만의 희소식?




작년 연말에 이런 글을 적었었는데....




 


이 항공사가 이 기종 항공기를 내년 여름부터 다시 띄운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꺼져가던 꿈이 다시 살아나는...??






읭??

 


(미안하지만) 꽤나 닳고 닳아 보이는 외국 여성.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에게 묻는다.


"나 몇 살일 거 같아?"


솔직히 처음엔 40대인 거 아닐까 했지만 이 정도면 기분 좋겠지? 생각하고  "Thirty...?🤔" 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색 하면서 "뭐라구??? 난 24살이야!!" 라고 한다.


당황해서 "니가 아까 너 결혼했다고 했잖아. 한국의 24살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아. 그래서 그랬어" 라고 변명을 했다.


며칠이 지나서 좀 더 친해지니 자신의 폰에서 사진을 이것저것 보여준다.

생일 파티 사진이 있는데, 케익에 "28"이라는 숫자 양초가 꽂혀 있다.


"너 24살이라며?"

"음... 그건 여권에 나오는 나이야. 난 출생 등록을 늦게 했거든. 실제로는 28살이야."


흠....

그러면 곧 30살인 거 맞구만, 정색하기는 ..... 😶 난 왜 미안해해야 했던 거야? 🤷‍♀️









올림픽 파크텔



비교 체험




행사 막바지에 배정된 호텔.
거의 대부분의 방이 트윈베드 형태로 구성된 걸로 보인다.

그동안 내가 글로벌 체인 호텔 회원 제도의 노예가 되어 너무 획일적인 브랜드들만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와보고 나서 ('성급한 일반화' 이겠지만)
이런 단일 토종 호텔과 글로벌 브랜드 호텔은 같은 4성급이라도 큰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인력들의 숙련도나 응대 수준이 큰 차이가 느껴졌고, 객실 내 비품 구비도 마찬가지.





그나마 최근에 리노베이션을 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자꾸 이전에 머무른 호텔과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묘하게 촌스러운 호텔 분위기에 비해, 리모델링한 1층 조식당은 나쁘지 않은 편이고 호텔 뒷편이 바로 올림픽공원이라서 산책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도보 10분 정도이고 잠실 지역으로 나가려고 버스를 타려 해도 횡단보도 신호 대기 탓에 10분 가까이 소요되는 등 대중교통 이용에 좋지 않다는 단점도 있었다. 카카오택시 등을 이용하지 않는 한, 호텔 앞에서 택시 승차 거부도 두 번 이상 당했다. 최근에는 승차 거부 경험 별로 없었는데, 당시 외국인이 내 옆에 서있었다는 차이 때문인가?!?! 서울 교통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이 이용하기에 특히 좋지 않은 호텔인 듯.

교통 여건이 안 좋은데도 1층에선 늘 수많은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여행을 가게 되면, 그래도 표준화된 서비스의 글로벌 체인 호텔을 선택하는 게 돌발 변수를 줄이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줬다.







전투 육아






예전에 통역 맡았던 나라 남자팀이 너무 예의 바르고 시간 잘 지켜서 여자팀도 덥석 맡았다.

남자팀보다 온순하겠지?? 는 착각.
온순한 건 온순한 건데, 시간을 너무 안 지키고 모든 상황에서 막무가내이다.
내일 일정 계획이 중요한데 계획성이란 게 없고, 과거로부터의 학습이 없다.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득시켜야 한다. 사실 소통도 자유롭진 않지만.

게다가 남자팀은 거의 안 했던 쇼핑에 모두 눈돌아감.👀 특히 임원들이 모든 약속 시간에 다 늦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너무 열심히 뛰던 어린 선수들이 안 됐다. 임원들이 늦어버리니, 누가 "일찍 일찍 다녀~" 라고 잔소리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다 늦어진다.

첫째가 너무 순해서 둘째를 덥석 낳았다가 둘째의 까다로운 성미에 전투 육아를 하는 부모가 된 느낌.




어라...?





얼마전에 여기에 (전에는 안 좋아했던) 호텔 조식당이 그립다고 썼던 게 통했나? 앞으로 며칠간 지겹게 같은 호텔 조식을 먹게 됐다.

하지만 난 단지 '사람들이 열심히 안 먹는 조용한 조식당'이 그리워졌다고 한 건데, 이번엔 일하는 사람들과 먹는 거라 전투적으로 먹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전투 조식.

지금도 첫날이라 정신이 멍하다.
하지만 예전에도 이와 같은 일을 했었는데... 첫날부터 며칠간은 하루하루 넘긴 날짜에 줄을 그어가며 '탈옥'을 꿈꾸어야 할 정도였지만, 결국엔 근래 손에 꼽는 추억이 되었었다.

올해도 그렇게 되기만을 바람.












그런 시기가 있다



길고양이와 많이 친해지면 음식이 없어도 졸졸 따라오는데, 덜 친해진 단계라거나 인간과의 친분에 관심이 없는 고양이는 맛없는 음식을 가져가면 실망해서 거리를 둔다.




그동안 맛있는 거 줬더니, 내가 아무 것도 없이 지나갈 때도 사진 속 저 '은둔의 위치'에서 냥냥거리며 뛰쳐나와서 당황하게 만들더니... 최근 몇 번 성에 안 차는 음식을 줬더니, 오늘은 맛있는 거 가져갔는데도 안 나온다.

애초에 인간의 따스한 체온에는 관심없는 고양이 같고, 먹을 것에만 반응하던 냥이였는데 그동안 내가 가져온 음식 수준에 실망했나보다. 늘 뛰쳐나오더니 오늘은 안 나오니 섭섭하네. 오늘은 양이 적긴 해도 소고기인데...

그래도 내가 이만큼 다가갔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앞으로는 뭔가 냄새를 솔솔 풍기는 맛나는 거 아니고서야 이제 저 위치에서 다시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이젠 안 속아!' 이런 느낌?? 



돌아가던 길에 원래부터도 소고기 부위만 좋아하고 돼지고기/닭고기 류는 안 받아먹던 냥이를 마주쳐 그 냥이가 다 먹었다. 그래도 그 냥이를 만나 다행이네.



취향 확실한 냥이, 동네 아이가 '망고'라고 부름



이 고양이와는 많이 친해졌지만, 이 고양이도 맛없는 거 가져가면 멀리 가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먹을 거 없어도 나를 졸졸 따라온다.




 

안도



2년 전 위내시경 검사 결과지에 드디어 '장상피화생'이 등장했다. 나이 드신 분 결과지에서 보던 건데?!? 그보다 2년 전에는 "보기 드물게 깨끗하네요"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그 외에도 약하게 식도염이 관찰된다고 했었다.

장상피화생은 망가진 위 점막이 재생될 때 장 점막처럼 재생되는 것이라고 한다. 만성 염증의 결과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의사들의 유투브 영상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걱정 말라. 3,40년 산 뒤에 여전히 내 피부가 아기 피부인 걸 기대할 수 없듯이, 위 점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안심하고 살고는 있었는데, 끊을 수 없는 야식 습관과 너무 좋아하는 콜라... 이런 것 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름 쯤에는 갑자기 목 아래 쯤에서 뭔가가 컥 막히며 하루 이상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식도/위장 사이가 조금 느슨해져 있다고 하더니 아예 위산이 다 역류해서 난리가 났나? 이제 제대로 식도염이 왔나보다.. 했다.

하지만 뭔가 심리적인 요인이었는지?? 이틀 뒤 증상은 사라졌고 마침 그 다음날 만났던 내과 의사 친구도 내 증상을 듣고는 큰 관심없이 넘겼다.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흔한 증상이려나...

이번에 정기 검진을 하면서 뭔가 잔소리를 많이 들을 각오를 했다. 최근 갑자기 매운맛 야식이 땡겨서 며칠 연속 먹고 잠들기도 했고, 예전보다 커피도 더 많이 마시고...갑자기 신물이 올라오는 일도 잦고.
아마도 확정적으로 식도 부분은 문제가 생겨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2년 전보다 상태가 괜찮다고 한다. 장상피화생도 별 거 아니라고 하고, 식도 부위는 결과 사진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더니 물론 위산이 역류해 표면이 변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머지는 멀쩡하다.

병원 밖을 나와서 기분이 좋아짐.
나이가 들면 병원 갈 때마다 무서운 기분이 든다 ㅎㅎ 병명이 치명적인 경우가 많아져서.

너무 좋은 결과의 단점은... 방심하게 된다는 거.
4년 전에 " 누구나 있는 '표재성/미란성 위염' 이런 게 없는, 한국인에게 보기 드문 깨끗한 위" 라는 말을 듣고 커피 콜라 술을 맘대로 마신 결과 2년 뒤에는 결국 장상피화생과 만성 위축성 위염이라는 결과지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지금도 매운 컵라면 하나를 부스럭부스럭 끓일 준비 중이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


오랜만에 위내시경 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잠은 안 오고 먹을 거 생각만 난다.

금식중이지만 배가 고픈 건 아니고 
그냥 온갖 음식의 맛들이 머리 속을 떠다닌다.

으흐흠...



🤤



핀란드 정교회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예전에는 일부러라도 스탑오버/레이오버 일정을 넣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지쳤다.

밤 11시까지도 밝은 6월의 헬싱키 시내에 예상보다 이른, 밤 8시에 성공적으로(?) 도착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조그만 호스텔 침대에 커튼을 치고 누워서 '내가 여길 왜 왔지? 으아 피곤타... 낼은 또 비 예보 있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환승지 여행을 택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나 뚜벅이 여행에서 비 예보는 더욱 힘빠지는 일이었다. 


다행히 8-9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은 그래도 힘이 좀 났고 오전에 비가 오기 직전인 것 같은 흐린 도시를 걸어다녔다. 일생 동안 몇 편 못 봤지만, 왠지 북유럽/동유럽 영화에서 본 것 같은...그런 음울한 회색 하늘과 회색 건물들...






다른 이들의 헬싱키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성당 순례기인데, 나는 성당 순례에 그닥 매력을 느끼진 않기 때문에 굳이 거기를 목표로 하진 않았다.

아무 것도 못 보고, 의미없는 레이오버 여행을 마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점심을 먹고 힘을 내어 길을 나섰다. 

헬싱키 도시가 크지 않아서 걷다 보니, 유명한 건물들 끄트머리가 보여서, "그래 저 정도 봤음 됐지. 이젠 바다나 보자" 하고 걸으니 또 바다가 나왔다. 바다와 마주할 때쯤 마침내 회색 하늘이 푸른 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아..





오후 1시 30분



언덕 위 아름다운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침과는 전혀 다른 파란 하늘과 함께.
남들 사진에서 보던 우스펜스키 대성당. 시내가 작아서 굳이 '뭘 하겠다'는 목표로 걷지 않아도 결국은 눈에 다 들어오는구나. 
이렇게 갑자기 화창한 날씨... 

위 사진을 찍기 10분 전 사진.



사진 찍은 시각 : 오후 1시 20분




이렇게 흐렸던 하늘이 몇 분 사이 확 개어버림. 핀란드 정교회는 당신을 환영합니다??ㅎㅎ
오전에 방문했었던 교회는 루터교 교회라고 한다.

저기쯤을 걸어갈 땐 몰랐는데 사진 속엔 이미 우스펜스키 성당이 있다.

성당 근처에 도달해서 날씨가 개면서 사진이 참 예쁘게 몇 장 찍혔다.
이 각도에서 보는 건 성당의 측면이고 입장을 위해선 언덕을 올라야 하지만 가진 않았다. 성당 근처로 다가갈 때인가... 언덕에서 전차가 내려왔다. 난 사진을 찍기 위해 걷다가 길가에 멈춰선 건데, 내가 길을 건너려한다고 판단했는지 전차 안의 여자 운전사가 나를 보고 길 가운데를 지나던 전차를 세웠다. 

엥?😲
헬싱키 시내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와서 교통 문화를 모른다. 보행자를 운전사가 육안으로 식별하고 차를 멈추기도 하는 시스템인가보다. 

내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전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여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아... 전차가 지나가기를 사람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도록 전차가 멈추기도 하는 거였구나.


도착한 당일에는 피곤해서 여길 내가 왜 왔지 했지만
지금은 헬싱키를 갔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첫인상은 '여기 살면 심심하긴 하겠다' 였지만.


원체 인구 수가 적기 때문에 조용해서 좋았던 도시.
러시아 전쟁 이전 항로로서는 서울에서 최단 시간에 유럽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였다. 북유럽답게 물가가 비싸서 실행에 옮기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많이 낯설면서도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는 곳에 "숨고" 싶을 때 헬싱키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말이 쉽지.

 


나달이 은퇴해도 맘의 준비 다 되어있다고 몇 달 전에 쓰긴 했다.

요즘은 경기를 뛰고 있긴 하지만 4연패를 기록 중이고, 본인도 본인을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니...

삶의 낙이 없다.


그렇다고 어느 새벽에 쓰윽~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33세 정도면 은퇴할 줄 알았는데 37세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아직 경기를 뛰고 있다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무엇이든 서서히 사그라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참, 그래도 어느 정도 흥미로운 일은 있었다.

나달이 태어난 지 한 달 갓 넘긴 아들을 데리고 비행해서 이탈리아 대회에 참가 중인 게 너무 신기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안부인사 겸 슬쩍 갓난아기를 동반한 출장(?) 여행이 놀랍다며 메신저로 사진도 보냈다. 

난 아이를 안 키워봤으니, 겨우 한 달 지난 아기를 비행기 태워 아빠 일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역시나'  자신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답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거다. 한 달 갓 넘긴 신생아가 있는 아기 엄마가 '친구가 응원하는 테니스 선수의 육아'가 뭐가 궁금할까. 현재 세상이 자기 아이로 가득 차 있을 텐데 ㅎㅎ.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거야? 🤗 

남의 관심사까지 나도 같이 궁금해하기엔, 내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는 걸 절실히 또 느낀 사례.











Dare to be curious



오늘도 폰 배경화면을 바꾸다가 새로운 걸 하나 배운다. 물론 외국어라서 곧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만.🤗





전차도 보이고 멀리 대성당도 보이고
전형적인(??) 북유럽 영화를 보면 나올 것 같은 딱딱한 회색빛 건물도 보이기에 찍었던 헬싱키 거리 사진.


갑자기 전차 옆 광고 문구가 궁금해서 번역해봤더니

Uskalla olla utelias -> dare to be curious 
라고 한다.
저 광고는 딱히 무엇이 목표인 광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체적으로도 늙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해준 게 헬싱키 23시간 체류였는데...

그렇게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늙어가지 않으려는 노력 중에 가장 필요한 것,
Dare to be curious 라고 생각한다.

늙으면 하던 것만 계속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다.
어릴 때는 "질문왕" 시기가 있을 정도로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궁금하지만, 나이가 들면 "Dare to be" 정도로 의식적으로라도 호기심을 갖지 않는 한, 익숙한 것만 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심지어 타인이 더 편한 길을 가르쳐줘도 '자존심 때문에라도' 내가 해온 것이 더 낫다며 새로운 방식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결국 나이가 들며 잃는 것은 "생기"인데, 호기심이 이 생기를 유지시켜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웃어도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최근 사진을 보며 걱정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찍힌 사진에는 반짝거리는 내 눈빛이 담긴 것을 보면서, 이 "생기"라는 게 삶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사람



내 방에서 라면을 끓일 물을 얻거나 차를 마실 때 쓰던 기구를 대차게 깨먹었다. 100⁰C를 견디는 유리 포트(?!)이니 잘 견딜 거라 착각했지만 강화유리와 내열유리는 또 다른 차원인가보다. 약 50cm 높이에서 낙하했지만 산산조각이 났다.





겨우겨우 잘 쓸어모아서 튼튼한 봉지에 넣고 "깨진 유리 조심"이라고 쓴 뒤, 내 수중에 있는 유일한 현금 1000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전자제품류는 버릴 때에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파트 한켠을 쓸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마대자루에 버려주셨다. 원래 집에서 유리로 된 것들을 버리려면 정해진 마대자루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 하나 깨먹고 그 마대자루를 사기는 아까웠는데 아파트 공동으로 그런 깨진 유리를 처리하는 마대자루가 경비실 앞에 놓여있었다. 돈은 더 내지 않아도 됐다.


정신이 확 나갔다가 돌아오는 느낌. 
이 제품은 이렇게 물을 끓이는 유리 제품과 ➕조리를 할 수 있는 포트 한 세트라서 다행히 하나를 깨먹어도 다른 포트에 다시 물을 끓일 수는 있다. 방에서 요리를 해먹을 생각을 없었기에 작년에 구입한 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나머지 하나를 꺼냈다. 앞으론 여기에 물을 끓여먹지 뭐.




대안이 있으니 내가 하나 날려먹고도 그렇게 절망🤷🙆‍♀️을 하거나 자책을 하지는 않았나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저걸 깨먹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와장창? 챙그랑? 진짜 딱 그대로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현실감있게 났고, 달려온 가족들이 물론 유리니까 걱정을 해줬겠지만 부가적으로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을지... 🤦‍♀️🤦‍♂️

나 혼자 처리하니 이렇게 깔끔하게 문제 없이 끝났다. 추가로 잔소리 들어가며 맘 상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난 타인에게 부담 안 주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괜찮아? 새로 사면 되니까 별거 아님。조심해." 이걸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일까?
나도 무조건 "으이구... 저럴 줄 알았다. 그걸 거기 두면 어떻게 해?? 돈도 안 아깝냐? 저런 걸 맨날 깨먹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아니었을까.

대안이 있고 회복이 가능한 일이라면 남을 다그치지 말고, 그저 안심하도록 걱정만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이렇계 쓰니까 꼭 교훈적으로 끝을 맺어야만 하는 초등학생 일기같다.)





Temppeliaukio Church 헬싱키 암석 교회






암석을 깎아서 만든 교회라는 Temppeliaukio 교회.
사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보면 외부에서나 내부에서 봐도 굳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 잘 안 와서
누군가 건축 과정을 잘못 번역한 것이 그냥 '암석을 파낸 교회'로 유명해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위 사이트(클릭 가능)에서 이 사진을 보니 왜 암석 교회인지 이해가 갔다. 
내가 직접 저 바위 위를 걸어서 올라가 보기도 했었는데 왜 그 일부를 깎아내고 만든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현지인들이 발음을 들려주는 사이트에서 검색해봤더니 '뗌뻴리아우끼오'에 가깝게 발음한다.
번역기에 넣어보니 뜻은 'temple square'
1969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부는 이런 느낌.
헬싱키 다른 교회들과는 다르게 €5 입장료가 있지만, 확실히 한 번 들어가볼 만한 분위기가 있다. 
음향 효과도 좋아서 합창 같은 것이 있으면 아름답게 들린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관광객들 밖에 없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장소에는 남다른 기운이 감돌기도 한다는 것은 믿는다.

교회에 오니 최근 몇년간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친구가 유난히 생각났다. 나에게 전도를 하고 싶어해서 나를 종종 교회에 데려갔던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일까.
그 친구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매우 친했던 친구였는데 언제부턴가 그 애에게서 낯선 반응이 돌아오면서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매일매일 고통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것을 읽고는 있다.

'내가 여기 오니 이상할 정도로 니가 자꾸 생각나서 너를 위해 기도 했어. 평안한 삶을 되찾기를 바랄게' 하고 오랜만에 메시지라도 보낼까 고민해봤지만,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나는 이렇게 집에 박혀서 매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데, 쟤는 여행을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을 할까봐 그만 뒀다. 
그리고... 오래 연락이 끊겨 대체 걔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거기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연락을 주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손을 놓치면, 이렇게 인연은 주저주저하다가 멀어지는 거겠지.












bánh canh @ 파리 13구



우연으로 만난 음식 반깐.

4월초부터 5월말 파리 숙소 예약을 시작했지만 5월 마지막주 주말은 유난히 호텔 가격이 올라서 예약이 어려웠다. '대체 뭐지?' 
파리에 살다 온 친구에게 물어봐도 '방학인가?' 이 수준의 대답. 😐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마지막주 토요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구장은 파리 북쪽인데도 파리 전역의 숙소가 난리 난리...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파리 남부 13구 끄트머리에 도착 첫날 숙소를 잡게 됐다.

숙소를 잡고 나서 지역 공부를 좀 해보니, 이곳은 아시아계 이민자가 자리잡은 지역이라고 한다. 서울로 치면 약간 '구로구'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위에 아시아 음식점이 많다고. 처음에 숙소를 예약했을 때 어딘가 후기에서 '호텔 옆에 라오스 음식점 가보세요' 라는 글을 보고 약간 호기심이 생겼지만 딱히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착 첫날,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낯설어서 다른 식당 앞에서는 우물쭈물하다가 호텔로 돌아오게 되니, 결국은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편인 그 음식점 "Lao Viet"에 실제로 가게 됐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5개월 만에 구글 지도 사진을 찾아보니 간판에 한자도 써있더라. "寮越"[liáo yuè] - 각각 중국어로 라오스를 뜻하는 寮 , 그리고 '월남' 할 때 바로 그 '월' 글자 越. 라오스-베트남 음식을 동시에 취급하는 식당인가보다.

인기있는 음식점인지 사람은 바글바글했고 앉을 자리는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시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처럼 음식 포장을 기다리는 아시아계 여자분이 통역을 도와줬다. "Emporter" 라는, 나중에 내가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쓰게 된 '포장' 용어도 그 분이 가르쳐줬다. 내가 "오늘 파리 도착 첫 날인데 여기서 음식을 포장해 가려고 한다"고 하니 그분은 왜 파리 중심부에 안 가고 여기에 온 건지 엄청 의아해했다. 아마 대림동 마라탕집에서 줄 서 있는 미국인을 만난 서울 사람 기분이겠지. 😁

겨우 소통이 되어 드디어 나에게 메뉴판이 주어졌다. 메뉴에서 익숙한 pho를 못 찾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맨날 먹던 거 말고 라오스 음식을 먹을 테야' 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아무튼 bánh canh 반깐이라는 이름이 붙은 국수 사진을 보고 그걸로 주문.






마침내 포장해서 호텔로 가져온 음식.
닭 육수 기반이고 선지가 들어있는 게 특이하다. 
맛은 무난한 예상할 수 있는 맛이었고, 여태 생각하던 베트남쪽 국수 면발과는 다른 면발이다. 그래서 당시 연락하던 파리에 사는 친구에게도 사진을 보내주면서 '라오스 음식 먹는다'고 자랑. 
프랑스 생활 10년 된 그 친구도 라오스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이 'bánh canh'이라는 면이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반깐은 그냥 베트남 음식이다. 
으엥? 난 여태 그래도 13구에 갔기에 라오스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반깐은 그저 pho와는 다른 면발의 베트남 음식 종류일 뿐이라고?!?! 또한 bánh căn이라는 동글동글 구워서 요리하는 베트남 음식도 있었다.

하지만 더 조사해보니, 내가 먹은 국수의 조리법은 라오스의 khao piak과 더 비슷하다. 구글에서 조사해보면 'Khao piak sen' (sen= noodle)은 실제로 저렇게 쫄깃한 면을 넣은, 주로 닭육수를 기반으로 만든 면 요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마늘 플레이크가 뿌려져있지 않다는 점만 다르다.

반깐-라오삐악의 공통점은 저렇게 동글동글하고 어느 정도 쫄깃한 면(타피오카 사용)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베트남에서 반깐을 먹고 온 후기를 보면 대부분 '게' '새우' '도가니'를 넣은 국수이기에, 내가 파리13구에서 먹고 온 국수는 이름은 반깐이되 요리법은 라오스의 까오 삐악 까이(닭)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양다리를 걸친 lao viet인가? ㅎㅎ 어차피 두 나라가 국경이 붙어 있으니, 이 음식도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마늘 플레이크가 없어서 약간 모양새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까오삐악 먹어 봤다'라고 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느 나라 음식이나 공통적으로, 별거 아닌 일상적 현지 요리가 외국에 진출하면 비싼 음식이 되지만 라오스에서는 2000원에 사먹을 수 있는 까오삐악 국수를 파리에서 13300원 주고 사먹고 온 사람 되었음. 🤗

난 면 요리를 꽤나 좋아해서 ⬇️아래 Noodles 태그를 클릭해보면 그동안 먹은 면들 나옴. 😋




그래도 살다 보면....





일찍 결혼해서 일찍 자녀를 낳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운동선수 치고는 늦은 나이 (36세)에
 첫 아이를 얻은 나달이 '출산 휴가🧑‍🍼??'를 마치고 투어에 복귀, 현재 파리 마스터스 대회 준비 중.

중계 화면에 파리 풍경이 많이 보이니, 나도 5개월 전 떠났던 파리 생각을 또 많이 하게 됨.
"내가 응원하는 선수의 대회 우승을 실제로 현장에서 보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기쁨을 얻었던 곳이라서 파리에 애정도가 높아졌다.
8년 전 여행에서는 파리보다 런던이 훨씬 좋았었는데.

그러면서, 8년 전에는 내가 눈앞에서 놓치고 온 것들을 이번에는 많이 실현했구나 싶다.





 

2014년에 정윤성 선수의 주니어 복식 경기를 보다가 사진을 찍어 놨는데, 수년이 흐른 뒤에 사진을 확대해보니 전광판에 루블레프의 이름이 있었다. 주니어일 당시에는 저기 전광판에 있는 4명 모두가 그 또래에서 쟁쟁한 급이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은 루블레프만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내 눈앞에 루블레프가 있었다고??' 물론 당시에는 루블레프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때이긴 하지만 어째서 여러 장 사진 속에 털끝도 등장을 안 하는 거지?? 

유명하지 않았을 당시에 멀리서 찍어 놓았는데 나중에 확대해보니 그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인데, 내 눈앞에서 경기를 벌였을 루블레프가 내 카메라에 하나도 찍혀 있지 않은 게 섭섭했다. 주니어 선수들은 크면서 얼굴이 변하기 때문에 어릴 적 사진 발견하면 더 웃긴 법인데...






하지만 2022년에는 그 루블레프의 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강력한 포핸드를 구사하는 선수로, 힘주어 공을 날릴 때마다 내는 "Bweh~"라는
소리로 유명한 선수인데 그 소리도 직접 들었다. 📢📣







2014년에 멀리 지나가면서 목격한 사크레쾨르 성당.
당시에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었지만 저 근처가 소매치기의 소굴이라는 소문에,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갈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보면 됐지.






하지만 2022년에는 가까이서 이 성당을 지켜볼 기회도 얻었고...
비가 흩뿌리면서 관광객이 드물어진, 그래서 소매치기 방해도 없는, 조용한 길을 홀로 걷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멀리서 건물 끄트머리를 봤을 뿐인 베르사이유 궁전이었지만...






2022년에는 근처에 하루 숙박하면서 이틀에 걸쳐 돌아볼 기회도 생겼다.

코로나가 찾아온 첫해라 모두에게 암울했고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2020년. 

그해 유일한 구원은... 코로나 탓에 기존의 6월이 아니고 10월에 열린 이례적인 롤랑가로스에서 여전히 나달이 우승했던 것이었다. 우승자들은 파리 시내 랜드마크를 돌면서 트로피 기념 촬영을 하게 되는데, 나달은 이미 13번이나 우승을 했기에 더 이상 갈 만한 데가 없어서 디즈니랜드까지 다녀왔을 지경이었지만, 2020년에는 또 새로운 트로피 샷 장소가 나왔다.




 저기는 어딜까....언젠가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구글 지도를 뒤져 장소를 저장해놨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 상황에선 언제 다시 여행이 편해지는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소에도 예상보다 이른 2022년에 가볼 수 있었다. 내가 코로나로 꽉 막힌 2020년에 얼마나 여기에 오고 싶었었는지, 감사하게도 그게 일찍 이루어진 것에 대해 푸근한 마음으로 사색에 빠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는 없었다.

살다 보면,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이룰 기회도 주어지긴 하는구나.



2014년에도 못 이루었지만, 2022년에도 여전히 못 하고 온 것은....

루브르나 오르세를 관람하지 못한 것.

너무 테니스에 방점을 찍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예약 가능 시기가 지났거나 하필 휴관일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가서 볼 수 있겠지?? 인생은 대부분 괴롭지만 어떤 때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벽

 


오래 전에는 부산이 왜 Pusan이라고 써있었는지, 미국에서 자란 교포 언니가 "너희들의 Jesus 발음은 틀렸어" 라고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몇 년 잠시 한국어교육에 몸담은 결과, 이제는 안다.

한글의 어떤 초성은 실제로 그런 발음이고, 외국인에겐 푸산, 피빔밥, 치저스(cheesus)로 들린다는 것을. 특히 '비빔밥'은 그 단어에 들어간 'ㅂ'이 모두 각각 다른 소리가 나는 단어라고 한다. 실질적인 발음이 "피빔빠ㅂ"인 셈이라서. 

그래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받아쓰기가 엉망이다. "남차진구, 진절한 사람"....

아마도 대부분이 "ㅊ"소리로 들리거나, ㅈ/ㅊ의 소리 차이를 솔직히 구분 못하지만 대충 때려잡아서 둘 중의 하나를 돌려가며 적는 것 같다.

나도 영문과지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기에, 한국어학과 3년 졸업하고 떠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써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한국어 대학 "강사" 경력 수년 차에 돌입한 제자들이 여전히 "참미(장미)" 같은 단어를 써서 오는 것을 보면 이걸 어쩌나 싶다.


어려운 단어라면 그렇게 써도 이해하겠는데, 친구나 장미 같은 것은 거의 처음 해당 언어를 배울 때 나오는 기초 단어들인데도 여전히 제대로 못 쓰는 것을 보면 노력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귀로 들을 때 그렇게 안 들리는 것을 어찌 적나요?'도 핑계가 될 수 없는게, 영어만 해도 가장 기본 단어인 'daughter'를 들리는 대로만 쓴다면 'daughter'라고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배우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그렇게 쓰는 셈인데, 가끔 한국어 학습자 중에 "아, 소리 나는 것이 실제 쓰는 것과는 다르구나" 라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 들리는 대로 대충 쓰는 학생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프랑스어 같은 경우에도 Bordeaux 같은 도시 이름을 '제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데요?' 라면서 bordo 이렇게만 써놓고 만다면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은 달달 외워서 쓰는 수 밖에 없다.

기초만 잡아주고 그냥 현지인들에게 남겨두고 온 한국어 교육이 그래서 가끔 무책임하게 느껴져 미안할 때가 있다. 현지 교사가 ㅈ ㅊ 발음을 구별해서 내지 못하고, ㄴ받침과 ㅇ받침 소리 구별이 안 되고, 동대문과 돈대문을 차이나게 발음하지 못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제대로 듣고 배울 것인지. 




한 번은 현지 교사 본인이 구별해서 발음을 할 수 없으니 자체 제작 교재에 "한국어의 'ㅓ'와 'ㅗ' 발음은 같다"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기겁해서 고쳐준 적도 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렇게 알고 있었다니.... 외국어를 -특히 그 발음을- native speaker가 아닌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정말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교육 초기에 학생이 '치곱'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이게 뭘까 궁금해한 적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직업'을 그렇게 적은 것이었다. ㅈ ㅊ 발음을 구별 못 하고, ㅓ ㅗ 발음을 구별 못 하는 것이 결합된 사례.


그리고 한국어 교육의 최대 난제 중 하나가  은는/이가 사용 구별인데, 이건 진짜 어릴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한국어를 써온 사람만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 같다. 말과 글로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고, 10년 가까이 교단에 선 외국인 강사도 여전히 틀린다. 심지어 한국 근대 소설집을 번역해 자국어로 출판할 정도인 외국인 실력자도, 그 책의 고국 출판을 소개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번역한 책은 ☆☆☆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선 당연히 "제가 번역한 책 ☆☆☆에서 출간되었습니다."라고 소개해야 맞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언어는 그저 그 나라에서 어릴 적부터 살며 몸으로 흡수하는 것만이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접수가 안 되는 그 '어감'.


나 또한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영어를 배웠으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어 발음과 문법 실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영어로 소통할 일이 종종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한국인 동기들이 나에게 하던 말들에 그런 뜻이 있었겠구나 싶다. "딱 누나 정도의 영어 발음..." , " 그 자리엔 영어가 너무 유창한 사람은 오히려 어색해요, 누나 정도 실력이 적당할 듯"  

들을 때는 묘하게 기분이 좀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걔들에게는 장미를 '참미'로 발음하고, 동대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돈대문'이라고 발음하는 수준인 내 영어 발음이 귀에 딱딱 꽂혀서 그랬을 듯하다.



 

온갖 색깔의 향연 ibis styles



중저가 여행에 늘 가장 무난한 선택 - 이비스 스타일스.




한국 3곳, 영국 1곳, 프랑스 3곳을 방문해봤는데 ibis "styles"답게 모두 특색이 있어서 좋았다.
내가 비슷한 등급인 이비스보다 이비스 스타일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비스는 전세계 공통의 실내 디자인을 적용하는 호텔이어서 어딜가나 단조롭지만, 이비스 스타일스는 내부 디자인이 같은 곳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에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흥미롭기 때문이다. 온갖 색깔의 벽을 다 만날 수 있다.






조식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장사하기 어려운 한국에선, 이비스 스타일스가 준비 부담 때문인지(??) "조식 포함"이라는 조건을 2018년경부터 포기했지만 외국에선 무조건 조식을 제공하는 브랜드라는 것도 여행 예산을 줄여주는 큰 장점. 조식당 역시 아기자기하고 특성이 있는 디자인을 해서 어디를 가봐도 방문 재미를 높여준다.

누군가의 "파리 여행 팁" 이라는 글을 봤는데 "조식은 호텔에서 드시지 마시고 카페에 가서 드세요"라고 되어 있어서 이유가 뭘까.. 했더니 "주변 카페에서 다른 걸 드시는 게 인스타 사진에 더 잘 나옵니다." 라고 되어 있었다. 😧 만약 정말로 인스타 사진을 위해 조식을 먹어야 한다면😶, 유럽 이비스 스타일스의 조식당은 저마다 카페 스타일로 예쁘게 꾸며져 있기 때문에 그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ibis styles 단점은... 저예산 3성 브랜드로 분류되기에 accor ALL에서 1박당 포인트를 너무 조금 준다. 1유로 지출당 1.25포인트😒. 노보텔이나 소피텔에서 숙박했을 때의 절반밖에 안 된다.

2022 파리 여행에서도 이비스 스타일스에 4박 했지만 500여 포인트 받은 게 고작. 다른 accor 계열 4성 브랜드에는 2박만 하고 돈도 ²/3 들었지만 700포인트 가까이 쌓였다. 이럴 거면 mercure를 더 많이 갔을 걸 싶기도 했다.





모든 호텔마다 디자인이 다 다르고 재미있어서 한 도시의 이비스 스타일스를 싹 다 방문해보는 여행을 하고픈 소망도 있지만, 그렇게 한 도시에 이비스 스타일스가 여러 개 있는 도시는 대부분 물가 비싼 유럽 관광 도시라서 숙박료는 거의 mercure에 가깝게 지불해야 하지만 돈을 많이 쓰는데도 포인트는 아주 조금 밖에 안 쌓이고, 회원 등급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크게 안 된다.

난 MBTI 맹신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지만 그중 하나 '이건 맞네' 싶은 것은, 내가 '어디 어디를 가보겠다' 는 계획은 전혀 안 세우고 여행을 떠나는 "P" 유형이라는 것. 그래서 호텔을 정하면 그 호텔 위치에 따라서 그나마 그 주위를 중심으로 관광지를 둘러보기 때문에 '호텔 위치가 이끄는 여행'도 나름 재미있다. 저번 파리 여행에서도 조용하고 느낌 좋았던 butte aux cailles 나 batignolles 지역 같은 곳도 호텔 숙박 덕에 알게 된 동네로,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보다 더 기억에 남았다.





ibis styles와는 다르게, 전형적 분위기인 Mercure Paris 조식당. 이런 칙칙한 데선 먹지 말라는 게 여행 tip인가봐.🤔



한국이나 영국에서 가 본 mercure는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라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accor - mercure의 본거지인 파리에선 mercure도 ibis만큼 굉장히 흔하게 있고 호텔마다 디자인이 다 다르고 방마다 파리를 상징하는 특색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Ibis styles 순례 여행 뿐만 아니라, 적어도 파리에선 mercure 순례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파리에서 유일하게 숙박한 mercure는.... 파리 가기 전 정보를 찾으면서 여기저기 사진으로 구경해봤던 mercure 중에서도 방 디자인이 가장 "성의없는" 곳이었지만. 😩



특색도 없고 색깔 구성이 안 예쁨 👀







절망과 동시에 희망




https://youtu.be/nIBzn43vDPI
 




연초쯤 Succession을 본 뒤에 거의 매일 듣다시피했던 OST 곡들.

그 중에서도 이 "Vaulter"는 지난 5월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 자주 들었었다.


"으아... 지금 이 곡의 흐름이 내 심정을 대변해주네. 아 처량하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희망적으로 마무리됐고

이 곡을 요즘에 들으면 그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 + 인생에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동시에 떠오른다.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 곡.


근래 미드 중에서 최고 역작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OST 호평도 많은데, 정말 나도 ost 여러 곡들을 거의 매일매일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그건 그렇다기보다는...

나건 또래들이건 대화중에 저런 말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어쩔 수 없는 꼰대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걸 알겠다. 남의 말은 틀렸고, 내 생각만 내세우려하는...
이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내 글에서 꼰대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늘어날 것 같은데 좀 더 좋은 어감의 신조어 안 생기려나? 하긴, 꼰대가 주는 짜증을 생각하면 좋은 어감을 지닌 단어가 생기기란 너무 어렵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대학생 때부터 과에 "아니 그게.아니라" "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니가 생각하는 그 이유가 아니라.."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 하는 삼수생 동기 오빠가 있었다. 나이를 계산해보니, 당시 24세 🤭. 

24세 꼰대라니, 참신하네.


밀당..이라는 보편성



밀당이라는 단어 정말 싫어했는데
동네 고양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다보니...이게 얼마나 관계에서 중요한지, 매력도를 높여주는 건지 새삼 알겠다. 

참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첫날부터 다리에 달라붙고 수십미터를 쫓아오던 고양이는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았다. 집에서 살다가 버려진 듯한, 인간을 전혀 겁내지 않는 그 고양이의 입장에선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텐데... 




반대로 2년여 만에 마음의 문을 연 고양이는 자꾸 신경쓰인다. 이 고양이는 인간의 친밀함보다는 그저 먹을 것이 필요한 게 보이지만 그래도 더 잘해주고 싶다. 노령 길고양이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 먹을 것도 좋은 것만 줘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야 이 고양이가 나를 알고 다가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밀당..또는 튕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런 류의 말. 내가 아무리 그 말을 싫어해도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통하는 감정이기에 그 단어가 생겨났구나 싶다.



드라마같은 순간




싫증이 빨라서😁 폰 배경화면을 거의 매일 바꾸고 있는데, 그래서 사진첩을 훑다가 사진 찍은 지 4개월 만에 알았다.

2022 롤랑가로스 결승전은 진짜 하늘이 도운 날이었다는 것을.

결승전 전날, 다음날 비 예보가 있어서 걱정했었다.
나달이 롤랑가로스에서 힘겹게 넘긴 경기는 대부분 비가 오는 축축한 날씨였다. 바로 전날 준결승에서도 비가 많이 와서 지붕을 닫고 경기하는 바람에 양쪽 선수가 땀을 줄줄 흘려가며 힘든 경기를 했다. 심지어 익숙치 않은 경기장 상태로 인한 피로도때문이었을까...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준결승이 2세트만에 끝나버리기도 했고. (경기 끝나고 나오니 파란 하늘이 펼쳐짐) 

⬇️ 결승 경기 당일 일요일 오전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보내줬던 현지 일기 예보.(카톡 기록된 한국 시간 오후 3:10 ->  프랑스 시간 오전 8:10) 





일요일 결승 시작 시간인 오후 3시를 전후로 뇌우 예보까지 있었다. 🌩😥 내가 보던 날씨앱에도 'thunderstorm'이라는 말이 떠서 '대체 화창한 6월에 그것도 결승전에 이게 뭔 난리야?'라는 식의 생각을 했던 게 어슴푸레 기억 난다.


남자 결승전 전날 토요일 경기에서 우승했던 이가 슈비온텍의 일요일 낮 트로피 샷.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하늘.





경기 시작 전 오후 2시, 필립 샤트리에 코트 바깥 상황...
저건 분명 비구름인데 😬






제발 비가 안 오기를, 지붕 닫지 않게 되기를 바람.





그동안 사진을 찬찬히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오늘 다시 보니, 경기 시작 전 결승날에만 있는 무용 공연(2시 50분)까지만 해도 흐렸던 날씨에서...





3시 3분, 선수들 등장과 함께 반짝반짝. 갑자기 해가 나왔다가 사라짐.
해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해가 없을 때는 코트 안에 서있는 사람들 그림자가 없지만 해가 구름을 제치고 나오면 그림자가 생기는 걸로 알 수 있다.

이제야 내가 찍은 동영상의 시간을 확인하니 현지 시간 오후 3시 6분에 찍은 영상에도 그림자가 없는데, 오후 3시 10분, 나달의 경력(?) 소개와 함께 다시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 소개가 끝나고 1세트에는 다시 구름이 끼긴 했지만 2세트부터는 나달의 공 바운드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반짝이는 날씨가 계속되었고, 대회 우승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

정말 하늘이 도운 하루.
뒤늦게 타이밍이 이 정도로 극적이었던 것을 발견하면서, 혼자 감동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어렵게 떠난 여정이었는데 그날 마치 누군가가 내가 행복하도록 도와준 것처럼 느껴져서.
드라마 내용 중에...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갔다가 뒤늦게 매 순간순간마다 타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주인공이 감동해서 우는 걸 많이 봐서 그런가, 나도 홀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결승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오후 7시 넘어서 그제야 예보대로 강한 비가 후두둑 쏟아짐.






요즘... 종교라는 게 별 건가 하는 생각도 한다.
어떤 우연에 의해 내가 행운을 찾으면, 인과 관계가 없는 그 시간과 그 조화에 인과 관계가 있었다고 믿어버리는 것. 절대자를 믿지 않는 내가, 경기 시작 직전에 해가 났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무엇인지 모를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 
그 테두리 바깥 사람이 보기에는 그 믿음이 '이게 뭔소리야?'싶게 매우 의문스럽다는 것 :) 


사실 남자 결승전 전날 - 여자 결승 때도 경기가 무사히 종료된 뒤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딱히 남자 결승전에 참석한 사람만이 겪었던 행운이 아닌데도 말이다. 




롤랑가로스 14회 우승을 기록한 태양왕(Le Roi de Soleil) 라파 14세.
으흐흐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