ලොකු මතක ගොඩක් (A lot of great memories)



කවදා හරි දවසක

නුවර පාරේ
බස් එකක නැගලා

මේ බිම් කඩ පහු කරද්දී
ඹේ පපුව ඇතුළේ
හීනියට ගින්දරක් මතුවෙලා

ලොකු මතක ගොඩක්

පුංචි හිනවක් මුව අගටත්

චූටි කඳුලක් ඇස් අගටත්

එයි මචං...




내가 일했던 대학교 사진과 함께, 제자가 위의 문구를 퍼와서 본인 페북에 게시했다.
단어 몇 개를 보니 느낌이 오는 내용이었다.
오늘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해석을 하니, 확실해졌다.

어느날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마주친
모교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
두번째 줄의 නුවර පාර가 내가 일했던 대학교가 위치한 도로 이름인데,
내가 살던 집 주소 역시 그 도로 이름을 사용했다.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나도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긴 했지만 가끔 නුවර පාර를 따라 20여 분 걸어가면 나오던 나의 학교.


아무리 읽어도 '문자 음독'만 가능할 뿐, 내용은 감을 잡을 수 없는 글들 투성이였는데
그래도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을 만나 기쁘다.
흑흑.

몇 년 외국에 살다 왔다면서
그나라 말 잘 못 하는 사람 비웃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이야.

차라리 이렇게 단어 읽는 거, 단어 뜻 기억해내는 거가 낫지
말로 하는 것은 똑같이 2년 살고 온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못한다.ㅠ.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꼬불꼬불 글씨를 읽고 일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게 신기해진다.

내가 이 글자 읽을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මම මෙලෙස ඇවිද ආවෙමි
ඔබ මග කියාදුන් නිසා


ඔයා නත්තල් කලින් එන එකට අකමැතිනම්

ඇයි මේ ෆොටො එකට හිනැහෙන්නේ?



의식




영어권 사람들 중에, 특정 나이를 지나면 "oo years old" 대신에 65 years "young"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들은 본다.

처음에는 참신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 통념을 거부하는, 자기 식대로 삶을 살겠다는 표현이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나는 오늘로 70 years young이 되었다" 라고 쓰는 것 자체가
이미 늙은 것이고 나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17살인, 21살인 사람들은 "23 years young"이라고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살며, 나이를 의식도 안 하고 사니까.


마음이 흘러흘러




일명 '소셜 미디어'....
내가 가장 분주한 시절을 보낸 곳은 싸이월드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한다.

2008년경 부터 아무 생각없이 끄적였는데
2013-2014년쯤부터 내 관심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기 블로그가 되었고
모르는 사람도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인터넷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네이버]인데
내가 관심있어서 글을 꾸준히 쓰던 주제에 대해서는, 네이버에 그 단어를 치면
내 블로그가 가장 먼저 검색되어 나왔었다. 내 블로그는 네이버 블로그가 아닌 싸이월드 블로그인데도...

그래서 그 단어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는 날이면 어떤 때는 수천 명 방문자가 찾아오기도 했던 블로그.
나중에는 아무 성의없이 끼적거린 글인데도, 자연스레 검색 첫 페이지에 나와서 천여 명이 읽고 가는 바람에 조금은 글 쓰기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블로그.


2015년 가을,
십여 년 만에 외국에서 친구를 만났다. 내 생활을 궁금해 하는.
그 친구가 성공적인 직업을 갖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이뤄놓은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친구 "매일 밤 늦게 잔다고? 대체 그 늦게까지 뭘 하는 거야?"
나    "........"


그때 입 속에서 꾸물꾸물 "야, 네이버에 XX(국제적으로 유명한 일임) 한 번 쳐봐. 내 블로그가 제일 먼저 나올테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블로그의 공개는 내 생활상의 공개이기도 해서 꺼려졌다.
그 친구가 말로만 내 생활을 궁금해했을 뿐, 내 블로그를 안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네이버에 XX 검색해보라고 말 안 하길 진짜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싸이월드 블로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싸이월드의 개편으로 '싸이홈'이라는 이름으로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이상한 형태로 통합되었고, 네이버 검색에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친구에게 차마 말을 하진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나마 내가 7년간 한 일 중에 뭔가 꾸준히 해서 티가 나는 일은 블로그 뿐이었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에, 그 결과물은 사라졌다. 매일 3-400명이 찾아오던 블로그엔 싸이월드 개편 이후로 3,4명의 방문자가 찾아왔다.



방문자가 줄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몇 주간 싸이월드에 접속 자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속내를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심심? 초조? 우울?해졌다.

그래서 결국 구글 블로그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곳은 이제나 저제나 조용하다.
네이버는 구글 블로그를 등한시해서 네이버를 통해 방문자가 유입되는 일도 드물고
한국인은 구글 검색 자체를 별로 안 하기 때문에 구글을 통한 유입도 드물다.

한때 나의 싸이 블로그에 댓글을 많이 달아주는 애독자였던 친구에게 이곳 구글 블로그를 만들었을 당시에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 친구가 그때처럼 댓글을 많이 달아주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갖게 되길 바랐지만
그 친구는 싸이월드에도 발길을 끊었고 여기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3년 전 이맘때, 싸이홈이라는 데에 끄적여 놓은 글을 보면, 바뀐 싸이도 낯설고 새로 옮긴 구글도 낯설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엄청 심적으로 외로웠었지.


나는 아직도 싸이홈도 하고, 구글 블로그도 하고, 페이스북도 한다.
한국 사람 사이에서는 인스터그램이 대세라서, 그냥 인스터그램에만 주로 일상을 소개하고 다른 매체에는 똑같은 내용+인스터그램 주소만 그대로 링크해서 올려놓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싸이월드, 구글 블로그, 페이스북에 각각 다른 내용을 쓴다.
뭐 일상이 거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새 각각 다른 내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3년 전에 그렇게 낯설었던 구글 블로그가 이제 가장 편해져서
가장 마음 속 이야기는 여기에 쓰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절친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싸이월드는 그냥....미련이 남아서 예의처럼, 습관처럼, 끼적이는 내용들.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어쩌면 사회 생활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대부분이 스리랑카 학생들이라, 나는 거기서 '착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는 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혼자 좋아하고 살다가 한 방에 걷어차이고 이혼한 전남편 같고,
구글 블로그는 혼자 남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결국 내 옆을 지키게 된 새 남자친구,
페이스북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사귀는 친구 느낌이다.

아픔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북적북적 부대끼던 옛 시절을 못 잊어, 여전히 서로 예의차리고 안부 묻는 ex남편 싸이월드.
슬슬 정은 붙어 가지만, 친구가 너무 없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은 새 남자친구 구글 블로그.
남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숨겨놓고 싶기도 한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있으면 뭔가 자연스런 내 모습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식적인 내 모습 연출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international한 친구 페북이.








1월 24일




수요일 이불 속 오후 1:47





2018년을 아직 두 달쯤 남겨놓은 현재,
그렇게 힘들고 짜증났던 사진 속 이 즈음이 (아직은) 2018년 중에 가장 편한 나날들이었다는 걸 이제 알겠다.

그땐 힘들어서 멍하니, youtube에 음악 켜놓고 들으며 누워있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조차 행복.


남은 두 달 동안에도 뭔가,
당시에는 약간은 힘들더라도 결국은 좋은 기억이 될 순간들이 찾아오기만을 바랄 뿐.




경험




골프채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나지만,
골프 대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수 있었던 기회.






테니스 대회의 경우에도 국제 대회 (ATP250)에 먼저 참여해보고 나중에 국내 대회를 보게 되어 (예산 상) 어쩔 수 없는 수준 차이를 느꼈었다.

골프 대회의 경우에도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 중 가장 크고 국제적인 대회에 먼저 참여해보게 되어서, 아마 작은 대회에 가면 더 실망할 듯 하다. 집에서도 중계를 종종 보기는 했던 골프지만... 첫 조 경기가 7:30am부터 시작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고생 좀 했다.   






이틀은 흐렸던 날씨.
골프 대회는 비가 와도 어느 정도는 진행한다고....







그 다음부터는
거의 하루 종일 드는 햇빛. 11번 홀의 '양지바른' 티잉 그라운드. 
외국인 캐디들도 이곳은 sunbathing 하는 곳이라고....

전래동화에 왜 "양지바른" 곳에 모셨......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지,
양지가 왜 중요한지 절절히 느끼게 해주었던 곳.

나는 저 위치 담당이라 거의 고생을 안 했는데, 그늘 쪽에 배치되어 한라산 바람을 그대로 맞은 사람들은... 가을에 느끼는 강추위로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 우승을 통해 세계 랭킹 1위가 된 선수 바로 옆에서 그의 샷을 지켜봤어도,
골프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어디로 눈을 돌려도 오직 초록과 파랑/하양 뿐인 (어느 정도) 폐쇄적인 공간에 대한 매력은 조금 느낌.
그래서 사람들이 으스대며 private course에 다니는 거겠지.
'여기 아무나 오기 힘든 데예요' 하면서.













제주 애월 바다




시간 여유가 좀 있었던 날.
도저히 맛없는 호텔 조식은 못 먹겠고,
스타벅스 기프트카드가 있으니 스벅에서 브런치를 먹기 위해 제주의 스타벅스에 가기로 함.

3년 전 갔던 함덕 해변에 당시에는 없었던 스타벅스가 들어와 있어 거기로 갈까 하다가,
가보지 않았던 곳이 나을 것 같아서 더 검색하던 차에
애월에 바닷가로 향한 2층 테라스가 있다는 스타벅스를 발견.


호텔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정도의 거리를
자동차가 없으니, 버스를 갈아타고 걸어걸어 거의 두 시간 만에 스타벅스 제주애월점 도착.






음...테라스의 바닷바람은 상쾌하긴 한데,
눈앞에 전깃줄이 가리는 ....그렇게 좋은 전망은 아니다.

오전에 와서 홀로 이 테라스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세 팀 정도가 차례로 테라스로 나왔다.
다들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말, "아, 좋다~" 라고 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나는 곧 안으로 들어와서 실내에 앉았는데,
다른 팀들도 생각보다 금방 안으로 들어온다.
ㅎㅎㅎ
그들도 실망한 건가?

스타벅스 제주 애월점은 바다 전망을 위해 굳이 가 볼 필요는 없는 것으로....

혹시 그래도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11시 이전,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
그 시간대 이후에는 와글와글 시끌시끌 & 아기가 울어대는,
전국 어디에서나 가볼 수 있는 흔한 스타벅스가 된다.







카페를 나와서 그저 한적한 길가의 풍경이 훨씬 낫다.






이름만 듣던 애월, 애월....
드디어 갔다 왔다.
수박 겉핥기였지만.

역시 차 없이 뚜벅이 이동을 하기에는 너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버스 기사분들도 친절했고 그것 또한 하나의 즐거운 여정이었다.


애월 가는 길에, 카카오 프렌즈가 그려진 작은 삼다수 물병을 들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을 다 마시고 남은 작은 빈 병이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멍하니 (그러나 예민하게) 다음 정류장은 어디인가 주시하고 있었다.
내 뒤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유, 이렇게 작은 삼다수도 있나? 이거 어디서 파나? 이거 이제 필요없죠?" 하신다.

할머니께서 병이 예쁘고 귀엽다며 이 병을 소독해서 본인이 쓰시겠다고 하신다. 흔쾌히 할머니께 드리고 나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공짜로 생긴 물병인데....
할머니의 옆자리 지인들끼리 대화를 주고 받으신다. "아고, 아직 저런 거 좋아하시는 거 보니 여전히 젊으시네~~"


얼마 뒤, 어떤 정류장에서 한 아줌마가 "부탁 좀 합시다~" 하시며 묵직한 검정 봉지를 기사 아저씨 발치 언저리에 놓으신다. 그리고 지갑에서 3천 원을 꺼내 기사 아저씨께 드린다.

'어머? 제주 버스는 짐 실으려면 돈 더 내야 하는 거야??'


"Xxx 까지. 그냥, 몇 분쯤 도착할지만 알려주셔~~"
"25분 뒤요."

아줌마는 물건을 내려놓고 총총히 내리심.


알고 보니, 이것은 버스가 하는 '정류장 TO 정류장' 배달이었던 것이다.
25분 뒤 도착하는 - 그 부탁한 정류장에 물건 받을 사람이 나와 있으면 되는 것.
3천 원은 정해진 돈인지, 뭐 암묵적 룰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도시와는 좀 다른 정겨운 지역 생활상을 보는 것 같아 제주 버스 여행이 즐거워졌다.





오랜만, 공항.



엄청 오랜만에 비행기 타게 됨.
제주도에 잠시 일하러(?) 놀러(?) 가는 길.







공항에 도착했으니, 엄마께 잘 다녀오겠다고 문자를 날리기 위해 남의 게이트 앞 증거 사진 한 장.

얼마 뒤, 내가 타고 갈 탑승구 쪽으로 이동.
나는 공항에서 내가 탈 비행기 근처에서 바로 대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쪽에 가 있다가(가끔은 일부러 완전 반대편에도 간다), 탑승 시간이 되면 내가 탈 게이트 앞으로 이동하곤 한다.

국내선 공항의 규모는 사실 비행기 출발 시각 30분 전쯤 도착해도 문제 없을 정도의 규모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일찍 도착하게 되어, 늘 게이트 앞에서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할 일없이.... 내가 타고 갈 비행기의 Tail number 까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타게 될 A330의 고유 번호는 HL7553.
2-4-2 좌석 배열인데, 단체 예약 항공권이었기 때문에 내가 미리 좌석 지정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출발 당일 키오스크 체크인을 하려고 보니 2좌석 창가자리는 이미 모두 만석.
내 자리는 4열 배열 가운데 좌석의 오른쪽 복도 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자는 스타일이라, 창밖을 보거나 하는 것을 좋아해서
장거리 비행에도 늘 창가 좌석을 택하는 편인데, 정말 오랜 만에 '강제로' 복도석에 앉는다.
그래도 60분 비행 밖에 안 되고, 4명 앉는 좌석 한가운데 갑갑하게 끼지 않은 게 어디야.

아침 시간 비행기, 출발 시간은 가까워 오지만 내 자리 옆 복도 건너 2인 창가 좌석의 승객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재잘재잘 수학여행단을 포함한 완전 만석 비행기였는데 말이다.
'꼭 저렇게 늦게 비행기 타는 사람들이 있지.'😈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 이제 곧 이륙 준비를 시작합니다~~ 블라블라~~"


'어, 저거 승객 다 태우고 비행기 문 닫았다는 소리인데?? 승객 2명 끝까지 비행기 안 탔구나... 히히히'

승무원이 overhead bin이 잘 닫혔나 점검하면서 복도를 지나가는 찰나, "빈 자리로 옮겨도 돼요?" 라고 물어봄. 허락을 받고 잽싸게 옮김.


히히히
수학여행단 포함 이 복잡한 기내에서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창가 2인석 획득.
좀전까지 4열 배열 내 옆자리에 친구끼리 앉아서 얘기나누던 아줌마가 엄청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만석이라서 자리 없댔는데!! (=우리 둘이 저 자리로 갔어야 했는데)"  

예전 내 뒷자리 복도석에 앉으신 아줌마도 자꾸 내가 옮겨 앉은 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저 창밖을 응시한 것 뿐일 수도 있고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만약 그 아줌마도 자리를 옮기고 싶으셨던 거라면, 그나마 그분보다 앞쪽에 앉아있었던 내가 눈치 작전에서 이겨 운좋게 선점한 거지 ㅎㅎㅎㅎ


제주에 취항하는 대부분의 3-3 배열 협동체 비행기에 안 좋은 자리에 앉았던 기억 뿐인데

정말 오랜만에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비행. 🛫🛬
좌석마다 USB 포트도 있어서 충전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내 바로 뒤에 아마도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여고생들이 앉았는데, 착륙을 위해 바퀴가 나오면서 '쿠궁' 소리를 낼 때 '어머, 뭐야?' 하면서 무서워 한다. 다들 저런 첫 비행 시절을 거쳐서, 비행에 무감각해지는 거지 😊😉


집에 돌아와서 HL7553 비행기록을 조회해보니, 이 비행기는 베이징을 기본으로 방콕이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도 다녀오는 비행기, 그래서 내부 시설이 좀 더 좋은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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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밤 비행기는 B747이었는데, 시장바닥보다 더한 혼돈 그 자체 제주공항 탑승장에서 사진 찍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단체 일정상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 시간은 남아돌았지만....

탑승하니 기내는 많이 낡아 있었다. 하긴....B747이 언제 적 비행기인지.






내가 제주 -> 김포를 탔던 비행의 tail number를 검색해보니, HL7461 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주일 전 김포에서 출발할 때 내가 탈 게이트 옆 게이트를 지나가다 그냥 찍어놓은 사진이 이 비행기였다. HL7461.
내가 일주일 뒤 타고 돌아올 비행기를 먼저 찍어놓았던 셈이군.

이 HL7461 비행기는 그저 붙박이로 김포 <-> 제주만 하루에 3회 왕복하고 있는 비행기였다.
뭔가 퇴역을 앞둔 노인의 소소한 일거리로 보임. 4년 전쯤 B747을 타고 제주에 갔었는데, 어쩌면 이 비행기였을 수도...🤔🙆🏻
꽤 오랜만에 B747을 탔더니 정말 많은 사람이 탄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고, 짐이 다 나오는데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3-3배열의 협동체보다는 적어도 2-4-2 이상의 좌석 배열 광동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타게 되니, 기다림의 시간도 길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경험하게 됨.


** 2019년 들어서는 국내선 구간에 B747을 잘 운항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2018년 끝자락에 공짜로(!) 이 낡은 비행기를 타보는 기회를 가졌던 셈. 아마도 앞으로도 B747 탈 일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지나간 뒤엔 다 아름다워




지난 8월에 서랍을 열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쪽지 하나 때문에
갑자기 향수병(?) 생김.






15년 전 톈진 살면서 라디오 주파수 맞춰가며 방송국 이름 기록해놨던 종이인데...
이것 하나 때문에 뜬금 톈진에 대한 흥미가 다시 살아남.

그 뒤로 두어 달 간 띄엄띄엄 지도를 살펴보거나
예전 살았던 흔적을 찾아보거나
내가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한다면 어느 호텔에 갈까를 상상해오곤 했다.


호텔 위치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하다보니
톈진은 상당히 특이한 도시였다.

19세기 중반부터 1947년까지 무려 9개국이 들락거리며 조계 concession 로 나눠먹은 도시였던 것.
영국(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벨기에, 러시아 조계지 각각의 구역이 있고, 흔치 않게 그 당시의 행정부 건물, 각국 은행 건물 들을 잘 보존해 놓은 곳이 톈진이다.

물론 당시 8개월 동안 살면서 도시를 돌아다녔을 때도 그런 서양식 건물들을 많이 보았던 것이 어슴푸레 기억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나라가 땅을 빌려 통치한 줄은 몰랐다. 지금도 중국의 많은 도시가 겪고 있는 문제지만, 사실 톈진의 공기가 너무 안좋아 도시를 맘껏 탐험하며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지냈던 것 같다.

일명 '서구 열강' 침략의 역사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각각의 구역들을 관광 자원으로 멋지게 개발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톈진 도시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사진만으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꼭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아, 왜 그때 살 때 당시에는 그걸 몰랐을까.
주중에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긴 했는데, 주말은 그래도 자유였는데.
나 나름 역사에 관심 많던 사람이었는데. 좋은 기회를 놓쳤네.


변두리 아파트 단지에 살던 내가 그래도 '시내'에 나간다고 나갈 때 가던 곳은 지금 새삼 공부해보니 프랑스, 영국의 조계지였던 곳들.
각 조계지 거리마다 하나 하나 걸으면서 사진을 남겨놓았다면 좋았을 뻔 했다. 지금처럼 '폰카'가 있었다면 사진이 아마 많이 남았겠지.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도 흔치 않던 시절.


내가 살던 때는 영국 조계지 행정 청사(administrative building)도 그대로 있었을 텐데, 2010년에 그 건물을 해체 이전했고, 지금 그 자리에는 톈진 최고의 호텔이 들어서 있다. 워낙 시내 중심부라 아마 오다가다 여러번 이 건물을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무슨 건물인지도 몰랐고, 아무도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한국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 있던 것은 기분 나쁜데, 다른 나라의 행정 시설은 그냥 관광의 기분으로 호기심이 생기다니...뭔가 역지사지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톈진시는 이 행정부 건물을 완전 해체하지는 않고, 강변으로 위치를 옮겨다 놓았다. 그냥 역사의 한 흔적으로서 남기는 듯. 시내 중심부에 아예 五大道라고 해서 서양식 건물이 많은 5개 거리를 관광지로 묶어 개발해놓았다. 내가 살 때는 그런 이름은 없었다.


아마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엄청난 도시 미관 변화가 있었던 듯 한데, 초대형-초고층 건물을 빽빽히 세우는 중국 스타일 대공사가 시작되기 전 옛 모습을 간직한 톈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쇼핑몰만 왔다갔다 하다가 8개월이 끝난 것 같다. 쇼핑에 몰두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시 가진 정보로써는 주말에 그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 밖에 몰랐고, 내가 살던 곳은 지금 보니 톈진 도심 남서쪽에 치우쳐 있었다. 지금 도시 공부를 하다 보니 톈진의 중심은 내가 살던 곳보다 좀 더 북동쪽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조계지 같은 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강을 건너 북동쪽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인데 나는 8개월 동안 그 강 건너편은 기차를 타기 위해 딱 한 번 가봤을 뿐이었다. 그쪽 지역은 좀 무섭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변이 너무 아름답게 개발이 되었고, 이탈리아 조계지는 이탈리아 방식으로 거리를 꾸며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뭔가 나는 그 도시의 옛 모습의 산 증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첫 외국 생활이었고, 잘 몰랐고 너무 소극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 아쉽다. 당시에는 그 '기회'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








또한, 톈진역에서부터 전철로 1시간 25분 정도 걸리는 빈하이新區 지역에 매우 미래지향적인 문화 시설을 지어놓았더라. 도서관의 내부 디자인이 특히 유명한데, 안에 들어가보면 실제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책 사진"이라고 ㅎㅎㅎㅎ 중국답다. 시간을 들여 힘들게 찾아 간 외국인 방문객들의 평가가 하나같이 안 좋다. 그저 "instagrammable" 인 곳인 듯.


그저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 이곳에 가고 싶은 건 아니고(후기를 보니 그것 밖에 할 일이 없다고ㅋㅋ), 다른 각도의 사진들을 보면 공간감이 무척 좋아보여 여기도 한 번 가보고 싶다. 15년 전에 살면서 늘 이름으로만 듣던 塘沽, 泰达지역에 있다.





지저분하고, 공기 매캐하고, 한정된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기억 속에 그냥 회색빛으로 남아 있던 톈진이 다시금 이렇게 끌리는 것을 보면
그저 지나간 뒤엔 다 아름다운 건지.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내가 살 당시의 중국은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한, 그런 발전 단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여유를 찾아서 도시를 아름답게 개발하고 관광객을 모을 생각을 시작한 것이지, 내가 살 때는 그저 삭막했었다.



그 너머에는...




예전에는 모든 것이
좋아하는 것과 그냥 그런 것, 싫어하는 것 등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주위에 어떤 물체이든, 사람이든, 아주 크게 나누면
'좋아하는 것'과 '안 보이는 것'으로 나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싫어하는 것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흔히들, 좋아하다의 반대말은 싫어하다가 아닌 무관심 이라고들 말한다.
원래 여기서 '관'은 관계의 관인데... 내가 생각하는 무관심의 '관'은 觀- 볼 '관'이라고 할까.
觀心이라는 단어도 존재해서, 그 뜻은 [마음의 본성을 살핌]이라고 하는데,  無觀心....마음(중심)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생각도 없는.....


청소를 등한시하는 사람은 동거하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기 마련인데,
그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는 게으름 + 그냥 너저분한 살림들이 "안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편하다.
그런 사람들과는 좀 치우고 살라고 몇 년을 싸워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는 너저분함이 그냥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더러움이 불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인간을 시력 좋아지라고 들들 볶을 수 없듯이, 태생적으로 안 보이는 걸 좀 보라고 들들 볶을 수도 없다. 지저분함이 안 보이는데 뭘 치우란 말인지. 그들과 싸우지 말고 포기해야 편하다.


타인이 나를 싫어해서 했던 행동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 중에
그냥 내가 "안 보여서", 나의 고통이 "안 보여서" 했던 행동도 많을 것이다.



어떤 여자분의 글을 보았다.
본인에게 오빠의 자녀와 개월수가 같은 한 돌짜리 아기가 있고 친정 가족모임을 갖는데,
친정엄마가 자기 아이(외손주)가 옆에 있는데도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오매불망 입구 쪽 앉아서 아들의 도착만 기다리더니, 오빠의 아이(친손주)가 도착하자 곧장 품에 안고 내려놓지 않더라는 내용이었다.

딸 되신 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이해가 간다. 딸이 속상해서 직접 전화해서 따졌더니, 엄마로부터 "친손주랑 외손주가 같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연히 글을 보았을 뿐 내가 이 사람들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는 그냥.... 이 친정어머니는 외손주가 "안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손주 만날 생각에 설레어.

외손주가 몸서리처지게 "싫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외손주가 옆에 있어도 다른 손주 생각하느라 "안 보여서" 한 번 안아주지도 않고 친손주만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아프지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 것을 노력해서라도 보아달라고 투정할 수는 없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 보이고, 그것의 단점은 안 보이고 그런 과정은 참 신기하다.
모든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좋아함'도 그렇고,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나는 솔직히 '종교'에도 이런 속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래서 뭔가를 좋아한다, 좋아하기로 결정한다...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삶의 태도 대부분을 좌우한다.


어떤 영화를 본 이후로...   http://mori-masa.blogspot.com/2018/06/do-you.html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뭔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가끔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보다 그 사람이 나를 한 사람으로 '좋아'해주는 게 더 고맙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냥 어떤 의무감에서 나온 사랑을 받기보다는, 그냥 정말 좋아해주면 좋겠다.












언젠가는




처음 call me by your name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는 '사랑' 이야기보다
주인공의 부모님이 가장 기억에 남았었다.

요즘은
대부분이 이 영화의 백미로 꼽는, 영화의 후반부에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특히 밑줄 친 부분....



"How you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just remember,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 is worn out, and, as for your body, there comes a point when no one looks at it, much less wants to come near it."






우리의 마음도, 신체도 늙어가면서 어느 시점에는 누구도 봐주지 않고, 가까이 오지 않으려하는 때가 온다고. 그 유한성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뭔가 서글픈 생각도 들고
나로서도 점점 나이 든 사람과는 같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스트레스가 쌓이니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뭔지 알겠고.

나이 든 분들을 보니, 주위 상황을 못 살피고 목표물만을 향해 돌진하는 특징과 함께 시간에 쫓겨 조급해하시는 게 특징이다.

어느새 나도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 사람들이 점점 멀리 하게 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섭섭함도 들고... 나도 점점 아무 것도 안 쫓아오는데도 시간에 스스로 쫓기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고.


이렇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상태로 저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도 생기고....









오래 전 일기를 꺼내어...




그저께 새벽, 갑자기 일기장에서 발견해서 나의 감성을 무지 자극했던
Teddy에 대해 더 자세히 썼던 글.





2008.10.06 04:47         

Teddy를 보내다


내가 1박 2일 현지평가회의를 떠난 사이에 실종되었던 주인집 개 테디는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정은 무서운 거다.
내가 이 집에 이사온 지 8개월이지만
테디랑은 고작 두 달 동안만 친했다.
그래도 수컷이라고, 집 지키는데 책임감이 더 있었는지
나만 보면 맹렬히 짖는데다가, 다 짖고 나면 멀찍이 비켜서곤 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겨우 친해졌는데...
허무하게 날 떠나다니...
친해진 다음에는
오히려 암컷보다 정이 더 많아서 내가 2층에 올라가면 날 찾아 2층으로 올라오고
아침에 출근할 때 대문 앞까지 따라오던 테디...
테디를 보던 마지막날밤,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아서 한참이나 어루만져 줬었다.
진정한 친구는'개'뿐이군...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그 마지막날 늦은 저녁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앞발을 댕댕거리며 놀아달라고 보채던 암컷 타이니와
결국은 훌쩍 짧은 다리를 들어올려 내 무릎에 앞발을 디디던 테디가 기억난다.
1박 2일 여행가면서,
집주인에게 그동안 개들 데려가라고 문자까지 다 찍어놓았다가 결국은 안 보냈던 것이 후회된다.
다시 안 데리고 올까봐 두려워서.
그 잠깐의 두려움이 결국 영영 이 두 마리를 못 보게 만들었다.
집 주인이 나머지 한 마리도 실종될까봐 두려워서 암컷도 데리고 갔다.
특히나 아침에 출근할 때 너무나 섭섭하고 허전하다.
내가 현관문 열고 나가면 항상 댕댕거리면서 놀아달라고 보채던 그들...
흑흑
정은 무서워...
테디, adiós
그동안 너희들이 있어서 더 행복했어
ㅠ.ㅠ

some lonely night.....




다른 걸 확인하려고 10년 전 일기를 들춰봤다가
당시에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사는 나와 같이 살던,
teddy라는 개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10년이라는 걸 발견했다.







친해지기 너무 힘들었던 테디, 하지만 친해지고 난 다음엔 나를 찾아 2층까지 올라왔던 테디.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날,
1층에 내려가 우리 개들에게 위로받았던 날들을 생각한다.







인간은 상처를 주지만, 동물은 그저 나를 위로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그날.
테디랑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쉽다.


Teddy, 행복하길.
내가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의 개라서 감정의 교류는 짧았지만
언제까지나 생각날 거야.










페이스북은 무서운(?) 곳




2012년 태국에서 열린 어떤 행사에 자원 봉사를 하러 간 적 있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 "오전"을 맡았고, 다른 한 분은 "오후"를 맡았다. 오후를 맡은 태국 여자분은 나와 교대를 하러 오는 분이라, 잠깐 잠깐 마주칠 일 밖에 없었지만 상당히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아시아 억양 없이 영어는 완벽히 구사하는 분 이었고, 그 영어 자신감으로 인해 말이 많았고, 뭐랄까....공주병이 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일하던 방에는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 이탈리아, 프랑스...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수근대는 이야기를 좀 들어봐도 그 분들도 그 여자분을 독특하게 여기는 듯 했다.

그 여자분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일주일 동안 보통 10여 분쯤 마주치는 것이 전부이니 (그래도 어쩌다 밥은 한 번 같이 먹은 적 있군) 별다른 교류없이, 이메일 주소 같은 것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태국을 다녀온지도 약간 지나서... 그래도 대체 그 분이 뭐하는 분일까 궁금해져서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찾아봤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본명이 아니라 애칭같은 특이한 이름을 써서....

아이패드로 슥슥....손가락으로 밀며 페이지를 염탐했다. 공주 왕관을 쓰고 찍은 사진과 여러 셀피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보다 공주병이 더 심하신 분이었구나...' 하는 찰나에 쓰윽... 나도 모르게 "friend request"부분에 터치가 되었다. 허걱!! 이런 일도 있구나... ⇡ 순식간에 친구 신청이 되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은 페북에 상주하고 있는지 금방 친구 수락을 해줬다.
허거거걱.
이렇게 친구가 되기도 하는구나. 손가락이 미끄러져 친구 신청....

그렇게 어쩌다가 그 분과 친구가 되었고, 서로 어색해서 쪽지를 주고 받는다거나 인사를 나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연락처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사람이, 이름으로 검색해서 자기를 찾아서 "친구 신청"씩이나 했으니...그 분의 공주병은 더 심해졌겠지 싶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가끔 '어? 이 사람이 친구 신청 왜 했지?' 하는 관계의 사람이 친구 신청을 해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사람도 손가락이 미끄려졌나 보다'




"의문의 친구 신청" 사건을 겪은 후, 터치식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일은 좀 겁이 나게 되었다. 그런 이유들을 포함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데스크탑으로 페이스북을 즐겨하는 편이다. 데스크탑 페이스북 화면에 우측에는 현재 접속 중인 사람들 명단이 우르르 뜬다.

한때는 그 사람들이 어디에 "like"를 눌렀는지까지 실시간으로 다 떴으나, 너무 사생활이 침해가 되어 항의가 많았는지 이제 그런 건 없다.

어제 데스크탑 화면 우측에 위치한 스크롤바를 내리다가, 커서가 경로를 이탈하면서 어떤 사람의 "접속중" 표시에 마우스 커서가 갖다붙게 되었다. 조금만 더 실수로 세게 터치를 했으면 그 상대방의 채팅창에 안부 인사를 보내는 👋waving at you까지 터치될 뻔 했다.
그러면 상대방의 채팅창이 열리고 나의 안부 인사👋가 보내지는 것이다.

다행히 👋까지는 터치는 안 되고 채팅창만 열렸다. 아무 일도 없음. 깜짝 놀랐다가 채팅창을 닫았다.
채팅창이 그냥 우발적인 마우스 터치로 열리는 일은 몇 번 겪은 일이라, 놀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 waving이 보내졌을까봐 철렁했다. 그 사람도 외국 친구였는데, 이제 연락할 일 없는 서먹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친한 사이였으면 채팅창이 열려도 말 걸면 되니까 걱정할 게 없다. 하지만 이제 멀어진 관계에선 실수로 👋이 보내진 다음에는 상대방도 그것을 보게 되는데, 대체 뭐라고 떠들어야 내가 그걸 보낸 게 궁색하지 않은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ㅎㅎㅎ 심지어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말그대로 '간담이 서늘'. 데스크탑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어휴, 또 한 번 철렁 하고 나니
페이스북은 진정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
끊을 수도, 이어갈 수도 없는 인간 관계들이 미적미적 이어져 있는....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