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만 하기




엄마가 친구들과 오랜만에 소위 "re-union"을 하시기에
영등포역 근처 호텔을 예약해드렸다. (회비가 있어서 돈을 내가 내지는 않는다 ㅎㅎ)
마침 간단한 석식과 조식을 모두 포함하고도 저렴한 요금이 나와서...


엄마 친구분이 사시는 도시가 주요 거점 도시는 아니라서 영등포역으로 기차를 타고 도착하는 것이 아주 수월하지는 않지만(서울/부산역처럼 모든 KTX가 정차하는 역이 아님) 그래도 고속버스에 비해서는 기차가 시간도 짧게 걸리고, 내가 예약한 호텔은 영등포 기차역에서 도보 5-7분 거리다.

하지만 엄마 친구들은 굳이 "익숙한 대로" 고속버스를 타고 반포터미널로 도착하시겠다고 한다.
남부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은 '4시간'을 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다시 최소 30분 이상 반포 -> 영등포 이동 과정을 거쳐야 한다.  5시간 가까이 소요.
하지만 ktx와 무궁화호 등을 조합해서 타면 3시간 이내에 모든 이동이 가능하다. 경로 우대 요금이 적용 가능한 나이라서, 우등고속버스와 KTX의 가격 차이도 크지 않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영등포역으로 기차로 도착하는 게 낫지 않아?' 라고 계속 질문하니 마침내 엄마는 버럭! 화를 내신다.

"내 친구는 버스터미널이 더 편하대! 역이 멀어서 기차는 잘 안 타고 다닌단 말야!!!!"

늘 쉽게 신경질을 내시는 엄마에 맘이 상해, 자리를 피했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만이 익숙한 나이. 그것이 당연한 나이, 70대.


밤 늦게 다시 생각해도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 그분이 사시는 도시의 기차역과 터미널의 거리를 조사해봤다. 자동차로 14분, 시내버스로 20여분 거리. 그렇게 역과 터미널 사이 거리가 심각하게 먼 것이 아니었다. 그 사는 도시에서 이왕 이동할 거 조금만 더 가서 기차를 타면 서울 와서 내리기만 하면 호텔이 바로 눈앞인데, 왜 고속버스를 고집하시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기차의 안정성과 승차감을 더 좋아하는데, 그분들은 유난히 버스의 승차감을 좋아하시는 걸까? 4시간을 타더라도?


이제 그분들은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방법이라도 익숙한 것만 고집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다른 세대와 거리가 생겨나고....



지금 내 나이에선 그런 선택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결국 나도 늙으면, 겁이 많아지고 고집이 많아져서 하던 것만 하다가 죽어가게 되겠지.
뭔가 새로운 것을 하기에는 건강도 허락치 않을 테고.


아직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
뭔가를 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써보고 싶은 충동이 남아있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언제까지 이 호기심이 가능할까.




cerveza "CRISTAL"

 
 



2년 넘게 해외여행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주위의 누군가가 해외에 다녀오면
이런 수확물(?)이 생기곤 한다.

이때처럼....
http://mori-masa.blogspot.kr/2016/11/blog-post_8.html








에라 모르겠다...하고 하는 일






그냥 e-magazine 하나를 사고 싶어서(?) 푼돈 쓰고 싶어서(?)
철 지난 잡지 한 호를 구입하는 일.

예전에 미국 공항에서 살까하고 짧게 고민하다가 못 사고 돌아왔던 잡지가 기억나서
zinio.com에서 그냥 사버렸다. $3.99

인간의 기억이란 역시 불완전한 것이...
2년 전 공항에서 살까말까 고민했던, 줄리아 로버츠가 표지에 나온 잡지는 핑크색 분위기로 기억했는데
실제로 찾고 보니 검정색 옷을 입고 있다.


영어 듣기/읽기/쓰기/말하기 중에 '읽기'를 가장 자주 하고 잘 하는 일이겠지만
의외로 깨알같은 글씨의 영어 기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아이패드 속 잡지 화면을 사진만 보며 휙휙 넘기다보니, 금세 맨마지막 장에 도달한다.

이게 무슨 낭비람.
ㅎㅎ





“There was a redemption of some kind, he believed, in such complete fulfillment of a desire so long deferred.”


― Charles FrazierCold Mountain



구제


2014년도 수능 세계지리 문항 중에 출제 오류로 결국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결론이 난 문제가 있나보다. 1년 가까이 버티던 교육과정평가원은 더 이상의 법적 분쟁을 포기하고 '학생 구제'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고, 서울대 총장도 이 문제가 오답 처리되어 탈락했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에 대해 구제하겠다.. 라는 발언을 했다.
내가 수능 보던 시절에는 진짜 1,2점- 지금은 등급 하나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대학입시인데, 문제가 잘못 출제되어 희비가 갈린 학생이 있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내가 늘 궁금한 것은....
이런 상황에선 구제'만 하면 되는 거고, 이 학생이 합격했어야 할 그 자리에 1,2점 차로 대신 붙어서 이미 1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은 아무런 문제없이 계속 그 학교의 학생이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제대로 채점되었다면 애초에 입학 자격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교육부가 잘못 했으니까, 이 좋았으니까 그 학교에 계속 다닌다? 이것도 참 어떤 의미에서는 불공평한 문제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특수한 전형으로 모대학에 입학하여 한동안 시끌시끌 했는데, 1년 뒤에 더 큰 문제가 터졌다. 이 가수가 다녔다는 외국인학교가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였던 것이다. 즉 이 가수는 중졸의 학력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몇몇 연예인이 입학 자격이 취소되었는데, 이 가수는 재판 끝에 이미 1년간 그 학교를 다닌 게 인정이 되어 계속 그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애초에 입학 자격이 없는 학생인데, 어찌 됐든 이미 입학해서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학생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훨씬 더 장기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거의 10년이 흐른 뒤에 입시 채점 상의 명백한 실수가 우연히 발견되어 실수로 탈락한 학생을 구제한다. 그 학생은 나이 서른이 되었지만 그 학교가 너무 다니고 싶었다며 기꺼이 재입학을 해서 새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물론 의미가 없다며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데 채점 상의 실수로 대신 그 학교 학생이 된 사람에게는 입학 자격을 박탈하거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10년이 지나 혹시라도 박사 학위라도 취득했을지 모를 그 사람을 순식간에 다시 고졸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일 테니... 그냥 그 사람은 운 좋은 사람이다. 

명백한 실수가 생겨서 당락이 뒤바뀌었는데, 실수로 '락'된 사람은 '당'으로 구제한다고 난리지만, 대신 '당'이 된 사람은 '락'시킨다는 얘기가 없는 게 신기하다.

부자 부모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는 "부자" 부모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서....'부모'가 되는 것도 그닥 관심이 없다.
무한한 사랑을 주고 믿어주는 부모, 자식에게 올바른 윤리관을 심어주는 부모..이런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 당연한 것이고, 그냥 나는 부자 부모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부모.

내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매우 세속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져 그 후로는 언급을 잘 안 했다. 왜 '부자' 부모라고 하면, 자애로운 부모 - 도덕적으로 성숙한 부모라는 느낌은 쏙 뺀 채, 세속적인 부모라고만 받아들일까. 난 그거 다 해주고 싶은데. 이런저런 경험을 하는 기회를 열어주고 그 경험을 통해 성숙해서 잘 베푸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 자식이 '나는 돈을 못 버니까 무능력한 사람' , ' 난 직업이 없으니 나쁜 인간' 이라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한 번 태어난 인생 -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나누며 살다가 갔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서.




평소에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학원으로 자녀 뱅뱅 돌리는 것 안 하고, 물적 욕망 없이 행복을 찾아 잘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요즘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싶어 해외 여행에 데려갔더니 애들이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하고는 경치 한 번 안 봐서 속상해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지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한 달 이상 유럽에 장기 체류를 하는 그 친구가 먼저 한 말이, 본인 경험상 "여행지에 가서 애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돈을 더 쓰는 거더라" 이거였다. 아이들도 본인 의지가 아닌 부모들이 계획한 여행에 끌려와서 불만이 많은데... 결국 뭔가 그들에게도 솔깃한, 휘황찬란한 걸 해주면 아이들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밖에 없더라는 것. 나도 그말에 용기를 얻어 '나도 돈 잘 쓰는 부모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그 친구는 아마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돈만 써서 결국 자식 인생 망치는' 그런 부모는 되고 싶지 않다-라는 내 속마음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 자식은...돈을 잘 벌지 못 해도 그저 태어나서 뭔가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고 탐구하면서 살 수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더라도 자녀와 부모의 매개체는 결국 '돈'인 것 같다. 뭔가 서글프지만.


예를 들어...
홀로 되신 한쪽 어머니는 아들 결혼 시에 재산을 많이 물려주고 '대를 이은' 그 아들이 남편의 빈 자리를 조금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늘 근교여행을 같이 떠나던 남편만큼은 안 되어도 아들도 한 번쯤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들은 보통 어머니의 쓸쓸함에는 관심이 없다. (그건 대부분 딸의 몫) 그런데 아들 부부에게는 골프장에 데려가주는 재력의 장인 장모가 있다면...그들과는 주말에 종종 골프를 위한 근교 여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들에게 재산 다 내어준 빈털터리 엄마는 오매불망 아들이 언젠가 한 번 같이 놀러가주겠지...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말에 아들의 발걸음은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지금 현재 돈을 가진, 돈을 잘 쓰는 사람 주위에 사람이 모일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부모가 돈을 더 쓰는 것일 수 밖에 없는지...


모든 경제적 난관을 초월한, 끈끈한 정으로 똘똘 뭉친 아름다운 인간 관계도 물론 많겠지만
인간이 만남을 가질 때는 필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나도 무직 생활이 길어지면서 친구와 자주 만나기가 많이 어려웠다. 내가 커피 등등 사기는 하지만, 친구에게 밥을 늘 얻어먹기도 민망한 일이라.
(그래서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많이 안 벌고 있기는 하다)

돈이 필수적 가치는 아니지만 인간 대 인간의 만남,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적어도 윤활유는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윤활유 이상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난
부자 부모이고 싶다.



고단함



약 10년 전부터 8년 전까지... 2년간 스리랑카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늙었지만 내 학생들도 늙었다.
그 어린 학생들이 20대 청춘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30대가 됐다. 결혼한 제자도 많고...

오늘 갑자기 두 명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서 인생 고충을 토로한다.
한국으로 유학와서 공부를 마치고 갔지만 취직이 어렵다는 학생, 부모님이 아프셔서  그거 신경쓰느라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 보낸 게 아쉽다는 학생....

나도 봉사단원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휴가 같았던 (실적 압박이 없는 직업) 그 2년,
학생들에게도 마지막으로 책임이 면제되는 시기였던 그 3년(스리랑카 대학은 3년제)이 지나고

다들 인생의 전쟁이 시작된 거지....
멀리멀리 바다 건너에서 전해오는 메신저 속 말투마저 처연하다.


내가 구직의 현장에서 나를 내세우거나 과장하거나, 어른들앞에서 잘 처신하거나
그런 걸 잘 하지 못하는 쭈뼛거리는 사람이다 보니, 역시 나와 비슷한 성격으로 보였던 그런 학생들에게 관심이 간다. 나도 여전히 자리를 제대로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나와 비슷한 공통점이 보이던 그 학생들도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아고...고단하다.

그래도,
얼굴 못 본지 오래 지난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도 못한 선생에게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를 털어놓는 학생들이 고맙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중요한 일보다 사소한 일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사소한 것보다 중요한 것을 더 잘 기억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책을 달달 외워 사법고시 쳐도 됐을 듯ㅋㅋ 그런데 늘 소소한 일화만 잘 기억함😜)

10월 20일은 1999년에 내가 난생 처음 이메일에 가입한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뭔가 내 이름을 입력하고 회원 가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서
얼마간은 친구의 이메일에 기생하는, 지금 생각하면 매우 "기이한" 형태를 유지했었다.

1997년에 교수님이 칠판에 써주시던 @이 들어간 이메일 주소를 보면서
굉장히 낯설어서 저런 것은 내가 평생 가질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 했던 것 같다.


10월 20일에 이메일 계정을 하나 만들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니라서 며칠 만에 내 이메일 주소가 너다섯개로 불어났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 일이 아닌데, 왜 가입이 망설여졌는지...


당시 교환학생 떠났던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 받기 위해 이메일을 더 열심히 썼었는데,
18년이나 지난 지금, 당시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 있었던 친구 3명 중에 2명과는 연락하지 않는다. 다투거나 나쁜 일로 멀어진 것이 아니라서 다시 연락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서로 굳이 연락하지는 않는 관계. 심지어 나와 본인의 이메일 비밀번호를 공유했던 '절친'마저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인간 관계 유지 잘 못하는 구나....

먼 곳에 있던 친구들의 소식을 자주 받아보게 해줘서 그렇게 애틋하고 신기했던 이메일에는
상업 광고만 넘쳐난다. 친구들과는 이제 다른 소통 수단이 너무나 많다.

이렇게 또 18년이 지나면...
지금 친한 친구들 중에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는 누구일까.



쿠이차이

 


여러가지 이유로 여행을 하게 되지만 6년 전에 난생 처음 "학회"라는 이유로 방콕을 방문했을 때,
무엇이든 입에 다 넣어보는 - 배낭여행에 최적화된 학교 남자 동기와 반나절 시내를 같이 다녔다.


그 동기는 시장에서 정체 모를 녹색 음료, 투명 음료, 사탕수수.. 별별 것을 다 사서 맛보고는 나, 그리고 같이 다니던 여자 동료에게 자기가 먹던 빨대 그대로 내밀곤 했다. 난 가족 외의 사람과 빨대를 공유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맛보라며 내미는 털털한 동료 앞에서 까탈스럽게 굴 수가 없어서 그냥 그렇게 빨대 하나로 셋이 나눠서 마시곤 했다.


그들에게 이끌려 차오프라야강 보트 체험을 하고, 마침 내린 비 때문에 비를 쫄딱 맞고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의견 충돌까지 있으려던 차에도 그 친구는 길거리 음식을 또 샀다.

모르는 음식도 무조건 입에 넣어보는 그 친구 덕에 맛본 떡??? 같은 태국 음식은 그 뒤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도 나름 그 학회 전후로 방콕4번 방문) 나보다 태국을 자주 방문한 아는 언니에게 물어봐도 그런 음식은 모르겠다고 ㅎㅎㅎ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그 음식의 정체를 알게 됨
      





쿠이챠이 ㅎㅎㅎ
바로 이거.


베트남 음식 이름을 찾아보기 위해 12년 된 여행잡지를 펼쳤다가 "동남아 길거리 음식 열전" 파트에서 찾았다.
생긴 게 딱 그 친구 아니었으면 내가 혼자 사서 먹을 일은 없게 생겼다.ㅎㅎㅎ


🍢🥗🥔👩🏻💻

꿈의 세계




사람마다 자면서 꾸는 꿈의 형태가 다른데,
흑백만 꾸는 사람, 일어나면 내용을 전혀 기억을 못 하는 사람 (나는 꿈을 안 꿔~~ 라고 말하는), 컬러 꿈을 꾸는 사람 등등이 있다.

나같은 경우, 꿈은 보통 컬러이고, 촉감, 맛, 소리를 다 느낀다. 내가 말을 하려 할 때는 입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면서 수도 없이 많은 꿈을 꾸는데 일어나면 몇 개는 기억이 난다.

매우 디테일해서 기억에 남는 꿈이 몇 가지 있는데, 어떤 작가는 눈을 뜬 뒤 이런 꿈 내용을 곧바로 적어놓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꾼 디테일한 꿈은....


내가 아프리카에서 열린 스포츠 경기에서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간 친구와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가 좀비로 변해서 (통통 튀어서 날아다님) 그를 피해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한국 식당 같은 곳으로 피하는 내용이었다. 창문 너머로 여러 건물들에서 불이 나고 펑펑 터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 '부산행'의 영향인 듯?)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었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내가 그렇게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뛰어들어와 도움을 청하고 있으니 어떤 여자분이 식당 메뉴판을 내밀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분이 내가 불쌍해서 뭔가 음식을 사주시려나봐.' 이런 생각을 했고, 나는 "괜찮아요, 안 먹어도 돼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그게 아니라 제가 새로 개업하려는 식당 메뉴판 시안이에요. 보니까 느낌이 어때요?"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거였다. 😲 허허허... 나는 괜찮네요, 좋네요...그런 대답을 한 듯.



오늘은 낮에 잠시 또 디테일이 살아있는 꿈을 꾸었는데
하도 생생해서 모두 손으로 적어놓았었다.
그것을 다시 여기에 옮겨볼까 하고 ㅎㅎㅎ
타이핑을 하면서 조금 더 기억나는 대로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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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를 가면서 상하이에서 환승을 하게 되어 상하이의 한 호텔로 들어왔다. 오후 5시까지 공항에 가면 된다고 생각함.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들어가는 형태의 호텔이었다. 작고 깨끗한 방에서 짐 정리.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인 남자 직원이 들어와 뭔가를 설명하려 하는데, '나는 환승이라 그만 나가야 한다'고 했다. 꿈속에서 "짧게 머무르고 오후 5시 전 금방 나가는데 왜 호텔 잡았지?" 라고 생각했다. 택시 기사에  사기 당하지 않고 공항까지 잘 갈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그 직원에게 물어보니 짐 챙겨서 호텔 앞으로 나오면 다 알아서 택시를 잡아준다고 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가방에 낑겨넣을 게 많았다. (추가: 난 보통 1-2박을 해도 호텔에서 짐을 크게 풀지 않는데 이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뭘 이렇게 많이 흘렸지? 하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나중에 보니 방에 지갑도 놓고 갈 뻔 한 걸 주워서 다시 배낭에 넣었다)



(추가: 나는 술 취하거나 평소보다 up!되면 되도 않는 외국어에 도전하는데, 꿈속이라서 그랬는지) 가방을 챙기면서 직원에게 혼자 또 말 걸어봄. "我在天津八個月  , 그렇지만 (꿈속에서 but에 해당하는 중국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만' 이라고 한국어로 말했다ㅋㅋ) 我不會說漢語" (추가: 꿈에서 깬 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찾아보니 我在天津 대신에 我住過天津, 我在天津住了 라고 말했어야 뜻이 통하는 거였다)


직원과 시시덕거리다가 입구로 나갔는데, 직원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어 바닥에 내려줬는데 내 신발이 아니었다. 크고 낡은...막 다른 곳을 찾아보는데 그 사이사이로 예전에 버려진 스리랑카에서 신던 신발과 비슷한 디자인의 신발들이 막 스쳐지나갔다. (이 신발들은 한국에까지 가지고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아마도 엄마가 버리신 듯) 미련이 남은 신발들이다) 나는 막 난리치는데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관심이 없음. 그런데 꿈속에서 나를 당황시킨 문제는...대체 내가 한국에서 무슨 신발을 신고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였다. 여름 내내 신던 샌들 왜 안 가져왔지? 그 생각은 했다. 호텔의 그 신발장 앞을 지나서 나오면 표정이 비열한 아저씨가 신발을 막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 아저씨가 내 신발 훔쳐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근처에는 파란색 끈으로 된 샌들? 슬리퍼?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은 내 신발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은 어느새 5시. 신발 찾다가 비행기를 놓치다니....황당했다. 그다음 비행편이라도 있으면 공항 가서 사정해봐야지 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추가: 맨발로 호텔 밖으로 나왔는지는 꿈속에서 인상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꿈의 시작 부분에는 목적지가 불명확했던 것 같은데 이쯤에 와서 나의 행선지는 하노이가 되어있었다.)

호텔 밖으로 나와보니 웅장하고 고풍스런 건물이 바로 좌측 코너에 보였다. 내가 처음으로 상하이에 온 김에 진작 밖이나 둘러볼 걸 호텔 안에서 뭐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호텔 위치가 좋으니 호텔 주소를 알아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추가: 꿈의 시작 부분부터 나는 호텔에 들어서 있었으니 주소도 모른 채 그 호텔에 가 있었던 셈이다) 우측으로 조금 더 가니 고가도로와 지상철이 다니면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지상철을 보니 대중교통을 타고 공항에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티켓을 다시 확인해보니 출발 시각은 5:40이었다.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각은 5:28이나 5:38 중의 하나였다.(기억이 희미함) 아마도 5:28이 더 맞는 듯 하다. 미친 듯이 가거나 비행기가 연착이 되면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꿈속에서 구글 플라이트로 검색을 하니 상하이-하노이 비행편은 그 5:40 비행편이 마지막이었다. (추가: 늦게 공항 가서 사정사정해서 다음 비행기편을 마련해준다고 해도 내일 비행기가 될 텐데, 그렇다면 이 호텔에 더 머물러야 되는데 괜히 체크아웃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택시비 500을 ATM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추가: 500이라는 액수는 기억나는데 중국 돈 500위엔은 9만원 정도의 돈이라 물가 싼 중국 택시비로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 꿈속이니까 뭐ㅋㅋ) 내가 반년 전에 새로 발급받은 신한 yolo triplus 체크 카드가 있는데, 꿈속에서 선명하게 이 카드를 내려다 본 기억이 난다. 이 카드는 해외 ATM 출금시 $3을 환급해주는 카드이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ATM이 하나 보였으나 내 카드는 마스터카드인데, 기기에 마스터 로고가 없었다. 한글로 "신한 ㅇㅇㅇ"라고 써져있었으나 이 기기를 만든 회사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국에 살 때 발급받았던 중국공상은행 데빗카드를 떠올리며...'아 그 카드 가져왔으면 10년 만에 잔액 한 번 조회 시도해볼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추가: 내가 중국을 떠난 것은 2004년이지만, 2007년에 홍콩에 갔을 때 중국공상은행 ATM에 그 카드를 밀어넣어본 기억이 있다. 잔액 조회할 때마다 금액이 줄었던 것을 기억한다. 중국공상은행은 아직 내 계좌를 가지고 있으려나...) 그런데 그 ATM에는 공상은행 로고도 없었다.


이러다가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어서 꿈에서 깨어났다.
머리로 현실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된면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것은 영화 '인셉션'에도 나온다.


너무 디테일하고 스펙터클한 꿈 ㅋㅋㅋㅋ
이틀이 지난 아직도 몇몇 장면이 생각난다.
이래서 내가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이 블로그를 한 지 오늘로 딱 2주년이네.
그동안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전체 페이지뷰는 2년 동안 7만 뷰 정도를 기록한 것으로 나오는데
구글 블로그를 이용해보니 허수가 많아서 믿을 수는 없다.
(운영자 '본인 방문 브라우저 기록 카운팅 제외' 클릭하고 내가 접속해도 한 번에 뷰가 막 8씩 올라가고 그런다😵)





2년 전 어느 날, 맨 왼쪽이 나의 뒷모습.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내 돈 주고 "운동화" (요즘은 "워킹화"?🤔)를 사본 적이 없었는데
저때 신은 저 신발이 내가 처음 내 돈 주고 산 운동화였다.
며칠 전에 엄마가 '아름다운 가게'에 옷 기부하실 때 같이 넣어보냈는데...
그래도 저렇게 신발 바닥까지 찍힌😅 사진은 남기고 사라졌네.

('아름다운 가게'는 다시 되팔 수 있는 정도의 물건만 가져가기에, 3년 정도 신은 저 운동화는 사실 해당이 안 되지만 엄마께서 깨끗이 빨아놓았다는 말을 하시니...아저씨가 일단 가져가셨다.)

 

오랜만에....




오랜만에 초단기 알바를 하고 있다.

덕분에 루지/스켈레톤/봅슬레이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치 올림픽 때 중계를 보다가 대충 이해했었다가 다 잊어버린 '컬링' 룰이
다시 머리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도 이제 늙어서
들어왔던 지식은 곧 나가겠지만.



과몰입 테니스팬은....




테니스든, 어떤 다른 스포츠든...

과하게 몰입해서 어떤 선수/팀을 응원하는 일은
그 사람을 말썽쟁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와 비슷한 심정으로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잘 할 땐 "어디서 이런 애가 나와서 날 이렇게 기쁘게 하지?" 하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차라리 이런 걸 모르고 살 수 있었다면 속 편할 텐데... 하는 것.


발을 들여놓은 죄로
세상 사람의 90%가 모르고 지나가는 일을 특별히 겪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ups & downs를 잘 견뎌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겠지...










일상/영화/일상



동네 음식점에 짬뽕을 사러 갔다. 배달해서 먹는 집이 아닌, 프랜차이즈점.

괜시리 친절하고, 어색한 한국 말투를 쓰는 여자 종업원이 있었다.
"물/반찬은 셀프입니다"라는 공지가 무색하게 물컵을 가져다주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다 준다. 굳이 물을 안 마셔도 되는 포장 고객인 내가 몸둘 바를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이 분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일자리가 생긴 것이 고맙고, 열과 성의를 다 하고 싶고, 때가 덜 묻고, 손님들에게 아직은 덜 다친 듯한 분.








어떤 영화의 시작 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설정은 세계 어느 나라 영화에도 다 있다.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서빙이나 청소를 하는 첫 직장을 잡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한 사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그러다가 슬슬 삶에 지쳐간다.............
이 분은 퇴근하면 어디에서 살까? 먼나라에서 직장을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묘한 궁금증이 들었다.

나보다 분명히 어릴 것 같은 그 분은, 그래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용감히도 낯선 나라에 발을 딛었구나.
분명히 그건 영화가 아니고 일상.





  • ㄱㅇㄱ
    일상에서 과한(?) 친절을 받을때가 있는데..묘한 느낌이에요..확실한건 잠깐이나마 나를 바꾸게되는데..실로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같은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2014/10/17 17:01
                                
  • nothingmatters
    네, 저두 게으른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라구요. 잠깐이나마 나를 바꾼다... 공감합니다.
    2014/10/17 20:53
             

               

방배동 유락손칼국수




해물칼국수/ 바지락칼국수/ 수제비 등을 주로 파는 집.
예전 이 동네  살았던 친구에게 소개받아 갔는데...
딱히 엄청난 맛이 있다고는 못하겠는데
의외의 중독성이 있어 1-2년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방문한다.
혼자 와서 먹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혼자 가도 괜찮다.

내가 데려간 친구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오직 나에게만 통하는 중독성?
(동네에서 꽤 인기있는 식당이긴 한데, 다들 예전 맛을 잃었다고들 한다)


최근에 갔을 때 해물 국물맛이 약해져 실망이었는데
오늘 갔더니 국물맛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는데 김치가 영 실망이다.

우리 엄마가 예전의 김장 김치 실력(?)이 유지가 안 되고 몇년째 실패 중이신데...
2012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김치가 아주 오래전 엄마가 갓 담가서 내 입에 넣어주던 그 맛이 나서 좋아했었는데
그 맛을 잃은지는 좀 오래되긴 했다.

칼국수집에서 칼국수만큼 중요한 게 김치맛이라는 게 좀 재미있다.
국물맛 유지보다 김치 맛 유지가 더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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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늘 가서 먹던 단골집이었는데, 2018년 초 소리소문 없이 이 식당이 있던 자리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ㅠ.ㅠ



공룡 둘리



이미 꽤나 오래 전...
대학교 졸업하고 삶이 스산해져가던 차에...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공짜 출판물 속의 그림 하나...


 
월간 북 매거진 [텍스트] 2003년 7월호



마냥 귀엽던 "아기" 공룡 둘리도
앞에 "아기" 글자가 떨어지면 그냥 공룡 둘리가 되어 "외노자" "불체자" 신세가 되어 삶이 팍팍해진다는 내용이었던 거 같다. 빙하 타고 내려온 둘리라 신분 증명이 모호할 터.
마냥 동화 속, 만화 속 세계에서 살 수는 없다는 뜨끔한 그림.






많은 인생이 이렇지.
책임이 면제되는 '아기' 시절에는 좋았는데...
스스로 일어서야 되는 시기가 되면
소주와 담배가 손에 잡히는....




실수




습자지같이 얇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을 놀리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잊는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보다 약할 것 같은 사람에게만 '버럭!'을 잘 한다.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용산 ibis Styles ambassador Yongsan






남자들의 이상형은 "낯선 여자" "처음 보는 여자" "새로운 여자"라고 하더니....
그런 취향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나보다. 😊

2달 전 생일날, 이비스 스타일스 명동에서 1박하면서
깔끔한 환경과 혼자 지내기 적당한 방 크기 덕에
"앞으로 여기서 또 혼자 1박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2017년 10월에 새로 개관한 이비스 스타일스 용산에 와보니
또 그 새로움이 맘에 들어
"앞으로 1박할 일이 있으면 여기가 좋겠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비스 스타일스 명동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로 ...ㅎㅎ


2017년 10월 용산에 그랜드 머큐어, 스위트 노보텔, 노보텔, 이비스 스타일스 4곳이 
동시 개관했는데, 총 1700실 정도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플렉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중 가장 하위 브랜드에 숙박 😏💵







현재는 일부 시설만 '소프트 오픈'한 상태이며 2017년 11월 중순 정도에 '그랜드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오픈 첫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4개 호텔 프론트 데스크는 난리가 난 상태였는데, 그나마 이비스 스타일스는 수월하게 체크인을 했다. 


이비스 스타일스는 중저가인 이비스 3형제(styles-ibis-budget)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좋은 곳.
예약 시 무료 와이파이 제공을 포함한다. (요즘은 와이파이 사용에 돈 받는 호텔 찾기가 더 힘든데, 예전엔 이걸 장점으로 홍보했었던 게 좀 웃기지만) 
"styles"라는 이름처럼 디자인에 무척 신경 써서 예쁜 방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는데
(남녀 편가르기는 싫지만 아무래도 좀 더 여성 취향의 디자인)
저가 브랜드이니 만큼, 좁은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애를 쓴다.







몇년 전부터 많은 호텔이 화장실을 벽으로 막는 대신에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이게 만들어서 좀 더 공간을 막힘 없이 보이게 만들고 환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유행인데,
이비스 스타일스 용산의 내부 디자인은 세면대를 아예 개방한 형태다.
동시에 그 공간에 미니바, 금고 등을 넣으면서 활용을 잘 한 것.

같은 날 개관한 노보텔 용산도 이런 개방 세면대 구조를 택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비스 스타일(24 m²)보다 방이 넓은 노보텔(30 m²)은 미닫이문을 추가로 설치해 공간을 구분 지을 수 있게 했다.






Bar 같은 구조가 생겼지만 욕실 벽으로 막히지 않으면서 공간이 조금 더 넓어 보인다


미니바는 세면대 구조의 측면에 설치된 형태



명동의 이비스 스타일스처럼 샤워부스와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각각 구분되어 있다. 샤워 부스 바깥은 그냥 개방 공간이라,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같이 방을 쓰게 되면 샤워 후 옷 갈아입기, 화장실 사용 시 소리 등등이 민망하다 ;)
(최근 사진을 보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중간 블라인드를 설치 중인 듯 하다)







샤워부스 문을 열고 나오면 전신 거울이 있는데 거울을 열면 바로 옷장.
하루 묵고 가는 경우는 옷장에 옷이 그득 들어있지는 않겠지만, 장기 숙박일 경우 샤워 부스와 옷장이 가까이 있는 구조가 상당히 편리하다.








이 호텔에서 슬리퍼 못 찾으시는 분들 있던데... 이 옷장 안에 놓여있다.
거울 뒤에 옷장 배치해서 공간 활용은 잘 했는데, 의외로 옷장을 못 열어보고 거울로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아 스티커같은 안내가 필요할 지도?^^







푹신하고 새 것인 침구가 좋았던 침대.
이비스 스타일스 용산은 게임이나 퍼즐, 당구, 체스 등을 주제로 방을 꾸몄는데
내가 배정받은 방은 👾팩맨(?)같은 게임이 테마인 듯.

호텔 개관 첫날에 갔으니...침구가 뽀송뽀송 새것이었는데,
잠을 청하다가 '호텔보다 우리집 침구가 더 꾸질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다니...왜 그러고 살았지?'
라는 생각을 혼자 했다.
그런데, 같이 1박한 엄마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 모녀는 말없이 침구 빨래를 했다는 ㅋㅋㅋㅋ



침대 머리맡의 버튼으로 모든 조명 조절 가능







침대에서 보았을 때 좌측에 업무를 할 수 있는 책상이 있고,
창가에 아주 작은 커피 테이블과 스툴 하나가 더 있다.






이 호텔이 혼자 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창밖 풍경이 좋아서...
물론 모든 방의 뷰가 이쪽 방향인 것은 아니다.
남산 방향에 숙박하신 분들도 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면 혼자여도 덜 심심할 것 같았다.
이쪽 방향의 방은 용산역쪽 철길도 보여서, 부지런히 오고 가는 기차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웬만한 식당보다 야경이 더 좋은 곳이라, 근처 이마트에 가서 사온 음식으로 24층 방에서 저녁을 먹었다.



****


이비스 스타일스 용산의 남다른 장점은...어쩌면 조식.
나는 원래 아침을 먹지 않아서, 그닥 많이 챙겨먹지는 못했지만
30층까지 객실이 있는 대규모의 호텔이다 보니 조식 식당이 엄청 넓다.
서울의 다른 이비스 스타일스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넓이이며 외국의 이비스 스타일스와도 비교가 안 됨.
식당이 넓어지면서 당연히 메뉴가 더 다양해졌다.





내가 자리를 배정받아 사진을 찍은 여기는 식당에 들어오면서 봤을 때 "우측" 후식 코너에 가까운데, 입구에서 들어와서 좌측으로 가면 훨씬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다.
이비스 스타일스 명동의 경우, 위의 섹션 정도의 크기가 메뉴 선택의 전부인데 이비스 스타일 용산은 반대편에 이보다 서너 배의 음식들이 더 펼쳐져 있음.
cold meal 위주의 이비스 스타일스 명동과는 달리 다양한 hot meal을 제공한다.
맛도 중간 이상은 간다.



한 무리의 왁자지껄 단체 손님들이 나가고 조용해진 조식당 한켠


보통은 음식 사진을 찍지 않아서 이것만 찍었다. 이건 솔직히 맛없었다. 쌀국수 육수에 우동 면발을 담긴 했지만, 육수나 면발 둘 다 별로


이비스 스타일스는 명동, 강남, 용산에 위치해 있는데
당일 숙박 비용이 비슷하다면 용산이 절대 우위에 서는 것은 조식의 가짓수라고 할 수 있다.
이비스 스타일스 용산 더블룸 예약시 1인 예약과 2인 예약의 가격 차이가 19,800원 정도인데 한식/양식 다양한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다.


*** 이비스 스타일스 자체가 조식 포함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브랜드였는데, 2018년 이후 accor 사이트를 보니 조식을 불포함 room only rate를 판매하기 시작. 조식 제공이라는 브랜드 특성을 없애려는 듯 하다.








* 장점

- 최신 디자인이 적용된 새로운 호텔, 용산역에서 도보 5분 거리.
- (아직은 미완공 상태인 곳도 많지만) 대규모 복합단지로 개발된 곳이라서 이미 건물 내에 편의점 등이 들어와 있어,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 용산역에서 가까워서 지방에서도 접근이 용이하고 용산역에 백화점, 식당, 극장, 대형 마트 등의 시설이 많다.
- 개관 초기라 미숙한 점, 미비된 점이 많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직원들이 친절하고, 도와주려 노력한다.
- 조식을 중시하시는 분은 서울의 다른 이비스 스타일스에 비해 단연코 이곳을 선택해야....



* 단점

- 모든 것이 반짝반짝 새것이면서도 아직 어영부영 미비된 시설이 많다. 예약 전 문의 시, 10월 1일부터 사우나가 이용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가보니 아직 공사 중. 10월 중순부터 사우나는 무리없이 이용 가능한 듯.
- 근처 용산CGV에 가서 심야 영화나 볼까...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저녁에 용산역 3번 출구 연결 통로를 통해 호텔로 돌아오다 보니 그 통로가 "노숙자들의 호텔"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무시는 분들로 인해, 야간 통행은 좀 어려울 듯.
- 개관 초기, 내부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쓰지 않은 방이라서 그런지, 컵 내부에 까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컵을 덮는 종이 뚜껑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경우는 나중에 다른 사진을 보니 내 방에만 실수로 컵 뚜껑이 없었던 듯 하다)




(서울의 다른 ibis, 다른 나라의 ibis 숙박기를 보시려면 아래의 ibis 태그(라벨)를 클릭해보세요^^)



용산에서 바라보는 한강 남쪽






남산 서울타워쪽으로 창문이 난 호텔에만 종종 가다보니,
그 반대쪽, 이쪽 방향 전망은 처음이라 약간 낯설다. 










63빌딩이 이렇게 측면으로만 보이는 모습도 뭔가 낯설다.
지나가면서 늘 넓적한 정면만 보던 건물인데...




그리고 다시 아침.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