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잠을 쉽게 못 이루는 것이나 다른 여러 사항을 보면 엄청 예민한 것 같으면서도
둔한 면이 있다.
냄새에 예민한 것 치고는 공기 나쁜 것은 잘 못 느끼는 편인데, 그래서 미세먼지 심한 날도 마스크없이 잘 돌아다니곤 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소화 반응이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약간 상하려고 하는 경계선의 음식이나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게 되면 보통 간단한(?) 설사 후에 치유된다. 복통이 심하거나 그런 적은 없는 것 같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돼지고기인데, 삼겹살 같은 것을 구워먹을 때 빨리 먹으려다가 🤤 좀 덜 익은 돼지 비계 부분을 먹게 되면 곧바로 화장실행이다. ㅎㅎ
이렇게 대부분 속에 안 좋은 음식은 아래로 배출되며 해결을 보는데, 딱 한 번 토한 적이 있었다. 바로 상한 갈비탕을 먹었을 때였는데, 미련하게 그걸 왜 한 그릇이나 다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때는 여름이었고, 여름 상온에 그냥 국을 놔두면 상한다는 것도 잘 모르던 둔한 시절이었다. 여름에는 재빨리 냉장고에 넣거나 종종 가열을 해둬야 한다는 상식도 없던.
엄마는 갈비탕 한 냄비를 놔둔 채 외출하셨고, 나는 그걸 아무 생각없이 퍼담고 밥을 말아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평소에 잘 바르던 바디로션을 바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그 향기가 역했다. 으윽 무슨 일이지?? 그러면서 몸이 노곤노곤 힘이 없어지다가 갑자기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았다.
으으웩--
거실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화장실 안에 있는 모든 세제의 향기가 극대화되면서 코를 자극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용을 자주 하지 않아서 세제류가 적게 놓여 있는 안방 화장실로 달려가 몸안의 것을 게워냈다. 그리고 힘이 없어져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서 회복 시간을 가짐.
시간이 흘러 원기 회복이 됐고, 더 이상 냄새가 막 자극하지는 않았다. '오와.... 이거 사람들이 입덧할 때 모든 냄새들이 다 극대화되어 느껴져서 아무 것도 못한다더니 이게 바로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임신 기간에 주방 세제 냄새가 역해서 도저히 부엌에 접근을 못해서 부엌일을 안 하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했었는데, 그때부터는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신기한 체험. 정말 늘 들어가던 화장실에 딱 들어가는 순간 모든 비누, 샴푸 냄새가 강렬하게 다가와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약간 상해가는 상태의 음식을 모르고 먹으면 보통 설사 한 번 하고 마는데, 유일하게 도로 역행해 올라왔던 그 음식. 입덧 대리 체험까지 하게 해주면서...그것만은 왜 그랬지??
개인적으로 남의 관심을 받아야만 잘 나갈 수 있는 직업군 - 연예인, 정치가 등 - 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인이 운동선수이긴 한데, 사실 넓은 의미로는 프로 스포츠 선수도 이런 직종에 포함된다.
교수, 연구원 등등 굳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도 방송 욕심을 내거나 정치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남앞에 나서는 게 궁극의 목표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크게 보면 연예인과 정치인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멋진 이미지로 포장되어 쇼를 하다가, 사고를 치고 사라져가는 존재....
한국은 묘하게 정치인에 더 관대해서 비슷한 사고를 쳐도 정치인은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의문이긴 하지만.
상황 파악 못 하고, 멍청하고 아부하는 무리에 휩쓸려 있다가, 잘못을 저지르고 사라져가는 여러 정권들을 보니...그냥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남앞에 서고는 싶지만 데뷔는 할 수 없었던 못생긴 연예인'들일 뿐인데 그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 비하 표현이 나에게도 좀 거슬리긴 하지만... 연예인 데뷔에 사실 외모가 굉장히 중요한 요건이므로 그냥 쓰겠다)
나는 정치가들에게 지적인 면모나 사려깊음,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남앞에 서고 싶은 병에 걸린 여러 형태중 하나일 뿐.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예의에 연연하는 것, 사진 한 장 남기고 가는 정치인, 의전..이런 것들인데 이런 것은 정말 앞으로도 안 사라질 것 같다.
'국민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나랏님, 나랏일 하시는 분 -- 이라는 이상한 우대 사항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앞에서 설설 기게 되어서 정치인들이 점점 현실과 멀어져 간다. 그리고 그들끼리 쇼를 하고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남앞에 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다 빠진 뒤, 남은 "관심병자"들이 정치인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어렵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면 뒤에 숨지 말고 나와서 세상을 바꿔보지 그래?"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괜찮은 사람들도 남 앞에 서는 순간 다들 이상해진다. 눈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가가 구원할 수 있는 세상이란 없다.
게다가,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욕심이 우선이다. 단체가 어그러져 돌아가면 대표자를 욕하기 쉽지만 사실 대표자 바뀌어도 그 단체는 엉망으로 돌아갈 것이다. 구성원이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가 우선이기 때문에.
지난 십수년간 정권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나라 꼴이 이게 뭐냐?" 할 때마다 사람들은 대표자 욕을 해왔지만, 사실 대표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 사람들은 그냥 남앞에 서고 싶었던 사람들일 뿐이지,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이건 한국어로 모든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모든 소품이 담은 의미를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국 영화여서가 아니고, 깐느+아카데미 최고상 수상이면 역사에 남을 영화인데,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생충 중의 많의 대사가 패러디되어 쓰이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중의 하나가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라는 대사인데...
영어판 예고편 中
이것은 진짜 번역으로 어감이 전달이 안 된다.
중간에 '다'가 추가된 것이라든지, 너는 계획이 있구나-와- 네가 계획은 다 있구나-의 미묘한 차이를 안다든지..이런 것은 외국어 학습으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은,는/이,가 의 사용은 한국어 교육 최대 난제 중 하나로,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도 '나는'과 '내가'를 적재적소에 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한국 근대 소설집을 모국어로 번역해서 낼 정도로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이 본인 책 출간을 소셜 미디어에 소개하면서 "제가 번역한 책은 아렌델왕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라고 시작한 사례가 있다.
"그 책이 어디에서 출간되었나요?"라는 질문의 대답이 아닌 한, 소개를 시작할 때는 "제 책이 아렌델왕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가 자연스럽다는 건 한국인이면 다 안다. 하지만 직업이 한국어 강사인 외국인에게 저 문장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보라고 하니, 찾아내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호기롭게 스페인 버전 예고편을 시청한 것 치고는 딱 두 문장만 알아들었다. 🙄
그 중 하나가 저 부분 대사인데....
"Esta es nuestro oportunidad."으로 들린다.
(혹시 누군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정정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대신에 이건 "우리에겐 기회다" 이런 뜻인데, 외국인이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번역이지만 원어가 가진 뜻과는 조금 멀어지면서 뒷부분과의 연결도 잃게 된다. 영화 뒷부분에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독일어는 전혀 모르지만, 다른 데서 본 바로는 독일어 버전도 "Das ist unsere Chance"로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 우리의 기회다.
나의 모국어로 <기생충>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여태 내가 자막에 의존해왔던 외국 영화 중에 이런 식으로 가장 중요한 대사의 의미조차 다르게 받아들인 영화가 있을 것 같아 아쉬워진다.
5년쯤 살아보면 당연히 변하겠지만...그리고 내가 나이가 더 들었다는 사실도 변수가 되겠지.
그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뭔가가 그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은 기억하지만 그때가 언제쯤이었는지는 확실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싸이월드 기록을 보니, 그 시기에 대한 글이 있네...
다시금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며...
2004.02.18 12:36
간만의 눈물
여기 타국에 와서 뭔가가 그리워서 울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상은 우습게도 십 여년 전에 기르던 개였다.
한 달 전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그런데 그 개와 전혀 닮지도 않은 우리집 개 "재롱이"가 갑자기 생각나면서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죽은 게 확실한 그 개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사를 가면서 그냥 살던 집에 놔두고 갔는데 수 개월 만에 그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멀리서도 우리 가족의 냄새를 알아채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반가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게 반가워하던 모습은 상당히 강렬한 기억이었나 보다.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사람 때문에 울게 되었다. 내일 군대가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다가 그냥 눈물이 나서 대충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고 말았다. 난 내가 군대에 가야만 하는 상황을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남자였다면 나라도 면제 받기 위해 뭔짓이라도 했을 것 같다. 불쌍해....
댓글2
ㅊㅇ경
미야..나두 우리집 강아지 생각난다. 다롱이...ㅠ.ㅜ
2004.02.26 03:23
ㅊㅅㅇ
미야야 미안, 이 와중에도... "용밥"이 눈에 띄어서 순간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어. 미안미안^^
1학년 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결국 2학년이 되어 전공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수강한 "현대영소설"수업.
고등학교보다 더한 주입식 강의를 하시는 🙃 노년의 교수님을 만나, 철저히 필기를 하며 얇은 소설 두 권을 읽었다. 그 교수님이 철저히 가르쳐 주셨기에 여전히 기억하는 단어. ambivalence.
최근에 한 영국 배우가 저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듣고, '헉, 저 단어가 저렇게 발음하는 거였던가..'하고 놀라긴 했지만(bi에 강세가 있었다...), 20년 넘게 잊혀지지 않는 단어.
그냥 내 양가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옛날 이야기까지 끌어왔다.
관심을 끌려고 소셜 미디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뭔가 꾸준히 '토로'하고 싶어서 '마이너' 미디어를 찾아다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묘한 양가감정이 있다.
뭔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댓글 많이 달아주는 '이웃'을 맺기 위해서는 네이버 블로그가 좋지만, 그만큼 너무 많은 사람이 들락거려서 공신력이 좀 하락한 네이버 블로그 대신에 싸이월드 블로그를 하던 나. 싸이월드 블로그가 날라간 뒤, 결국 네이버로 가야 하나...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조용한 구글 블로그에 둥지를 틀었다. 그 결과 정말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한국 친구들이 모두 인스터그램으로 이동했지만, 조용히 페이스북에만 남은 나. 페이스북만 하다가는 한국 친구들의 소식은 도통 알 수가 없지만, 그렇게 알 수가 없어서 더 편할 때도 있다.
혼자 일기장을 쓰기엔...또 뭔가 너무 공허해서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정도 무서운 일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트위터를 맘 편하게 하고 있었는데, 요즘 적어도 두어 명 정도가 내 트윗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뭔가 맘껏 쓰기가 어려워졌다. 요상하게 의식을 하게 된다. 내가 댓글 한 번 달기만 하면 당장 친구가 될, 얼굴 모를 '트친'들이 몇몇 보이는데 쉽게 쓰여지는 트위터 특성상 흑역사가 어딘가 남을까봐 누구와도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트윗에 댓글을 달고 싶을 때도 많다.
'혼자 하는 트위터'에서 최근에 내 트위터의 어떤 사진이 수천 회 조회가 되고, 10여 번 리트윗이 되고 나니, 그것 또한 나름의 재미가 되긴 했다.
이 블로그도 여태껏 그 누구의 반응도 없어서 좀 섭섭하지만, 막상 또 드러난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면...느낌은 또 달라진다.
묘한 양가감정.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누가 좀 알아봐줬으면 좋겠고.
그래도, 내가 정상인인가 아닌가 내가 이상한가 바보인가 고민될 때는, 누군가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러시던 분들이, 새 스마트폰으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좋아라 하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이런 생각이 들 만큼.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오랫동안 옛 폰을 쓰면서 모든 게 다 귀찮아서, 별 필요가 없어서 안 바꿨는데...
막상 새 폰으로 바꿔서 화면이 커지고 나니, 휴대폰 배경화면이 보기 좋아서 정말 자주 바꾼다.
이 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휴대폰 배경 화면을 지정하면, 특정 부분만 확대되어 그 사진이 새로운 각도로 자세히 보이게 되는데, 자세히 안 보이던 것들도 잘 보이게 된다.
2008년에, 커다란 집 2층에 살다가
아래층 집주인마저 이사 나가고 혼자 밤이 너무 무서워서 아예 밤을 새던 날...새벽 5시 넘어서 찍은 동쪽 하늘 사진이다. 우리집 2층 베란다에서 그냥 보이던 풍경. 묘하게도 이날 이후로는 이쪽 풍경이 눈에 들어온 적이 없지만.
세탁기 돌리러 나가면 늘 보는 각도이지만, 그 뒤로 새벽에 이 풍경을 볼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엔 폰 배경을 뭘로 바꿀까...하고 클라우드를 뒤져보다가 이 사진을 찾아내고 바꿔보았다.
동 터오는 붉은 하늘 위에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핑크색이 희미하게 스며있는 게 보기 좋다.
(색깔 쓸 때 영어 단어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핑크만은 분홍보다 더 자주 쓰게 된다)
사진을 전체적으로 볼 때는 크게 푸른빛과 주황색 정도만 눈에 들어왔는데...
그냥 지나쳤을 사진 한 장이 또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게 휴대폰 배경화면의 매력인 듯.
허접한 영어 실력으로 통역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내 전공 중의 하나가 영문과라는 이유 때문에 종종 부탁을 받는다.
내가 내 실력을 잘 알기에, 통역까지는 못 한다고 거절을 했는데
부탁한 쪽이 "어차피 상대방도 영어 능통자가 아니니 대충 하면 된다" 라고 꼬셔서 결국은 하게 됐다.
거의 처음으로 번역이 아닌, 말로 하는 통역을 하게 되어서 (나는 그나마 영->한 문장 번역은 쉽다고 느낀다. 한->영은 좀 더 서툴고) 많은 어려움을 느꼈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 사실 그 일을 했던 2주는 최근 몇년간 인생 경험 중에서도 꽤나 행복한 하루하루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무튼 시간이 끝나갈수록 내가 통역을 맡았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이 느껴져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감사 인사 스피치를 내 스스로 하고픈 맘이 들게 됐다.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다 보니 잠깐, 근데 내 임무가 영어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ranslator라는 보편적 단어가 있었지만, 어디선가 말로 하는 통역과 translator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자료를 좀 찾아보려 했으나 딱히 확실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용례를 보고 interpreter가 지금 내 상황에 더 맞는 것 같아서, 감사 인사를 하면서 "interpreter를 해보긴 처음이라 너무 서툴렀다. 잘못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라고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영화팀의 통역을 맡은 샤론최 씨가 엄청난 실력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외국 매체가 그녀를 translator로 소개하고 있었다.
갑자기 2년 전의 일화가 떠오르면서 '그냥 다들 translator라고 하는 걸 쓸데없이 고민했네. 이런 것도 확실히 모르는 영어 실력으로 어딜 가서 뭘 하겠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내용을 트위터에서 찾아보다가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이 경우에는 interpreter가 엄밀하게는 맞긴 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bbc, 뉴욕 타임즈도 틀리게 쓸 정도로 외국인도 그냥 구분없이 섞어서 쓰는 단어인 듯 하다.
이런 지적은 "Pedantic"이라는 비꼼을 당하긴 하지만 ....
Translation 은 쓰여진 것을 번역하는 것에 한한다.
아래 댓글 표현도 덕분에 새로 배웠는데..."who honestly gives a toss" 라고 하면 "그런 거 누가 상관한다고..."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이 솔직히 어딨냐?" 이 정도의 의미를 가진 영국식 영어다.
그래도 내가 잠깐 동안 "interpreter"였다는 게 맞긴 맞았네.
하지만 대부분이 그냥 translator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도 맞춤법 같은 거 교정해주면 불쾌해하는 사람 있듯이, 이것도 틀렸다고 말하면 '뭘 그 정도 가지고...'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사례인 것 같다.
연말부터 계속된 시상식에서 기생충/봉준호 관련 언급만 되어도 환호성이 제일 컸다는 점이 "투표제"인 아카데미에 영향을 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의적절성, 정치적 올바름....이런 거 다 떠나서 사람들이 기생충 영화 자체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사위원 몇 명이 모여서 판가름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투표로 정해지는 오스카이기에, '휩쓸려갈 분위기'와 '선호'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투표 사례에서 참고가 된 것은 문라이트의 작품상, 그리고 에마 스톤이나 라미 말렉의 주연상 수상 등이 있다.
8000여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사실 후보에 오른 수많은 영화를 다 보고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급사들이 캠페인에 수백억을 쏟아붓는 것이고, 입소문이 중요한 거겠지.
문라이트의 경우, 멋진 영화였으나 솔직히 이걸 8000여 명 회원들이 다 보고 감동받았다고?!?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당시 문라이트는 기생충처럼 평론가협회 등에서 수상 실적이 좋았는데, "이 영화 괜찮대..." , "다들 좋았다고 그러네..." 같은 입소문에 따라서 선호 순위가 올라간 것이 결국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상 선정 방식은 상당히 독특하다. 후보작이 8편일 경우, 회원들이 8편에 모두 순위를 매겨 투표를 제출한다고 한다. 1위표를 가장 많이 받은 영화의 득표수가 과반수를 넘으면 거기서 집계가 끝난다.
만약 1위표 과반 이상 득표한 영화가 없을 경우, 1위표를 가장 적게 받은 영화 (즉 8등인 영화)의 표에서 그 1위로 적어낸 영화를 삭제하고 2위로 적어낸 영화를 다시 다른 1위 투표에 합산을 시킨다...그래도 과반 득표한 영화가 안 나오면 이번에는 1위 득표수에서 7등인 영화도 탈락시킨다. 그러면 투표지에서 영화 2개(7,8위)를 삭제하는 경우도 생기면서 3위 선호로 적어낸 영화도 1위표로 합산되는 경우가 생긴다.
과반수가 나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상당히 묘한 변수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어떤 투표자가 최고로 좋아하는 영화는 못 되더라도, 2-3위 정도로는 적어낼 만큼 무난하게 선호도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참고 사항은.... 당시 다른 후보에 비해 최상의 연기라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그해 가장 각광받은 작품에 출연했던 에마 스톤, 라미 말렉의 경우였다. 라라랜드나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에 힘입어, 사실상의 시청률 공헌상인 KBS연기대상 받아가듯이 아카데미 주연상을 타 가는 것을 보면서 아카데미 수상에는 그 어떤 것보다 '기세' - 기생충 대사에도 나오는 그 기세 - 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생충의 작품성을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아카데미는 품평회보다는 '인기 투표'에 가깝기 때문에 환호성과 인기를 주요 척도로 봤다. 그래서 앞선 시상식들 풍경을 보아하니....왠지 문라이트처럼 작품상을 기생충이 가져갈 것 같았다.
여기에 좀 더 확신을 갖게 해준 게 ㅎㅎ
강력한 라이벌(?) 1917이 BAFTA 작품상을 가져가면서....
최근 몇년간 작품상만 놓고 볼 때는 어느 시상식보다 정확한 지표라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모든 사람들이 기생충을 좋아하며 시상식 때마다 환호성이 컸기 때문에 작품상까지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내기를 걸었다가, 이겨서 $40을 받아가는 영화 평론가 영상 😂
올해 시상식마다 있었던 그 분위기, 그 '기세' - 예전 <문라이트>와 같았던 - 를 전한 Vulture의 Nate Jones 글
내 눈높이는 딱 이 정도인데 (L이나 M으로 시작하는 나라나 도시) 내가 궁금해했던 A나 B로 시작하는 도시들은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꽂혀 있었다 ㅠ.ㅠ
누군가 키가 큰 사람이 오면 부탁할 심산으로 계속 서성이는데
키가 적당한 남자가 하나 오더니, 큰 목소리로 외친다.
"아! 이 책! 러블리플래닛! 이 책 중에 부탄이 없는 게 유감이야"
"아이, 오빠... 그런 나라는 없는 수가 많지"
lonely와 lovely의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을 단번에 뛰어넘은 이 남자는
계속 여자친구에세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나는 쿡쿡 웃으며 서가를 빠져나왔다. 이 남자가 아는 남자였다면 얼마나 민망했을까를 생각하면서...목소리라도 작으면 또 몰라...
잠시 뒤,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그 서가로 가니, 이번에는 눈높이가 정확히 맨꼭대기 책장과 일치하는 꺽다리 외국인이 있다.
간단히 팔만 뻗어도 맨윗칸에 손이 닿는 정말 장신의 금발 아저씨. 머리 속으로 요란스레 영작을 하면서 '이 사람이 나를 외국인에게 말 걸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동안 그는 천천히 사라져버렸다.
재미있는 지구 한 켠의 하루.
what a lovely planet!
댓글3
ㅎ재ㅇ
러블리!!! 참 정겹고 좋네요^^ 그남자 참 재밋네 ㅋㅋㅋㅋ
2011.02.11 20:18
이거 좀 옛날에 썼던 건데, 그 당시 난 '내남자'가 아닌데도 이 남자가 충분히 부끄러웠음ㅋㅋㅋ
니 홈피 보니, 너도 업무에 많이 치이고 있구나...
언제 시간 되면 한 번 근처에서 만나서 수다 한 번 떨까?ㅎㅎ
난 시작도 안 한 학교 땜에 스트레스 팍팍 받는다.
왜 대학원생이 누구 교수 밑에 들어가서 9 to 5로 그 방에 앉아 있어야 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네ㅠ
거절하면 찍힐까봐 무섭고...
혼자 밤늦게 공부하는 타입이라, 학교에 내 책상이 있다고 해도 공부가 될 것 같진 않아..
'을'의 인생은 참 험난하구나...
2011.02.12 01:55
ㅎ재ㅇ
조금만 기달려 주세요. 요즘 완전 폭풍 바뻐서 주말에도 일해요ㅠㅠ바쁜 시간 좀 보내고 연락 드릴께요^^
영화 메뉴에 마지막 포스팅을 한지 벌써 1년이 지났네...
그만큼 영화가 요즘 멀게 느껴진다.
1년 만의 영화 포스팅인데..또 9.11 영화....
그만큼 미국인에겐 임팩트가 큰 사건이긴 한 것 같다.
아카데미 후보 지명에서 그다지 재미를 못 보면서, 아직 한국 개봉일자가 확정되지 않은 영화, Extremely loud&incredibly close.
여태까지 감독한 작품 세 개 모두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었던 스티븐 돌드리가 처음으로 후보 지명을 놓쳤다. 그래도 Tom Hanks, Sandra Bullock, Max Von Sydow 같은 이름난 배우들을 기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꼬마용 Jeopardy!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는, 똘똘하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이 배우, Thomas Horn은 적절한 캐스팅인 것 같다. Tom Hanks, Sandra Bullock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내 머리 속 이미지와는 일치하지 않는 배우였지만, 이 소년만은 비슷하다.
Extremely loud&incredibly close.
역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된다.
몇 년전부터 내용이 궁금했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다음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나..생각해봤더니, 나는 당돌한(?) 조숙한(?) 꼬마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what about.... he would have....가 반복되는,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는 소년의 마음 속 문장들은 절절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 'would have p.p.'를 해석하는 문제를 영국에 오래 살다가 온 친구에게 물어봤다가 친절하지 않은 답변만 들어야했는데...( 그 애에게는 너무 쉽고 당연한 문장이었겠지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would have p.p.를 회화할 때 쓰거나, 페이퍼 쓸 때 써보지 않았다.) 다 읽고 보니, would have p.p.는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동사 형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딱 10년 전, 운동선수의 ups and downs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시절... 한 번 기권하면 거의 선수 생명 끝나는 줄 알던 시절에 썼던 글. 😁
2010.01.26 21:09
열심히 응원했는데...Rafael Nadal
23살에 테니스 선수로서의 노환(? -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못 이기고 8강 경기 중 기권.
어찌 보면 인생은 짧은 건지...
그는 2008년 7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원하는 걸 다 얻은 뒤에,
지금은 다 내놓고 있는 상황.
어찌 보면 인생은 긴 거니까
28살쯤 다시 회춘하길 기대해도 되려나...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조그만 인터넷 화면으로 봤던 호주오픈,
내일부터 케이블에서도 실시간 중계해주는데
이젠 더 이상 궁금한 경기가 없다ㅠ
한때 즐겨 보던 축구가 더 이상 재미없는 것처럼
한 시대를 멋지게 수놓던 테니스 선수들이 30살도 되기 전에 "노화"의 징후가 뚜렷해지니....흥미를 잃게 되려나.
다섯 살 위인 페더러보다도 하락이 빠르잖아...
안타깝다.
중간에 기권을 결정해야만 했던 본인 마음만 하라만은...
2003년 us open 우승 이후, 그랜드 슬램 "준우승" 기록만 4번 있는 앤디 로딕의 팬들이 앤디 로딕을 지켜보는 심정보다는
그동안 나달을 지켜보는 게 더 행복했었을 거라고 위로해야 하나...그래도 그랜드 슬램 우승이 2005년 이후 6번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스포츠 선수를 응원하는 행위야말로 참으로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행위 아니겠냐고 했다던데....
나한테 딱히 이득이 떨어지는 게 없는데도, 순수하게 열심히 응원해왔던 선수가 부상으로 걸어나가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