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


내가 모르는 나, 남이 모르는 나, 내가 모르는 남, 남이 모르는 남.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없는 제3자를 설명할 경우에
그 사람이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압축될 때가 있다. 

"걔 있잖아, 키 제일 작고 마른 애."
"완전 까무잡잡한 그 친구 말이야."
"맨날 나시티만 입던 애, 걔 몰라?"

문장 또는 형용사 하나로 그 사람이 누군지 타인이 알아차리는 상황을 볼 때마다
나는 대체 어떤 단어로 저렇게 설명이 될 지 늘 궁금하다.
이 단어는 늘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설명할 때 나오는 것일 테니
나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인위적인 가식 없이, 자연스런 인생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허세가 섞인 글을 쓰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이 묘한 느낌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마도 당연히 본인은 그것에 대해 모르고 담백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우리 언니가 회사 창립 선물로 어떤 전자제품을 하나 받아왔다. 실용성은 떨어지는데 인테리어 용도로는 남달라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전자제품이었다. 누구나 소유하고 있어야 할, 보편적인 전자제품은 아니다. 그런데도 30만원 좀 넘는 가격.
이 전자제품을 보면서 '이건 아무래도 딱 위의 '그 사람' 취향이다.'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얼마 뒤에 '그 사람'이 자기 집에 그 전자제품이 있음을 슬쩍 드러내는 글을 썼다. 허허. 


'이 전자제품을 보유한 사람은 모두 허세가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하게 붕붕 뜬 느낌, 이것이 일치한 제품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예로 든 것이다.
그 사람의 특성과 성격이 당연히 글에 스며든다는 걸 느낀 계기이기도 하고.


또 한 번,
남들은 내 글에서 어떤 분위기를 느낄까? 궁금해진다.
해줄 수 있는 말 말고, 해줄 수 없는 말이 어떤 것일지.
내가 '그 사람'에게 "당신 글에는 요상한 허세가 스며있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에게,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을 쉽게 할 순 없겠지.


블로그보다는 특히 단숨에 쓰게 되는 페이스북을 볼 때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맞춤법 다 틀려가면서 "한국말 좀 똑바로 씁시다." 이런 거 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경우를 본다면, 
나 역시 '아닌 척'하며 오묘한 허세를 드러내는, 그런 글을 지금 쓰고 있는 중.

우린 같은 꿈을 꾼 거야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mp3, youtube 등을 멀리 하며 랑카에서 2년을 살고 돌아온 2010년경,
동생이 쓰던 아이팟이 나에게 넘어왔다. 그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반자처럼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었지만 나에겐 첫 mp3 device였다.

(내가 mp3 같은 것과 친하지 않았던 것이 80%의 이유였지만, 당시에는 koica 파견 시에 이어폰 등을 끼고 거리를 걷지 말라고 가르쳤었다. 스리랑카는 기본적으로 안전하기는 하지만, 내 평생에서 유일하게 버스에서 동전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다거나, 휴대폰을 분실하고는 그것이 돌아오지 않은 경험을 모두 스리랑카에서 한 걸 보면, 평상시에 안전에 유의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래도 나같은 '원시인' 빼고 대부분의 단원은 이어폰을 끼고 다녔지만 ^^)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mp3와 별로 친하지 않아서, 내 음악을 다운로드 받지는 않고
동생의 취향 그대로 그 아이팟에 든 음악을 들으며 대학원 통학을 했다. 사실 음악들이 그리 내 취향에 맞지는 않았다.


대학원에서 괜히 큰 책임을 맡아서, 자꾸 부담감에 쪼그라들던 시절
무심코 내 귀에 들어온 노래가 있었다.

우린 같은 꿈을 꾼 거야 - 조유진 (015B)


딱히 누군가와 헤어진 것도, 누군가와 같은 꿈을 꾼 것도 아닌 상황이었지만
혼자 큰 짐을 짊어진 것 같던 그때...왜 그리 이 멜로디가 공감이 되던지.








유투브를 통해 노래를 여러 번 다시 듣다가, 황치열이 부른 버전이 조금 더 담백하고 안정감이 있어서 좋아하게 됐다.

지금도 종종 들으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작곡가가 정말 진심을 담은 것 같은 노래.

the New York Times, Sunday, March 19 2006




JFK공항을 떠나며, 11년 전 구입했던 $3.5짜리 두꺼운 뉴욕 타임즈 일요일판.






전에 '정보'에 대해 다룬 어떤 책을 읽다가

"중세 농민들이 평생 습득했던 지식보다 뉴욕 타임즈 일요일판 하루치에 담긴 정보량이 더 많다"

라는 글을 보고, 대체 일요일판이 어느 정도인지 상당히 궁금해 했었다. 2006년에야 마침내 실제로 보게 되었던, 14개 섹션으로 이루어진 300면 가까운 지면을 채운 하루치 신문.


 그중, 당시 스타 정치인으로 막 부상했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한 기사가 인상적이었는데
한동안 이 신문 뭉치를 못 찾다가 오늘 드디어 찾았다.
오바마가 이미 8년의 대통령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에야 ㅎㅎ.








두 페이지로 이루어진 이 기사에서 기자가 오바마에 대해 찾아낸 결점은 '흡연' 정도.


이렇게 스타로 떠올라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다가 검증 과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 간 다른 정치인들의 예를 들면서
이 무결점의 젊은 상원의원이 호감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를 다룬 기사이다.

이 신문 말고도, 언젠가 미국 여행을 갔을 때
스타 정치인 오바마의 탄생을 알리는, 한 면 전체를 할애한 기사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만 하면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고 '다 똑같은 그놈이 그놈'이 되어서
식상한 이미지로 소멸되어 가는 많은 사람들의 예를 볼 때...

2000년대 중반부터 자신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성공적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하고
아직까지 호감 정치인으로 남아있기는 정말 힘든 일 같다.

진정한 '무결점' 인간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but they will love him tomorrow?
11년 전 질문에 여전한 긍정적 대답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뿌연 하늘과 첫 인상



서울에서 잘 가지 않던 쪽의 동네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데, 하늘이 흐려
가는 내내 뭔가 더 우울하고 꿉꿉(?)했다.
오랜만에 가보는 그 동네의 인상이 우중충.
 새삼 사람이 사는 데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하게 됐다.


여행 가서 처음 마주하는 도시,
아니면 두서너 번째 만나는 도시라고 해도
내가 늘 다니던 곳이 아닌, 낯선 도시는
파란 하늘 아래 만났을 때랑,  회색빛 뿌연 하늘 아래 만났을 때랑
정말 느낌이 다르다.

몇 년 전 처음 마주했던 외국 도시의 흐린 하늘이 생각났다.






엄마를 모시고 가는 거라서, 몇 달에 걸쳐 어행 준비를 했는데
결국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던 몇 년 전 여행.
새삼 더더 아쉽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거지만
가족의 눈에는 희뿌연 하늘만 남아있을 그 도시.


날씨가 좋으면 이런 곳인데....



google maps, 맑은 날씨의 비슷한 위치



펭귄 입술





화장할 때 입술만 조그맣고 빨갛게 두드러지면
펭귄 입술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펭귄은 입술이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말하는 펭귄 입술은 '심형래 입술' 인 듯.
이런 분야에 족적을 남기시다니... ㅎㅎ







아니면....
펭귄 입술이 "빨갛다"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세대 차이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위 자료의 화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심형래의 펭귄을 안다는 것은 옛날 사람이라는 뜻이니...🤗

"요즘 애들"은 펭귄 입술은 "노랗다"고 할 지도....




2006, Chicago & NYC 여행이 남긴 사진들














다른 사진은 언제든 다시 찍을 수 있는 사진이지만, 이 사진은 이제 찍을 수 없는 사진. Ground Zero를 정리하는 모습




내가 좋아하는 사람



差不多~ 差不多~
중국어를 조금 배(우다가 말았)웠을 때, 좋아했던 단어 중의 하나.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 "差不多"정신이 중국인 기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기질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差不多~
1. [형용사] (시간·정도·거리 등이) 비슷하다. 큰 차이가 없다. 가깝다. 
2. [형용사] 그런대로 괜찮다. 
3. [형용사] 일반적인. 대다수의. 대부분의. 보통의. 웬만한.
나는 이런저런 것을 할 때 약간 대충 하는 편이다.
대충 닦기, 대충 자르기, 대충 문지르기, 대충 쓰기, 대충 붙이기.
너무 성의없어 보이지는 않되, 문제가 되지는 않는 선까지 해놓는다.
差不多~
큰 차이가 없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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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2년간 다른 나라에서 살 때,
거기서 만난 한 후배는 나의 엉성한 면을 좋아했다.

대충 깨끗하고 대충 더러운 우리집.
"ㅋㅋ 언니 집다워요."

대충 만들어낸 무언가.
"ㅋㅋ 이거 너무 언니스러워요. 이거 딱 언니가 한 거 같아요."


이렇게 살다가 2년 타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던 짐을 싸던 날.
EMS로 한국에 이미 50KG을 부치고도, 여전히 20여 kg의 짐이 남아서
내 초대형 트렁크에 (2년 동안 살면서 숱하게 한국에서 건너오는 친구들을 봤지만 내 트렁크보다 큰 트렁크는 보지 못 했다.) 남은 짐들을 우겨넣었다. 사실 이렇게 짐을 쌀 때는 꼼꼼히 옷을 돌돌 말아서 넣고, 차곡차곡 챙겨넣어야 좀 더 많은 물건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나의 귀차니즘이 발동해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옷을 접어서 가방 속으로 쑤셔넣었다.

이것을 보고 있던 그 후배가 옆에서 말했다.
"ㅋㅋ 언니가 하는 모든 건 다 언니스러워요. 전 이런 언니 모습이 좋아요."


늘 꼼꼼하지 못하다고 혼나던 나에게, 이 평범한 말이 얼마나 기억에 남고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어떤 친구를 만나더라도, 이런 친구를 만나야 할 듯하다.


"넌 어쩌면 이렇게 뭐든 제대로 못 하고 이 모양을 만드니? 에이구 ...아휴..."
이런 사람보다는, 내가 하는 모든 게 나같아서 좋다고 해주는 사람.

the Shard



힘 안들이고 홍보 - the shard






2014년 여름 런던에 갔을 때, 유난히 눈에 띄던 건물.
이름이 the Shard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
2013년에 완공된 유럽연합 내에서는 최고층 건물이라고 하는데, 작년에 가봤던 이 주변은 그냥 휑한 편. 난 덜 지어진 건물인 줄 알았음.
그 높이보다, "누가 이런 평양 류경호텔 스타일 건물을 런던에 지어놨어?" 이러고는 친구와 킬킬 대며 지나간 것만 기억에 남았다.
      
상대적으로 고층건물이 적은 유럽 도시이기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the shard.
윔블던 테니스장에서도 삐죽이 솟은 삼각형이 보임.
      


15km정도 떨어진 리치몬드 파크에서도 보이는 건물.
이 건물에 Shangri-la 호텔이 들어와있는 줄은 몰랐는데, 유명 배우의 열애설로 자연스레 호텔 홍보가 되었네.
김연아의 열애설 사진 때도 사진 속 그녀가 항상 들고 다녔던 도시락 가방이 잘 팔렸다고 하던데 ㅎㅎ

이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떨어지는 부수 효과가 있으니, 다들 그렇게들 유명인사한테 협찬을 하려고 하는 건가봐.
Shangri-la는 the shard의 34층부터 52층까지 쓴다고 하니, 낮은 층 방을 배정받아도 웬만한 서울 호텔 최고층 방보다 더 높은 곳일 듯.


      



괜히 고생해서 london-eye 이런 데 올라가볼 필요도 없이, 자기 방에서 즐기는 전망.  
부럽....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전시




아주 오랜만에 사진전을 보러갔다.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사진전은 오랜만인 건지, 아니면 처음인지....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
'인증' 중심의 관람.
사진을 '보는' 사람보다 사진과 함께 하는 자신을 '찍는' 사람이 더 많다.






사진 제목을 바닥에 전개하는 독특한 방식.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나도 찍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입장권을 자세히 보니, 전시물과 함께 한 본인 인증샷이 있으면 다른 날에 재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다들 열심히 찍으셨던 걸까.

밝은 얼굴로 열심히 인물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멀찍이 비켜 서 있었던 나는,
그만큼 'youth'에서 멀어졌음을 실감했다.

노인들이 주름진 자신의 얼굴 사진을 손사레 치며 싫어하듯이, 나도 이제 그럴 차례가 된 걸까...하고 생각했다.





흔들흔들




톈진에 살 때였다.
중국어를 통 못 하는 나였지만, tv뉴스에서 자막은 쪼금 아주 쪼금 읽을 수 있었다.
아침에 '톈진 일대 진도 4의 지진'이런 내용의 자막을 보고 학원에 가니, 지진을 느낀 사람과 못 느낀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진을 절대 못 감지한 나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 전세계적으로 최악의 사상자를 낸 지진이 톈진 근처 탕산인가 하는 데서 있었던 지진이라는 한국 신문 기사를 보고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도 새벽에 침대가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배를 타고 잠을 청해 본 적은 없지만
바다 위에서 잠을 청한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게 침대가 출렁출렁 했다. 신기했다.

'이런게 지진이로군~!'

첨에는 재미있었지만 출렁이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면서 두려워졌다.
그날은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이었기 때문에 사놓은 비행기표 등등이 아까워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돼~~죽을 때 죽더라도 여행은 하고 죽어야지...타국에서 건물 더미에 깔려죽다니..이건 아냐...'


...............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침대 위에서 진동을 느꼈다.
톈진에서처럼 상하좌우 출렁임은 아니었지만 침대는 계속 흔들렸다.
지진이라고 생각한 나는 라디오를 켰다.
보통 57,8분쯤 방송되는 날씨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더 누워서 빈둥거리다 인터넷을 켜니 남부지방 지진에 대한 속보가 떠 있었고, 내가 흔들림을 느낀 시간과 비슷했다.

음....
언제까지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지진을 이렇게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ㄱㅈㄷ 
    하앗...인간탐지기가 여기에 계셨군!
    2005/03/26 10:38
           
  • ㅅㅎㅈ
            
    허걱...남부지방 지진을 네가 느꼇단 말야?
    2005/04/3 10:14
          
  • nothingmatters
            
    서울에서도 느낀 사람 몇몇 있대...난 한번 겪어봐서 더 잘 느꼈던 것 같구...







차분하게 살벌한 채용 공고

 



영어로 써놓아서 뭔가 토익 시험문제지를 읽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느껴져서 그렇지,
인내심, adverse...이런 단어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업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껴지는 채용 공고.
      
* 고객 응대를 위해서 주말과 휴일도 교대 근무로 돌아가며 일주일에 40시간 근무해야합니다. 밤 근무나 이른 아침 교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 인내심과 공감 능력, 그리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 압박감 아래서도 업무를 해내고, 적대적인 상황에 재빨리 적응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
그런데 막상 한국어로 옮겨 놓고 보니 솔직한 채용공고 아닌가 싶다.
XX기업에서 함께 미래를 설계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해놓고는, 아름다운 미래는 저 너머로 사라지고, 사원들을 적대적인 상황 아래 내몰고 밤낮으로 고생시키기만 하는 회사보다는 이렇게 미리 경고라도 해주는 게 얼마나 친절한(!) 채용 공고인지.
이 정도의 고생아니면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이겠지.
꿈깨자.

Louder than bombs (2015)









영화 자체가 매끄럽게 잘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랑하면서도 서로 힘들게 하고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고
가까우면서도 서로 잘 모르고
말해야 하는 것은 말 못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하고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그런 '가족' 이라는 집합체의 특성을 잘 그려냈다.




이제 풀 수 없는 의문


이제 풀 수 없는 의문



한때 합정동 쪽의 건물 3층에 산 적이 있었다.
근처에 중학교도 있었고, 우리 건물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사무실, 지하에는 작은 기획사의 연습실이 있어서 사람들이 좀 왔다갔다 하던 건물이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는 '하리수'가 이곳에서 연습했었다고 하고, 그뒤에는 '파란'이라는 그룹도 있었다.

내가 외국에 체류하느라 가족과 같이 살지 않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파란' 멤버의 생일인가 뭔가 행사가 있었는데... 지하에서부터 줄 지어 기다리던 팬들이 1층, 2층, 계단을 타고 올라와 3층 우리집 앞쪽까지 와서 추위를 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건물 들어와서 1층 정면에 작은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을 음식점 손님 아니면 지하 연습실을 쓰는 사람도 이용하는 것 같았다. 3층에 살던 시절 어느날,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려서 나가봤더니, 깜짝 놀랄만큼 귀여운 소녀(연습생)가 화장실 열쇠를 좀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한 번 보면 기억에 남을 얼굴이었는데 그뒤로 데뷔한 걸 못보았으니, 정말 연예계 데뷔란 쉽지 않은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중학생들도 지나다니던 길이었던지라, 가끔 그 1층 화장실에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고 가는 일도 있었다.
깐깐한 우리 언니는 걔네들을 혼내서 내쫓기도 했다.
거의 10년전,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빠와 나만 집에 있었던 어느날,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며 현관을 통과해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살던 3층은 대충 이런 구조였는데, 아빠가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다가 눈을 떠보니 어떤 여자가 안방 입구에서 손을 뻗어 그 옆 책장 선반에 놓인 지갑을 가져 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도둑을 잡겠다며 뛰어내려가신 거였다.
나는 아빠가 걱정 되어 같이 마구 뛰어 따라내려 갔는데, 내려 가면서 2층이나 1층 계단에서 우리집 것이 아닌 신발 한쪽을 본 것 같았다.
뭐지?
아빠는 3층에서 마구 뛰어내려가 길가에 서 계셨지만,
인적이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닌 그 길은 너무 평안했다.
아빠보다 먼저 누군가 신발이 벗겨진 채로 뛰어내려온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행인들도 뭔가 웅성거렸을 텐데 말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시는 아빠를 모시고 같이 3층으로 올라왔는데,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아빠는"꿈인가? 꿈꿨나?"하셨다.
그래, 꿈속의 한 장면이 누군가 내 물건을 집어가려 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본 '남의 신발'은 뭐지?
그 신발은 3층으로 올라올 때는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내 기억조차 그것을 진짜 본 것인지, 상상 속에 그려낸 것인지 가물가물하다. 그 여자분이 집에 들어왔던 게 맞다면 내 방을 지나서 안방까지 간 것도 무섭고 정말 꿈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도둑이 급한 대로 1층 화장실에 뛰어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젠 영원히 풀 수 없는 의문이 됐다.
이 날 이후로는 현관문에 꼭 걸쇠를 걸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동네를 너무 믿었나봐.
8년 전에 떠나온 합정동은 이제 홍대 지역의 지속적인 팽창으로 내가 살았던 그곳까지 카페나 음식점들이 더 많이 개업한, 번화한 지역이 되었다. 그 집에서 한강으로 산책 가던 길에 항상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낙서 많은 옛YG 건물도 기억나고 ㅎㅎ 언제나 그 앞에서 서성이던 팬들도 기억난다.

오래 전 일이다.

랑카에서 고양이를 만나기 1년 전에는 이렇게 살았다.




싸이월드에 내가 올리는 사진만 본다면 그냥 좋아 보이는 생활.
즐거운 기억도 있고, 혼자 앉아서 씨익 웃음 짓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은 하루 사이에 몇 개씩 쌓여가는 벌레 시체들을 보면서 화가 났다.

으윽..
이걸 다 어떡해...
왜 다 여기서 죽어가는 거야...

큰맘먹고 쥐를 잡기 위해 설치한 끈적이는 물질(쥐가 달라붙어 못 움직이게 하는) 역시 소용이 없이, 쥐가 그 물질을 뚫고 탈출했다.

짜증이 나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내가 '자원(Volunteer)'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ㅅㅎㅈ
            
    하하하하. 쥐 너무 끔찍해...
    2008/03/18 00:25

  • ㅈㅎㄹ
            
    새우깡에 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뉴스봤어요?ㅜㅜ
    2008/03/19 19:04
           
  • nothingmatters
            
    이제 다 포기하고 쥐랑 동거하련다....;;;;^^
    2008/03/19 19:06
           
  • ㅇㅁㅅ
            
    끈적이를 탈출할 정도라면 쥐가 엄청 막강한 놈인걸^^;;;
    2008/03/21 00:33
                             
  • nothingmatters
            
    심지어 몸에 끈적이는 물질을 붙인 채로 집안을 돌아다닌 흔적도 있더라구;;;;
    2008/03/21 17:45

이 사진


최근의 잠자리

    등록일시
2009.03.17 19:15






우리 집에 온 후 잠자리를 스스로 세 번 바꾼 타미..
때때로 맘에 드는 곳이 다른가보다.
요즘은 소파를 놔두고 주로 여기서 취침.
특이한 녀석일세.
집주인의 정리 안 되는 생활상이 다 보인다.

델타 스카이마일스 메달리온 스테이터스 챌린지




American airlines Aadvantage gold가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다른 항공사에 status challenge를 시도해봤다.

유나이티드항공에 해볼 수도 있었지만 유나이티드는 한 번 챌린지가 인정이 되면 5년 내에는 다시 신청할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그냥 재미로(?) 챌린지 신청했다가 여행 기록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면, 5년 내에 유나이티드를 진짜로 이용할 일이 생길 때는 정작 챌린지를 신청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재신청이 가능해지는 기간이 그나마 3년으로 짧은 델타로 신청.

https://ko.delta.com/content/www/en_US/skymiles/medallion-program/skymiles-medallion-status-match-challenge.html


다른 회원사의 등급을 무조건 인정해주는 "스테이터스 매칭"과는 달리, 스테이터스 '챌린지'는 짧은 기간 동안만 해당 등급의 혜택을 부여하면서, 그 기간 동안에 일정 정도의 실적을 쌓으면 실제 등급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보통 90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만 그 자격을 부여하기에, 사실 여행 계획이 있거나 여행이 임박했을 때 챌린지를 신청해야 한다. 90일 동안 아무 일이 안 생기면 아무 소용이 없다 ㅎㅎ. 하지만 나는 아메리칸 항공 골드 등급의 유효 기한 만료가 임박한 마당에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스테이터스 챌린지를 시도.







Aadvantage gold가 있으면 델타 메달리온 실버로 90일 동안 매칭해준다.
아래쪽을 보면 이것저것 기입하는 란이 있고, 여기에 해당 사항을 입력하고, 타항공사 회원 실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타항공사 elite status의 유효 기간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으면 거절 당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아무 스크린샷이나 첨부하면 안 된다. 나는 아메리칸 항공에서 날아온 플라스틱 회원 카드의 사진을 첨부했다.


business day 7-14일이 소요된다고 나와있는데, 실제로 나는 18일 만에 답을 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5일 정도 짧게 걸리는 사람도 있다.








일단 90일 동안은 실버 메달리온. 여행 계획은 아직 없지만ㅎㅎ 그냥 꿈이라도 꾸기 위해.

챌린지 90일의 기간 동안 6,250 마일 정도의 실적을 쌓으면 2018년 1월까지 실버 등급을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델타항공에서 예약을 시도해보니, 해당 편마다 컴포트 플러스 좌석이나 퍼스트 클래스로의 승급 가능성도 미리 알려주는 등, 아메리칸 항공 사이트보다 훨씬 엘리트 회원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2016년 9월 28일부터는 에어 프랑스나 중국동방항공, KLM 등에서의 마일 실적도 챌린지할 때 인정해준다.



중국동방항공  탑승 시 델타항공에 적립되는 마일리지 예시



재작년에 가족과 같이 여행할 때, 언니도 대한항공 모닝캄 등급으로 델타 실버 메달리온을 받아서 여행했는데, 선호 좌석을 일찍 지정할 수 있었고, 미국 국내선은 짐을 부치면 무조건 $30 이상 내야하는데 그것도 면제 받았다. http://mori-masa.blogspot.kr/2016/02/blog-post_11.html

델타 마일은 일반 회원 탑승 시 지불 $ 비용 X5, 실버 회원은 X7이 적립되는데, 언니의 경우 X7이 적립될 줄 알았더니 X5만 적립이 되었다. 고객 센터에 문의해보니,  스테이터스 챌린지 기간에는 그냥 기존 등급의 배율이 적용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음...예전 다른 분들 경험담을 보니 챌린지 기간 동안에도 보너스 마일리지 많이 받으신 분들이 있던데??... 이젠 아닌가보다.


starwood  호텔 숙박과 연계해서도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등, 메달리온 프로그램의 혜택이 많은데...

90일 동안, 좋은 일이 안 생기려나.....




오라클 ceo, Larry Ellison과 테니스

 





2012년 3월, 인디언웰스 경기를 지켜보다 눈에 들어온 장면.
내가 실제로 구입을 고려했었던 나달의 자켓을 착용한 저 여성은 누구인가...

2012년 1월에 직접 나이키 매장에서 찾아 보기도 했으나, 화면보다는 실제 색상이 덜 예뻤고, 사이즈가 나에겐 너무 클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테니스 게시판에도 이 옷을 사고 싶다는 글이 유난히 많은 편이었는데, 두 달이 지난 시점에 그 옷을 입은 여성이 등장한 걸 보니...사람들이 옷을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쿡쿡...하면서 이 화면을 캡쳐했었다.
그런데 상의는 나달의 것이되, 모자는 로저 페더러(RF)의 것을 썼네... 대체 저 여자는 누구지?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 사진의 중심은 저 여자가 아니라 그 옆의 남성 Larry Ellison, 오라클의 창업주이자 이 인디언웰스 토너먼트의 말그대로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테니스를 직접 치는 애호가이자 자칭 나달의 'fan boy'인 그는 2009년말, 매년 3월에 열리는 이 대회와 테니스 경기장을 '사버렸다'. 미국 내 3위의 부자라니까 말다한거지 뭐. 보유 재산이 50조원대로 추산되는 그는 약 천억 원 정도의 '껌값'을 써서 이 대회를 샀다고 한다. 스포츠계에 잘 알려진 EPL 맨시티 구단주 만수르(34조)보다 훨씬 더 부자다.


이 테니스 대회는 경기가 벌어지는 8개의 모든 코트에 호크 아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유일한 대회이다. (그랜드 슬램이 열리는 테니스 코트들도 최대 4-6개 정도의 호크 아이 시스템을 가동하는 게 전부이다. 메인 코트에서 뛸 수 없는 랭킹 하위권 선수들은 선심들이 라인콜 오판을 해도 호크 아이를 통해 바로잡을 기회가 없다.)
"왜 코트 6에서 경기하는 선수는 메인 스타디엄에서 경기하는 선수만큼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거죠?"
국내 뉴스를 찾아보면 '낭비벽의 괴짜 巨富'로만 소개되고 있는 래리 엘리슨의 당연한 질문.    http://www.tennis.com/players/2010/11/newcomer-of-the-year-larry-ellison/25641/   




이러한 시설 보완을 통해 인디언웰스 마스터즈는 '멜버른-파리-런던-뉴욕'의 그랜드 슬램 대회에 필적할 만한 '5번째 그랜드 슬램'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곳의 메인 스타디엄은 1만 6천 석 규모로, 뉴욕의 아서 애쉬 스타디엄(22,547명)에 이어 테니스 경기장으로서는 세계 두 번째 규모이다. LA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인 이 곳에, 올해는 37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윔블던은 2012년 48만 4천여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경기장 사진과 이 단락 자료 참조: http://www.tennis.com/pro-game/2013/03/fifth-major/46785/


래리 엘리슨은 사실 토너먼트 주최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현명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나달의 팬임을 밝혀왔다. 그는 페더러가 최고의 테니스 선수임을 인정하고, 라파 나달이 로저 페더러를 능가하는 tennis player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파는 역사상 테니스를 해온 모든 선수 중에 가장 뛰어난 체육인? 운동신경이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the greatest tennis player와 구별하여 the greatest athlete in tennis라는 느낌은 무슨 단어로 전달해야 하나...)


한 인터뷰에서 "윔블던에서 라파의 270도 백핸드샷을 봤나? 우리 고양이는 그런 걸 할 수 있어. 하지만 인간은 그런 걸 못 하는데...what the hell?" 이라는 재미있는 예를 든 바 있다. 또한 2009년 호주 오픈 우승 후, 시상식에서 준우승한 페더러가 울어버리자 몹시 당황하고 미안해했던 라파의 태도를 예로 들면서 "페더러가 man이라면, 라파는 훌륭한 인성을 가진 'big kid'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에서는 나이보다 좀 젊어보이지만 래리 엘리슨은 1944년생, 한국나이로 칠순에 다다른 할아버지다.


(2014 indian wells에서 나달 hot shot을 보고 좋아하는 래리 할배)


IT 업계의 부침을 뚫고 살아남은 풍운아 래리 엘리슨이라도 조코비치의 성장을 예견 못 했는지, 2009년 마드리드 오픈에서의 조코비치-나달의 준결승 혈전(4시간 3분이 소요된 3세트 경기!)을 두고 "조코비치의 아마도 인생 경기였지만, 그는 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2010년 11월 기사). 흠흠, 하지만 '기권 잘 하고 체력 약한 이미지'의 조코비치는 그뒤 2011년부터 수많은 '인생경기'들을 쏟아내며 현재 테니스의 왕좌에 올랐지...


아무튼,
저 맨 위 사진의 여자는 사진이 찍힐 당시(2012)에 외국 테니스 포럼에도 '대체 누구냐?' 라는 글에 수십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호기심을 유발했는데
숨겨둔 딸이라는 설과 함께, 애인이라는 설이 유력한 듯. 이름은 Nikita Kahn. 래리 엘리슨은 4번의 이혼 경력이 있다. 2013 인디언웰스 뉴 스타디엄 신축 '첫삽' 행사에도 유명 테니스 선수와 함께 참석. 
나달이 2013년 인디언 웰스 우승 후, 누구보다도 먼저 래리 엘리슨에게 달려가서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




래리 엘리슨의 공식적인(?) 딸 메건 엘리슨은 아부지의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삼아 20대 어린 나이에 Zero Dark Thirty 같은 빼어난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등극. 서른 살 아들 역시 미션 임파서블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자.
아버지는 테니스광, 자녀들은 영화광으로 자라난 듯.

      


맨 왼쪽이 메건 엘리슨....
제로 다크 써티,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인데.
그랬구나...
부자들은 정말 다양한 걸 하고 사는구나 ^^

'미쿡'에 대한 환상?





난 미국에 살지 않은 것 치고는, 미국인이 사는 여러 종류의 집에 많이 가서 머물러 봤다.
15년 동안 5번 여행 가서 합계 3달 가까이 머물렀는데, 호텔에서 잔 것은 그 중 딱 6일 뿐이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콜로라도, 유타, 뉴저지, 매사추세츠, 워싱턴 DC, 버지니아, 뉴욕, 일리노이, 미시건...14개 정도 주에 있는 미국 집에서 잠을 자봤으니, 정말 다양한 집에 많이 가봤다. 일반 가정에 못 가보고 호텔에만 머물렀던 주는 조지아 주.

80대 노인들만 고양이랑 사시던 집, 천정에 작은 유리창이 있어 밤하늘이 보이던 집, 낮은 침대가 있던 집, 높은 침대가 있던 집, 물침대가 있던 집, 아들 셋, 딸 셋 6남매를 키우던 화목한 집, 나에게 목화 한 송이를 따 주시던 시골 농장 같은 집, 완전 시내 중심에 위치한.. 직원이 문 열어주는 콘도미니엄, 내가 화장실을 고장냈던 대학 근처 오래된 아파트, 보안을 위해 너무 폐쇄적이라 단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도 못해 20분을 빙빙 돌다 겨우 외출했던 허드슨 강변 아파트 단지, 나에게 방울뱀 꼬리를 모아놓은 상자를 선물했던 시골 집 등등. 참.... 그 방울뱀 꼬리를 선물했던(?) 집 앞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처음 봤고, 생애에 유일하게 북두칠성을 봤다. 그 미국 아이가 가르쳐준 big dipper(북두칠성)라는 단어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 집의 특색은 침실만큼 화장실이 많다는 것이고, 그 화장실마다 정갈하게 목욕용품이 갖춰져 있다는 것인데, 그 목욕 용품에는 한국과 다른 특유의 향이 있다.
가끔 친구들이 선물해주는 미국 목욕 용품의 향기를 맡으면 '아 미국 냄새다' 하는 것 말이다.




뭔가 알아보려고 bath & body works 사이트를 열었다가 이 사진들을 보고 미국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여행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환상.
무엇보다 가장 큰 건, 넓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여유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선택의 폭.
지금 한창 세일 중이던데, 여러 개 구입해서 나도 집 화장실 곳곳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살고 싶은 소망.


그런데 이 '미국병'은 그냥 내가 여행자였기 때문이겠지.
영주권 받고, 일년 내내 날씨 좋은 미국 한 동네에서 학교 잘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내 친구는 내년에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남편만 일단 남겨두고.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면 별로라며.

그리고 위 브랜드도 미국 좀 살았다는 사람은 품질이 별로인 저급 브랜드라며 '까는' 브랜드 ㅎㅎ 소비의 선택 폭이 넓은 것은 부럽지만, 결국 그곳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면 다른 선택의 폭은 좁아질지도 모르는 일.

그래, 그렇겠지.
늘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체험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래도 저 샤워젤 병들 이쁘네. 사진빨 좋아.ㅋㅋ

미련 덩어리 가운데서 발견한 미련 덩어리





어제 내가 너무 많은 인쇄물들을 못 버리고 끌어안고 살아서
어찌할지 고민이라는 글을 썼지만...
또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오래된 잡지를 못 버린다.




무려 "인터넷의 멸망"을 예측한 1996년도 주간지 기사.




회선 체증, 범죄 득실, 경제성의 실패.... ㅎㅎㅎ

이때 기자가 20년 뒤 2016년으로 와서, 그 누구도 'sort of 인터넷'에 미련을 못 버린 채
지하철에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작은 화면에 집중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다른 96년도 주간지는 인터넷 쇼핑의 신세계를 소개하고 있었다.
정겨운(?) 하이텔이나 나우누리를 연상시키는 파란 화면 속 대한항공 사이트가 인상적이다.
96년도에도 아직 저 정도였던가 ...




 

미련 덩어리



난 약간의 활자 중독이 있는 것 같다.
뭔가를 계속 읽고 있어야하는 편.
그러면서 동시에 인쇄물을 많이 모은다.


안방에 있던 내가 쓰던 책장을 이제야 내 방으로 가져오는 '정리'를 좀 했는데,
내가 쓰던 책장은 맨 아래가 서랍장이어서 저번 책장보다 책이 덜 들어간다.






수납 공간을 잃고 쌓여있는 종이 덩어리들을 보니 한숨이 나오네.
솔직히 남이 정리했으면 진작에 모든 걸 갖다버렸을 것이고, 나는 그게 없어진지 눈치도 못챘을 것들인지도...
그런데 내가 하나 하나 들고 읽기 시작하면 대체 버릴 수가 없다.

이 미련을 어떻게 버리지? 











그들은 오늘도 달린다

.등록일시
2007.03.07 23:34

추격씬이 꼭 등장하는 영화 장르는?



바로 '로맨틱 코미디'이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깨닫거나 상대방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깨달은 뒤, 자신 때문에 떠나는 상대방을 붙잡으려는 달리기는 내가 본 모든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했다.

로맨틱 코미디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달리기 시작하거나 각종 운송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붙잡으려 용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쿡쿡 웃는다.

'어째, 저걸 못 벗어나니...convention인가?'

역시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협회'같은게 있어서 남자든, 여자든 한쪽 주인공이 15초 이상 달리지 않으면 로맨틱 코미디에 끼워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friends나 sex and the city도 마지막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의 추격씬이 등장한다. Ross는 Rachel을 추격한다. 뛰는 이유는 다르지만 미스터 빅도 뛰고, 캐리도 달린다. 그러므도 이들도 로맨틱 코미디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선, 
the Break-up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제니퍼 애니스턴이 조깅 한 번 한 것 외에는, 주인공들은 쓸데없이 뛰어다니지 않는다.
  
한국 개봉 제목이나 한국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면 '로맨틱 코미디 後愛' 또는 '함께 살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랄까.
  
브레이크 업은 로맨틱 코미디가 끝난 그 시점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해리와 샐리가 한 집에서 1년 이상 같이 산 뒤라도 여전히 행복했을까? 휴 그랜트와 드루 배리모어가 동거하면 서로 잘 맞을까?
  
브레이크 업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쓰는 수법은 상투적이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後愛'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최근 잇달아 본 시사회 중에서 가장 느낌이 좋았던 영화.
  
  
  
  
  
1.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인데 '브레이크 업'과의 공통점은 배경이 시카고라는 거. 시카고는 로맨틱 코미디를 찍기에 참 좋은 도시다. 이방인의 시각에서 뉴욕이 참 '매력적'이라면 시카고는 그보다 좀 더'낭만적'인 것 같다.
  
2. 덩치 크고 둔해 보이는 빈스 본이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연기를 참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정이 정말 딱 그 상황에 처한 사람 같다. 

ring cut




2000년대 후반, 스리랑카에는 ring cut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나도 이제 스리랑카를 떠난지 오래 되어, 요즘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발신번호 뜰 정도의 시간만 주고 재빨리 끊어 부재중 전화로 번호를 남기는 것.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처음 나에게 이렇게 전화 번호를 남겼을 때는 '학생들이 용돈이 부족해 이렇게 하나보다.' 하고 내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곤 했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상당히 당황했다. 하긴, 나도 만약 "이탈리아어 초급반' 수강하고 있는데 이탈리아인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하면 입이 안 떨어질 것 같다.

다시 물어보니 이 링컷은 그저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 뒤로는 전화벨이 울리다가 순식간에 끊기는 링컷과 정말 통화를 하고 싶어서 하는 전화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얼마 간은 '국제 전화 링컷'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울리고 끊기는 전화. 전화기를 켜보면 '+00--'으로 시작하는 긴 번호가 떠 있었다. 어느 순간 한 음만 울리고 소리가 딱 끊기면 '아, 링컷이구나'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스리랑카에서도 잊지 않고 한국까지 링컷을 해주는 학생들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안부를 묻는 국제 문자를 보내주곤 했다. 그때까지는 랑카에 무선 인터넷이라든지,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지 않아 지금처럼 페이스북으로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없던 때였다. 2010년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흑백(?) 화면의 $40정도 하는 기본 기능의 노키아폰을 쓰고 있었다. 나도 그 폰을 썼었고.


자판에 보면 스리랑카 문자인 싱할러 문자도 있다 :)
 




수년이 지나...
오늘 갑자기 그 링컷이 기억났다.
여전히 학생들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이제 나에게 링컷을 할 학생은 없겠지?
내 번호는 10년째 그대로인데...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보여지고 다 파악이 되는 페이스북보다
링컷의 그 수줍은 감성이 그립다.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